Dogummuan RAW novel - Chapter 93
93
[도검무안 93화]
第十五章 애사(哀死) (3)
곳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소림 방장을 필두로 승도속(僧道俗),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려 십여 명이나 앉아있다.
“빌어먹을!”
대가람에 어울리지 않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교혈랑대는 아주 큰 고기다.
그들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의 무공은 능히 대문파 장문인과 버금간다. 지금까지 그들과 맞서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아쉽다.
놈들이 코앞에 있는데,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는데……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데 꼼짝하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 한다는 게 미치도록 억울하다.
“저 새끼들…… 더럽게 설쳐대네.”
몸에서 시궁창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걸개가 말했다.
“방주, 너무 분해하지 마시오. 이 빚은 반드시 갚을 거요.”
“그건 알지만 미치겠으니 하는 말이 아니오.”
방주라고 불린 사람, 개방방주, 용두방주가 툭 쏘아붙였다.
“휴우!”
그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무공으로는 적암도를 상대하지 못한다.
불행하지만 이것이 현재 중원 무림의 현실이다.
각 문파에는 오제의 무공에 필적할만한 무공이 산재해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그런 무공을 정심하게 수련한 사람이 없다. 고수가 없다.
고수는 있었다. 강하다는 사람이 존재했다.
이번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앞장섰다.
그들은 적암도 사주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도 정말 간발의 차이로 졌다. 분명히 이길 것 같았는데, 정말 아쉽게도 실낱 같은 차이로 졌다.
결전에서 진다는 것은 죽음이다.
도련 사람들은 패배는 곧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패하면 자진한다. 살려주고 싶어도 자기들 스스로 죽어버린다. 그런 만큼 이쪽도 너그러운 마음을 기대할 수 없다. 패하면 즉시 살검이 날아든다. 죽는다.
한 명, 두 명…… 강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만큼 강북 무림의 힘은 약해졌다.
이제는 각파의 장문인들을 제외하고는 고수다운 고수가 없을 지경이다. 물론 장로들도 있고, 원로도 있고, 은거기인도 있지만 련주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저들이 치고 올라오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이다.
무공을 막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때, 추여룡이 나타났다.
강북 무림은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집약된 힘으로 도련을 상대한다. 도련이 더 이상 밀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견제한다. 강력하게 싸운다.
사람들은 이런 점은 추여룡의 최대 업적으로 생각한다.
천만에!
그의 뛰어난 업적은 따로 있다.
도련이 한참 재미를 보고 있을 때, 강남 무림이 꿈틀거렸다.
완전히 짓눌러서 더 이상 발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파들이 되살아났다.
등 뒤에서 칼날이 일어서고 있다.
도련으로써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강남 무림을 완벽하게 복속시킬 계획을 세운다. 무인의 씨를 말리더라도 두 번 다시 도련을 향해 검을 들지 못하도록 만든다.
천만다행으로 저들은 통치라는 것을 모른다. 조그만 섬에서 살아온 탓에 넓은 땅을 다스리지 못한다.
그런 점이 정말로 다행이다.
추여룡은 이런 점을 파고들었다.
끊임없이 강남 무림을 부추겼다. 너희들, 기껏해야 사주들의 수족밖에 더 되냐면서 자존심을 긁었다.
이런 모든 작업이 추여룡의 지시로 이루어졌다.
도련이 지금까지 차지한 강남 무림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게 만든 것, 세력을 정돈하게 만든 것, 그래서 현재의 고착 상태를 이끌어 낸 것.
이것이야 말로 추여룡의 최대 업적이다.
지금 강남 무림은 그야말로 아사 직전이다.
힘도 없으면서 괜히 검을 들고 일어난 대가는 혹독하다.
치고, 치고, 또 치고…… 너무 강력하게 짓눌러서 이제는 비명을 지를 힘조차 없다.
교착 상태는 조만간 끝난다.
강북 무림은 도련을 막을 힘이 없고, 강남 무림은 반기를 들 힘이 없다.
지금까지 멸절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토록 힘든 때에 추여룡을 떠나보내야 한다.
하반신이 성장하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치고는 한 평생 참 잘 살았다.
그는 아쉬운 것이 없을 게다.
그렇게 좋아하던 독고금의 배웅을 받지 못하는 것이 조금 서글플까?
“후우!”
인자함이 가득한 비구승이 한숨을 내쉬었다.
구구구구!
그 시간, 소림사 경내로 회색 비둘기가 날아왔다.
전서구를 담당하던 승려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낚아채어 전서통을 풀어냈다.
그는 전서를 읽지도 않았다. 전서통을 끌러내자 마자 냅다 신형을 쏘아냈다.
‘전서가 왔어! 기다리던 전서가 왔어!’
승려가 찻상을 받쳐 들고 왔다.
곳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승은 승려에게서 찻상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곳간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무승이 빈손으로 나왔다.
찻상을 들고 온 승려는 이미 돌아가고 없었다.
“방장, 무슨 내용입니까? 궁금합니다.”
비구승이 온화한 음성으로 물었다.
“예상했던…… 휴우! 예상했던 전서입니다. 아미타불!”
이마에 굵은 주름이 가득한 오십 줄의 승려가 두 손 모아 합장했다.
현 소림방장이다.
그의 눈가에 깊은 고뇌가 흘렀다.
모두들 전서를 돌려가면서 읽었다.
마음이 급한 사람은 자기 차례도 기다리지 않고 훌쩍 다가와서 어께 너머로 읽었다.
– 시교혈랑대(撕咬血狼隊) 잠입(潛入). 추(秋) 군사(軍師) 암살목적(暗殺目的). 주의요망(注意要望). 독고금(獨孤錦). 배(拜).
전서 내용은 짤막했다.
독고금으로부터 추군사의 주의를 요망하는, 아주 평범한 전서가 날아왔다.
하지만 이 전서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먼저 독고금이 도련을 탈출했다.
시교혈랑대에게 잡혀갔던 그녀가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녀는 추군사의 안위를 염려한다. 평소 소림사의 위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시교혈랑대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사람들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너끈히 물리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전서를 보내왔다는 것은 시교혈랑대의 살수가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뜻이다.
오늘…… 시교혈랑대는 추여룡을 죽인다.
그녀의 판단이 맞다.
전서를 읽은 사람들은 비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악한 사람도 있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프다거나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추군사……”
“어찌 사람의 머리가 이토록 정확할 수가……”
그들은 죽은 듯이 앉아있는 한 사람을 쳐다봤다.
그는 여러 사람이 온갖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솜털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절명했다.
천재의 비운, 하늘의 시샘.
그는 자신이 죽은 이후에 일어날 일을 십대문파 장문인들에게 설명한 후, 눈을 감았다.
신산여제갈 모용아를 등용하라.
그녀를 자신의 자리에 앉혀라.
대화금장의 일지할안을 공동 군사로 앉혀라.
그녀들은 이미 마음의 교류를 나누고 있을 터, 효율적으로 도련을 상대할 것이다.
신산여제갈 모용아는 군사직을 맡지 않는다.
그녀는 겁부터 먹을 것이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십대문파가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독고금도 맡지 않는다.
그녀는 무인이 아니다. 상인이다. 추여룡이라는 사람이 죽으면 강북무림에서 손을 털 게 뻔하다. 어쩌면 강북과 강남을 오가며 장사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싸움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대화금방 장주가 왜 외동딸을 내놓았는지 아는가?
두 번 다시 대회금장에 손을 벌리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추여룡이 그런 조건을 제시했다. 물론 독고금은 모르는 일이지만. 그리고…… 도련에 납치되는 즉시 바로 탈출시키겠다는 단서도 덧붙였다.
왜 그런 일을 하느냐?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웃기만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추여룡이 웃는다는 것은 모종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니,
대화금장 장주는 통 크게 외동딸을 내놨다.
추여룡을 분신처럼 믿기 때문이다. 그가 한 말은 틀림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후후후! 후후!
장주는 정말 모를 것이다.
장주는 평생 처음으로 뒤퉁수를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만간 알게 될 게다.
딸을 내준 건 잠깐이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강북 무림의 군사가 될 것이니…… 도련이 물러간 후에야 대화금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들을 군사로 등용하는 문제는 십대문파에도, 강북무림에도 적지 않은 모험이다.
십대문파 장문인들은 그녀들을 믿지 않는다. 그녀들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모용아가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 독고금이 일지할안 소리를 듣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별호를 가진 사람은 중원 천지에 수없이 많다.
그녀들이…… 여인들이…… 과연 십대문파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도련과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고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장문인들은 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리는 선택이 향후, 강북 무림의 앞날을 좌우하리라.
몇 줄 안 되는 간단한 전서에는 이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추여룡은 또 한 번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자신의 사후, 소림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했다.
그가 말한 대로 시교혈랑대가 침입하여 난장을 피운다. 시교혈랑대 따위가 감히 하북 무림 중처에 뛰어들어서 소림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독고금이 보내올 전서까지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죽은 추여룡이 웃는다. 그가 말하는 것 같다.
– 다들 봤으면 이제 안심하고 무림을 맡기세요. 그래도 됩니다. 충분히 역량 있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보증하는데, 이래도 못 믿습니까? 하하! 그럼 저도 어쩔 수 없고요. 이미 죽은 몸 아닙니까. 죽은 사람이 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하하하!
“아미타불! 어떻소?”
“이견이 없소이다.”
“후우! 이걸 보고 누가 이견을 말할 수 있겠소. 하늘도 무심하시지. 딱 일 년만 늦게 데려가도 좋을 텐데.”
사람들이 추여룡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자, 이제 그만…… 보내드립시다.”
장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추여룡은 나이가 젊은 청년이다. 하지만 영웅이다. 능히 존대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가 받지 않으면 누가 받겠나.
곳간 밖에 대기하고 있던 무승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무의지에 추여룡을 싣고 나왔다.
바퀴달린 나무 의자가 부드럽게 밀린다.
무승은 날씨에 대해서 말하는 듯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하고 말한다.
다리 없는 젊은 청년도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무승이 청년의 입에 귀를 바싹 갖다 대고 듣는다.
무승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뭐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무 의자 뒤에서 담요를 꺼내 추여룡을 덮어준다. 그때,
쉐에엑!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아니, 소리가 울렸을 때는 이미 사단이 벌어진 후다.
퍼억!
나무의자에 앉아있던 추여룡의 가슴에 손가락 굵기의 강시가 틀어박혔다.
강시는 추여룡을 뚫고 나가 뒤에 서있던 무승까지 꿰뚫었다.
“악!”
무승이 단발마를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추여룡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쉥엑! 쒜에엑!
화살 두 개가 더 날아들었다.
퍽! 퍽!
한 대가 머리를 맞췄다.
어른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긴 화살, 손가락 굵기의 두께.
추여룡의 머리는 잘 익은 수박처럼 으깨져 버렸다.
퍼억!
또 한대의 화살은 심장을 조각냈다.
틀어박히는 정도가 아니라 참외를 발로 밟듯이 아예 으깨버렸다.
곳간 주위에 정적이 흘렀다.
무승과 추여룡이 죽었건만…… 워낙 한적한 곳인지라 그들의 죽음을 눈치 챈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