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43
아미파 여제자 중 한 명이 무정선자에게 건의했다.
“며칠째 샅샅이 뒤져도 적이 보이지 않는데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무정선자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중원으로 넘어온 새외의 무리가 그렇게 쉽게 물러갈 리가 있겠느냐? 적은 바로 우리의 방심한 틈을 노릴 것이다. 더 구석구석 뒤져야 한다.”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다.
기수와 소검평, 송란 모두 무정선자의 의견에 동감이었다.
기수는 무정선자가 볼수록 신기했다.
‘낯빛 하나 변치 않네. 여자란 원래 다 그런가?’
송란도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 자기를 남처럼 대하는 연기가 훌륭했다.
그렇게 이삼일이 더 지나자 백리세가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가주님이 돌아오시랍니다.”
소검평과 무정선자는 계속 밖으로 돌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
장원으로 돌아가 보니, 떠나올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수백 명의 무림인들이 건물마다 가득 들어차고 넘쳐나서 밖에다 군막을 새로 세우고 있었다. 방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
그들은 바로 구원요청을 받고 온 문파들이었다.
백리운이 소검평과 무정선자에게 물었다.
“산에서 삼황맹의 병력을 발견하셨습니까?”
“아니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럴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놈들은 다 도망친 것 같습니다. 제 아들들도 녹림도가 전부 사라졌다고 보고해서 일단 철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물러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분명 다시 오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백리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때 처리하면 됩니다. 하하!… 지금은 수로맹에 비해 우리 쪽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게다가 강남 쪽의 문파들이 배를 많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제대로 한 판 붙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기습하여 모두 쓸어버리면 나중에 삼황맹과 녹림72채가 돌아와도 위협이 한결 덜할 것입니다.”
소검평과 무정선자 모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수로맹은 백리세가뿐만 아니라 청성과 아미 입장에서도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래서 적의 적은 친구라는 개념으로 원군도 파견한 것이었다.
수로맹을 무찌르고 귀환하면 소검평과 무정선자 모두 사문에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었다. 삼황맹이 물러간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기수는 입장이 난처했다.
‘이러면 얘기가 곤란한데.’
백리세가가 너무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도우러 왔는데 오히려 지금은 수로맹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시소가 갑자기 반대쪽으로 기울어버린 것은 삼황맹의 철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기수는 삼황맹 수뇌부를 욕했다.
‘멍청한 놈들! 고작 마신 한 명 나타났다고 병력을 다 뺀다는 게 말이 되냐?’
얼마나 무서웠으면 별명도 그렇게 지었을까 싶긴 했다.
그들이 이대로 포기하고 중원을 떠나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백리세가에게 완벽한 노마크 찬스를 제공한 건 분명했다. 축구로 치면 센터백 2명이 모두 부상 치료하러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는데 크로스가 올라오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기수는 자신의 숙소로 가서 편지를 한 장 썼다.
[저의 역할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부디 사마의 무리를 물리치고 정의의 힘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멋진 메시지를 남기고 초연히, 신비롭게 사라지기로 한 것이다.
밤중에 장원을 빠져나온 기수는 곧장 강가로 가서 강남에서 왔다는 선단의 규모를 확인했다.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기수는 그들 중 작은 배 한 척을 골라 파수꾼의 수혈을 눌러 재운 뒤 그걸 타고 수로맹 진영으로 귀환했다.
검문을 받았지만 범장의 모습으로 돌아간 뒤라 문제없이 자신의 배로 갈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장님.”
육대기가 반가이 맞았다.
탁지연도 마중을 나왔는데, 그녀는 약간 토라진 기색이 보였다.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선실에 단 둘만 있게 되자 기수는 탁지연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물론 송란 얘기는 전부 뺐다.
“그럼 지금 수로맹 입장에선 큰 위기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녹림이나 수로맹의 구성원은 솔직히 무공이 뒤떨어졌다.
특정 문파에 속해 있으면 그 무공의 고급, 저급을 떠나 기초부터 제대로 단계를 밟아 배우게 되는데 반해 이 산도적, 물도적들은 무공이랄 게 없었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고, 개중에 제대로 배운 사람이 두령이 되어서 부하들을 자기 식으로 좀 가르치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산적은 산이라는 지형적 이점이 있고, 수적은 물과 배라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백리세가 측에서 준비한 선단이라면 수로맹의 이점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채주에게 가서 의논해봐야겠어.”
“그건 내일 아침에 가서 하세요.”
“한 시가 급한데.”
“저도 급해요.”
그러더니 그녀가 본래의 얼굴을 드러내며 기수의 품에 안겨왔다.
기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큰 기쁨을 느꼈다.
‘됐어! 역시 난 흔들리지 않아.’
송란을 벗기기 직전에 죄책감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개념 정립을 하지 않았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지금 탁지연의 얼굴을 봐도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송란에게도 미안하지 않았고, 송란과 그런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 탁지연에게 미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나는 오로지 이 시간, 이 공간에 충실한 사람이야. 후후….’
기수는 탁지연과 키스하며 그녀가 옷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탁지연이 갑자기 입술을 떼고 물었다.
“기소협!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요. 혹시 거기 가 있는 동안 다른 여자 만났어요?”
기수는 깜딱! 깜짝도 아닌 깜딱 놀랐다. 하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난 너밖에 없어.”
물론 지금, 이곳이란 전제하에 그렇다는 말이지만.
탁지연은 양손으로 기수의 양 볼을 꽉! 눌러 잡고 코와 코가 닿을 만큼 바짝 다가와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정말 다른 여자 만나지 않았어요?”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자에겐 육감이란 게 있다고 하더니 탁지연은 그런 게 특별히 더 발달된 것일 수도 있었다.
기수는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대답했다.
“정말 없었다니까. 생각해 봐. 백리세가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잖아.”
그녀 손에 양 볼이 눌려서 말소리가 좀 웃기게 나왔다.
그 정도 얘기했으면 믿어주면 좋을 텐데 탁지연은 집요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요.”
그러더니 기수의 바지와 속옷을 벗겨서 아래로 내리고 존슨을 손으로 잡았다.
“뭐, 뭐하려고 그래?”
탁지연은 대답 없이 곧바로 존슨의 머리를 입에 쏙 넣었다.
“허걱! 무, 무슨 짓이야… 으음…. 으으…..!”
기수는 따듯한 그녀 입의 촉감, 그리고 그 안에서 혀가 움직이며 마찰해주는 느낌에 신음을 토했다. 탁지연의 실력은 나날이 느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탁지연은 기수를 위해 그러는 게 아니었다.
한참 혀를 움직이던 그녀가 입을 떼더니 중얼거렸다.
“다른 맛은 안 나네?”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설마 다른 여자하고 하고 씻지도 않았을까봐?
“이제 오해 풀렸지? 하던 일 계속하지 그래?”
기수가 그녀 머리에 손을 얹어 당기자 탁지연은 위를 올려다보며 생긋 웃고는 본격적으로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기수는 신음을 토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송란과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의 몸이 풍만하고 폭신폭신해서 바운스가 아주 좋다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수는 그것을 속살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탁지연에 비해 송란의 그곳은 뜨겁고 부드럽긴 하지만 밀착감은 덜했다.
그러나 돌아와서 탁지연을 다시 안아본 결과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차이가 아니었다. 탁지연은 존재 자체가 톡톡 쏘는 강렬한 맛이 있었다.
이쪽에서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늘 창조적으로 반응을 보여서 심심하거나 방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단순히 성감대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느낌에서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짜릿했다.
송란은 그런 탁지연에 비하면 밋밋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짬짜면을 먹을 때 짜장면을 먼저 먹고 짬뽕을 나중에 먹는 것은 짬뽕의 맛이 더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탁지연이란 짬뽕을 먹다가 송란이란 짜장을 나중에 먹으니까 입이 얼얼해서 짜장의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송란이 나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짜장을 먹기 전에 입가심부터 하면 좀 나으려나?’
머릿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수는 밤새도록 짬뽕을 먹고 또 먹었다.
다음날. 기수는 채주 강대원을 찾아갔다.
강대원은 별로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무슨 일로 왔나?”
다른 채주들 있는 앞에서 능력 있는 부하를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자기만 잘나 보이고 싶어 하는 옹졸한 성격의 단면이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대원은 내키지 않았지만 기수를 그 자리에 있는 두 채주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범장이라고 합니다. 살인과 방화, 강간이 특기지요.”
그리고 두 채주를 기수에게 소개해주었다.
“여기 계신 분은 26채 채주이신 막붕비, 이쪽 분은 28채 채주이신 갈태독 대협일세. 인사 올리게.”
기수는 두 사람에게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둘 다 강대원보다는 나이도 많고 무공도 고강해 보였다.
경륜으로나 수로맹 내에서의 배분으로나 두 사람에게 밀리기 때문에 강대원이 더욱 잘나 보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막붕비가 말했다.
“무슨 일이기에 찾아왔나? 말해보게.”
그는 수적이라기보다는 선비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말투도 온화했다.
“예. 백리세가에서 원군을 청한 모양입니다.”
갈태독이 말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네.”
그는 막붕비와 비슷한 5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인상은 정반대로 험상궂어서 누가 봐도 도적질 해먹고 살게 생긴 얼굴이었다.
“저쪽 강변에 묶여 있는 배들의 수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아무래도 갈대 숲 사이에도 배를 숨겨놓은 것으로 의심됩니다.”
세 채주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기수는 그걸 직접 보고 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갈숲에 배를 숨겼다고?”
“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저들이 갑자기 기습이라도 해온다면 우리 쪽의 피해가 극심할 것입니다.”
강대원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물 위에서 누가 감히 수로맹을 당적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말 할 것 없이 돌아가서 진형 훈련이나 열심히 하게.”
기수는 강대원이 백리세가의 잠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안타까웠다.
‘아 놔…. 이 새낀 도와주려고 해도 지랄이네.’
지금의 백리세가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강대원은 그걸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직접 보고 왔다고 할 수도 없었다.
기수가 답답해서 한숨 쉬는 모습을 보고 막붕비가 물었다.
“적이 기습해 올 것에 대해 무슨 대책이라도 있나?”
강대원이 끼어들었다.
“하하!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그저 강도질이나 하던 자인데.”
기수는 강대원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막붕비가 강대원에게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으면 무슨 계책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일단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세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자 기수가 대답했다.
“적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가서 배들을 태워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막붕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강대원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보게. 범장.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적에게 배가 소중한 만큼 경비를 철저히 서고 있을 게 분명하네. 물 위에서 싸우면 우리 쪽이 유리한데 왜 적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기어 들어가서 위험을 자초한단 말인가?”
“계속 피하려다가 더 큰 위험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있는 겁니다!”
막붕비와 갈태독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그것은 맞는 말이오.”
강대원의 표정은 불그락푸르락 했다.
부하한테 한 소리 들은 게 자존심 상한 것이다.
기수는 아차! 싶었다.
‘살인, 방화, 강간이 특기인 놈치고는 너무 쿨하게 말했네.’
얼굴만 바꿀 게 아니라 캐릭터 전체를 다르게 연기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강대원의 비위만 맞춰줄 수는 없었다.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강대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기수를 노려볼 뿐이었다.
막붕비가 말했다.
“아무리 시간만 끌면 이기는 전쟁이라고 해도, 너무 놀기만 했더니 온몸이 뻐근하군. 불놀이 한 번 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갈태독이 바로 호응했다.
“어유만 충분하다면 배 한 척 태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갈대숲까지 전부 태우면 꽤 볼만할 거야.”
두 사람은 서로 막역한 사이인 것 같았다.
그들이 뜻을 굳힌 듯 보이자 강대원도 곧바로 태도를 바꾸어 그들 쪽에 붙었다.
“어유라면 저희들이 잔뜩 모아놓은 게 있습니다. 단지마다 가득 채워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름을 작은 단지에 넣어가지고 가면 운반이 쉽고, 단지 주둥이에 둘러서 묶은 끈을 잡으면 멀리 던지기도 편했다.
상대편 배의 갑판에 단지를 던져서 깨지면 기름이 쏟아지고, 횃불이나 불화살 하나로 불바다를 만들 수 있었다.
수로맹엔 즉시 전투 준비명령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