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41
삼황맹 무리들은 아홉 명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미의 금정검진, 청성의 뇌공검진, 그리고 달랑 기수 한 명.
그렇게 세 개의 공격목표가 눈앞에 놓인 것인데, 삼황맹 무사들은 그깟 9명쯤 단번에 몰살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아미와 청성의 검진이 각각 4명 이상의 힘을 보이며 완강하게 버텼고, 혼자 있는 기수는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며 공격을 피했다.
초조해진 지휘관들이 부하들을 독려했다.
“뭣들 하느냐! 어서 놈들을 죽여라!”
그러나 고함을 지른다고 해서 싸움에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기수는 공격해 오는 자들의 반월도를 빼앗아 양 손에 한 자루씩 쥐고 적진을 누볐다. 아미와 청성 제자들이 예상 외로 잘 버티고 있는데 자기가 실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잔백지를 쓰지 않고 마교 도룡문의 탈백도 48초식을 쌍칼로 펼쳐내며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비르잔과 소검평, 무정선자의 대결을 체크했다.
싸움은 점점 치열해지는 중이었고, 어느 쪽이 이길지 예상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분명 비르잔의 무공은 파워와 스피드 양면에서 두 사람을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와 청성의 무공도 만만치 않았다.
거대한 칼에 금방 검이 부러지고 사람도 죽을 것 같은데, 용케 버티면서 오히려 비르잔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기수는 도와줄까 말까 망설였다.
지금처럼 둘이 호흡을 맞춰 싸운다면 연애전선에도 진전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검평을 위해, 두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될 위기가 아니라면 그냥 놔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좌우의 숲에서 금속성 휘슬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수많은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수는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 그들 역시 삼황맹 소속임을 알아차렸다.
비르잔의 부하들과는 다르지만 분명히 중원이 아닌 새외 부족들의 모습이었다.
‘이거 곤란해졌는걸.’
새로 나타난 자들은 거의 200여명에 가까웠다.
적의 숫자가 갑자기 3배로 불어난 것이다.
아무래도 적의 은신처를 너무 제대로 찾아낸 것 같았다.
기수가 소검평을 향해 외쳤다.
“소도장! 몸을 피해야 합니다!”
그러자 소검평이 대답했다.
“양소협! 우리 제자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나는 이 자를 쓰러트리기 전에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적의 수가 늘어난 것은 감지했지만, 자존심 때문에라도 비르잔과의 싸움은 끝장을 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무정선자 역시 마찬가지 각오인 듯 했다. 그녀는 송란에게 외쳤다.
“양소협과 함께 퇴각해라!”
비르잔이 음산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크흐흐…. 누구 마음대로 도망친단 말이냐? 너희들은 단 한 명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새로 가세한 삼황맹 병력도 비밀 유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듯, 공격하기에 앞서 일단 퇴로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기수는 그들이 아무리 겹겹이 에워싼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한 몸 살아남는 것과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까지 전부 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그는 당분간 버틸 것으로 보이는 소검평과 무정선자를 놔두고 8명의 제자들 쪽으로 갔다.
“검진을 유지한 채 나를 따라오시오!”
그리고 쌍칼을 휘두르며 길을 열기 시작했다.
도법은 이제까지와 같은 탈백도 48초식이지만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그러자 두 자루 반월도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청성과 아미의 제자들은 기수를 따라 이동했다.
탈출로는 기수가 다 열어주었기 때문에 검진을 방어적으로 운용하면서 이동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삼황맹 지휘관들이 부하를 독려했다.
“뚫려선 안 된다! 막아라!”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밤의 어둠에 시야가 가려서 추격이 몹시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뚫겠다고 마음먹은 기수를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적은 전술을 바꾸었다.
“놈들을 죽여라! 화살과 암기를 쏴라!”
기수는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암기들을 전부 칼로 쳐냈다. 청성과 아미의 제자들도 검막을 펼쳐 방어했는데, 그 때문에 이동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기수는 이런 식으로 쫓기고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적들을 살펴본 후 가장 취약해 보이는 쪽을 향해 단신으로 돌진하여 순식간에 길을 뚫은 뒤 청성과 아미 제자들을 불렀다.
“이쪽으로! 빨리!”
그들이 도착하자 기수가 말했다.
“이제부터 뒤는 내가 막을 테니까 당신들은 이대로 산을 내려가시오.”
송란이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하, 하지만 우리가 이대로 가면 사저는…..”
청성파 제자들도 사형인 소검평의 걱정을 했다.
기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도망치라는 게 아니라 빨리 가서 원군을 데리고 오시오. 그거야말로 중요한 일이니까. 소도장과 무정선자는 어떻게든 내가 지켜내겠소.”
송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양소협 혼자 여기 남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내 걱정은 마시오. 위험해지만 내 몸 하나 도망칠 능력은 있으니까. 지금 이럴 시간이 없소. 각자 맡은 역할에 집중합시다.”
주변에 적이 포위망을 만들며 몰려들고 있었다.
청성과 아미 제자들은 곧바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곳의 상황을 알리고 원군을 불러오는 게 남아서 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식했다.
그리고 기수가 길을 열면서 보여준 실력 때문에 그 혼자만 남겨두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8명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기수는 칼을 버리고 근처의 큰 나무로 뛰어 올라가 겉옷을 벗어 가지에 걸었다.
그의 움직임을 본 삼황맹 무사들이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기수는 오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눈매가 날카로운 30대 양오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본래 얼굴이었다.
그는 땅으로 내려서는 짧은 동안에 잔백지로 아래를 쓸어버렸다. 그가 두 발을 땅에 디뎠을 때는 주변에 혈을 눌린 삼황맹 무사들 칠팔명이 뒹굴고 있었다.
기수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너희들 아직도 고향으로 안 돌아갔냐?”
삼황맹 무사들이 기수의 무위에 크게 놀라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너, 너는 누구냐!”
“내가 누구냐고? 하하하!….. 난 기수다!”
그러자 삼황맹 진영이 크게 동요했다.
그들 중 한 명이 기수의 얼굴을 알아보고 외쳤다.
“그가 맞다! 홍안산에서 티무르를 쓰러트린 마신(魔神) 기수다!”
그러자 삼황맹 진영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마신이다!”
“마신이 나타났다!”
그들은 싸우기도 전에 뒷걸음질부터 치기 시작했다.
기수는 씩 웃었다.
“마신이라니. 나처럼 착한 사람한테 마(魔)자가 어울릴 리 없잖아?”
기수는 자기가 쓰러트린 자들이 들고 있던 무기 중 쇠파이프 끝에 도끼날을 삽처럼 붙인 형태의 무거운 병기를 집어 들었다.
“자! 순순히 고향으로 돌아갈 테냐. 아니면 여기 뼈를 묻을 테냐?”
기수가 방편산을 돌려 붕!붕! 거리는 파공음을 만들자 삼황맹 무리들은 겁에 질렸다.
그들은 무림맹과 마교의 합동 공격에 쫓겨 다니다가 이제서야 겨우 전열을 정비한 상태였다. 자신 있게 국경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온 그들이 그런 참담한 꼴을 당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바로 기수가 새외 최강의 전사 티무르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포의 마신이 이곳에 다시 나타났으니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셋 세고 바로 시작한다. 하나!”
기수가 카운트를 시작하자 뒤쪽에선 벌써 돌아서서 뛰는 놈들이 보였다.
기수는 대열이 무너져서 도망치는 적을 보며 카운트를 계속했다.
‘그래. 이게 맞는 그림이야.’
양오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쫓기던 상황은 아무래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다.
셋까지 다 센 기수는 방편산을 어깨 위에 턱! 걸치고 소검평과 무정선자를 찾으러 갔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적은 한 명도 없었다.
벌써 소문이 퍼져서 다들 도망친 것이다.
기수는 비르잔과 소검평, 무정선자가 싸우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라! 어디 간 거지?”
비르잔이 도망치니까 소검평이 따라간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냥 있지. 뭘 또 따라가기까지 했을까. 1:1로는 안 되면서.”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이었으니까, 소검평의 심정이 이해는 됐다.
기수는 가서 그들을 도와줄 생각으로 기감을 바짝 올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숲을 헤치며 달아나고, 여기저기서 고함을 치고 하니까 비르잔이나 소검평의 행적을 찾기가 몹시 힘들었다.
결국 기수는 포기했다.
“쫓아가는 입장이니까 별 일 없겠지.”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둘이 비르잔에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본래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 상황을 종료시킨 기수는 방편산을 버리고 옷을 걸어둔 나무로 돌아가 다시 양오의 모습이 되어 산을 내려갔다.
소검평과 무정선자는 알아서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 보고, 먼저 간 8명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산길을 가는 중에 갑자기 한 사람이 튀어나와 길을 막았다.
“양소협! 무사하셨군요.”
그녀는 송란이었다. 기수가 그녀에게 물었다.
“왜 내려가지 않고 여기 남았소?”
“아! 다른 제자들은 모두 갔어요. 저는 사저가 걱정되서요. 그리고 양소협도…..”
기수는 씩 웃었다. 얼굴을 바꿔도 반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송란이 기수를 위아래로 살펴본 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정말 다치신 데가 없는 것 같네요. 적의 수가 굉장히 많았는데.”
“아! 한참 싸우는 중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적을 모두 쫓아주었소.”
“예? 누가요?”
“이름이 기수라고 하던데…”
“아! 기수라면 홍안산에서 무림맹주님을 구한 그 영웅 말씀이군요!”
“영웅? 하핫! 뭐 영웅이라면 영웅일 수도 있겠군요.”
송란이 눈을 반짝였다.
“지금 그분은 어디 있죠? 올라가면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기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무슨 팬클럽 회원의 광기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유명인이 된다는 게 좋기는 한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없을 거요. 홀연히 나타났다 연기처럼 사라졌으니까.”
“아! 양소협은 좋으시겠어요. 기수 같은 영웅을 직접 보다니.”
기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자기한테 질투를 느끼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직접 만난 건 아니오.”
“그래도 먼발치에서라도 보셨잖아요.”
“그렇긴 했소만.”
“그가 있건 없건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돼요. 사저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사저가 돌아왔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으면 실망할 거예요.”
“그러긴 할 거요.”
“저와 함께 가주실 거죠?”
“이런 위험한 곳에 혼자 보낼 수야 없지요.”
송란은 예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기수는 살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보이는 미녀와 단 둘이 있으니까 은근히 기대감 같은 것도 생겼다.
두 사람은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로 올라갔다.
송란은 검을 뽑아들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발소리까지 죽여 가며 이동했는데, 막상 산 전체가 텅 비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적막감만 감돌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기수의 존재감은 엄청나군요. 그 많던 적들이 전부 다 도망친 걸 보니.”
“그러게 말이오.”
“기수도 백리세가를 돕기 위해서 온 걸까요?”
기수는 그녀가 자기 이름을 아무 경칭 없이 부르는 게 기분 좋았다.
원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은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변한다고 배운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김구, 안중근처럼 아무 것도 안 붙이는 게 예의고 김구님, 안중근씨처럼 뒤에 뭔가 붙이면 덜 유명하다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는 아마 삼황맹과의 사이에 남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 따라왔을 뿐,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두 사람은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와 맞은편 바위에 각각 앉았다.
어느새 밤이 깊어서 달빛 아래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기수는 깜깜한 숲에 송란과 단둘이 있는 게 좀 뻘쭘해서 그녀에게 건량을 권했다.
“아뇨. 배고프지 않아요.”
그래서 혼자 말린 고기를 씹자니 분위기가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소검평과 무정선자가 언제 돌아올지는 기약이 없었다. 까딱하면 이곳에서 송란과 둘이 밤을 새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기수는 슬쩍 염정구심술을 가동해보기로 했다. 송란이 아무 말도 않고 굳은 표정으로 있어서 혹시 화가 난 건 아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혈천제의 마옥혈린수에 당한 이후로 염정구심술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었다. 그러나 염정구심술 중 남의 심리를 조종하는 부분과 달리, 그냥 읽기만 하는 부분은 쓴다고 해서 꼭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아미파의 예쁜 아가씨께서 무슨 일로 표정이 이렇게 심각하실까?’
그리고 읽은 송란의 마음은 황당한 것이었다.
‘이 남자가 날 강간하면 어떻게 하지? 옷이 찢어지면 안 되는데…’
기수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야! 내가 왜 널 강간해! 그런 일이 생길 리 없잖아!’
저런 어여쁘고 말짱한 얼굴로 그런 일을 상상한다는 게 기가 막혔다.
기수가 당황한 몸짓을 보이자 송란은 그걸 또 오해했다.
‘엄마야! 지금 덮치려나 봐. 나 지금 속옷이 지저분할 텐데….어쩌지?’
기수는 진짜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야! 안 해. 강간 안 한다고! 그리고 무림의 여자들은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니까 속옷 지지한 거 다 안다고!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란 말야!’
기수는 자기 속마음도 상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 전달은 일방통행이었다.
‘왜 안 덮치지? 방금 그 움직임은 아니었나? 이 남자. 왜 날 강간하지 않는 걸까?’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 남자가 다 똑같은 줄 아냐? 그리고……너 혹시 은근히 바라는 거냐?’
기수가 송란에게 호감을 가진 것은 그녀의 마스크가 밝고 귀여운 데다가 붙임성 있는 성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조신하고 정조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격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그 반대 스타일일 가능성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