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81
하매는 성벽에 한 번 더 표식을 그린 후 서둘러 산으로 올라갔다.
기수는 일단 그녀가 표식 남긴 세 곳을 모두 찾아서 그것들을 지웠다.
동창의 끄나풀이 그걸 발견하고 장진을 부르면 또다시 귀찮은 일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사는 한 번으로 족했다.
기수는 하매와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숙한테 말해야 하나?’
자기만 알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이왕 말할 바엔 6명을 모아놓고 ‘범인은 이 안에 있다!’ 하면서 짠! 폭로하는 게 제일 멋질 것 같았다.
한참 그 생각을 하며 걷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시커먼 옷을 입은 장사꾼 차림의 50대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기수는 불안감을 느꼈다. 지나가는 행인은 아닌 게 분명했다. 산 쪽으로는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수가 걸음을 멈추자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며 기수에게 다가와서는 위협적인 어조로 물었다.
“너. 아까 성벽에 그려진 그림을 지웠지?”
기수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그걸 물을 사람은 동창의 끄나풀밖에 없었다.
기수는 일단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흥!… 누굴 속이려고? 분명히 네가 지우는 모습을 봤는데… 얘기해봐라!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기수는 상황이 몹시 안 좋음을 직감했다.
‘아! 하필이면 그걸 봐가지고는….’
일단 상대는 하매나 백문조 일행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단지 성에 배치되어서 누구건 동창 관련 표식을 남기면 그걸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하위직이 분명했다. 하매와 아는 사이였다면 자기를 따라와 물을 리는 없는 것이다.
‘이놈을 죽여 버려야 뒤탈이 없을 것 같은데….’
문제는 현재 자신의 무공으로 그게 가능할까 하는 점이었다.
아무리 하위직이라고 해도 동창은 동창.
여섯 사매가 총 8등급 중 7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가 최하위 8등급이라고 해도 만만치 않은 무공의 소유자일 게 분명했다.
기수는 상대와의 간격을 눈으로 가늠하고 검 뽑을 준비를 했다.
지금으로선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검은 옷의 사내가 기수의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고 먼저 손을 썼다.
“이놈!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냐!”
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완맥을 움켜쥐는 수법이 과연 빠르고 날카로웠다.
기수는 급히 뒤로 피하며 검을 뽑았다.
짐을 잔뜩 지고 있었지만 위급할 때 시전된 선풍비가 도움이 되었다.
그는 검을 휘둘러 동굴검법을 펼쳐냈다. 여러 무공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까지 가장 열심히 연마한 검술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흥! 역시 네놈이 일부러 지웠구나.”
검은 옷 사내는 기수의 검을 피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기수는 입안의 침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큰일이다! 이놈. 나보다 고수야.’
마음은 앞서는데 공력이 부족해서 원하는 초식이 나와 주지 않으니 엄청 답답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수는 마지막 진기 한 방울까지 전부 싸움에 쏟아 부을 작정으로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상대가 심각한 표정으로 방어에 열중할 뿐, 자신의 허점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일부러 봐줄 리는 없는데….’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무학연구에 몰두했던 자신의 눈엔 내공 부족으로 인한 허점들이 사방에 보이지만, 그것은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일 뿐이었다.
상대 입장에선 지금 자신의 현란한 검초에 압도당한 게 분명했다.
‘그래! 난 이놈을 이길 수 있어!’
그동안 고수들에 둘러싸여 주눅 들어 지냈기 때문에 몰랐지만, 자신의 무공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빨리 결판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내공이 부족한 내가 불리해.’
기수는 더욱 현란한 검초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후 찬스를 노려 선풍비로 급격히 돌진하며 검을 찔러 들어갔다.
“커억…..!”
목을 찔린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그는 손을 휘저었지만 힘이 없었고, 곧 축 늘어졌다.
“해냈다! 해냈어! 씨발…..내가 이겼다고!”
기수는 발로 사내의 가슴을 차 검을 쑥 뽑은 후 기뻐서 펄쩍 펄쩍 뛰었다.
“하하!…. 왕년에 한 가닥 했던 솜씨가 여전히 남아있구나.”
어찌 생각하면 상대가 약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분명 내력은 자기보다 강했다.
그런 적과 맞서서 초식의 정묘함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한참 기분이 좋아서 웃고 있는데 등 뒤에서 하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칠? 네, 네가 어째서 여기에?”
기수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심호흡을 하고 뒤를 돌아봤다.
“어! 하매. 하매야말로 여긴 웬 일이야?”
“난 사부님 명령으로 물건을 좀 사러 왔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면서 등에 진 짐을 보여주었다.
“아! 그럼 너도 기문진 지나는 법을 배웠어?”
“당연하지. 나도 사부님 제잔데.”
그러자 하매가 약간은 불안한, 그리고 의심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넌 언제 산을 내려왔어?”
자기 행적을 들키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
기수는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동이 트자마자 왔지. 사부님이 하도 성화를 부리셔서 말야. 그런데 왜 우리 서로 만나지 못했지? 난 포목점을 돌고 있었는데…. 하매는 어디 있었어?”
“응. 난 그쪽으로는 가지 않았어.”
하매는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네가 죽였어?”
하매도 그를 모르는 듯 했다.
“응. 갑자기 따라와서는 나보고 짐과 돈을 다 내놓으라잖아. 하하!… 사람을 봐가면서 덤벼야지 말야….”
“강도질을 하려 했단 말야?”
“응. 다른 사람도 피해를 볼까봐 죽여버렸어.”
하매는 죽은 자 쪽으로 걸어갔다.
“강도로는 안 보이는데….”
“나한테 졌을 정도니까 별 볼일 없는 놈이야. 그보다….”
기수는 하매의 진로를 막고 다짜고짜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꺄악! 뭐, 뭐 하는 거야? 어딜 만져?”
기수는 씩 웃으면서 왼손으로 그녀 허리를 와락!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 하체를 밀착시켜 꾸욱 누르면서 비벼주었다.
“아아…..!”
하매가 곧바로 콧소리를 냈다.
“모처럼 우리 둘이 모두 산에서 내려왔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나저나 하매 가슴은 왜 이렇게 보드랍고 따듯한 거야?”
하매가 생긋, 예의 그 순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길에서 만난 여자를 겁탈하겠다는 거야? 이 엉큼한 색마 같으니라고.”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야! 겁탈한 건 너였잖아! 이 색녀야!’
그러나 겉으로는 일단 장단을 맞춰줬다.
“소저처럼 아름다운 미녀는 처음 봤소. 그대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소? 허락해주지 않으면 강제로 하겠소!”
“아잉….이런데선 싫어요.”
“그럼 으슥한 곳으로 갑시다.”
기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돌 없는 평평한 바닥을 골라 그녀를 눕히고 자기가 위로 올라갔다.
하매는 당하는 놀이가 재미있는지 계속 나약한 척을 했고, 기수는 거기 맞춰서 약간은 센 척 하면서 옷을 벗기고 애무를 시작했다.
기수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매에게 끌려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지금의 상황을 의심하고 뒤처리를 깨끗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자기 목숨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 뇌의 사고 작용을 멈추게 하려면 딴 거 없었다.
섹스로 정신 못 차리게 혼을 빼놓아야 했다.
기수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자 하매는 한없이 뜨거워졌다.
“아! 양칠… 너 전보다 단단한 거 같아…. 아아…”
기수는 그녀의 격한 반응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너희 사자매들 전부 다 진짜 너무한다. 남자하고 못 하는 환경이라고 해도 참고 사는 여자들 얼마든지 많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밝히는 거냐? 뭐, 나야 좋지만…’
힙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하매의 허리가 제대로 튕겨줬다.
미모에 테크닉까지 좋으니, 자기를 죽이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아주 훌륭한 섹스 파트너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긴,… 이 정도 기술을 가질 정도로 훈련이 된 몸이니까 못 참는 거겠지. 느낌 아니까. 맛도 알고.’
기수는 그녀의 뇌 기능 정지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꺄아악!….. 너무 좋아…. 조금만 더! 아앙….”
하매는 전신을 뒤틀며 경련을 시작했다.
기수는 그녀의 절정을 단단한 중심으로 지지해준 후 쉬지 않고 2차전에 돌입했다.
하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나도 모르겠어. 산에선 마음이 불안해서 잘 안 됐나봐. 여긴 사부님한테도, 사숙한테도 안 들킨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네…”
“아! 굉장히 뜨겁고 단단해….계속 해줘.. 계속…..아아…”
기수는 그녀의 뇌 속을 자신의 분출액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각오로, 오랜만에 본래 실력을 발휘했다. 허리가 아플 정도였다.
중간에 한 번은 아래쪽보다 입으로 주입하면 뇌를 더 빨리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 보았는데, 하매는 눈을 흘기며 한두 번 튕기긴 했지만 결국 사매들 못지않은 과감성과 용맹성을 드러내어 멋지게 임무를 완수했다.
기수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하매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절정 때문에 검은 옷 사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러 차례 파도 뒤 축 늘어졌던 그녀가 흰 팔로 기수의 목에 매달리며 말했다.
“나 오늘이 첫 외출이었거든. 다음에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꼭 다시 함께 나오자.”
“알았어. 그땐 오늘보다 더 진하게 놀아보자고.”
“오늘보다 더 할 수도 있어?”
“아마도…. 하매가 워낙 예쁘니까 가능할 것 같은데?”
“호호…..기대되는 걸.”
두 사람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옷을 입었다.
그때 하매가 옷감 보따리를 보고 중얼거렸다.
“사숙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네.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 창피하게.”
“주화입마 때문에 그러신 거잖아.”
“그래도 그렇지. 평소 마음속에 그럴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게 겉으로 표현되고 있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불결해. 차라리 몸저 눕는 게 나았을 거야.”
기수는 자기 사부에게 뭐라 하는 게 기분 나빴다.
“어려서 환관이 된 사람인데 마음속으로 화장이나 여자 옷에 대해 환상을 품을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뭐가 불결하냐?”
하매는 피식 웃었다.
“얘 좀 봐. 자기 사부라고 역성드네? 아름다움 추구? 웃기고 있어… 야! 그럼 너 같으면 나이 60에 화장하고 여자 옷 입고 싶냐?”
“내가? 미쳤냐?”
“바로 그거야. 너도 인정하잖아. 미쳐도 좀 곱게 미쳐야지.”
기수는 하매의 귀싸대기를 한 대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순진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성깔이 까칠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냥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으이그…. 내가 무공만 되찾으면….’
한편으로는 복장도착이라는 증상에 대해 전혀 보도 듣고 못한 이 시대 사람들이 약간은 공포심까지 느끼는 게 이해가 되긴 했다.
‘사부님. 전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이해는 안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비난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기수는 하매와 시간 간격을 두고 천천히 산으로 올라갔다.
“왔구나! 왔어!”
사부는 문 앞까지 달려와서 기수를 맞았다.
물론 그가 반기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옷감이었다.
“잉? 화장품도 사왔어?”
북궁천은 기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사, 사부님…..”
“고마워! 고마워! 내가 진짜 제자 하나는 잘 뒀지.”
북궁천은 거처로 돌아가 이 옷감 저 옷감 걸쳐보며 거울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기수에게 계속 의견을 물었다.
“야. 이거 어울리냐? 이건 어때?”
기수는 여친 옷 사는데 따라간 남자친구가 된 기분으로 건성건성 대답했다.
어차피 무슨 대답을 하건 사부는 자기 의견이 따로 있었다.
기수는 종이에 자기가 본 도형을 그려서 슬그머니 물었다.
“사부님. 이런 표식 본 적 있으십니까?”
북궁천은 힐끗 본 후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표시 같은데? 그건 어디서 봤어?”
“그, 그냥요….”
사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관심이 오로지 옷과 화장품에 쏠린 것이다.
기수는 그를 놔두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사부를 위해서, 사숙과 다른 사매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하매의 정체를 밝혀야만 했다. 문제는 기분이었다.
어려서부터 왠지 모르게 고자질은 나쁘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었다.
배신자, 스니치. 영화에서 보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이건 불공평하다고! 배신자는 그 년인데 왜 내가 괴로워해야 하지?’
밀고라고 해서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내부고발자가 없다면 그 많은 비리와 담합을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그리고 영화에서 보면 증인보호 프로그램이란 것도 있었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이니까 사법체계에서도 지켜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내가 하는 건 밀고가 아니라 정보제공이야.’
대충 그렇게 용기를 낸 기수는 백문조를 찾아갔다.
“사숙.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이 시간에? 어서 들어와.”
그의 방엔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인데 사방에 온통 무공 도해가 걸려 있었다.
그 역시 나름대로 엄청나게 무공연구에 몰입하는 것 같았다.
“뭐. 새로운 종이라도 나왔나?”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실은 우리의 위치를 외부에 알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백문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예. 계속 동창에 알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지난번의 은신처도 저들이 알아낼 방법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정탐꾼들이 접근했단 말야. 좋아! 그게 누구지?”
“그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말하게 해주십시오.”
백문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수가 하자는 대로 했다.
“좋아. 어차피 모두를 모아야 하니까.”
그는 식당에 모두를 집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