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70
노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 이제 보니 무공에 대한 자질이 아주 뛰어나구나.”
기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따로 무공을 깊이 연마한 것은 아니지만 고수로 여러 무공을 접하다 보니 보는 눈이 생기고, 거기에 경험이 더해지고, 다시 깊이 생각하면서 안목이 높아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단전이 텅 비어버렸지만 무공에 대한 식견은 그대로였다.
‘고수였다는 사실이 들키면 위험해지지 않을까?’
역시 그냥 하수인 척 하는 게 정답 같았다.
“그 정도 분석이면 뛰어난 건가요? 하핫!…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실전에선 별로 효과도 없는 걸요 뭐….”
그리고는 겸손한 태도로 뒤통수 한 번 긁어줬다.
그러자 노인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좋아! 오늘부터 넌 내 제자다.”
기수와 설매가 동시에 깜짝 놀랐다.
“허거덕!…..”
“예에에엣?…..”
기수는 싫었다. 정말로 싫었다. 우선 자기에겐 사부가 필요 없었다.
내공만 회복하면 언제라도 절정고수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방법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정신상태가 불안한, 60대에 알록달록 옷 입고 화장까지 하는 노인을 사부로 모셔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노인이 기수의 표정을 살피더니 말했다.
“뭐, 제자가 되기 싫다면 너만 손해지. 설매야. 죽여라.”
“예. 사숙.”
노인을 사부로 모셔야 할 이유가 방금 생겼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기수는 설매가 갈퀴 꺼내기 전에 잽싸게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몇 번 하는지는 잘 몰랐다. 2번이 아닌 것만 확실할 뿐이었다.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절을 하려는데 갑자기 몸이 공중에 떴다.
노인이 허공섭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됐다. 그 정도면….”
기수는 이왕 그를 사부로 모신다면 이 기술만큼은 꼭 배우고 싶었다.
노인이 말했다.
“설매를 증인으로 우리는 사부와 제자가 되었다. 설매 너는 이제 그만 나가보거라. 여기서 본 일은 비밀로 해줄 테니 걱정 말고.”
“감사합니다! 사숙.”
설매는 노인에게 인사를 한 후 총총히 물러갔다.
노인이 기수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북궁천이다. 산서성 정양현 출신이고….으음… 그 정도만 알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기수는 그가 의외로 맨정신이고 진지한 표정이라 마음이 놓였다.
설매 엉덩이 봤다고 히히덕거릴 때는 정말 정신줄 놓은 미친놈 같았는데 지금은 복장 상태 빼고는 그럭저럭 정상인으로 보였다.
“노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노력 없이 거저 먹으려는 자들이다. 너도 비록 내 제자가 되었지만 모든 걸 스스로 터득해야 할 것이다. 공짜로 얻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하거라.”
“예! 저도 부모 잘 만나 거저 먹는 놈들 진짜 싫어합니다.”
“우리는 의외로 잘 통하는 구나. 히히히!”
기수는 불안한 중에도 약간은 북궁천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북궁천이 기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자! 나가자. 소개해줄 사람들이 있다.”
동굴 밖으로 나가 500미터 정도를 걸어 올라가자 어둠 속에 시커먼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오래 된 사찰이었다.
그런데 중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건물도 여기저기 부서진 곳이 많았다.
대웅전 앞마당에 선 북궁천이 헛기침을 한두 번 하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밖으로 나와 봐! 기쁜 소식이 있으니까.”
그러자 절 여기저기서 파공음이 울리며 대여섯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수는 그들의 신법이 하나같이 뛰어나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놀랄 일이 벌어졌다.
한 명이 마당에 놓인 횃대에 불을 붙였는데, 밝아진 후에 보니 여섯 명의 여인들이 하나 같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미녀였다.
‘이, 이거 뭐냐? 무슨 걸 그룹이냐?’
설매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여섯 명 사이에 섞여 있으니까 다른 다섯 명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점 말고는 특별히 뛰어난 점을 못 찾을 정도였다.
“이놈은 뭡니까?”
여섯 여인의 미모에 반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들 중엔 남자도 한 명 있었다. 아마 설매가 두려워하던 사부인 듯 했다.
나이는 40대 초반. 북궁천과는 꽤 차이가 났다.
키가 작은데 근육은 빵빵해서 드워프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체형이었고, 눈빛이 몹시 날카로워서 마주 보기 두려울 정도였다.
북궁천이 기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새로 거둔 제자다. 이름은 양칠! 앞으로 함께 지낼 거다.”
그러자 드워프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사형! 안 됩니다! 제자라니요.”
그러자 북궁천도 마주 고함을 질렀다.
“안 되긴 왜 안 돼! 너만 제자 거두란 법 있냐? 나도 제자 가르칠 거다!”
“이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공이 전혀 없는 것을 내가 확인했으니까.”
드워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공이 없다고요?”
“그래. 시험해봤는데 단전이 텅 비었어. 그러니까 누가 보냈을 거라는 의심은 하지 않아도 돼.”
드워프는 약간 걱정을 던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수를 노려보는 눈빛엔 여전히 불만이 남아 있었다.
북궁천이 말했다.
“너. 내 제자 괴롭히면 네 제자 한 명을 죽일 거다.”
“사, 사형! 그게 무슨….”
“네가 그런 표정 지을 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너. 내가 한 번 하겠다고 하면 하는 거 알지?”
드워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제자는 왜….”
“그러니까 내 제자 괴롭힐 생각 하지 말라는 거야. 감기만 걸려도 네 제자 죽일 거니까 그리 알아.”
기수는 자기도 모르고 콜록! 하고 소리를 내봤다.
그러자 여섯 미녀가 동시에 질겁한 표정으로 기수를 노려봤다.
그녀들도 북궁천을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기수는 미안해서 손짓을 했다.
그러면서 좌에서 우로 점수를 매겼다. 자기도 모르게 오토매틱으로 그렇게 됐다.
‘96, 95, 90, 98, 88, 92점! 얼굴은 그렇고 이젠 가슴을…..’
이번엔 우에서 좌로, 순간적으로 스캔이 됐고, 허리와 힙으로 이어지는 라인까지 채점이 완료되었다. 다들 키도 커서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했다.
기수가 평균점수 계산하는 동안 북궁천은 자기 사제에게 말했다.
“다치면 제자를 죽이고, 만약 죽으면 너를 죽일 거다.”
“사형!”
“이만하면 내 뜻 알겠지? 자! 이제 다들 가서 자.”
그리고는 기수를 자기 거처로 데리고 갔다.
기수는 자꾸 신경이 쓰여서 뒤를 돌아봤다.
여섯 미녀의 얼굴과 가슴에 시선이 쏠려서 키 작은 드워프는 보이지도 않았다.
북궁천의 거처는 상태가 아주 깨끗하고 청소도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혼자 쓰기에는 너무 넓어 보였다.
“이제부터 여기를 청소하고, 밥을 짓고, 나무를 해오는 게 모두 너의 일이다.”
“아! 그, 그렇군요.”
기수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설마 그런 고전적인 제자미션들을 수행해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텅 빈 공간 한 쪽 구석에 이불과 밥그릇이 놓여 있고 바닥과 벽에 온통 수백 장의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한 장 집어 보니 그림과 구결로 된 무공초식이었다.
옆의 것을 집어 들어 보니 거기도 마찬가지로 그림과 글이 있었다.
“어떠냐? 재미있을 것 같지?”
“이것들은 책을 찢은 겁니까?”
“무슨 소리? 오늘 창안한 것들이다.”
“예? 창안하셨다고요?”
“아무렴. 이게 내 취미란다. 히히히….. 한 번 보겠느냐?”
그는 기수가 들고 있던 종이를 빼앗아 들더니 거기에 그린 그림대로 초식을 펼쳐냈다. 그러자 허공에서 쐑! 하는 소리가 나면서 예기가 번뜩였다.
기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수준 높은 도초였다. 만약 진짜 칼을 들고 펼쳤다면 그 도기로 전각의 기둥들이 전부 잘려 나갔을 것 같았다.
‘아! 이 사람…. 정신은 좀 오락가락해도 무공에 대한 지식은 진짜구나.’
그것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게 취미라니.
어쩌면 터무니없는 기인을 사부로 모시게 된 것 같았다.
북궁천이 이불 놓인 곳과 대각선으로 반대되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자자. 네가 잘 곳은 저쪽이다.”
기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북궁천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불안감을 품은 게 사실이었다.
화장을 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설매의 알몸, 엉덩이, 그것도 자신의 존슨과 결합된 상태의 엉덩이를 적나라하게 봤으면서도 그저 놀림의 대상으로만 여긴 것은 좀 이상했다.
스트레이트인지, 사부라서 체면을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걱정 하나를 덜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기수는 북궁천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칼잠을 잤다.
이불도 없는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설매에게 혈을 짚인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다.
다음날.
북궁천은 해가 뜬 뒤에도 여전히 널브러져 잠을 잤다.
널브러졌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온몸을 뒤튼 채 코를 골고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 왔습니다.”
기수가 가서 문을 열어 보니 어제 보았던 여섯 미녀 중 한 명이 쟁반을 들고 있다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기수를 노려봤다.
밝은 아침에 보니까 미모가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나, 나한테 주십시오.”
여인은 기수에게 쟁반을 넘기고 곧바로 돌아섰다. 기수가 그녀를 불렀다.
“자, 잠깐만요!”
여인은 고개를 돌려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왜?”
기수는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쳇! 그 표정은 뭐야? 전화번호 따려고 부른 줄 알았냐?’
기수가 쟁반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 밥은요?”
“넌 주방에 가서 먹든지 말든지 해. 내가 네 밥까지 날라야겠냐?”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
기수는 쟁반을 가지고 들어가서 북궁천을 깨웠다.
“사부님. 아침 드십시오!”
그러자 북궁천이 부스스 눈을 뜬 후 기수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번쩍 떴다.
“아! 어제 거둔 제자로구나.”
그는 몸을 일으킨 후 말했다.
“내가 딱 한 번만 말해둘 테니 잘 듣고 시행해라.”
“예. 말씀하십시오.”
“내가 잘 땐 깨우지 마라. 절대로.”
“여기 불이 나도요?”
“응. 사제가 칼을 들고 달려온다고 해도 깨우지 마.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제라는 분은….”
“그놈 이름은 백문조야. 욕심이 많은 놈이지. 무공도 제법이니까 웬만하면 비위 거스르지 않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봐. 할 일 많잖아.”
그러면서 북궁천은 도로 누웠다.
기수가 쟁반으로 슬며시 손을 뻗으며 말했다.
“계속 주무실 거면 이건 제가 먹어도….”
그때 쟁반이 저절로 움직였고 북궁천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어림없는 소리.”
기수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허공섭물을 쓰는 사부와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은 밥 냄새를 맡으니까 못 견디게 배가 고팠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제대로 된 밥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기수는 주방을 찾아갔다.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냄새만으로도 찾아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 막 밖으로 나오는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는 바로 설매였다.
그녀는 아! 하고 놀란 듯 했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혀 모르는 사람인 듯 안면을 싹 바꾸었다.
‘연기력 쩌네.’
여자들은 다들 그 방면에 기본기가 있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에 드워프, 백문조와 여제자 두 명이 앉아 밥을 먹고 있다가 기수를 보고 동시에 인상을 구겼다.
‘아, 놔…. 이 패거리들은 왜 날 이렇게 싫어하지?’
백문조가 젓가락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리 와서 여기 앉아 봐.”
“예. 사숙…”
기수는 최대한 친근한 미소를 식당 안의 모두에게 보여준 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숙이라….허허! 사숙이라…”
백문조는 그 단어에 대해 몹시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너! 솔직히 말해라.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지?”
“예. 저는 본래 대파산 앞자락에서 나고 자랐는데 죽어가는 무림인을 구해준 덕분에 그의 검과 검법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이 산, 저 산 수행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어젯밤에 사부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저의 검술을 보시더니 대뜸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청산유수로 잘도 나왔다.
“그러니까 이 산에는 그냥 우연히 오게 된 거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설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여야 될 남자를 동굴에 가두어 놓고 재미를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기가 먼저 죽게 될 판이니까 비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