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83
동창 무사들의 진형엔 하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문조는 그녀를 보고 격노하여 외쳤다.
“네 년이 감히 내게 칼을 겨눠!”
하매는 그 호통에 움찔했지만 곧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왜요! 못할 게 뭐 있죠? 어차피 전 당신 제자이기 이전에 동창 소속이에요.”
백문조는 하매에게 다시 호통을 쳤다.
“못된 년! 사부와 사매들을 배신하다니!….”
그러자 하매는 냉소를 짓더니 그동안 품고 있던 생각을 퍼부어댔다.
“흥! 난 처음부터 동창을 떠나기 싫었어! 그 어려운 수련과정을 이 악물고 버틴 이유가 뭔데? 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싶었단 말야. 그런데 당신이 날 억지로 도망자 신세로 만들었잖아. 난 이렇게 살기 싫단 말야!”
진유룡이 껄껄 웃었다.
“그래. 하매 너는 돌아가는 대로 요직에 앉게 될 거다.”
그러자 하매가 기회다 싶었는지 잽싸게 말했다.
“저기 있는 양칠을 제게 주세요.”
“달라니. 무슨 뜻이지?”
“저 자는 북궁천의 제자니까 뭔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를 고문해서 모든 걸 알아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진유룡은 기수를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도록 해라.”
하매는 기수를 보며 생긋 웃었다.
기수도, 그리고 춘매, 추매, 동매, 설매도 하매의 본심이 무엇인지 알았다.
기수는 하매를 향해 왼손 중지를 들어 보였다.
아쉽게도 하매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뭔가 우뚝 솟은 형상이라 성행위 중 일부를 의미하는 줄 알고 오히려 볼을 붉히고 배시시 웃으면서 몸을 꼬았다.
진유룡이 춘매등을 향해 말했다.
“너희 5명에게도 기회를 주겠다. 어차피 사부의 명에 따라야 했을 테니 지나간 죄는 묻지 않겠다. 지금이라도 이쪽 편에 와서 서면 옛 직급으로 복귀시켜주마.”
백문조는 당황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진유룡은 음산하게 웃었다.
“나는 천호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춘매 등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하매가 서있는 쪽이 좀 더 승산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천호 진유룡이 직접 말했으니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누구도 건너편으로 가지는 않았다.
비록 무서운 사부지만, 그래도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었다.
백문조는 그녀들의 선택에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반면에 진유룡은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흥! 그래 좋다. 너희들이 선택한 길이니 그 결과에 대해서도 너희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절대로 곱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춘매 등은 한 차례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택을 바꾸지는 않았다.
북궁천이 진유룡에게 물었다.
“이보게. 진천호. 그 사이 무공이 좀 늘었나?”
“당연하지. 너는 화장술이 좀 는 것 같구나.”
그러자 동창 무사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북궁천은 자기 뺨을 만져서 손바닥에 분이 묻어나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지금 자기 몰골이 어떤지 짐작한 것이다.
그는 맨정신의 또렷한 어조로 진유룡에게 말했다.
“무공에 자신이 있다면 부하들 먼저 내보낼 것 없이 우리끼리 먼저 승부를 결하는 게 어때? 어차피 그 한 판으로 끝날 거니까.”
진유룡은 흔쾌히 응했다.
“좋다! 괜히 시간 끌어서 뭐하겠느냐? 너희 둘이 한꺼번에 덤벼라.”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가 손짓을 하자 동창 무사들은 서너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백문조도 손짓으로 제자들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마당 한가운데 마주 섰다.
기수는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사부와 사숙의 무공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둘이 한꺼번에 덤비라는 말에 자존심 내세우지 않고 순순히 따르는 걸 보니 진유룡은 도대체 얼마나 고수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해치워야 하는 사돈데….’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여줘도 되는 건지 신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는 대답 안 할 게 뻔했다. 진유룡이 죽으면 저절로 밝혀질 일이었다.
‘사부님! 사숙! 꼭 이겨야 합니다!’
자기 일을 대신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들이 죽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죽으면 자기도 도망칠 기회는 없다고 봐야 했다. 하매에게 잡혀서 쪽쪽 빨리다 말라 죽을 게 분명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유룡은 처음부터 느긋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자세조차 변변히 잡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데 반해 북궁천과 백문조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계속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파파팍!…..
두 사람은 어느새 진유룡의 앞뒤에서 협공을 시작했다.
진유룡도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맞서 싸워야 했는데 세 사람의 팔이 얽힐 때마다 무시무시한 타격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굉장해!….”
기수는 승패를 떠나 무인으로서 감탄했다.
비록 내공은 없지만 동체시력은 여전한 그이기에 세 사람의 공격과 방어 초식들이 전부 다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엄청난 시청각 교재였다.
기수는 0.1초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자기도 싸움 깨나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졸지에 고수가 된 입장에서 분광권 하나 믿고 파워로 누른 방식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지금은 북궁천과 연구를 통해 무학에 눈을 뜬 상태.
단지 내공이 강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누가 더 효율적으로 초식을 운용하느냐 하는 것들이 저절로 분석되어서 보였다.
‘고수들의 싸움이란 게 이런 거구나!’
기수는 엄청 재미있는 영화나 만화를 보는 것처럼 이 싸움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상황은 급격하게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북궁천과 백문조가 승부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간을 끌수록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북궁천의 상태가 언제 안 좋아질지 모르기 때문에 맨 정신일 때 빨리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몰아붙이니 진유룡도 진짜 실력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둘이 한꺼번에 덤비라고 했지만, 그들은 화장 실력만 는 게 아니어서 자칫하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기수는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양쪽 중 어디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그리고 한 순간.
“아악……!”
“크윽!…..”
“으음…..!”
세 명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상황은 극명하게 갈려버렸다.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사람은 백문조였다.
물건처럼 팽개쳐진 그는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았다.
즉사한 것이다.
다섯 자매, 심지어는 하매까지도 그의 죽음에 크게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경악성을 터뜨렸다.
진유룡은 우웩! 하고 피를 토한 후 비틀거렸다.
안 그래도 희던 낯빛이 파랗게 보일 정도로 탈색된 것으로 보아 극심한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그와 반대로 북궁천은 멀쩡했다.
입가로 피가 흐르긴 했지만 비틀거리지도 않았고 안색도 그대로였다.
기수는 마지막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진유룡의 쌍장이 각각 북궁천, 백문조와 동시에 격돌했는데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백문조가 사형을 믿고 자신이 좀 더 진유룡의 힘을 빼준 덕분에 나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겼다!’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숙의 희생이 따르긴 했지만 진유룡은 지금 자기가 나선다 해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중태였다.
그 사실을 동창 측도 즉시 파악했다.
진유룡을 수행한 영반급 간부가 잽싸게 달려 나와 진유룡을 업더니 곧바로 경공을 시전해서 도망치며 말했다.
“뒤를 막아라!”
기수는 깜짝 놀랐다.
“저 새끼가!…..”
다 죽여 놓은 걸 홱! 채가지고 도망가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죽은 사숙의 제자들 역시 기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쫓아라! 놈을 죽여야 한다.”
춘매가 외치자 모두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중엔 진유룡보다 다른 사람을 더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도 표출되었다.
“하매는 내가 죽일 거야!”
동창 무사들은 갑작스런 상황전개에 당황했지만 일단 여섯 명의 공격을 막고 봤다.
하매는 싸우지 않고 잽싸게 뒤로 도망치면서 말했다.
“내가 가서 길을 안내해야 천호님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어!”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
추매가 외치며 달려 나가자 동창 무사가 앞을 막았다.
그러나 그는 추매의 무공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4명도 모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녀들의 무공은 직급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막상막하로 싸우는 사람은 기수뿐이었다.
기수도 내공에서 밀릴 뿐 초식으로는 상대를 가지고 노는 수준이라 오래지 않아 상대를 제압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짝을 이루지 못한 동창 무사들은 끝까지 남아 싸우기보다는 슬금슬금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천호와 함께 왔기 때문에 간단히 승리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북궁천은 멀쩡하고 진유룡은 무너졌으니 더 있어봤자 죽을 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도망치자 다섯 사매는 계속 추격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진유룡을 죽이는 것이고, 다음은 배신자 하매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기수도 그들을 따라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부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순간, 북궁천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사부님!……”
기수는 깜짝 놀라 달려가서 그를 부축했다.
“사부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북궁천은 천천히 눈을 떴다.
기수는 그가 진유룡 못지 않게 극심한 내상을 입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버티고 서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과연 사도 진유룡의 무공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도에게 그런 중상을 입힌 북궁천의 무공도 대단했다.
“사부님.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다. 내버려둬라. 어차피 난 틀렸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북궁천은 희미하게 웃었다.
“양칠아.”
“네! 사부님.”
“너도 참 무던한 성격이더구나.”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동안 내가 못 볼 꼴들을 숱하게 많이 보였는데, 넌 나의 그 끔찍한 기행들을 모두 참고 견뎌주었구나.”
“사부님…..”
기수는 북궁천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빛은 뭔가 예전과 달랐다.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북궁천이 말했다.
“그렇다. 주화입마가 풀렸다. 그것은 즉…. 회광반조. 죽음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사부님!…..”
“허허허!…. 괜찮다. 어차피 사람은 다 한 번 죽는 것 아니냐. 더구나…”
그는 백문조의 시신 쪽을 본 후 말을 이었다.
“사제가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따라가야지.”
“아!….. 사부님.”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니 사제와 너 말고는 나를 살갑게 대해준 사람이 없구나. 내가 죽기 전에 네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전에 흡성공에 대해 물어서 내가 가르쳐 준 게 있지?”
“예. 그렇습니다만….. 아! 안 됩니다. 그럴 내공이 있다면 사부님의 내상을 치료해야 합니다.”
북궁천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광반조라고 하지 않았느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냥 죽으면 내 내공은 허망하게 흩어지고 말 테니까 아까운 일 아니냐. 어서 돌아 앉아 명문혈을 보여라.”
“사부님!”
“어서! 모처럼 맨 정신으로 돌아온 사부의 명을 거역할 셈이냐!”
기수는 북궁천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북궁천은 기수의 등에 장심을 대고 말했다.
“내가 네게 유언을 남기겠다.”
“말씀하십시오.”
“동창에 대해 잊고 멀리 떠나 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상대가 동창이다 보니 기수가 행여 복수한다고 나섰다가 죽을까봐 막는 것이었다.
기수는 결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유룡을 죽여 사부님과 사숙의 원한을 갚겠습니다. 반드시 지켜봐주십시오.”
“끝에 가선 내 말을 안 듣는구나.”
북궁천의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청난 내력이 기수의 명문혈을 통해 전달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