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ummuan RAW novel - Chapter 96
96
[도검무안 96화]
第十五章 애사(哀死) (6)
야뇌슬은 바닷가로 왔다.
평생 바다를 보며 살아서 그런지 바다를 보아야만 마음이 편안해 진다.
저 멀리 적암도가 있다.
그가 서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망망대해뿐이다. 하지만 계속 배를 타고 가면 적암도가 나온다. 틀림없이…… 백 년이 가도 천 년이 가도 그 자리에 있다.
그 곳에 부모와 누이가 있다.
부모님은 부도주를 용서하셨을 게다.
부도주의 야망을 알고 계셨다. 적암도의 무공이 경천동지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다.부도주와 말다툼을 했다면 오직 하나, 그것때문이다.
적암도를 빠져나가지 못해서 안달인 삶…… 젊어서부터 그랬다.
사람이 미워서 칼을 든 게 아니다.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배신을 했다.
배신은 나쁘지만 오랜 지우이기에…… 용서하셨을 게다.
하지만 누이는…… 하하! 누이도 용서했겠네.
그러고 보니 누이도 용서했을 것 같다. 그 바보 같은 여자는 노모보를 참 많이 좋아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담장 밖을 쳐다보는 일이 잦았다.
그토록 머리 좋은 여자가 참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했다.
이것이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야씨 가문에 전해져 오는 비전의 공부다.
한동안 그런 부분을 잊고 살았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까마득하게 잊었다.
세상은 무공으로 사는 게 아니다. 머리로 사는 것도 아니다. 무공이 높고 머리가 좋으면 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살아서 얼마나 행복하겠나.
모두가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
행복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무공을 버려라. 지혜를 버려라.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대해라.
야씨 가문의 비전 공부.
참 볼품없지 않나.
다른 가문은 십이묘환법이다. 무위무다. 별별 기상한 공부를 전수하기 바쁜데 뜬금없이 가슴이라니. 그러니 무공도 부도주한테 밀려서 전전긍긍했지.
그런 가르침을 완전히 이고 산 건 아니다.
그는 사람을 볼 줄 안다.
첫 인상에 성격을 읽고, 간단한 행동에 확신한다. 두어 번 말을 나눠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게 과연 옳은가?
옳지 않다.
사람을 읽는다는 건 참 바보 같은 짓이다.
어제의 사람이 다르고, 오늘의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 무엇을 읽겠다는 것인가.
살인자는 언제나 살인자인가? 아니다. 그들도 부모형제, 처자식과 함께 있을 때는 더없이 친근하고 자상한 사람이 된다.
모든 사람이 시시각각 변한다.
사람이란 그런 것인데, 고정된 단편으로 읽을 생각을 하다니.
부모님은, 누이는…… 그런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야 안다.
빈세백의 가르침을 너무 쫓다 보니까 이상한 방향으로 빠졌는데…… 이제야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돌아왔다.
무공을 확신하리지 마라. 지식을 의식하지 마라. 가슴으로 살아라.
심등이 원하는 바가 그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 그라면 된다.
지금부터 그것을 수련한다.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법을.
그것만 배우면 련주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검도 막아낼 수 있을 게다.
적엽비화……
참 좋은 공부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을 살상하는 기법 중에 하나일 뿐이다.
사람을 벨 때도 가슴으로 벤다.
기법으로 베지 말고 가슴에서 일어나는 불길, 심등으로 벤다.
‘일단 다 버려야겠어.’
그는 바닷가 한 구석에 초막을 지었다.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곳, 행여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없는 험지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마록타가 투덜거렸다.
“여기서 살잔 말이야?”
“왜? 여기가 어때서?”
“중원까지 나와서 이렇게 살아야 돼?”
“그럼 다른데 사서 살다가 와. 한 일이년 쯤 후에 오면 될 거야?”
“일이 년? 그렇게나?”
마록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저라나 그 머리 좀 어떻게 하자.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트리고 다니니까 너무 더워 보여.”
“냅둬라! 거들면 죽인다!”
마록타가 머리 자르자는 말에 펄쩍 뛰면서 도망갔다.
그는 웃었다.
행복을 찾아야 한다. 아주 큰 행복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심등은 행복 속에서 피어난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해초를 뜯어먹는다.
바다는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양식을 제공한다. 그 어떤 사람도 바다를 곁에 끼고 살면 굶어죽지 않는다.
야뇌슬은 한 달이라는 시간을 훌쩍 보냈다.
피부가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으로 변했다.
원래 이런 빛이었는데…… 적암도 동굴 생활을 하는 동안에 햇빛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많이 하애졌다.
그는 하얀 피부가 낯설다. 검은 색에 가까운 구릿빛 피부가 익숙하다.
그 피부가 다시 돌아왔다.
‘좋아!’
모든 게 만족스럽다.
마록타는 중원에 와서 아주 못된 습관을 들였다.
술 맛을 알아버렸다.
처음에는 한두 잔 먹는 선에서 그치더니 이제는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렸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술을 이겨내는데…… 아직은 즐기는데…… 곧 그 속에 함몰될 것 같다.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술주정뱅이 시종이라. 동서고금에 두 번 다시없을 시종이 될 게다.
야뇌슬은 그물로 잡은 고기를 평상 위에 널었다.
중원의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모르겠는데, 듣기로는 눈도 오고 그런단다.
눈은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잘하면 올 겨울에는 눈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대가 크다.
그때를 위해서 식량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말린 생선 정도면 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게다.
몸이 아주 좋아졌다.
먹는 것이라고는 생선과 해초 밖에 없는데, 군더더기가 빠지고 근육질만 남았다.
온몸에 힘이 붇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련도 하지 않고, 병기도 만지지 않고 오로지 생선만 잡는 데도 몸이 좋아진다.
심등은 행복 속에서 피어난다.
파아아아앗!
단전 진기가 가슴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미간에 있는 유등에 불을 붙인다.
이게 일심불광의 단순한 현상인 줄 알았다.
무인이 진기를 일으키고 전신 순환을 하는 것처럼, 일주천을 하는 것처럼…… 진기를 쓰기 위한 하나의 관문인 줄 알았다.
가슴은 사랑이다.
사랑의 느낌이 없으면 가슴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사랑의 느낌이 강렬할 때, 심등도 밝고 환하게 밝혀진다.
강렬한 공격을 원하는가? 심등을 밝히지 마라.
죽음의 마공(魔功)을 쓰고 싶은가? 심등을 잊어버려라.
심등을 밝히면 무공이 약해진다. 사랑으로 감싸진다. 사람을 벨 때도 측은지심(惻隱之心)이 깃든다.
이런 공부를 도대체 왜 하는가? 강해지지 않으려면 왜 수련하는가?
심등을 밝힐 때, 그의 무공은 훨씬 강해졌었다. 적엽비화를 넘어서 지전들을 이끌고 다닐 정도까지 발전했다.
이 모순점을 알아야 한다.
그는 아직 모른다.
강렬함 속에서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진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심등을 강렬하게 밝혀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반대로 간다.
진기를 끌어올리지 않고 오로지 사랑만 본다. 사랑으로 심등을 밝힌다.
그러면 무엇이 보이겠는가?
일단은 행복이 보인다. 행복하게 느껴진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뿐인데, 즐겁고 기쁘다.
이런 느낌을 무공이 싣기는 싫다.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본 후에, 무공을 쓰고 싶다.
그때, 낯선 자가 사립문 밖에서 안을 쳐다봤다.
야뇌슬이 그를 봤고, 그도 야뇌슬을 봤다.
등 뒤에 검을 메고 있는 무인, 눈빛이 서늘하다. 맑고 날카롭다.
“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야뇌슬이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러잖아도 목이 마르던 참이었는데…… 물 한 잔 주시겠소?”
사내가 집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야뇌슬은 종지에 물을 떠서 줬다.
사내는 종지를 받아들고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캬!”
사내가 술을 마셨을 때처럼 기분 좋은 소리를 울렸다.
“물맛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물맛만 간직하고 가실 수는 없겠습니까?”
사내가 흠칫하면서 야뇌슬을 쳐다봤다.
야뇌슬은 웃었다. 평온했다. 약간 웃는 듯 마는 듯……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다.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그의 말투가 차분해졌다.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물맛만 보고 가라…… 무슨 뜻으로 한 말인가?”
“검기. 검기가 절 노리는군요. 마음으로 베십니까?”
“음……!”
사내는 신음을 토해냈다.
마음으로 벤다…… 오래 된 습관이다.
처음 상대를 보면 어떻게 벨지 상상한다. 잘 베어지면 웃음이 나오고, 베어지지 않으면 긴장이 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건, 누구건 마찬가지다.
마음이 먼저다. 실전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베고서 시작한다.
야뇌슬은 베어지지 않는다.
너무 평온한 놈이라서 정말 베어야 할지 의문이 든다. 마치 연약한 노인이나, 임신한 여자와 마주 선 느낌이다. 아니…… 철없는 아이와 마주선 기분이랄까?
아주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처음이라는 것만 알아두게. 내 진정으로…… 검 한 번 섞어봤으면 좋겠는데.”
야뇌슬은 고개를 흔들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고 좋은 검기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필사의 검이군요. 그런 검으로 절 베실 생각입니까?”
검은 뽑지도 않았다.
야뇌슬에게 검기를 쏘아낸 적도 앖다.
그가 좋은 검기 어쩌고 할 때도 괜히 해본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 말은…
필사의 검!
그렇다. 그의 검은 필사의 검이다.
그를 대하는 사람은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대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석(石)이다. 그 다음은 땅에 눕는다. 흙이 보인다. 어느 새 검이 지나갔고, 보이는 건 흙 뿐이다. 그래서 토(土)다.
석토(石土)!
발음이 매우 이상하다. 그래서 토 대신에 밭 전(田) 자로 바꿔서 말한다.
석전검사!
석전검사라는 말은 매우 부드럽게 들린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부드러운 별호만 보고 그에게 막말을 한다. 그의 검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ㄹ면서도 돈에 팔린 검이라고 무시한다.
사실을 필사의 검이다.
그와 검을 겨룬 자들은 모두 흙을 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석전검사는 검을 뽑고 싶었다.
야뇌슬이라는 이 청년…… 이 젊은 고수와 한판 드잡이질을 해보 고 싶었다. 도련 련주와도 싸워봤다는 젊은 기재와 목숨을 걸고 싸우고픈 호승심에 사로잡혔다.
야뇌슬이 고개를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
“아직 멀었군요. 참 편히 살았는데…… 이만하면 편한 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투지를 조장하는군요. 괜히 심기를 다치게 했습니다.”
야뇌슬이 정중하게 사과했다.
석전검사는 맥이 탁 풀렸다.
이 정도인가? 이런 무공인가? 자신이 흘리는 기운을 모두 감지해내는가? 살기와 검기까지 구분하는가.
‘진다. 이길 수 없다.’
그는 정중히 포권지례를 취했다.
“다시 소개합니다. 대화금장의 석전검입니다.”
그가 존칭을 쓰면서 자신을 밝혔다.
“대화금장이라면?”
“그렇습니다. 독고금 소저께서 찾으십니다.“:
애뇌슬을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쯧! 추여룡의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닌데…… 내 말은 사실이었는데…… 휴우! 그 여자, 사람 말을 무시하는데 일가견이 있군. 내 분명히 장주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건만.”
“뭐라고요!”
석전검사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