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84
다 죽어가는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잠력이 흘러 들어오자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으음….!”
기수는 바짝 긴장한 채 지난번에 외운 흡성공의 구결을 운용했다.
그러자 유입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한 쪽에서 밀고, 한 쪽에서 당기는 바람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기수가 익힌 흡성공의 효율이 워낙 뛰어난 데다, 기수의 몸에 예전 거대 내공을 운용했던 기반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흡수가 빠른 것도 이유였다.
기수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단전에 거대한 열기가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실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마치 단전에 농구공이 들어차는 것 같았다.
그때, 등에 닿아 있던 북궁천의 손이 떨어졌다.
“사부님!”
기수는 뒤로 돌아 북궁천을 부축했다.
그러나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기수는 비통함을 느꼈다.
자기가 흡성공을 운용해서 사부의 죽음을 앞당겼다는 자책을 잊기 어려웠다.
그런데,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몸이 굳는 느낌이 들었다.
‘왜, 왜 이러지?’
단전의 열기가 폭주하고 있엇다.
통증은 가슴뿐만 아니라 전신으로 퍼져 나갔고, 기수는 그 극심한 괴로움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으아악!…..왜 이러는 거야. 아악……!”
기수는 수십 개의 칼날에 찔리는 느낌에 괴로워하다가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악몽을 헤매던 기수가 눈을 뜬 것은 한 밤중.
사부의 거처가 아닌 어느 낯선 동굴 안이었다.
“사저! 양칠이 깨어났어요!”
부스스 눈을 뜬 기수는 자기 앞으로 춘매, 추매, 동매, 풍매, 설매가 모이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무사했다.
“어, 어떻게 된…..헉!….”
기수는 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왜 점혈을 했어?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무리 남자가 고파도 그렇지. 사부와 사숙이 모두 돌아가신 이런 때에 점혈이라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애들인지 의심스러웠다.
추매가 말했다.
“우리는 점혈 하지 않았어. 우리가 발견했을 때 넌 주화입마로 쓰러진 상태였고, 지금 사흘 만에 깨어난 거야.”
“주화입마? 아! 사부님은?….”
춘매가 소매로 눈가를 찍으며 말했다.
“두 분은 우리가 화장해드렸어. 도관과 함께….”
“아!…. 화장이라고…. 그럼 여긴 어디지?”
“산 두 개를 넘어 피신한 상태야.”
그리고는 사자매끼리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와 사숙은 돌아가시고 자기들은 이제 동창의 수배자가 되었으니 진짜 한숨이 나올만한 처량한 신세였다.
기수는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기혈이 막혀서 엉망진창이었다.
농구공처럼 꽉 찼던 단전도 상태가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사부님의 내공주입과 내 흡성공이 상호작용을 해서 너무 빨리 빨아들였기 때문인가?’
예전에 유소진에게 빨리던 속도보다 이번의 흡수가 더 빨랐던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얼마든지 넉넉한 용량의 진원지기가 있었던 이렇게 얽혀버린 건 다른 이유일 것 같았다.
기수는 손가락에 정신을 집중시켜 보았다. 다행히 조금씩 움직였다.
‘그래! 상태가 심각한 건 아냐. 일단 호흡부터 시작해보자.’
기수가 그렇게 애쓰는 사이, 동매가 그동안의 경과를 얘기해주었다.
“우리는 그때 산 아래까지 놈들을 추격했지만 결국 진유룡도, 하매도 다 놓치고 말았어. 적어도 하매는 꼭 잡으려고 했는데…”
다들 말이 없었다.
기수는 조금씩 진기를 움직이다가 자기에게 생긴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바로 성질이 다른 두 진기의 충돌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는 북궁심법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간이라도 단전에 쌓이는 중이었다.
거기에 북궁천의 진기가 들어오자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둘 다 북궁이지만 하나는 기수가 만든 것이고, 하나는 북궁천이 만든 것이니 섞일 리가 없었다.
‘아! 사부님….’
북궁천은 기수가 그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기 전에 호의를 보인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기수 몸이 망가지는 결과가 된 것이다.
국자에 설탕을 넣고 불에 녹이다가 손톱만큼도 안 되는 소다를 넣으면 설탕 녹은 물이 확! 반응하면서 다른 성질로 변해버리는데, 지금 자기의 손톱만큼도 안 되는 내공이 북궁천의 거대한 내공에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기수는 울고 싶었다.
사부의 내공을 받아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타다가, 졸지에 휠체어 신세가 되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동매가 기수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너무 슬퍼하지 마. 나는 솔직히 두 분이 그 정도로 싸운 것만 해도 깜짝 놀랐어. 진천호를 쓰러트리다니…”
추매가 동의했다.
“맞아. 두 분이 연구한 무공도 분명 엄청난 위력이 있을 거야.”
기수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연구했어도 뭐 해. 두 분이 다 돌아가셨는데.”
그러자 춘매가 소매 안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어 보였다.
“사부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이걸 남기셨어. 화장하기 전에 방을 정리하다가 유서와 함께 발견했지.”
동매가 말했다.
“우리에게 절세무공을 선물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준비하셨던 거야.”
“아! 그렇구나.”
기수는 5명의 얼굴을 차례로 봤다.
다들 백문조를 회상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때 기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목이 자유롭게 돌아가네? 그러고 보니 팔도….’
주화입마로 몸이 망가진 줄 알았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막힌 기혈이 저절로 뚫리기도 하나?’
그러다가 기수는 깨달았다. 하단전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중단전과 상단전은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익힌 북궁심법은 그 세 단전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라 그 중 하나가 막혀도 다른 두 개는 나름대로 가동이 되었다.
‘이, 이거 어쩌면…..’
기수는 정신을 집중하여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북궁심범을 운용하자 막힌줄만 알았던 혈도들에 조금씩 움직임이 느껴졌다.
거기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마치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아 시냇물을 이루듯 조금씩 길이 열렸다.
“양칠. 너 뭐 하냐?”
동매가 손을 대려 하자 춘매가 그녀 손을 잡았다.
“가만 놔둬! 운기조식 중인가 봐.”
동매는 손을 움츠렸다.
“얘. 주화입마에 걸린 것 아니었어?”
“벗어나려고 애쓰는 거겠지. 가만 놔둬.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야.”
동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양칠은 놔두고 자기들의 앞날을 걱정했다.
“우린 이제 어쩌지?”
“사부님이 남기신 무공을 익혀서 각자 살아남아야지.”
“각자라고? 뿔뿔이 헤어지잔 말야?”
“우리는 동창에게 쫓기는 처지라는 걸 잊지 마.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일망타진 당할 뿐이야. 흩어져야 그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겨.”
“하긴….”
그러자 설매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흩어지게 되면 사부님이 마지막에 남기신 매화육궁진은 펼칠 수 없게 되는 거잖아요?”
“사부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모르셨을 거야. 하매도 없는데 6명이 펼치는 진법이 무슨 소용이겠어?”
설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꿔버려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사저들도 누구 하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저 동창을 적으로 삼고 평생 쫓겨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다섯 사자매는 저마다 모닥불 가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일어나면 뿔뿔이 흩어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다들 먼저 입을 열거나 일어서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30분쯤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풍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우리가 모두 흩어지고 나면 양칠은 어쩌죠?”
5명 모두 서로 눈치만 볼 뿐 말이 없었다. 동창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한 몸 돌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주화입마에 걸린 남자를 어떻게 돌본단 말인가.
거기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기수가 씩 웃으며 일어나 어깨와 팔다리를 풀기 시작했다.
다섯 사자매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주화입마 아니었어?”
“하핫!… 주화입마 맞는데, 내가 그걸 풀어버렸어.”
“어, 어떻게?”
“내가 좀 천재거든. 하하하!…..”
기수는 통쾌하게 웃었다.
그는 북궁심법으로 몸을 움직이게 된 것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사부가 남겨준 내공을 풀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때 예전에 사부로부터 들었던, 남의 내공을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 중 돈세탁처럼 외부로 보냈다가 성질을 바꾸어 다시 합치는 방식이 생각났다.
‘난 단전 3개를 따로, 또 동시에 운용할 수 있잖아.’
거기에 착안해서 일단 자신의 진기를 가두고 사부의 진기를 각기 다른 단전으로 돌리면서 테스트해 보았다.
처음엔 잘 안 됐지만, 그동안 혈도에 대해 깊이 공부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조금씩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진기를 상단전에 한 번 보냈다가 하단전으로 되돌리고, 다시 중단전에 한 번 보냈다가 하단전으로 되돌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이질적이던 기운이 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 순환의 길이 만들어지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
뭉치고 얽혀 있던 사부의 내력이 한꺼번에 단전으로 녹아들었다.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자신의 내공과 사부의 내공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체화되었다는 점이었다.
춘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로 얘기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맥을 짚었을 때는 분명히….”
“하하! 설명해도 잘 모를 거야. 어쨌거나 이제 내 몸은 이 세상 어떤 내공이라도 다 섞을 수 있게 됐어. 아마 물과 기름을 섞으라고 해도 가능할 거야. 하하하!….”
자꾸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북궁심범을 토대로 자신이 만들어낸 이 운기법이 그동안 자신을 애먹였던 고질적인 문제, 즉 태무신궁의 내공과 혈천제의 마공이 충돌하여 80% 이상의 운기를 못하던 부분까지 완벽하게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나는 진정한 천재였어!…’
당장이라도 수로맹으로 달려가서 유소진을 잡아 빼앗긴 내공을 되찾고 싶었다.
그 전에 먼저 북궁천으로 받은 내공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시험해봐야 했다.
그때 춘매가 말했다.
“어쨌거나 몸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니 정말 다행이야. 우리는 지금 향후 대책을 의논 중이었어. 양칠. 넌 어쩔 생각이야?”
갑자기 그녀와 추매, 동매의 눈빛이 변했다.
이제까지는 기수가 처치 곤란한 짐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그의 몸이 정상이라면 문제가 완전히 달랐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굉장히 중요만 문제였다.
그와 함께 갈 수만 있다면 비록 동창에 쫓긴다 하더라도 살 맛 나는 하루하루가 될 것이었다.
기수가 씩 웃은 후 대답했다.
“나? 당연히 사부님 원수를 갚아야지. 진유룡 그놈을 죽일 거야.”
그러자 사매들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동창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니? 네 실력으로는 역장은 커녕 번장 하나도 이기기 힘들어. 그런데 감히 진천호를 죽이겠다고?”
“아! 그거라면 걱정 마. 지금의 난 어제까지의 양칠과는 다르니까.”
“뭐가 어떻게 다른데?”
기수는 동굴 벽을 가리켰다.
“저기를 잘 봐. 좀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니까 마음의 준비들 단단히 하고.”
다섯 자매는 기수가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
기수는 손짓으로 그녀들을 벽에서 떨어지게 한 후 파천강기를 운기했다.
“크하하!…. 이 느낌…. 존나 오랜만이다! 씨발! 씨바알~!”
손가락 끝으로 강기가 모이는 느낌이 어찌나 좋은지 욕이 저절로 나왔다. 가슴이 막 두근거리면서 벅차오르는데, 다른 말로는 그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기수는 그렇게 모은 강기를 동굴벽으로 쏘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게 바로 나의 성명절기인 핑거 개틀링건이다! 하하하!….”
파파파팟!……
동굴 벽에 순식간에 수십 개의 파인 자국이 생기자 다섯 자매는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생전 듣고 보도 못한 무공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양칠의 손에서…
기수도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뭐야…..”
발칸포를 기대했는데 연사속도가 기관총 속도에 불과했다.
그가 원한 건 ‘파파파파파파팍!’이 아니라 ‘부우욱~’이었던 것이다.
기수는 자기 손가락을 한 번 보고, 벽으로 다가가서 파인 자국을 확인해보았다.
흙벽인데도 불구하고 손가락 마디 2개가 다 안 들어갔다.
단전을 확인해 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가졌던 내공만큼 충만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부님의 내공이 이 정도에 불과했나?’
진유룡과 싸울 때 본 내공은 분명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 그렇구나….’
북궁천이 내공을 넘겨줄 때는 대결 이후 죽기 직전의 회광반조 상태였다.
당연히 평상시 내공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기도 예전에 남에게 내공을 전수해줘 봐서 알지만, 전달과정에 로스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흡성공으로 빨아들여서 그걸 최소화 했다고 봐야 했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해서 단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까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했다.
‘옛날의 30% 정도라고 해야겠군….’
게다가 그마저도 아직 몸이 그 내공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복수가 힘들겠는 걸. 하핫!… 적응기간 좀 가져야지.’
그러나 다섯 사자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 사숙한테서 내공과 무공을 모두 전수받았구나! 굉장해!”
“당장 가자! 가서 진천호와 하매를 모두 죽여 버리자!”
“아! 자, 잠깐…. 너무 흥분하지들 말고….”
기수는 그녀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