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82
기수는 백문조 앞에 서서 식당으로 들어오는 사매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춘매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고, 이어서 들어온 동매를 향해 눈으로 그녀 가슴을 훑어보면서 혀를 좌우상하 회전을 해 보였다.
동매는 배시시 웃었고, 춘매는 깜짝 놀라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것들이 감히!’
그녀는 단숨에 기수를 때려눕히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뒤엔 사부가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호랑이를 뒤에 놓은 여우처럼 느긋하게 추매와도 눈빛과 미소와 혀 낼름낼름을 주고받았다. 춘매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동매뿐만 아니라 추매까지도?’
두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수는 그런 춘매의 반응을 보며 혼자 키득거렸다. 하매의 일을 밝히는 김에 용기를 낸 것인데, 해놓고 보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설마 네가 진짜로 자르기야 하겠냐? 그리고 추매와 동매가 가만 놔둘 리도 없고.’
그러면서 춘매의 가슴을 향해서도 혀 낼름낼름을 해 보였다.
순간, 추매와 동매의 눈빛이 변했다. 세 여인이 서로를 노려보는데, 그 살벌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수는 살짝 후회가 들었다.
‘이거 괜한 짓 한 거 아닌가? 내가 뭘 믿고 이런 감당 못할 짓을 벌인 거지?’
그러나 계속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제발 너희들끼리만 싸우고 나는 내버려둬. 승자에게 기꺼이 나를 상으로 줄게.“
그것만이 자기가 몸을 무사히 보전한 채 살아남을 길이었다.
백문조가 말했다.
“다 모인 거냐? 하매는 어디 있지?”
다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풍매가 대답했다.
“조금 전에 다녀올 곳이 있다면서 산을 내려갔는데요.”
“다녀오다니. 어디를?”
“뭔가 빼먹고 온 게 있다고 하던데요.”
백문조는 발을 구르며 호통 쳤다.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하산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모른단 말이냐? 왜 그녀가 멋대로 이곳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었느냐?”
“하, 하지만 금방 다녀온다고 해서…”
백문조는 기수에게 다그쳤다.
“하매가 한 짓이냐?”
기수는 명탐정 놀이를 망쳐놓은 하매가 미웠다.
“예! 그렇습니다. 그녀가 밖에 나가서 이런 표식을 성벽에 해놓은 걸 봤습니다.”
기수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자 백문조를 비롯한 사매들 모두 표정이 변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백문조가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 무기를 챙겨들고 당장 나를 따라와라! 그 년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는 곧장 자기 무기를 챙기기 위해 처소로 달려갔다.
춘매는 사부를 따라 나가기 전에 기수 앞에 서더니 눈으로 기수의 아래쪽으로 시선을 줬다. 그리고 손으로는 스윽! 칼질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그 행동은 ‘너 갔다 와서 잘라버릴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끔찍한 협박이었다.
그때 추매와 동매가 춘매 앞으로 나서서 눈을 부라렸다.
기수는 그녀들의 눈빛 의미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뭔데 감히 우리 달링 그걸 잘라? 꿈도 꾸지 마.’
기수는 그렇게 해석했다.
세 여인은 무섭게 서로를 노려보다가 백문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기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춘매가 흉악한 마음을 품었다고 해도 추매와 동매 곁에만 붙어 있으면 그나마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설매가 다가오더니 춘매하고 똑같이 시선처리 후 손으로 자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헉! 너, 너는 왜?”
설매는 대답 않고 나갔지만 그 눈빛만큼은 살벌했다.
자기가 잡아온 남자가 사저들하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난 것이다.
‘으으…. 설매는 누가 막아주지?’
임재범처럼 무릎 꿇으며 ‘여러분!’을 외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도와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아아! 커밍아웃이 이토록 험난한 일이었다니….’
기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매가 사부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산을 내려간 것은 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에 남은 꺼림칙함 때문이었다.
양칠과 황홀한 정사를 즐기고 올라와 기분 좋은 나른함으로 편안히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흥분의 여운이 가라앉을수록 자꾸 의문이 떠올랐다.
‘양칠이 왜 거기 있었을까? 성 안에서 정말로 나를 못 봤을까? 만약 봤다면 어쩌지? 그 남자도 이상해. 인적 없는 산길에 웬 강도람? 그것도 혼자, 무기도 없이…’
생각할수록 의문은 계속 증폭되었다.
하매는 확인해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풍매에게만 살짝 말하고 산을 내려온 것이다.
낮에 양칠과 뒹굴던 곳을 지나면서는 자기도 모르게 양칠의 늠름한 남자 형상이 떠오르면서 몸 한 구석이 화끈 거려왔다.
거기를 지나 시체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었다.
‘누가 치웠지? 관아에 신고가 들어갔나?’
화섭자를 그어보니 바닥에 검은 핏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화섭자 불빛에 숲 속에서 뭔가 번뜩이는 것도 본 것 같았다.
하매는 깜짝 놀라 자세를 낮추었다.
“웬 놈이냐!”
“흐흐흐…..”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감지되는 살기로 미루어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적어도 5명.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그러자 어둠 속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밤중에 돌아와서 시신을 찾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그야 범인이겠지요.”
“내 생각도 그렇다. 후후후…..”
숲을 나온 5명의 남자들 중 한 명이 횃불을 붙였다.
그러자 그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는데, 모두 야행복을 입었고 얼굴도 눈만 내놓고 나머지는 가린 차림이었다.
하매는 그들이 시체를 치우고 매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자신의 특기인 순진하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 당신들 누구세요? 제발…저를 살려주세요. 원하는 건 다 드릴게요.”
그러나 남자들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나리. 저것이 앙큼한 짓을 하는데요?”
“후후….정신들 똑바로 차려라. 도망치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야행복 남자들이 포위진형을 더욱 굳건히 했다.
그러나 하매는 뭔가 희망을 본 눈빛이었다.
상대가 강호인이라면 ‘나리’라는 호칭을 쓸 리 없었다.
그녀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들을 향해 말했다.
“환포함료천복(還包含了天覆)!”
그러자 5명의 사내들이 깜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나리 소리를 들었던 자가 조십스럽게 한 마디 했다.
“지재풍양운수(地載風揚雲垂).”
그러자 하매는 씩 웃은 후 흑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룡비호익조상(龍飛虎翼鳥翔).”
5명의 남자들은 낮췄던 자세를 풀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상대가 같은 동창 소속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리 소리 들었던 남자가 포권한 후 말했다.
“난 역장 왕모라고 하오. 그대의 신분과 소속을 밝히시오.”
하매도 포권을 한 후 말했다.
“전 주작단 소속의 하매라고 해요. 직급은 번장이고요.”
그러자 왕역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작단이라면 북경이 관할인데, 여긴 무슨 일로 왔소?”
“낮에 여기 쓰러져 있던 시체는 누구죠?”
“내 부하였소.”
“아! 역시 그랬군요.”
“역시라니? 그의 죽음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말해보시오.”
하매가 그들을 둘러본 후 물었다.
“당신들, 수배령이 내렸던 두 백호 북궁천과 백문조에 대해 아나요?”
“물론이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지 않았소?”
“그들을 살아 있어요. 내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요.”
왕약장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이오?”
“그래요. 지금 이 근처에서 가장 직급 높은 사람이 누구죠?”
왕역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말로 운이 좋소.”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천호님이 지역 순시 중에 바로 이곳에 와 계시기 때문이오.”
하매는 믿을 수 없었다.
“천호님이라고요? 진유룡. 그분이 여기 오셨단 말인가요?”
“그렇소. 지금 성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저를 당장 그리로 안내해주세요.”
“좋소. 따라오시오.”
백문조와 5명의 제자들이 산 아래 도착한 것은 그들이 떠나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백문조는 사방을 찾게 했지만 하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고 동이 틀 때까지 수색해도 성과가 없자 결국 백문조는 제자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북궁천을 찾아가 말했다.
“사형! 이곳을 떠나야 하니 준비하십시오.”
북궁천은 옷감들을 휘감은 채 잠들어 있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떠나다니! 이사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기수도 덩달아 놀라서 문을 열고 백문조를 맞아들였다.
백문조는 심각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설득했다.
“하매가 도망쳐서 동창에 우리 일을 알리러 간 모양입니다.”
동창 얘기가 나오자 북궁천의 표정도 덩달아 긴장되었다.
“그러면 큰일 아니냐!”
“예. 그러니까 이것들은 다 버리고 그냥 떠납시다. 새로운 은신처를 찾으면 전부 다 새로 사드릴 테니까.”
“아, 안 돼!…”
북궁천은 휘감고 있던 옷감들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기수가 그를 달랬다.
“사부님. 그런 일단 그것만 가지고 가도록 하시지요. 이번만 옮기면 다시는 도망 다닐 일 없어 오래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북궁천은 아쉬운 눈빛으로 옷걸이 쪽을 봤다.
그때 마당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공력이 듬뿍 담긴 소리에 모두가 놀라서 마당으로 나가 보니 그곳엔 십여 명의 사람들이 5명의 사매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나타난 사람들 중 선두에 서 있는 백의인을 보고 북궁천과 백문조 모두 깜짝 놀라 신음을 토했다.
“진유룡!”
“진천호. 다, 당신이 여기 어떻게….”
백의인은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큰 키의 남자였는데 길쭉한 얼굴에 매부리코. 그리고 북궁천, 백문조처럼 수염이 하나도 없었다.
그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이런, 이런…. 타 죽은 줄 알았던 두 마리 쥐새끼가 여기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니….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북궁천이 휘감고 있던 옷감을 팽개쳤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서 거의 맨 정신으로 보였다.
백문조 역시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동창에 있던 시절부터 진유룡이 어느 정도 고수인지, 상관으로 모시면서 가까이에서 보아 왔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았다.
함께 온 십여 명은 역장이나 번장 급이고 기껏해야 영반급 한두 명에 불과하니까 제자들이 상대할 수도 있지만 진유룡은 달랐다.
백문조가 말했다.
“사형. 내가 맡을 테니 도망가십시오.”
“무슨 소리냐! 함께 싸우자.”
그러자 진유룡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둘이 함께 덤비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북궁천은 기수 쪽을 보고 말했다.
“너는 지금 도망쳐라.”
어차피 기수의 실력으로는 도움도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살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다. 기문진 뚫고 나가는 법을 아니까 도주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은 움직일 수 없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전율.
‘저, 저자는…. 사도다. 12명 중의 하나야!’
동창의 2인자가 사도였다니.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에 이어 동창까지. 놈들은 도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천만다행인 점은, 자기는 사도를 감지할 수 있지만 사도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하지? 도망쳐야 하나?’
사부가 모처럼 맨 정신으로 돌아와서 진지하게 말하는 의도를 그 역시 알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진유룡을 처단하기는 커녕 짐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지금 돌아서서 뛰면 무극환혼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달아나면 하매가 길 안내를 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러나 기수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설령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사부, 사숙, 사매들과 끝까지 싸우고 싶었다.
모두를 놔두고 혼자 도망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치사했다.
‘엄마! 보고 싶어….. 그리고 미안해.’
어쩌면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검을 뽑았다.
‘씨발!…. 사나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북궁천과 백문조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기수를 봤다.
기수는 그들에게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끝까지 한 번 멋지게 싸워보자는 의미였다.
진유룡이 웃으며 물었다.
“순순히 포박을 받겠느냐? 아니면 무모한 도전으로 목숨을 버리겠느냐?”
북궁천과 백문조는 서로를 바라보고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진유룡은 피식 웃었다.
“하긴, 목을 잘라 가지고 가는 게 더 편한 방법일 수도 있겠군.”
그가 손짓을 하자 동창 무사들이 활짝 진형을 펼치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