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47
채주 3인방 회의에 나타난 사람은 제갈빈.
바로 제갈세가의 이공자였다.
기수는 제갈세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중원의 문파이면서 새외 삼황맹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었다.
기수는 어차피 중원과 오랑캐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제갈세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처음 강호에 출도 했을 때 적으로 만난 과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수에겐 약점이 한 가지 있었다.
잘 생겼지, 키 크지(그것도 크지), 머리 좋지, 무공 고강하지, 마인드 건전하지,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기수지만 딱 하나, 진법엔 약했다.
맨 처음 자신을 고수로 만들어준 태무신궁의 자매들과 헤어지게 된 것도 진법 때문이었고, 그 이후에도 진법은 기수에게 있어 크립토나이트였다.
제갈세가는 바로 그 진법의 대가였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일단 범장의 신분이니 제갈빈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긴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주 제갈청과 꼭 닮은 얼굴과 웃음소리부터 싫었다.
“이번에 새로 채주가 되셨다고요. 감축드립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는 임시일 뿐입니다.”
“그래도 수로맹에서 치른 몇 번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대충 인사와 덕담이 끝나자 제갈빈은 선실 벽에 큰 지도를 걸었다.
기수가 보니 백리세가 주변의 상세지도였다.
“이제부터 백리세가 멸문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막붕비가 물었다.
“우리는 물길만 막으면 되는 것 아니었소?”
“상황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뜻밖에 백리세가에서 우리 제갈세가와 삼황맹, 녹림72채의 연합을 알아차리고 기습 선제공격을 가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원군을 불러와서 애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전력이 적어도 5배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갈태독이 깜짝 놀란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저들의 배를 태우기 정말 잘했군요. 하마터면 크게 당할 뻔 했습니다!”
막붕비도 동의했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제갈빈에게 물었다.
“5배라면 우리가 이기기 어려운 것 아니오?”
“아닙니다. 그래봤자 저들은 우리를 막지 못합니다.”
꽤나 자신 있는 목소리였다.
“삼황맹과 녹림72채에서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수로맹에서도 이전보다 좀 더 많은 일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장강을 통해서는 어떠한 인원이나 물자도 백리세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차단해 주십시오. 그리고 거사일엔 상륙하여 백리세가의 남쪽 일대 공격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도의 일부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막붕비와 갈태독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총공격에 도움을 주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지만, 그래도 수적은 물 위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기수가 그들의 불만을 눈치 채고 대신 나섰다.
“그런데 이 공격을 어째서 우리 수로맹이 아닌 제갈세가가 주도하는 겁니까?”
막붕비와 갈태독도 불만을 얼굴에 드러냈다.
제갈빈은 그런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대답했다.
“수로맹 맹주님께서 특별히 우리 제갈세가에 도움을 청하셨고, 저희에게 전권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결정은 곧 수로맹주님의 명령과 같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불복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기수는 발끈했다.
그러나 막붕비와 갈태독은 의외로 쉽게 거기 수긍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기수 혼자서 계속 따질 수도 없었다.
결국 그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자 제갈빈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기수는 잘난 척 하는 그의 모습이 얄미웠다.
‘웃지 마. 새끼야. 난 니 마누라 따먹었어. 임마. 약 오르지?’
강호에 처음 나와서 제갈세가를 피해 도망치는 공손설을 도와주었는데, 그녀가 바로 제갈빈의 아내였다.
지금은 수로맹주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았다고 뻐기고 있지만 마누라가 도망치는 것 하나 잡지 못한 한심한 놈인 것이다.
제갈빈은 기수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는 이번 거사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기수는 제갈세가가 확실히 병법엔 능통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 듣고 보니 백리세가의 병력이 많다고 해도 결국 꼼짝없이 갇힌 채 몰살당할 가능성이 커보였다.
기수가 제갈빈에게 질문했다.
“소문에 듣자하니 삼황맹은 기수라는 자에게 쫓겨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하! 도망은 아니고 작전 상 잠시 후퇴했을 뿐입니다.”
“어쨌거나, 그 기수란 자가 다시 나타날 것에 대한 대비책도 있습니까? 이번에도 몽땅 도망쳐 버리면 문제가 심각하지 않겠습니까?”
제갈빈은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번엔 우리 제갈세가가 없었기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행으로 전개되었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기수를 잡을 비책이라도 있습니까?”
자기 얘기를 남의 일처럼 물어보자니 좀 이상하긴 했다.
“물론 있습니다!”
기수는 살짝 긴장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보안 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하! 우리가 안다고 뭐 문제될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그럼 자세히는 말로 대략적인 얘기라도 해주십시오. 그래야 우리도 안심하고 작전에 임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갈빈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진법으로 그를 가둘 것입니다.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역시, 너희들이 제일 잘 하는 걸로 승부를 보겠다는 거구나.’
기수는 삼황맹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제갈세가에겐 막내아들을 죽인 원수였다.
그러니 준비를 철저히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또한 백리세가의 멸문이 걱정되기도 했다.
자기는 이제 수로맹의 채주가 되었으니까 더 이상 공을 세우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수로맹주 만날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올 것이었다.
백리세가가 멸문당한다 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엔 지금 송란이 있었다.
그녀의 폭신폭신하고 탄력 있는 몸을 생각하면 그냥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기 배로 돌아온 기수는 탁지연에게 들은 얘기를 전부 해주었다.
탁지연이 말했다.
“그 정도로 대대적인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면 백리세가가 위험한 것 아닌가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녀는 기수와 달리 자신을 명문정파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백리세가를 도와줘야 할 것 같지?”
“예. 그들이 멸문당하면 수로맹과 삼황맹, 녹림72채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거고, 중원무림은 일대 겁난에 휩싸이게 될 거예요.”
“너 혹시 진법에 대해 좀 아냐?”
“웬만큼은 공부했죠.”
“제갈세가의 진법도 파해할 수 있어?”
“그거야 해보지 않고는 모르겠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아무리 머리 좋은 그녀라고 해도 제갈세가의 진법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일단 기본적인 것 좀 가르쳐 줘.”
“예. 좋아요.”
기초라도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어려웠다.
기수는 기본단계에서부터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탁지연은 기수에게 진법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떻게든 지식을 주입시키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몸을 무기로 이용하게 되었다.
“구궁팔괘를 순서대로 외우기 전엔 만질 수 없어욧!”
“아야! 그렇다고 때리냐?”
“몇 글자 되지도 않는데 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세요?”
“이게 몇 글자 안 된다고? 그러지 말고 우리 함 하자. 그리고 공부는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야. 어때?”
“안 돼요! 바지는 왜 내려욧! 당장 다시 입으세요.”
그녀가 워낙 세게 나오니까 기수도 대충 넘어갈 수 없었다.
결국 가정교사에게 매도 맞고, 칭찬도 듣고, 또 상으로 모종의 서비스도 받으면서 상당 수준의 기본지식을 배우게 되었다.
기수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참 잘했어요!’ 상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도저히 외울 수 없을 것 같았던 복잡한 이론까지 익힐 수 있었다.
다음 날.
제갈빈은 일시와 신호를 절대 어기지 말 것을 거듭 당부한 후 돌아갔다.
채주 3인방 회의에서 이번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하자고 약속한 후 자기 배로 돌아온 기수는 육대기를 불러 작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매일 두 번씩 기동훈련과 전투훈련을 시켜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당분간 내가 없을 테니까 부채주 명령에 잘 따르고.”
“예. 걱정 마십시오.”
이젠 채주가 되었으니까 빠져나가는 것도 기수 마음대로였다.
“혹시 다른 채주들이 찾으면 네가 대신 가고, 난 폐관수련 중이라고 해.”
“예? 그, 그래도 될까요?”
“어차피 우리는 제갈세가의 명령에 따라야 하니까 내가 있건 없건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거야. 막채주나 갈채주가 무슨 일을 시키면 그대로 하면 되고.”
“알겠습니다.”
기수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선실에 들어가서 탁지연에게 진법 교육을 받고 작별 키스도 나누었다. 그리고 혼자 쪽배를 타고 강변에 내려 백리세가 쪽으로 갔다.
양오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기수는 아무 문제없이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운 앞에까지 갈 수 있었다.
“양소협! 우리를 떠난 줄 알고 걱정했었소.”
“사실은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위협이 사라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사이에 우리는 수로맹의 습격을 받아 배들을 대부분 잃고 말았소. 그 와중에 수로맹의 채주를 잡긴 했지만 이젠 그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소.”
마치 자기네들이 잡은 것처럼 말하는 백리운의 화법에 기수는 씩 웃었다.
“제가 다시 돌아온 것은 물러난 줄 알았던 위협이 더 커져서 돌아오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백리운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이오?”
다른 사람이 꿈 얘기를 했다면 개꿈이라고 웃어 넘겼겠지만 양오는 달랐다.
지난번에도 삼황맹과 녹림72채의 위협을 그가 미리 경고해주어서 큰 위험을 벗어나지 않았던가.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시오.”
“분명 놈들은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병력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허어! 그거 큰일이군요.”
백리세가에서는 그동안 산악지역 순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면 적이 예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게 분명했다.
백리운은 기수가 묵을 방을 하나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아들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방법은 이번에도 동일했다. 구역을 나누어 선제적으로 찾아내어 부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의 규모가 이전보다 더 클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전보다 인원을 훨씬 많이 배정하기로 했다.
기수는 자기 방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아미파 숙소로 향했다.
탁지연은 정도 무림의 미래를 걱정해서 기수를 이곳에 보냈지만, 기수가 여기 온 목적은 그것과 좀 달랐다.
백리세가 쪽 인원이 늘어났다고 해도, 제갈빈의 브리핑을 근거로 추정해보자면 이 전쟁은 수로맹, 삼황맹, 녹림72채 연맹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더 컸다.
기수의 목표는 단 하나, 송란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무정선자와 소검평 커플도 무사했으면 좋겠지만, 자기가 그들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다.
그가 아미파 진영으로 가자 송란이 엄청나게 반기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흥분을 억누르고 조신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돌아오셨군요.”
“그래. 그동안 별 일 없었지?”
“별일은요. 남자가 날 버리고 떠난 것 외에는….”
“버리다니! 그럴 리가 있나.”
“내겐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걸 그럼 뭐라고 해야 하죠?”
“후후…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 돌아왔잖아.”
송란은 나름 토라진 척 하려고 했지만 반기는 표정이 더 강했다.
기수는 그녀가 몹시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아 놔…. 난 어떻게 여자만 보면 다 좋아…’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배웠다.
송란은 약간 살이 있지만 그래서 더 귀여운 마스크의 소유자였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자신의 호르몬을 많이 받아서 피부가 예전보다 훨씬 맑아진 것 같았다.
“사실은,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예? 뭔데요?”
“나하고 여기서 도망치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미파도 아닌 백리세가의 전쟁에 괜히 끼어들어서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없잖아? 전쟁으로 어수선한 틈에 슬쩍 빠져나가자고.”
“지금 혹시…. 저한테 청혼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기수의 표정이 굳자 송란은 냉소를 지었다.
“흥! 그럴 줄 알았어요. 전 못 가요. 사문에 태산 같은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그걸 배신하겠어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기수는 그녀가 금방 오케이 할 거라고 기대했다가 살짝 실망했다.
탁지연이었다면 자기 제안에 어떠한 계산도 없이 무조건 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비교가 되었고, 약간의 배신감 비슷한 것도 느껴졌다.
‘세상 여자들이 전부 다 사랑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뭔가 배운 기분이었다.
하긴, 꼭 여자로 특정 지을 필요 없이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남의 마누라를 자기 사랑이랍시고 치근치근 매달리다가 자살하는 베르테르 같은 놈도 있지만, 남의 마누라와 잔 걸 가벼운 자랑으로 여기는 자기 같은 남자도 있는 것이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나도 거기 맞춰줘야지 뭐.’
송란의 폭신폭신한 속살과 따끈따끈한 그곳이 불현듯 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