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55
수로맹주의 배는 좁고 긴 쾌속선이었다.
장강을 돌아다닐 때만 타는 배 같았다.
배의 폭이 좁으니까 선실도 상당히 좁은 편이었다.
수로맹주는 배에서 다른 부하들을 전부 내리게 했다.
그렇게 단둘만 있으니까 기수는 은근히 불안감을 느꼈다.
‘왜 단둘만 있으려는 거지? 혹시…. 내 피를 빨아먹을 작정인가?’
수로맹주의 붉은 눈동자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정말 그가 흡혈귀라면 아까 연회장에서 마늘을 좀 더 먹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받게.”
수로맹주는 얇은 책자 한 권을 내밀었다.
표지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내부는 글자들이 빽빽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읽어보게.”
그러더니 수로맹주는 충분한 시간을 주겠다는 듯, 의자에 편안히 앉아 선실 창으로 보이는 어두운 강으로 시선을 주었다.
기수는 속으로 신(?)을 불렀다.
[찬스다! 빨리 이놈이 맞는지 얘기해 줘!]
기수는 선빵이야말로 승리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이렇게 방심할 때보다 좋은 기회가 언제 또 있겠는가.
이놈을 쓰러트리면 12중 3, 그러니까 4분의1의 목표를 완수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귀환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자기는 이곳에 와서 밥 잘 먹고, 그것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엄마는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 고생하고, 또 없어진 아들 걱정에 눈물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안 좋았다.
신은 끝내 아무 대답이 없었다.
기수는 일단 선빵을 보류하기로 했다.
괜히 서둘렀다가 ‘어! 이 산이 아니네.’ 하고 다른 쪽으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수는 책을 펼쳐보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종이도 새 거고, 급히 썼는지 중간에 수정한 글자도 보이고, 내용도 좀 어수선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것이 무공비급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꽤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주님. 이것은…..”
“파천강기(破天&xx32609;氣)라는 걸세. 그 구결대로 연공하다 보면 차츰 내공을 집중시켜서 몸 밖으로 발출시킬 수 있게 될 거야.”
“아! 그럼 검강 같은 겁니까?”
“원리는 비슷하지만 그것은 특별히 강기만 집중적으로 빠른 시간에 만들어내는 비결이니까 검을 익히는 것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이 강기를 발출하려면 검을 써야 하는 겁니까?”
“아니. 이제까지 익힌 무공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권법을 익혔건, 도법을 익혔건, 파괴력이 두세 배 늘어난다고 보면 될 거야.”
“아! 고맙습니다!”
기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인사를 했다.
‘뭐, 이런 선물을 다…. 흐흐흐… 금방 익혀서 널 죽이는데 써주마.’
이전 채주 강대원도 수로맹주로부터 비급을 받아서 익혔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자기도 이제 정식 채주가 되었으니 선물을 받은 것이다.
“부디 우리 수로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게.”
“예! 걱정 마십시오.”
“아! 그리고…. 그 책은 최대한 빨리 외우고 태워버리게.”
“외우라고요?”
“일단 강기 만드는 데 성공하면 그 다음엔 몸으로 기억하면 되니까 꼭 글자를 다 외울 필요는 없어. 어쨌거나 책은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니까 태워야 하네.”
“알겠습니다!”
기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혹시…. 맹주님의 눈이 그렇게 된 게 이 무공 때문입니까?”
남의 외모에 대해 물어보는 거라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수로맹주는 의외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하하! 내 겉모습이 좀 특이해서 놀랐지?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특별한 내공을 연마하다보니 좀 변했네. 하지만 무공을 대성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파천강기는 외모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으니까 걱정 말게.”
“아! 그렇군요.”
기수는 그의 무공이 완성되기 전에 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축하 연회가 끝나고 돌아가 버리면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신(?)은 대답을 안 하고. 가슴도 두근거리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어졌다. 일단 생각난 것은 염정구심술이었다.
‘하지만 내공이 깊은 상대한테 쓰면 알아차릴 수도 있단 말야.’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서 좋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기수는 고전적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바로 대화였다.
“혹시 이 무공들을 맹주님이 창안하신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나?”
“이 책을 보니 금방 쓴 것처럼 보여서요.”
수로맹주는 잠시 뭔가 생각한 후 말했다.
“이제 한 식구가 되었으니 숨길 필요도 없겠지. 사실 파천강기나 내가 익힌 무공들은 모두 군사가 창안한 것일세.”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군.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더라니…’
채주들이 무공을 얻어 익히듯, 수로맹주도 그 군사라는 자에게 배운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나마 아직 완성도 안 된 상태였다.
생각해 보면 천외존자도 녹림72채 채주가 아니었고, 티무르도 삼황맹의 우두머리는 아니었다. 적들은 최고 책임자는 아니라는 패턴을 읽을 수 있었다.
“그 군사는 어떤 분입니까?”
“하하! 자네도 그녀에게 관심 있나?”
“아! 여자인가요?”
“남매지만 오빠는 부군사고 동생이 군사를 맡고 있지.”
“예쁜가요?”
기수는 자기가 한 말을 즉시 후회했다. 하지만 너무 본능적으로 나온 거라서 막을 찬스가 없었다.
“하하! 꽤 신경 쓰일 정도의 미색이지. 그래서 늘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네.”
“한 번 만나 뵙고 싶군요.”
“언제고 기회가 있을 걸세.”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들 남매의 무공은 엄청나겠군요.”
강기를 집중 단련하는 무공을 채주에게 던져 줄 정도면 본인들은 이미 다 익히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어쩌면 천외존자나 티무르보다 더 셀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다 둘이라니…
수로맹주가 말했다.
“자기들 말로는 특이한 체질을 타고나서 머리는 좀 돌아가지만 몸의 기혈 순환이 순조롭지 않아 무공으로는 대성할 수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이론으로만 파고들었다는데, 내가 보기엔 무공도 보통은 넘는 것 같아.”
“예. 그렇군요.”
“일단 그것부터 완전히 익히게. 강기 만드는데 성공하면 책은 태워버리고.”
“알겠습니다.”
“일단 강기가 만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자네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더 강하게 키워나갈 수 있을 걸세.”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기수는 수로맹주를 죽이지 않고 잘 대접해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자 파천강기 연공을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가장 큰 방해요소는 탁지연이었다.
“기소협. 무슨 책을 그렇게 보세요?”
“응. 무공비급이야. 으윽….. 으으…..”
“쭈웁~…. 저보다 무공이 더 좋아요? 쭈웁…. 쪼옵….”
“잠깐! 잠깐만….우리 이거 함께 익히자.”
“무슨 무공인데요? 전 뭐 특별히 관심 없는데….”
그녀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는 그녀의 시선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중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특별히 색정광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온종일 배에서 지내다 보니 섹스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건 특별한 무공이야. 너도 아마 좋아하게 될 거야.”
기수는 파천강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탁지연도 드디어 시선을 책 쪽으로 옮겼다.
“어머! 그럼 제가 월영검법을 펼치면서 검기를 쑥! 쑥! 발출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바로 그거야. 일약 절세고수가 되는 거지.”
“책 좀 줘보세요.”
그녀도 무림인이다 보니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평소보다 섹스 하는 시간을 줄이고 파천강기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늘리게 되었다. 나중엔 무공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만큼 섹스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심지어는 하루에 2시간 밖에 안 하는 날까지 생겼다.
수채의 일은 육대기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백리세가의 배가 모두 사라진 이상 당분간 어떠한 위협도 없을 것이었고, 또 수채의 살림이 어떻게 되건 별 관심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육대기가 제법 경영자 마인드가 있어서 관리를 빈틈없이 잘 해냈다.
하는 걸 가만히 보면 적성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와 탁지연은 주로 강 남쪽의 창고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강기 발출에 성공한 것은 역시 기수가 탁지연보다 훨씬 빨랐다.
나무판자를 들고 검지를 댄 후 강기를 발출하면 퍽! 하고 구멍이 뚫렸다.
“하하! 정말로 되네. 이거 진짜였어.”
“축하해요. 기소협.”
“고마워. 하하하!”
“아이! 속상해. 나는 왜 안 되는 거죠?”
“내공 차이 때문이려나?”
“아무리 그래도, 구결대로 운용했으니까 종이라도 뚫려야 하는데….”
기수는 씩 웃었다. 탁지연이 자기보다 머리가 좋긴 하지만 강기는 발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공은 지능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요령이 생기자 주먹이건 손바닥이건, 손가락이건, 심지어는 발끝으로도 강기를 발출할 수 있었고 칼이나 검을 잡으면 그 날을 통해서도 발출이 가능했다.
“이것 좀 봐! 신기하지?”
기수는 탁지연을 놀리면서 칼을 5cm 정도 거리 뗀 상태에서 나무토막을 썽둥썽둥 자르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기수는 파천강기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만화나 애니에서처럼 화려한 빛을 발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슨 조명이나 레이저가 아닌 이상 진기를 빛 에너지로 바꿔서 낭비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빛이 나면 더 멋질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기수는 강기 연마에 재미를 붙였고 나날이 강하게 키워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강기의 범위가 한 자(30cm) 이상은 커지지 않았다.
내공은 충분한데 더 커지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즈음 탁지연이 마침내 종이 뚫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추격당한다는 생각에 빨리 키우고 싶었지만 강기의 범위는 확장되지 않았다.
강기 발출에 성공한 이후 탁지연의 월영검범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날카로워졌다.
“이젠 이 책 태워도 되겠어요. 호호호!…..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추격할 테니까요. 이제 보니 내공 차이가 아니었네요. 호호호!”
기수는 역시 무공도 머리가 좋으면 빨리 익힌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고 밖에 나가 책을 태우기 위해 불을 지핀 기수는 불 속에 던져 넣기 전에 책을 한 번 더 훑어보았다. 그러다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여긴 왜 고쳤지?’
그전에 별 생각 없이 넘어갔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쓰다가 생각이 바뀌어 고친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몇 군데 눈에 들어왔다.
‘혹시, 강기의 범위를 제한하기 위해 일부러 고친 건가?’
군사 남매가 무공을 자유자재로 창안해낼 정도라면 그런 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처음엔 적힌 대로 했을 때 아무 이상 없이 강기가 만들어지는 것에 만족했지만 지금은 관점이 달랐다.
그래서 불을 끄고 탁지연에게 그 얘기를 하고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다.
탁지연도 뭔가 수상하다는 데는 동의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가 좋은 탁지연이라고 해도 고치지 않은 진짜 파천강기가 어떤 것인지 유추해내지는 못했다.
그것은 아예 무공을 창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한 번 먹어봤던 음식이라면 ‘후추가 빠졌네.’, ‘소금을 덜 쳤네.’하고 달라진 부분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파천강기는 한 번도 시전해보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오리지널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고수끼리 무공을 겨루면 한 뼘, 아니 1cm 차이로도 생사가 갈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30cm 길이의 칼날을 추가로 가지고 있다면 엄청나게 유리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기수는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파천강기를 창안한 남매가 바로 다음에 제압해야 할 적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30cm에 불과한데, 상대는 3m짜리를 만들 수 있다면 해보나마나 한 싸움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2명 아닌가.
정말로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체질이면 좋겠지만, 그건 페이크일 가능성이 컸다.
기수는 고민에 빠졌다.
‘군사 남매를 죽여야 하는데, 그들은 분명히 수정본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을 거야. 아! 어쩌면 좋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만약 수로맹주로부터 책을 건네받지 않고 그냥 천외존자나 티무르 수준일 거라 생각하고 덤볐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자 아래쪽에서 탁지연이 물었다.
“기소협 무슨 생각 하세요?”
“응? 아, 아냐….”
“할 때는 저한테 좀 집중해주세요.”
“아, 알았어….”
그래도 기수가 집중력을 보이지 않자 탁지연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사이엔 뭐든지 숨김없이 솔직하기로 했죠?”
“그랬지.”
“속살 밀착감이 좋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잉? 그, 그거야…. 뭐 그런 게 있어.”
“전에 홍안산의 동굴 안에서 당가의 계집애한테 그러셨잖아요?”
“우와!…. 너. 그거 진짜 오래 우려먹는다.”
“어쨌든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으으….”
기수는 신음을 토했다.
갑자기 아래쪽에서 존슨에 강한 조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탁지연이 재촉했다.
“어서 말씀해보세요! 어서요!”
기수는 더 이상 파천강기에 신경 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