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08
모용기는 일단 출정을 중지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자세한 사정을 듣기 위함이었다.
고원달 남매에게 거처를 주어 젖은 옷을 갈아입게 하고 화화낭군은 뇌옥에 가두었다.
여유가 생기자 기수는 탁지연을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후훗…!”
“후훗이라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탁지연은 좌우를 둘러본 후 말했다.
“전투가 벌어지자마자 사람들 눈을 피해서 마차 밑에 매달려 숨었죠.”
“그래서?”
“분명히 가장 중요한 사람과 가장 중요한 물건이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두마차를 호위하는 인원이 가장 많았거든요.”
“그럼….대청…”
“쉿!”
탁지연이 기수의 입을 검지로 막았다.
“당연히 제가 챙겼죠.”
“오오!…..잘했어!”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찾았어?”
“마차에 매달려 있으면서 구조를 잘 살펴봤어요. 보통 비밀 장소를 만들 때 겉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칠을 하거나 판을 덮어씌우거나 해서 감추는데, 마차 바닥은 누가 볼 거라고 생각 안 했는지 칠을 여러 겹으로 하지 않아서 나무와 나무의 연결구조가 은은히 비쳐 보이더라고요.”
“그걸 보고 짐작한 거야?”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결합이 보이면 의심해야죠.”
기수는 씩 웃었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머리 좋은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지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반은 제가 먹었어요. 그리고 여기…”
밀랍으로 봉인된 그것은 대청단의 나머지 반쪽이었다.
“이건 왜?”
“형님도 드셔야죠. 허락 받지 않고 먼저 먹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절반은 제 권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쉿!”
이번엔 기수가 검지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해보니까 재미있었다.
“닥치고 네가 다 먹어.”
“예? 저, 정말요? 하지만….이렇게 귀한 영약을….”
“내가 얘기했지? 너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이 약은 나보다 너에게 더 필요해. 그러니까 여러 말 말고 먹어. 냄새가 퍼지면 곤란하니까 지금 당장.”
기수 입장에선 먹어도 보탬이 안 되는 영약이었다.
그러나 탁지연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기수의 배려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형님은 정말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분이군요.”
“내가 좀 그렇지. 하핫!”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결국 그녀 눈꼬리에서 눈물방울이 주르르 떨어졌다.
부모님과 오빠를 잃고 이 세상에 오로지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자기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것이다.
눈물 흘리면서 우물우물 영약 씹어 삼키는 모습을 지켜본 기수는 그녀의 눈물자국을 닦아주고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고원달은 마음의 정리가 되자 곧장 모용기를 찾아갔다.
“가주님. 청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오.”
“녹림도 따위에게 행렬을 털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통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제게 약간의 병력을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가서 구화산의 산적을 모조리 토벌하여 모용가의 근심을 제거하겠습니다.”
모용기는 고원달의 하는 양이 가소로웠다.
약선문의 병력은 어쩌고 남의 문파에 손을 벌린단 말인가.
그리고 산적을 토벌할 능력이 있었다면 애당초 왜 당했단 말인가.
모용기는 고원달이 귀하게 자란 귀공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러나 그를 비웃거나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약선문을 대표해서 이곳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화산의 산적이 손님을 공격한 것은 엄연히 말하자면 모용가의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구화산 패거리의 수가 계속 늘고, 군대처럼 투석기를 제작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터라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말씀해 보십시오. 병력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고원달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막상 요구를 하려니까 자기도 염치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문주님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내 큰 아이와 제자 500명을 딸려 보내줄 테니 잃어버린 물건을 찾도록 하시오.”
“예? 고맙습니다.”
고원달은 거듭 감사인사를 했다.
그는 마음이 몹시 급한 상태였다. 며칠 뒤엔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이 혼례를 위해 도착할 텐데 지금의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할 수는 없었다.
일단 동생은 무사히 데려다 놨으니까 이제 대청단을 찾고, 그 다음으로는 다른 예물들도 전부 찾아와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그러다 보니 산으로 올라갈 때, 실제 병력의 지휘는 모용기의 장남인 모용각이 전부 한다는 사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모용세가의 토벌대에 고원달, 양일, 양삼 세 사람이 곁다리로 끼었을 뿐 고원달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용각은 30대 중반으로 아버지를 빼다 박은 외모에 목소리까지 비슷했다.
“이 지도 위에 습격당한 위치를 짚어 보십시오.”
고원달은 경황이 없어서 대신 기수가 포인트를 찍었다.
모용각은 지름길을 통해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살아남은 약선문 제자 5명이 숲에 숨어 있다가 고원달을 반가이 맞았다.
“공자님 무사하셨군요!”
“그래. 다들 어디 가고 너희들만 있는 거냐?”
“살아남은 제자는 우리가 전부고, 무사들은 한 명도 찾을 수 없습니다.”
“으으…..! 도둑을 키우고 있었구나.”
예물을 한 짐씩 지라고 한 건 바로 그였다.
산길은 투석기에서 발사한 돌들과 부서진 마차의 잔해로 어수선했다.
값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산적들이 싹 훑고 지나간 것이다.
모용각이 말했다.
“물건을 찾으려면 놈들의 산채로 가야 할 것 같군요.”
고원달이 살짝 미안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산적들을 언젠가 한 번 손봐주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감히 우리 모용가로 올 물건을 중간에서 가로챘으니 그냥 내버려둘 수 없지요.”
“맞습니다! 놈들을 전부 죽여야 합니다.”
고원달은 당장이라도 대청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들떴다.
그러나 모용각은 신중했다.
그는 제자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올라가면서 서로 연락을 취해 비상사태에 대비하도록 틀을 짰다.
그리고 부대를 당장 움직이는 게 아니라 우선 장원에 연락하여 보급로부터 확보한 후에 출정하기로 했다.
고원달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까짓 산적 토벌에 뭐 그리 신중하게 앞뒤 재고 할 게 있습니까? 그냥 확! 들이치면 되지.”
그러자 모용각이 냉소를 지었다.
“확 들이치면 어떻게 되는지 약선문이 잘 보여주셔서 차마 따라 할 수가 없군요.”
고원달은 거기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고개를 들지 못할 뿐이었다.
산채 공격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는 사이.
모용세가의 깊숙한 건물엔 고원경이 머물고 있었다.
아직 혼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절반쯤은 모용가의 사람이나 마찬가지라서 그녀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다.
시녀가 4명이나 배정되었고, 갈아입을 옷도 수십 벌이나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시녀들의 시중을 받아 목욕을 했다.
뜨거운 물에 담그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나른하고 편안했다.
거기에 향유를 붓고 꽃잎까지 뿌리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따듯하고 편안한 목욕을 마치고 나오려 하는데, 시녀 한 명이 들어와서 급히 손짓을 했다. 그러자 시중 들던 시녀들이 황급히 다 나가버렸다.
고원경은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해 하면서 손을 뻗어 수건을 잡으려고 했다.
그때 인기척이 나더니 사내 한 명이 불쑥!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꺄악! 누, 누구냐!”
“하하… 진정하시오. 나 모용인이오.”
“모용인? 그, 그렇다면….”
“그렇소. 오래지 않아 그대의 남편니 될 사람이오. 하하하!”
“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녀자가 목욕하는 곳에 드러오다니. 실례 아닙니까?”
“당연히 실례지.”
그러면서 모용인은 목욕통 위로 드러난 고원경의 어깨와 흰 속살을 훑어보느라 잠시도 눈을 쉬지 않았다.
고원경은 깜짝 놀라 목까지 물에 담갔다.
“어서 나가주세요!”
“후후… 그럴 거라면 애당초 들어오지도 않았지.”
“무, 무슨 뜻이죠?”
“나는 말이오. 누군가에게 속는 것을 가장 싫어하오.”
“그, 그런데요?”
고원경은 미래의 남편 될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얼굴도 미남형은 아니더라도 사내답게 씩씩한 인상이었다.
다만, 눈빛이 약간 음험하고 욕심이 많아 보였다.
“그대가 구화산을 넘어오는 도중에 아무 일도 없었는지 확인해봐야겠소.”
“뭐, 뭐라고요?”
“자랑스러운 모용가의 아들로 태어나, 다른 남자가 먼저 건드린 여자를 정실부인으로 맞는대서야 체면이 서겠소?”
“이, 이런 무례한….”
고원경에게는 모욕적인 언사였다.
그리고 가슴 한 구석이 찔리는 얘기이기도 했다.
“무례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소. 난 차라리 약선문과 모용가의 사이가 원수지간이 된다고 해도 남이 먼저 건드린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는 없소.”
“파혼을 하겠다는 말인가요?”
“그대가 처녀가 아니라면 그리 할 것이오.”
고원경이 심호흡을 하고 물었다.
“그걸 어떻게 확인하죠?”
“그야, 지금 여기서….”
“말도 안 돼요!”
모용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고원경을 달랬다.
“당신만 결백하다면 무엇이 문제겠소? 우린 어차피 결혼할 사이인데, 신혼초야를 며칠 앞당겨 치른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소?”
고원경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이건 원칙의 문제예요.”
“원칙이라…. 나도 원칙을 좋아하지. 하지만 먼저 문제를 만든 건 약선문 쪽이야. 산적 따위에게 행렬이 무너져서 신부를 가마에서 내리게 했잖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어?”
“좋아요! 정 못 믿겠다면 이 결혼 없던 걸로 해요! 당장 나가세요!”
모용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흐흐흐….. 그건 안 되지.”
“왜 안 된다는 거죠? 날 못 믿고 있잖아요.”
“그렇긴 해도, 너처럼 예쁜 계집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어. 애써서 준비를 다 해놨는데 여기서 그냥 나간다면 그건 사내도 아니지. 흐흐흐….”
“서, 설마…. 지금 날 강제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가요?”
“넌 이미 모용가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야.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고.”
고원경은 화를 냈다.
“아까는 날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요?”
“그야, 확인 후 네가 처녀가 아니라면 당연히 내쫓아야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흐흐흐…. 이 집에선 모용씨 가진 사람이 하는 얘기는 다 말이 되는 거다.”
모용인은 와락 달려들어 고원경의 머리채를 거머쥐었다.
“아악! 놓지 못해! 소리 지를 거야!”
“후후후… 마음대로 소리 질러 봐.”
모용인은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수면 위에 반쯤 드러난 고원경의 가슴을 훑어보다가 한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꺄악! 놓지 못해?”
“이거, 이거 아주 끝내주는구나. 흐흐흐….”
모용인은 거칠게 고원경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고원경은 알몸이라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목욕통 밖으로 끌려나온 그녀는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흐흐흐…..”
그녀의 나신을 본 모용인은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그는 거의 찢듯이 자기 옷을 전부 벗어버리고 고원경을 덮쳤다.
“저리 가! 저리 가지 못해!”
고원경은 모용인의 어깨를 깨물며 저항했지만 사내의 우악스런 힘을 견딜 수 없었다.
“너.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순간 모용인이 그녀의 혈을 짚었다.
“물러서지 않으면 뭐? 날 점혈하겠다고? 후후후…. 그런 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먼저 했어야지.”
“으으… 당장 풀지 못해!”
“못하겠다. 어디….. 어라? 여기가 왜 민둥산이지?”
고원경은 치욕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모용인은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그곳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세를 잡았다.
“겉으로 봐선 아무래도 모르겠군. 역시 들어가 봐야지.”
“악! 아아…. 아야…. 아파…아야!”
“흐흐….긴장 풀고 가만히 있어.”
고원경은 정말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기수와 너무 심하게 했었기 때문이다.
모용인은 몇 번 움직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탄성을 질렀다.
“아하! 역시 처녀였군. 하하하…! 난 운이 좋은 놈이야.”
고원경이 기수와 동침할 때 상처가 너무 심해서 그 자리가 다시 터져서 나온 피라는 사실을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출혈량이 많았다.
모용인이 만족하는 모습을 본 고원경은 즉시 영악하게 머리를 굴렸다.
“나한테 이렇게 못되게 굴었으니까 결혼한 후엔 꽉 쥐어서 살 줄 알라고!”
“하하! 미안, 미안…. 하지만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어. 제발 용서해줘. 하하!”
모용인의 태도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