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20
무림맹 사람들을 따라가 보니 정말 각 파의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9파, 1방, 4문, 5가에서 빠짐없이 한두 명 이상씩은 다 온 것 같았고, 군소방파 사람들까지 합치면 거의 200명 가까이 될 것 같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총지휘관이 현 무림맹주이자 소림사 장문인이기도 한 항마대사라는 사실이었다.
기수는 몇몇 아는 얼굴도 발견했다.
하마터면 반갑다고 인사를 할 뻔 했지만 현재는 양일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행히 실수를 하지 않았다.
고무학은 항마대사 앞으로 가서 포권을 한 후 물었다.
“무림맹주님께서 오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미타불… 저희는 강호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 온 것입니다.”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그 전에 문주님께서 솔직하게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엔 왜 오신 겁니까?”
“우리 약선문은 대대로 좋은 약재를 찾기 위해 구주팔황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이곳에도 약재를 찾기 위해 왔습니다.”
그럴듯한 핑계라고 기수는 생각했다.
항마대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무슨 약재를 찾는데 가족들을 대동하고 그리도 은밀히 움직이셨습니까?”
고무학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강호무림이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겉으론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
“영약이란 본래 귀한 것이니 광고하면서 다닐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허어! 아미타불….”
항마대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연신 불호를 외웠다.
현명으로부터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는 보고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뭔가 잘못 짚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처음엔 약선문을 의심했고, 나중엔 다른 문파들을 의식하느라 이곳으로 왔지만, 이 모든 게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었다.
도대체 누가 무림맹과 마교를 동시에 함정에 집어넣으려 한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항마대사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삼황맹!”
고무학이 물었다.
“삼황맹이요?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래도 우리 모두가 욕심에 눈이 멀어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함정이란 단어에 무림맹 사람들 모두가 웅성거렸다.
약선문 문주와 제자들을 찾았는데 그들은 빈손이었다.
약초를 캐러 왔다는 얘기가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았다.
소림승들은 장문인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다른 문파 사람들은 여전히 미련이 남아서인지 서로 눈치만 볼 뿐 소림승들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항마대사가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다들 왜 꾸물거리십니까? 일단 동굴 밖으로 나가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기수가 보기에도 그게 옳은 판단 같았다.
약선문 사람들은 이미 밀폐된 공간에 갇혔던 기분 나쁜 경험이 있어서 동굴 밖으로 나가는데 다들 찬성이었다.
그래서 다른 문파는 따라오건 말건 소림승들과 함께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20분 정도 이동했을 무렵.
꽈르릉……!
갑자기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리고 동굴 전체가 진동했다.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자세를 낮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는데, 돌가루와 종유석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뭔가 거대한 충격이 있었던 것 같았다.
기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앞서 갔던 소림승이 달려와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출구가 막혔습니다! 동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림맹 사람들은 그제야 허겁지겁 달려가 보았다.
어마어마한 암석 무더기가 입구였던 자리를 완전히 메우고 있었다.
다들 공황상태에 빠져 돌을 치운다, 구멍을 뚫는다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교도였다.
굉음에 놀라서 상황파악을 하려고 출구 쪽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기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복장부터 생소했다. 혈천제 쪽과는 다른 계열인 것 같았다.
“너희들!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들 중 한 명이 외쳤다.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
“거짓말 마라!”
“거짓말이라니! 우리가 왜 스스로를 가두겠느냐?”
듣고 보니 맞는 얘기였다. 마교도들은 무림맹 쪽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상황을 살피다가 돌아가 버렸다.
탁지연이 기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작은 함정에서 겨우 빠져나왔더니, 이젠 큰 함정에 갇혔네요.”
기수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삼황맹은 나한테 죽었어.”
진짜 화가 났다. 솔직히 보물은 그의 노후대비 연금이었다.
기수는 일이 어떻게 되건 결국엔 자신이 살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 희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때를 위해 지금 보물을 묻어두자! 그것이 기수의 계획이었다.
중국 땅에 숨겨도 되고,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조선 땅으로 가져가서 숨겨도 될 것이었다. 그리고 현대에 짠! 한 달에 보물 하나씩만 꺼내 팔아도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노후 플랜이었다.
그런데 그 합리적이고, 현명하고, 숭고하기까지 한 플랜이 삼황맹의 한낱 조롱거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기수를 열 받게 했다.
‘삼황맹과 제갈세가는 처음부터 나하고 상성이 안 맞았어.’
제갈세가의 막내아들 제갈륜의 죽음에 간여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기수도 제갈세가가 싫었다. 그들이 진법에 정통하기 때문이다.
‘가만있어 봐. 이 함정도 제갈세가에서 만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자기는 몰라도 탁지연이라면 기문진을 문제없이 뚫을 것이고, 힘으로 해결할 일, 이를테면 벽을 부수거나 할 때는 자기가 나서면 되는 것이다.
갇혀있는 동안 석벽에 정권찌르기 한 방 넣었던 게 상당한 자신감을 주고 있었다.
무림맹 사람들이 출구 찾기에 매달려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습을 보이더니 슬금슬금 무림맹 쪽으로 합류했다.
그들은 마교도가 아니라 소문을 듣고 뭐 줏어먹을 게 있나 싶어서 몰려온 무림인들이었다. 무소속 솔로가 많았고 무림맹에 정식으로 속하지 못한 군소방파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항마대사는 그들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는 경험 많고 노련한 고승답게 현재의 상황이 몹시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밀폐된 공간. 그것만으로도 위험한데, 그 공간 안에 마교와 함께 갇혀 있는 것이다.
결국 양측의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
그렇다면 아군의 수가 한 명이라도 많은 편이 유리했다.
이곳에 온 무림인 중에 마도나 사도, 흑도 출신들은 지금쯤 마교 쪽으로 붙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항마대사는 일부 인원에게 계속 출구를 찾아보도록 하고 나머지는 인원파악부터 실시했다. 거의 500명에 가까운 수였다.
항마대사가 그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함정에 빠졌습니다. 추측컨데 삼황맹이 우리와 마교를 한 곳에 몰아넣고 서로 양패구상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 무림맹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고 명령체계를 갖출 테니 거기에 따라주십시오.”
사람들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무림인들이란 본래 자존심이 강하지만 지금은 밀폐된 공간에 마교와 동거하는 상황.
마교는 명령체계가 통일되었는데 이쪽이 흩어져 있으면 싸움은 해보나마나였다.
그래서 나가는 순간까지 항마대사의 지휘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생존과 관련해서는 협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마대사는 500명을 총 10개의 조로 나누고 각각 담당구역을 정해주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움직임이었다.
동굴 여기저기에서 마교의 정찰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출구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먼저 이쪽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대비태세가 의외로 철저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도발은 없었다.
시간 여유가 생기자 기수는 슬그머니 무림맹 쪽으로 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가까이에서 확인했다.
누구보다 반가운 사람은 바로 사천당문의 당운영이었다.
그녀는 못 본 사이에 훨씬 더 성숙하고 예뻐 보였다.
‘후후….. 진짜 오랜만이네.’
그러나 당운영은 기수를 벌레보듯 흘겨봤다.
생판 모르는 남자가 자기를 보고 웃고 있으니 기분이 나쁠 만도 했다.
기수는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사해문의 호운혜. 그녀는 여전히 큰 키에 배구선수 체형, 긴 다리와 거대한 가슴, 그리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 역시 낯선 남자가 웃는 것을 보고 경계심을 품는 표정이었다.
아쉽게도 여자 중에는 아는 사람이 그들 둘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별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해야 두 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동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또야? 이번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나 출구가 무너질 때 같은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동굴 여기저기에 석벽이 내려와 길을 차단했다.
트여 있던 공간이 막히자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했다.
기수도 제갈세가의 수작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다음 변화를 기다렸지만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시간 정도가 지나자 다시 진동이 생기더니 석벽들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동굴 안의 정경은 다시 변했다.
이제까지 트여 있던 통로들이 막히고, 막혔던 통로는 트였다.
‘이게 뭐 하자는 수작이지?’
기수는 사람들의 긴장된 모습을 보고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광대하게 펼쳐진 지하공간에 서로 대치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경우에 따라서 상당히 오래 휴전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간이 좁게 나뉘고 또 그 구성이 계속 변한다면 사람들은 갇힌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이 싸움을 촉발할 것이었다.
당장 기수 본인만 해도 어디에 있어야 갇히지 않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탁지연이 기수에게 말했다.
“형님. 불안해하지 마세요. 이건 겁을 줘서 우리를 흔들려는 수작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탁지연 역시 안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 벽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움직이는 거야?”
기수는 그게 궁금했다. 현대의 자동문이야 전기와 모터로 움직이지만 그런 게 전혀 없는 시대에 그 무거운 돌덩이들이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탁지연이 대답했다.
“기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 석문 반대쪽엔 대부분 물통이 달려 있어요.”
“물통?”
“예. 거기에 물이 차면 문이 올라가고, 물이 비면 내려오는 식이죠.”
“아! 모터가 아니라 무게로 당기는 거였군.”
“모터가 뭐죠?”
“그런 거 있어. 어쨌거나 동굴 바닥이 온통 물 천지인 이유를 이제 알겠군.”
생각해 보니까 밖의 냇물이 마르지 않는 한은 계속 작동할 기관이라는 얘기가 되었다.
‘옛날 사람들도 머리 좀 쓰는데?’
문제는 공간의 변화가 마교의 움직임을 촉발했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안에서 영원히 갇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출구 쪽으로 몰려나왔다.
항마대사가 외쳤다.
“적이다! 모두 자기 자리를 지켜라!”
그러나 아쉽게도 새로 내려온 석벽 때문에 병력의 절반 정도는 처음에 배정된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교도와 그들에게 붙은 패거리의 수는 무림맹 연합보다 훨씬 많았다.
진형이 무너져 난전이 되자 상황은 빠르게 나빠졌다.
기수는 탁지연을 보호하며 적과 싸웠다.
그런데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았다.
승복이나 도복을 입고 있으면 무림맹 소속이란 걸 알겠지만 그보다는 평상복차림이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마교 쪽도, 무림맹 쪽도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싸움에 임하다 보니 사람들이 관솔불을 들고 있을 손이 없었다.
그래서 동굴 안은 급격하게 점점 더 어두워져갔다.
“퇴각하라!”
누구의 명령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림맹 쪽인지, 마교 쪽인지도 모르는 퇴각명령.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그걸 자기한테 하는 명령으로 알아들었다.
기수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인이 적인지 아군인지 혼란스러워했다.
거기에 어둠이 점점 더 짙어지자 싸우기보다는 일단 몸을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바로 그때. 요란한 진동과 함께 석벽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수는 멀지 않은 곳에서 고무학의 외침을 들었다.
“흩어지면 안 된다! 모두 이쪽으로 뭉쳐라!”
약선문 제자들만이라도 똘똘 뭉쳐야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기수와 탁지연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약선문주의 막내아들 고원회였다.
순간, 탁지연의 눈이 빛났다.
그녀가 은밀하게 고원회의 뒤로 접근하는 것을 본 기수는 그녀가 하려는 일을 알아차리고 즉시 잔백지를 날려 주변의 관솔불들을 모두 다 꺼버렸다.
“헉! 무슨 일이냐!”
“어서 불을 켜라!”
불이 켜졌을 때, 고원회는 뒤통수를 검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로 인해 약선문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큰일이다! 공자님이 돌아가셨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쪽으로 불을 비춰봐라!”
“이게 어찌된 일이냐! 흉수가 누구냐!”
그러나 워낙 난전 중이었고 어두웠기 때문에 탁지연이 그러는 걸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고원회도 무방비상태로 당한 거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제갈세가는 무림맹과 마교가 싸우라고 기관을 만들었지만, 탁지연이 복수하기에 유리한 혼란스러운 환경도 더불어 조성된 것이다.
탁지연은 기수의 품으로 파고들어 숨을 몰아쉬었다.
손이 떨리는 것을 보니 복수의 성취감에 몹시 흥분한 듯 했다.
기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해냈구나!”
“예. 이, 이제 시작이에요.”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고무학과 고원정, 고원달을 차례로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