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40
기수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난 생년월일 같은 거 몰라도 돼. 자! 우선 너의 어린 시절이 어땠나 볼까?”
그리고는 염정구심술을 시전하여 송란의 어린 시절을 하나둘씩 맞추기 시작했다.
“어머나! 세상에…. 그,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내가 이래서 실력을 좀처럼 보이지 않는데 말야. 하하핫!”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읽으니까 속속들이 다 알고 맞추는 게 당연했다.
기수는 자기가 가짜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염정구심술로 약간의 도움을 받았을 뿐인데 아미파 여제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기수를 완전한 쪽집게 점쟁이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를 맞추고 나니까 미래에 대해서 예견하기는 쉬웠다.
대충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얘기를 해주면 자기네들이 알아서 분석했다.
그리고 기수가 예견하는 미래는 모두 당장이 아닌 1년 뒤부터였다.
그때 가서 맞지 않아도 AS는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점쟁이도 별 거 아니네.’
그들은 무슨 신기한 마술쇼 같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수다와 위안.
그녀들이 점을 본다면서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얘기를 들어준다는 거. ‘다 잘 될 거야. 넌 잘하고 있어.’ 같은 위안을 해준다는 거.
그런 것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미파 제자들의 마음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그들이 아미파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바라며, 이제까지 만난 모든 남자에 대해 견적을 내고 점수를 매긴다는 사실이었다.
양오의 점수는 높지 않았다.
아직 유부남인지 미혼인지도 판가름나지 않았을 뿐더러 무슨 문파에 속한 것도 아닌 떠돌이라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게 큰 이유였다.
자신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여자를 판단할 때 얼굴과 몸매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인간성인데, 여자들은 놀랍게도 외모에 거의 점수를 배정하지 않았다.
남자는 능력.
오로지 지갑의 두께, 혹은 신분이나 명예가 얼굴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청성파의 소검평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진 여도사가 의외로 많았다.
아미파 제자들은 다음날 또 찾아왔다.
이번에도 송란이 인솔(?)했는데, 어제와는 모두 다른 멤버들이었고 인원은 2배로 늘어나 있었다. 쪽집게라는 소문이 나니까 너도나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졸지에 점쟁이 겸 인생 상담사가 된 기수는 운기조식할 시간을 빼앗긴 게 화가 났다. 탁지연 때문이라면 재미라도 있지, 남의 인생사 들어주고 대화해주는 것은 처음 한두 번이 재미있었을 뿐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못 한다고도 할 수 없어서 억지로 참아야 했다.
‘점쟁이들이 돈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구나.’
남의 얘기를 듣고, 상담해주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3자가 보기엔 별 거 아닌 일을 엄청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제일 답답했다.
사흘째 되는 날. 기수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백리세가 무사들이 녹림도들을 발견하고 접전을 벌인 것이다.
경고가 현실로 드러나자 기수에 대한 대접도 달라졌다.
백리운은 기수를 같은 편이라고 확신하고 대책까지 물었다.
“양소협. 정말로 녹림72채가 이 전쟁에 끼어들려 하는 것 같소. 우리는 장차 어찌하는 게 좋겠소?”
“녹림72채에서 끝이 아닙니다. 분명히 삼황맹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하고 최대한 많은 원군을 불러와야 합니다.”
백리운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가문의 미래가 위협받는 지극히 위태로운 상황.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아차린 게 천만다행이었다.
양오의 존재가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수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적을 편하게 해주면 안 됩니다. 그들은 비록 녹림72채니, 삼황맹이니 하는 하나의 이름 아래 뭉쳐 있긴 하지만 저마다 본래 속한 산채가 다르고 출신 부족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한 조직으로 일체화된 움직임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 쪽에서 기동타격대를 조직해서 선제적으로 놈들을 공격하는 게 꼭 필요합니다. 그러면 적이 하나가 되는 시간을 늦출 수 있습니다.”
“양소협의 말씀이 옳소!”
백리운은 즉시 세 아들에게 각각 최고의 제자들을 뽑아 세 개의 부대를 조직하도록 하는 한편, 이웃한 모든 문파들에게 구원을 청하는 편지를 썼다.
청성파의 소검평과 아미파의 무정선자 역시 자신들의 문파에 인원을 더 요청하고, 가능하더면 무림맹 병력이 지원해주기를 부탁하기로 했다.
삼황맹과 녹림72채가 수로맹과 함께 움직인다면 그것은 이미 백리세가만의 싸움이 아니게 된 것이다.
특히 무림맹은 지난번에 홍안산에서 삼황맹과 제갈세가에 깊은 원한을 품은 바 있으니까 소식을 들으면 즉시 도와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기수는 마음이 뿌듯했다.
‘역시 나란 놈. 무얼 해도 제대로란 말야.’
청성과 아미는 또한 네 번째 부대를 구성하여 적을 찾아내어 섬멸하기로 했다.
기수의 말처럼, 적이 마음대로 뭉치지 못하도록 선제적으로 방해하는 게 몹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수는 그들과 함께 행동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인원편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소검평, 무정선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제가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소검평은 흔쾌히 응했다.
무정선자 역시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이미 양오가 자기네 제자들과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백리세가의 세 아들은 소검평, 무정선자, 양오 등과 함께 지도를 놓고 백리세가 주변을 4등분하여 담당구역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곧바로 출발했다.
기수가 속한 청성, 아미 연합은 인원수로 보자면 10명, 기수까지 1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세가를 지키도록 남겨두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무공 실력으로 보면 이번에 백리세가에 온 각 문파의 Top-5 들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일단 산길을 올라가는 경공 실력에서부터 실력이 드러냈다.
소검평과 무정선자는 은근히 양오의 내력에 대해 궁금하게 여겼는데 기수가 아무런 부담 없이 자신들을 따라붙자 더욱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소검평이 기수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양소협은 사문이 어떻게 되십니까?”
“제 사부님은 오래전 강호를 떠나 은거하신 분이라 자신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아! 그렇군요.”
더 알려하는 것은 실례라 소검평도 캐묻지 않았다.
그는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저의 미래도 좀 알 수 있을까요?”
기수는 속으로 웃었다. 청성파 도사나 되는 사람이 점을 믿는단 말인가?
슬쩍 소검평의 속을 읽어 보니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앞으로 무정선자와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고, 자기는 당당히 나설 자신이 없으니까 답답한 김에 점쟁이에게라도 자문을 구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솔직히 소검평이 키가 작거나 얼굴이 약간 에러가 있는 것은 그나 선택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유전자가 그런 걸 어쩌란 말인가.
“소도장.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인간사의 길흉은 잘 못 맞춥니다.”
“아! 그러시군요.”
소검평은 몹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남녀관계에 대해서라면 조언해드릴 수 있습니다.”
“나, 남녀관계요? 하핫! 그, 그런 조언이 제게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정말 필요 없습니까? 무정선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도 좋습니까?”
소검평이 기수의 손을 덥썩 잡으며 물었다.
“제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하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말씀드릴 것은, 여자는 남자의 자신감에 끌린다는 것입니다. 머뭇거리거나 우물쭈물하면 팍팍! 감점 당합니다.”
“그, 그렇군요.”
“제가 보기에 소도장은 일단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제, 제가요? 그, 그렇게 보이십니까?”
기수는 그의 얼굴을 왼쪽, 오른쪽으로 뜯어보았다.
역용술을 익힌 이후엔 사람의 골격과 인상에 대한 식견이 높아져 있었다.
“눈썹을 나처럼 해보십시오.”
기수는 몇 가지 표정을 지어 보였고 소검평은 따라했다.
“지금! 바로 지금 그 표정을 평소에 지으십시오.”
“이 표정은 좀 불친절하고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요?”
“여자들한테는 그 편이 잘 먹힐 겁니다.”
소검평은 곧바로 눈썹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면도 좀 하십시오.”
기수는 땅바닥에 몇 가지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이른바 고티라고 부르는 서양식 수염 형태들이었다.
중원에선 그런 식으로 면도한 걸 본 적이 없었다. 소검평이 한다면 최첨단 유행을 리드하게 될 것이었다.
소검평은 다음 쉬는 시간에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언제 짬을 냈는지 기수가 그려준 대로 면도를 하고 나타난 것이다.
다른 4명의 청성파 제자들은 낯선 수염 형상에 웃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지만 소검평의 관심은 오로지 무정선자의 반응에만 쏠려 있었다.
무정선자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송란을 비롯한 나머지 아미파 여제자들의 자신을 보는 눈빛이 조금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오의 조언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소검평은 자신감을 가지는 동시에 양오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기수 입장에선 과연 무정선자가 소검평의 마음을 받아줄지 궁금하지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염정구심술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면 수학문제 풀기 전에 답을 미리 보는 것처럼 재미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성, 아미 연합은 산을 뒤진 지 4시간 만에 한 무리의 무림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옷차림에서부터 중원인이 아니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삼황맹 소속이 분명했다.
소검평이 장검을 뽑아들고 외쳤다.
“모두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항복해라!”
그러자 상대도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신호 휘슬을 불었다.
주변에서 풀숲 헤치는 소리가 나면서 적의 수가 순식간에 1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은거지 중 하나를 제대로 찾아낸 것이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와서 서툰 한어로 말했다.
“청성파와 아미파의 도사들이로구나. 흐흐흐….. 네놈들은 백리세가의 일에 끼어든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흥! 네놈들이야말로 중원에 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소검평은 적의 수가 많다고 해서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무정선자가 보고 있는데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정선자도 일전을 불사할 각오였다.
청성파가 싸우겠다는데 아미파가 물러설 수는 없었다.
기수가 슬쩍 끼어들어서 상대편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는 대막에서 온 영웅들이다. 그리고 난 비르잔이라고 한다! 너희들은 대막 최고 용사의 칼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크하하……!”
그러면서 그는 반월도를 뽑아 들었다.
기수가 보니 비르잔은 일단 생긴 것과 체형부터 전형적인 헤비급 파이터였다.
게다가 내공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소검평 역시 그 사실을 느낀 듯 했다.
“저들 두목을 제압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안 되겠소. 내가 그를 맡겠소.”
라고 무정선자에게 말하더니 곧장 비르잔을 향해 몸을 날렸다.
기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래. 백리세가의 식객으로 있는 동안은 잠시 슈퍼히어로 자리에서 물러서자.’
원래 이런 상황에선 자기가 나서서 비르잔인지 비러먹을인지를 한 방에 박살내고 나머지 무리를 쫓아버리는 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자기 실력이 공개된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고, 두 번째는 소검평이 무정선자 앞에서 활약할 기회를 빼앗는다는 게 두 번째 문제였다.
기수는 청성파의 무공이 새외의 고수에게 밀리지 않을 거라 믿고 2선으로 물러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상황은 기대만큼 좋게 전개되지 않았다.
비르잔의 무공이 장난이 아니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놈이 무거운 반월도를 무슨 손연재 곤봉 돌리듯이 자유자재로 회전시키며 짓쳐 들어가니까 소검평이 쩔쩔매며 밀릴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 청성파도 별 거 아니구나!”
소검평 입장에선 큰소리친 게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기수는 수로맹 채주들이 맹주로부터 비급을 선물 받고 고수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듯이 삼황맹에서도 그런 과정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척박한 대막에서 어떻게 저런 수준 높은 도법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군.’
아무래도 소검평이 비르잔을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다. 잘해야 100초, 어쩌면 50초식 안에 패할 게 분명했다.
그가 막 싸움에 끼어들려는 찰라, 무정선자가 한 발 앞서 몸을 날렸다.
그녀의 장검이 가세하자 싸움은 금세 균형을 찾았다.
비르잔은 2:1이 되었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둘이 덤빈다고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크흐흐……”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소검평이나 무정선자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기수는 그 싸움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비르잔이나 소검평, 무정선자를 향한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한 감탄이었다.
‘와! 저들이 쓰는 초식의 허점이 다 보이네. 난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고수가 된 거지? 혹시 태어날 때부터 무공의 천재였던 건 아닐까?’
그러나 나르시즘을 즐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비르잔이 싸우는 도중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 두 년놈은 내가 맡을 테니 다른 놈들이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두 잡아 죽여라! 우리가 여기 있는 게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된다!”
그러자 100여명의 부하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기수는 당황했다.
그와 함께 있는 8명의 제자들은 소검평이나 무정선자에 비하면 무공이 좀 처지는 편이었다. 100명이 넘는 적과 싸워서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다.
‘젠장! 결국 슈퍼히어로는 끝까지 정체를 숨길 수 없는 건가.’
기수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때 송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정검진을 펼쳐라!”
거의 동시에 청성파 제자들도 청성의 자랑인 뇌공검진을 펼쳤다.
무공이 다소 떨어져도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8명이 각각 4명씩 검진을 짜고 나니까 기수 혼자만 짝짓기 게임에서 ‘4명!’ 했을 때 혼자 외톨이가 된 것처럼 남게 되었다.
기수는 거기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베이비시터가 되어 8명의 목숨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기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