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39
기수는 혼자 쪽배를 타고 멀리 우회하여 강변에 내렸다.
3개 수채가 합동 훈련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낯선 배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수로맹 깃발을 꽂은 배라면 어디로 가건 별로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기수는 옷을 갈아입고 얼굴도 바꾼 후 백리세가 쪽을 향해 걸었다.
30분 정도 가자 백리세가 사람들이 큰길을 막고 있는 게 보였다.
검문 하는 무사들 모두 신경이 예민한 상태였다.
“당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인가?”
“나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백리세가 가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뭐라고?”
백리세가 무사들은 기수의 건방진 태도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키도 크고, 인상도 날카로워서 뭔가 있어 보이니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가주님을 만나겠다는 건가?”
“그렇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이번 전쟁의 승패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기수의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다면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라 무사가 다시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얘기해 보거라.”
“가주와 직접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 나를 안내해라.”
그러자 백리세가 무사들도 뻣뻣하게 나왔다.
“네가 누군지 알고 가주님 앞까지 데려간단 말이냐? 정보를 말하고 싶지 않다면 신분이라도 밝혀라!”
기수는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충돌은 불필요했다.
“난 양오라고 하오. 천하를 떠돌며 음양의 이치를 헤아리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맞추는 직업을 가지고 있소.”
“점쟁이로군!”
갑자기 무사들이 깔보는 태도를 취했다.
기수는 순간, 직업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주를 만나지 못하면 백리세가는 어마어마한 겁난에 처할 것이오. 하지만 나를 가주에게 안내하면 당신들은 큰 상을 받게 될 것이요. 백리세가를 구한 공로로.”
무사들은 기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쟁을 앞두고 모든 일이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이때에 뭔가 정보가 있다면 가주가 직접 판단하도록 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가주가 얘기를 들은 뒤에 내쫓으라고 명령하면 그때 가서 패줄 생각으로 일단은 기수를 세가의 장원으로 데리고 갔다.
백리세가의 장원 내부는 으리으리했다.
기수가 객청에서 기다린 지 30분 정도 지난 뒤 한 사람이 나왔다.
그런데 그는 백리세가의 가주가 아닌 둘째 아들 백리형이었다.
“이 자는 누구냐?”
“예. 이공자님. 지나가던 점쟁이인데 우리 백리세가에게 몹시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점쟁이라고? 흥!”
백리형은 바짝 다가와서 경멸하는 표정으로 기수를 노려봤다.
씨름선수 체형의 거구가 눈을 부라리자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쫄았다.
그러나 곧바로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현재 자신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 상대는 왼손 새끼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이길 수 있었다.
“별 거지같은 놈이 다 꼬여드는구나. 점쟁이라고? 노잣돈이라도 벌고 싶어서 온 거냐? 그렇다면 번지를 잘못 찾았다.”
기수는 확!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제가 가지고 온 정보는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시오.”
“흥! 그래? 어디 한 번 얘기해 보거라.”
“지금 백리세가엔 겁난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백리형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건 눈 달리고 귀 달린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기다. 우리는 지금 수로맹과 전쟁 중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겁난이 하나가 아니라 세 군데에서 닥쳐오고 있습니다.”
백리형이 약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거라.”
“수로맹과 맞먹는 어둠의 세력이 둘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라니까!”
“제 점괘에 그렇게 나왔습니다.”
기수가 점쟁이 캐릭터를 택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삼황맹과 녹림72채 얘기를 곧바로 해버리면 그 출처를 캘 텐데 해줄 말이 없었다.
수로맹 내부에서조차 비밀로 되어 있는 얘기를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떡하니 말하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그래서 나름 머리를 짜낸 것이 점쟁이 역할이었다.
백리형은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점괘에 수로맹 같은 적이 모두 셋으로 나왔단 말이지?”
“예. 내 점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지몽으로 미래도 예견할 줄 압니다. 제 경고를 가벼이 여겼다가는 백리세가에 큰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백리형은 한참동안 기수를 노려봤다.
그리고 한 순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거 진짜 재미있구나. 점괘를 믿어라? 아버님께 이 얘기를 했다간 미친 놈 취급을 당할 것이다. 하하하!”
“유비무환이란 말 모르십니까? 믿어서 손해날 일은 없지 않습니까?”
백리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정말 실력이 있다면 아버님께 말씀드려보겠다. 하지만 허풍을 떠는 것이라면 팔다리를 부러뜨려줄 테니 그리 알아라!”
기수는 당황했다.
점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테스트를 하겠다니 큰일이었다.
들어온 길의 기억을 되살려서 퇴각로를 설정하고 있는데 백리형이 물었다.
“맞춰봐라. 내가 무슨 속옷을 입고 있는지. 하하하!”
아무리 뛰어난 점쟁이라고 해도 그런 걸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일부러 기수를 놀려준 후에 내쫓으려고 그런 문제를 낸 것이었다.
그러나 점치는 방법에 대해선 모르는 기수지만 그의 속옷 색깔은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염정구심술을 써서 백리형의 머릿속을 읽은 후 손가락 마디를 짚어서 뭔가 계산하는 척 한 뒤 대답했다.
“붉은색입니다.”
“헉!”
백리형은 깜짝 놀라 자기 아래쪽을 살펴봤다.
어디 비쳐 보이기라고 하나 싶어서였다.
“이제 나를 믿습니까?”
“아니다! 방금 그것은 우연히라도 맞출 수 있는 문제였다. 붉은 속옷 입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남자는 아니지.’
기수는 그가 어려운 질문을 할까봐 아예 문제 형태를 지정해줬다.
“그렇다면 주머니 안의 동전을 손으로 원하는 수만큼 세어서 잡아보십시오. 내가 그 숫자를 맞추겠습니다.”
“오냐! 좋다.”
백리형은 5번을 시도했는데 기수가 전부 다 맞췄다.
그러자 기수를 대하는 백리형의 표정과 말투가 모두 바뀌었다.
“양선생. 이제 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셨군요.”
“하핫! 내가 좀 그렇지요.”
그렇게 백리세가 가주 앞으로 가게 된 기수는 객청 안에 청성파 도사와 아미파 여도사들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리형이 자기 아버지에게 기수를 소개했다.
“여기 이분은 양오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기수는 가주 백리운과 장남 백리용에게 포권을 한 후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세 줄기 위협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눈앞의 적에만 신경을 쓰다가는 암중에 숨어 있는 두 적 때문에 크게 당할 것입니다.”
백리운은 기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기수는 자신의 기도 중 일부분을 살짝 드러내 보였다.
너무 하수면 무시할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실력이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과연 백리운은 기수가 고수라는 사실을 감지한 후 태도가 바뀌어서 그의 얘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정확하게 어떤 위협을 말씀하십니까?”
“내가 천문을 관측해본 결과 세 줄기 흉악한 기운이 백리세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백리운과 청성파의 소검평, 아미파의 무정선자 등은 저마다 자기 의견을 얘기했지만 다들 핀트를 못 맞추고 있었다. 기수는 그들에게 힌트를 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강호엔 두 개의 거대 세력이 뜻을 꺾였다고 들었습니다. 내 생각엔 어쩌면 그들이 바로 암중세력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자 청성파의 소검평이 말했다.
“아! 혹시 녹림72채와 삼황맹이 아닐까요?”
기수는 빙고! 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미파의 무정선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들은 수로맹과는 전혀 다른 무리인데 왜 수로맹을 돕겠어요?”
그게 무림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소겸평이 말했다.
“하지만 녹림칠십이채는 최근 양일이라는 신비인에게, 삼황맹과 제갈세가 연합은 기수라는 고인에게 중요한 고수를 잃으면서 크게 위축된 상태입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기수는 가슴을 폈다. 강호의 형제들이 신비인이니 고인이니 하면서 치켜세우는 모양인데, 그 당사자가 바로 이곳에 서있는 것이다.
백리운이 깊이 생각한 후 말했다.
“아무래도 철저히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요.”
바로 기수가 원하던 대답이었다.
백리운이 기수에게 말했다.
“양소협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러 오셨는데, 어떻습니까? 여기 머물면서 저희들에게 힘을 보태주시는 것이.”
기수가 최소한 적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그것도 기수가 바라는 바였다. 백리세가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붙어 있으면서 도울 생각이었다.
백리운은 즉각 정찰대를 편성해서 장원 주변 백리 밖까지 수상한 움직임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리고 기수를 위해 연회를 열어주었다.
백리운과 그의 세 아들, 그리고 소검평과 무정선자가 함께 자리를 했다.
기수는 백리운과 세 아들 정도면 그다지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안심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청성파와 아미파의 도사들에게 향했다.
소검평은 30대 초반으로 키가 약간 작고 체구도 왜소한 편이었다.
얼굴은 눈이 크고 수염이 많이 나서 얼핏 보면 원숭이를 연상케 했다.
기도를 보면 상당한 고수이고, 말하는 거나 태도도 점잖은데 얼굴이 에러였다.
사실, 소검평은 무림맹의 신주오룡보다 이삼년 앞서 후기지수로 손꼽혔지만 외모 때문에 신주육룡을 만들지 못하고 제외된 아픈 과거가 있었다.
아미파의 무정선자는 무정이란 도호가 아주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척 보면 무표정, 냉정, 싸늘함이 연상되었다.
턱이 뾰족하고 눈 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서 그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상당한 미녀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소검평이 계속 그녀에게 신경 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이는 한두 살 정도 차이날 것 같았고, 사문이 명문 정파니까 꽤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잘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 외모에 자신 없는 소검평이 무정선자의 냉정한 표정에 주눅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기수는 남의 애정사엔 관심 없었다. 백리운이 내준 처소에서 지내며 오랜만에 탁지연의 유혹 없이 운기조식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햐! 여기서 한 한 달만 있다 갔으면 좋겠는데?’
수능 전에 여친 사귀는 걸 부모들이 반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부에 진짜 방해요인이었다.
그가 머무는 건물은 백리세가 장원 전체 평균과 비교해보자면 좀 허름한 편이었고 위치도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청성과 아미의 제자들이 많이 와 있기도 하고, 또 단순한 정보제공자일 뿐이니까 더 크고 고급인 방에 시녀까지 딸려서 대접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 했다.
기수 입장에선 그 편이 더 좋았다.
그러나 혼자 오붓하게 운기조식만 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오래지 않아 방해를 받았다. 아미파 여도사들이 떼거지로 찾아온 것이다.
기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특별히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무슨 명문정파 소속도 아닌데 이 아가씨들이 왜 나를 찾아온 거지? 혹시 나는 얼굴을 바꿔도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세상 모든 미녀들을 끌어들이고 굴복시키는 걸까?’
왠지 신빙성이 있는 이론 같았다.
여도사 중 웃는 모습이 귀여운 여인이 말했다.
“저희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당황하셨죠?”
“아! 예… 뭐, 그냥….”
“저는 송란이라고 해요. 그리고 여기는 제 사저와 사제들이에요.”
나머지 5명이 저마다 자기 이름을 얘기했는데 기수는 오로지 송란만 기억했다.
보통 아미파 하면 금남의 문파니까 엄청난 미녀들이 가득할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특히 기수는 무림맹에서 능소화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미모, 예쁜데다가 키까지 크고 늘씬한 그녀의 자태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중에 미녀가 드물듯이, 여자만 모아놓아도 역시 미녀는 드물었다.
송란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 쪽으로는 전혀 시선이 가지 않았다.
특별히 그녀들을 차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본능이 그랬다.
기수는 송란하고만 얘기하고 싶었다.
그녀는 탁지연처럼 한눈에 반할 정도의 예쁜 얼굴 스타일은 아니지만 볼수록 귀엽고 정감 가는 마스크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성격이 밝고 붙임성이 좋았다. 그리고 옷 위로 살펴봤을 뿐이지만 포션이 아주 좋은 몸매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희들이 듣기에 양소협은 점을 굉장히 잘 친다면서요?”
기수는 뜨끔했다.
‘헉! 설마 단체로 점 보러 온 건가?’
시대가 달라도 여자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밑천이 들통 날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들의 운세를 좀 보아주시면 안 될까요?”
“우, 운세요?”
“예. 저희들은 사부님 모시고 수행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는데 마교가 준동하고 무림이 난세에 접어들다 보니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하지만 나는 천문을 읽고 지리를 헤아릴 뿐 사람의 길흉화복에 대해서는 점을 치지 않습니다.”
그러자 송란이 애교 섞인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지의 이치를 아시는 분이니 인간사에 대해서야 통달하고 계시겠죠? 사양하지 말고 솜씨를 좀 보여주세요. 일단 저부터요. 예?”
기수는 그녀의 애교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 뭘 알고 싶지?”
송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제 생년월일부터 물어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 그, 그런가?”
기수가 그런 걸 알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