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05
고원달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적에게 포로로 잡힌 상태였다.
녹색 장포의 사내들과 싸우다가 점혈을 당한 것이다.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은 그는 분노에 휩싸였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녹색 장포 사내들의 무공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합격진 운용이 너무나 뛰어나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그들을 발견하고 일단 몸을 숨겼다.
고원달이 사로잡힐 정도라면 녹색장포 사내들의 능력이 만만치 않은 게 분명한데, 경솔하게 나서서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녹림 72채의 능력이 이 정도였나?’
철산문을 하루아침에 멸문시킨 약선문.
그중의 일부만 온 것이긴 해도, 이렇게 쉽게 행렬이 산산이 부서지고 수장이 사로잡히게 된 것은 의외였다.
그 중심엔 녹색장포인들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저놈들은 누구지? 녹림 72채가 몰래 키운 놈들인가?’
그렇다면 그들을 가르칠만한 고수가 적 진영에 있다는 의미였다.
“계집을 찾아라!”
“단약도 찾아야 한다!”
녹색 장포 사내들은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기수는 고원경과 화화낭군을 숨겨둔 곳이 그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숨겨놓고 올 걸.’
자기가 찾았듯이 고원경의 붉은 옷자락이 바람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 색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구획을 나누어 격자수색한다면 들킬 가능성이 컸다.
아직 약선문에서 원하던 것을 가지지 못한 상태.
고원달의 보표이기에 현재의 상황을 모른체할 수는 없었다.
‘우선, 인질의 수가 늘어나는 것부터 막자.’
기수는 녹의인들의 전체 수부터 파악했다.
‘서른 하나? 아니. 서른 둘이군.’
기수는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외곽으로 돌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상대가 많으니까 방심하면 안 되었다.
적이 흩어져서 수색하는 것이 기수에겐 기회였다.
기수는 그들 중 한 무리의 진행방향에 숨어 있다가 거리가 좁혀지자 잽싸게 튀어나가 잔백지로 놈들을 제압했다.
2명 모두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당한 것은 기수가 그만큼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기수는 쓰러진 둘을 끌어당겨 덤불 속에 감추고 다음 상대를 찾아갔다.
그렇게 반복하여 2명씩 제압하자 녹의인의 수는 계속 줄어들었고, 마침내 적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모두 모여라! 흩어지지 마라!”
그들 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무리를 집합시켰다.
모인 인원은 14명.
녹의인들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큰소리로 동료를 부르고, 주변을 수색했지만 기수에게 당한 점혈은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휘관은 전투 대형을 갖추도록 했다.
“모두 무기를 뽑고 검진을 갖추어라!”
그러자 14명이 틀을 잡았는데, 기수는 멀리 나무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합격진의 구성원이 12명이고 3각형과 4각형이 교묘하게 섞인 형태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아! 고원달이 저기에 당했군.’
탁지연이 있었다면 설명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기수 혼자 입장에선 대충 3각형의 꼭지점과 4각형의 모서리를 겸하는 자리, 그곳을 노려야겠다는 계획을 짰다.
모르고 갇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미리 형태를 확인한 후 접근하는 게 나을 것이고, 그보다는 진과 접촉하지 않고 부수는 게 더 나을 것이었다.
녹의인 무리의 지휘관은 진에 끼지 않은 한 명에게 고원달을 지키도록 하고, 자기는 진의 정 중앙에 들어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떤 고인이신 줄 모르나,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저희들은 녹림 72채 소속입니다. 고명하신 재주에 감복했으니 얼굴을 보여 저희들의 견식을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나름 정중하게 청하는 것은 미지의 습격자가 엄청난 고수란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길지도 않은 시간에 전체 인원의 절반이 넘는 동료를 제압했으니, 사실 놀랍기도 하고 겁도 나는 상황이었다.
기수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방어진을 딱 갖추고 있는데 왜 위험을 자초한단 말인가.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20분이 넘어도 녹의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안 아픈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쪽은 기수였다.
자기는 혼자지만 적은 동료인 산적 패거리들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의 인원이 늘어나면 고원달을 구해내고 고원경과 함께 이 산을 빠져나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다.
‘이 새끼들. 45분만 버티면 된다는 건가?’
마치 한 골 넣은 후 잠그는 10백 축구를 보는 기분이었다.
중동 애들처럼 드러눕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초조함은 점점 가중되었다.
결국 기수는 적 지휘관이 5번째 부를 때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날 찾나?”
기수가 나타나자 검진이 일제히 기수를 향해 방향을 틀며 강렬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어! 씨발. 뭐야….’
기수는 검진의 힘이 그냥 멀리서 볼 때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저놈들을 꺾고 싶다!’
그것은 호승심이었다.
현대에 살던 기수라면 절대 그런 심리상태가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만약 길을 가다가 조폭 14명이 서 있는 골목을 발견한다면 슬그머니 다른 길로 돌아가면서 ‘쟤들은 아직 17명이 안 되니까…’라면서 혼자 웃기나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서로 죽고 죽이는 이곳 중원무림.
강호인의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검진이라는 낯선 전법으로 나오는 상대를 마주했을 때, 사실 솔직히 겁도 좀 나지만 싸워서 이기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이게 아드레날린인가? 아니면 테스토스테론?’
기수는 자기 핏속을 흐르는 호르몬의 이름을 잠시 생각하다가 칼을 뽑아 들었다.
적 지휘관이 물었다.
“너는 약선문의 제자로구나.”
기수의 옷차림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렇다.”
지휘관은 불신의 표정으로 기수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네가 우리 동료들을 해쳤느냐?”
절정고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젊은, 그리고 키가 좀 크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는 청년이란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 칼을 봐라 피가 묻어 있냐?”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얘기하려고 칼을 번쩍 치켜들었는데, 칼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산길에서 싸웠던 흔적이었다.
“어! 죽였나보네.”
기수는 웃음이 나왔지만 녹의인들은 살기를 더욱 번뜩였다.
“포위해라!”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12명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기수는 웃음기를 거두고 선풍비를 시전하여 그들을 멀리 우회하여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 있는 고원달의 뒤쪽으로 접근하여 지풍으로 그의 혈도를 눌렀다.
그를 감시하고 있던 녹의장포인은 깜짝 놀랐다.
“어, 어째서…….”
왜 자기가 아닌 같은 편을 공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수에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 진짜 실력을 고원달이 알아서 좋을 일이 없었다.
고원달이 혼수상태에 가까운 상태가 되자 기수는 이제 마음 놓고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우선 감시자의 전신 요혈을 잔백지로 연타했다.
그가 쓰러지자 지휘관이 크게 놀라 외쳤다.
“조, 조심해라! 보통 고수가 아니다!”
설마 했는데 실력을 보고 나니 기수가 동료들을 해친 게 분명했다.
검진을 이루는 12명도 이미 기수가 자신들을 우회하여 날아가는 신법을 보일 때부터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잔뜩 긴장하던 상황이었다.
그들은 개개인으로 덤벼서는 안 된다 생각하고 검진의 운용에 더욱 만전을 기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황사만리검진이란 것으로 최소 인원은 6명이지만 12명이 펼칠 때 최고의 위력을 발휘했다.
기수는 그들이 다가오자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을 구사할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무하마드 알리의 위대한 전술.
그것으로 조지포먼도 쓰러트리지 않았던가.
아마 타이슨과 알리가 서로의 전성기 때 붙었다고 해도 알리의 빠른 풋워크를 타이슨이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었다.
그러나 기수는 마음을 바꾸었다.
‘한 번 해보자!’
도대체 진법 운용이란 게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몸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포위진에 갇힌 순간, 그는 곧바로 후회했다.
“뭐야! 씨발. 장난 아니잖아!”
사방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적의 무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쪽에서 공격할 때 함께 막아내고, 그때 생긴 틈을 배후에서 함께 공격해온다는 사실이었다.
기수는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본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순간!
상대 중 한 명의 갈고리 모양 무기에 걸려서 칼을 놓치고 말았다.
그가 무기를 떨어트리자 지휘관은 쾌재를 불렀다.
“됐다! 놈을 잡았다!”
기수는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 정도라면 고원달이 생포된 것도 이해가 돼. 하지만 난 그보다는 나은 사람이잖아. 긴장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다짐한 이후 그의 초식운용은 변했다.
최근에 익힌 도법 대신 오래전부터 습관화된 분광권이 시전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상대의 무기가 12자루라고 해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한숨 돌린 기수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출수가 더욱 빠르고 정묘해졌다.
“크윽…!”
기수의 주먹에 한 놈이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지자 지휘관이 잽싸게 끼어들어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일단 발동이 걸란 기수는 아까 나무 위에서 봤던 진의 형태를 기억하면서 자기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부분부터 직감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결국 또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진에서 이탈했고, 그 이후엔 진의 압박이 헐거워지는 만큼 기수의 공격이 더 위력적으로 변했다.
한 명씩 줄어들던 진은 6명에서 5명이 되자 진이라고도 할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기수는 분광권이 아닌 잔백지로 나머지를 모두 제압했다.
“하하하하…..!”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기분이 존나게 좋았다. 다른 부사는 어울리지 않고, 진짜 존나 좋았다.
죽을 수도 있다고 쪼리다가 결국 이겨낸 통쾌함.
그것은 마치, 히든에 투페어가 풀집으로 완성된 느낌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기수는 떨어트렸던 칼을 집어들고 말했다.
“산적놈들 주제에 약선문 공격계획을 세운 용기는 가상하다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후후후….”
지휘관이 내상으로 흐르는 피를 뱉으며 물었다.
“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왜? 알아서 뭐 하려고?”
“이 원한은 우리 군사님께서 반드시 풀어주실 것이다.”
“군사? 그가 너희들에게 방금전의 진법을 가르쳤나?”
“그렇다!”
“흐음… 꽤 실력 있는 놈인 모양이군.”
“흐흐흐…. 그분의 진정한 능력에 비하면 넌 아무 것도 아니다.”
기수는 호기심이 동했다.
“그가 나보다 강하다고?”
“그렇다!”
자신의 능력을 봤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인 것 같았다.
그런 고수가 왜 산적들과 어울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녹색 장포인들의 무공도 그렇고, 그들의 진법도 그렇고, 투석기을 만든 것도 그렇고, 뭔가 녹림 72채에 큰 변화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말해주면 나도 내 이름을 말해주겠다.”
“우리는 군사님을 천외존자라고 부른다.”
“하하! 건방진 이름이네. 하늘 밖의 능력을 지닌 위대한 사람이다. 뭐 그런 거냐? 그럼 너희 녹림 72채 전체의 두령, 그러니까 총채주보다 더 나은 인간이란 거냐?”
“우리 총채주님도 군사님을 존경한다!”
“흐음…. 그래? 좋아. 내 이름은 양일이다. 언젠가 한 번 너희 군사를 만나서 누가 더 위대한지 보여주도록 하마. 후후후….”
“양일! 기억하겠다.”
기수는 칼을 허리에 찼다.
원래는 쓰러진 놈들을 전부 죽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인을 맘대로 해도 되는 무림이라고 해도, 저항할 능력 없이 쓰러져 빌빌거리는 놈들을 죽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죽이지는 않고 모두 수혈을 짚어 한 12시간 정도 푹 자도록 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고원달을 깨우려 했는데, 멀리서 무슨 호르라기 소리 비슷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산적들이 녹의 장포인 무리를 찾는 것 같았다.
기수는 마음이 급해졌다.
적 중 센 놈들을 전부 쓰러트렸으니까 산적들과 마주친다 해도 문제될 게 하나도 없지만 산적 무리가 이쪽으로 오다가 중간에 고원경과 자기네 두령을 발견하면 큰일인 것이다.
그는 고원달을 어깨에 들쳐 메고 즉시 선풍비를 시전했다.
고원경을 숨겨두었던 절벽에 도착한 기수는 깜짝 놀랐다.
덮었던 나뭇가지가 밀려나 있고, 그 사이로 고원경의 붉은 신부복이 훤히 드러나보였던 것이다.
‘누가 뒤졌나?’
그러나 다행히 고원경과 화화낭군은 그대로 있었다.
다만, 기절한 줄 알았던 고원경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한 손을 다리 사이로 넣어 한 곳을 마구 비벼대고, 다른 손은 자기 가슴을 주무르며 숨 넘어가는 교성을 토해냈다.
‘허걱! 음약 중독증세?’
기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