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88
풍매는 기죽기 싫어서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요?”
추매는 풍매의 어깨를 때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우리 풍매가 뭘 좀 아네. 호호호!… 맞아, 맞아.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단단함이 얼마나 오래가느냐 하는 거고 길이는 그 다음 문제지…”
“아니, 내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니라…”
“양칠은 거기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어. 어쩌면 하루 온종일이라도 돌덩이 같은 단단함을 유지할 수 있을 거야. 가만있어봐…. 언제 한 번 시험해봐야겠는걸.”
풍매는 아예 돌아서 버렸다.
“그런 얘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추매가 바짝 다가가 풍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가자. 응?”
풍매는 그녀를 밀어냈다.
“저리 가요! 난 싫어요.”
“싫어? 왜? 아!….처음엔 혼자만의 시간을 줄까? 그거라면 일정을 맞춰볼게.”
“아니. 그게 아니라 사부님의 복수를 하기 전엔 한눈팔기 싫어요.”
풍매가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 추매도 더 권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식사가 끝나고.
풍매는 식당에서부터 양칠이 자기를 따라오자 당황했다.
“왜 따라오는 거야?”
“너. 무공 연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면서?”
“그, 그런데….?”
“그럼 나하고 같이 무공 연마하자.”
“흥! 뭐 하자는 수작이야?”
“수작이 아니고 진짜로 하는 얘기야. 저것들이 약속을 안 지키고 저녁 먹은 다음에도 자꾸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찾아오거든. 그래서 좀 피해 있으려고 그래.”
기수는 진심이었다.
풍매를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물론, 풍매가 예쁘고 몸매도 좋지만, 이미 그런 미녀는 4명이나 있었다.
풍매는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두근거리기도 하는 마음으로 양칠이 따라오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사저들만 양칠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싫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자기 방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방에 들어온 양칠은 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곧바로 연공을 시작할 뿐 자기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풍매는 거울을 한 번 봤다.
‘내가 그렇게 매력 없나?’
자기는 양칠에게 관심 없다고 말했지만 막상 무시당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살짝 화도 나고 속도 상했다.
그러나 운기조식 하는 양칠을 방해할 수도 없어서 자기 무공에 집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처음엔 계속 양칠에게 신경이 쓰였지만 나중엔 익숙해져서 무공연마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언제 운기조식을 마쳤는지 양칠이 말했다.
“방금 그 동작 다시 한 번 해 봐.”
“아! 보고 있었어?”
“응. 방금 펼친 초식 말야. 그거 사숙이 전수해 준 무공이야?”
“맞아. 사부님이 만드신 거야.”
“한 번만 더 해 봐.”
풍매가 한 번 더 움직임을 보이자 기수는 고개를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꼬다가 자기가 그 동작을 따라 했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풍매에게 말했다.
“사숙이 적은 것 좀 보여줄래?”
풍매는 자신만의 무공을 양칠이 보자는데 잠시 망설였지만 동문이니까 별 상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보여주었다.
기수는 백문조가 남긴 무공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뭐가 문제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사숙은 핵심을 잡지 못했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무공 말야. 어떤 의도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방법에 있어서 약간 잘못된 점이 보여.”
풍매는 코웃음을 쳤다.
“흥!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사부님은 사숙과 함께 동창 내에서도 무학에 대한 지식이 깊기로 유명했던 분이야.”
“그래. 그건 인정해. 깊이가 없다면 이 정도 수준의 무공을 만들 수는 없지. 하지만 사숙은 이걸 완성하고 나서 너에게 준 게 아니잖아. 진유룡에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다음 너희들이 찾은 거잖아.”
풍매가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게 아직 완성된 게 아니란 거야?”
“이대로 익혔다면 아마 초식 사이의 연결이 원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혈 흐름도 어딘가 어색했을 텐데….”
“맞아! 그것 때문에 영 진전이 없던 참이야.”
“흐음…..”
기수는 책자를 계속 들여다보았다. 뭔가 모자라고 잘못된 건 분명한데, 그걸 어떻게 고쳐야 좋을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받은 책자를 펼쳐보았다.
하매가 받기로 되었던 거라서 그냥 가지고만 있을 뿐 펴보지는 않고 있었는데, 그 안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다.
‘이런 식이면 다른 사매들도 다 같은 상태 아닌가?’
어쩌면 자기한테 집착하는 게 무공을 익히기 싫어서가 아니라 계속 막히고 진전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본격적으로 사숙의 무공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풍매가 상대가 되어서 직접 펼쳐보고, 고쳐도 보았는데, 포인트는 하나였다.
‘사부님이라면 이럴 때 뭐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기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취업해서 현장에서 새로 배우는 기분으로, 그동안 북궁천에게서 배운 것들을 전부 다 탈탈 털어냈다.
처음엔 사매들이 철수할 때까지 운기조식이나 하다가 돌아가려고 풍매를 따라왔던 것인데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배가 고파 식당으로 가자 네 사매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축하해! 풍매.”
“뭐, 뭐를요?”
“호호호!…. 저 내숭떠는 거 좀 봐.”
풍매는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오해에요! 양칠과 난 밤새 무공 연구만 했어요.”
“호호호!…. 알아. 무공 연구. 그거 좋은 거지.”
춘매가 깔깔거리며 웃자 동매가 말했다.
“나도 새 무공 연구하고 싶어.”
춘매는 화가 났다.
“왜 사람 말을 안 믿는 거예요?”
“너 같으면 믿겠니? 호호호!….”
추매가 다가와서 풍매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 우리는 진정한 한 식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한 가지 얘기해둘 게 있는데, 침상 위에선 네가 막내다. 그리고 막내인 설매가 제일 형님이야.”
풍매는 기수의 어깨를 잡아 당겼다.
“양칠! 네가 애기 좀 해 봐. 내말을 아무도 안 믿어.”
기수는 밥만 먹었다.
“내가 말해도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거야.”
풍매는 속이 상했지만 4:1로 다퉈봤자 이길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양칠처럼 밥만 먹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을 먹은 다음에도 기수는 풍매의 방으로 갔다.
두 사람은 어제에 이어서 무공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서 이 각도로 찌르는 건 어때?”
“그러면 호흡이 잘 이어지지 않잖아?”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상대를 나보다 고수라고 가정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초식은 만들어지지 않아. 아주 미세한 차이가 결국 승부를 가른다고.”
“그럼 이 초식 자체가 잘못된 거야?”
“아냐. 분명 큰 틀에서 보면 독창적이고 위협적이야.”
“그러면 뭐 해? 호흡에 문제가 있다며.”
기수는 뭔가 보일듯 말듯한 경지에서 헤매는 자신이 답답했다.
그때, 문 밖에서 사매들의 대화가 들렸다.
“뭐야. 쟤네들 진짜 무공 연마만 하잖아?”
“아냐. 좀 더 기다리면 벗을 거야. 양칠이 그냥 넘어갈 리 있어?”
“아냐. 진짜 무공 연마만 하나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기수는 끙! 소리 한 번 내고는 문을 열었다.
“거기서 뭣들 하는 거야?”
4명의 사매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너하고 풍매의 무공 연마 견학 좀 하려고 했지. 그런데 진짜 무공 연마네.”
기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그래. 너희들 잘 왔다. 책자 전부 꺼내 봐.”
기수는 그것들을 보고 서로 비교하면서 조금씩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사매들 각각의 적성에 맞춰 변형된 부분을 빼고 모두의 교집합에 대해 틀을 잡고 나니까 뭔가 좀 보이는 것 같았다.
기수는 책 6권을 한꺼번에 가지고 자기 거처로 갔다.
“이 문 열지 마. 밥도 필요 없으니까 내가 나올 때까지 부르지 마.”
그리고는 물 한 동이만 가지고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렸다.
공부는 그렇게 열심히 한 적 없지만, 무공 연구는 재미가 있었다.
그냥 주먹 한 번 뻗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기혈이 어떻게 흐르고 진기를 어떤 식으로 발출하느냐는 천지차이였다.
몰두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나흘째가 되는 날.
그는 환희에 가득 차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해냈다! 방법을 찾았어!”
5명의 사매들이 즉시 달려와서 기수를 반겼다.
“해냈다고? 어떻게?”
“우선 춘매부터 이리 와 봐.”
춘매는 배시시 웃으며 기수의 품에 안기려고 했다.
“아니. 그거 말고….. 여기를 잘 봐.”
기수는 그녀의 책자를 펼치고 검지로 하나씩 짚으며 물었다.
“여기서 여기로 연결동작이 잘 안 됐지? 여기서 여기로 넘어갈 때는 기혈 흐름이 순조롭지 않았고, 여기는 호흡이 끊겼지?”
춘매는 깜짝 놀랐다.
마치 자기가 연공하는 걸 옆에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다 맞아. 너 설마…. 해결책을 찾은 거야?”
“물론이지. 자!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봐.”
기수는 춘매에게 책자의 초식들 하나하나를 새로 익히게 해주었다.
춘매는 시키는 대로 한 차례 해본 후 표정이 변했다.
초식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전보다 더 날카롭고 위력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후훗…. 사숙의 무공을 우리 사부님이 검토하고 보완해주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를테면 두 분의 합작품이 되는 거지.”
다른 4명의 사매들도 눈빛이 변했다.
“내 것도 봐 줘!”
“내 것도!”
“아! 아! 전부 해줄 테니까 보채지 마. 다 차례가 돌아가니까.”
말해놓고 보니까 침상에서 썼던 대사 같아서 좀 민망했다.
기수는 한 명 한 명 자세하게 문제점이 해결된 새 무공을 전수해주었다.
다섯 사자매는 감탄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무공을 익혔다.
모두 끝낸 기수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오랜 시간 폐관하는 동안 못 만난 사매들과의 파티를 기대했는데,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마다 완성된 무공을 자신의 것으로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약간 아쉽긴 했지만 기수도 연공에 몰두했다.
사매들의 무공 연구는 그녀들에게만 도움이 된 게 아니었다.
기수 역시 무공관을 새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기수가 식당에 들어서자 다섯 사매가 기다리고 있다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어! 뭐야? 다들 왜 이래?”
춘매가 말했다.
“정말 고마워. 양칠. 네 덕분에 우리는 사부님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어. 그리고 네 덕분에 정말 복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다들 표정이 비장하고 심각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본격적인 무공 연마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기수는 자신의 내공을 키우는 동시에 5명의 무공을 매일 한 번씩 점검해주었다.
저마다 자기 무공은 다 익혔기 때문에 매화육궁진에까지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기수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연구해서 그것을 매화오궁진으로 바꾸었다.
하매가 없으니 그렇게 해야 맞을 것 같아서였다.
하루는 춘매가 기수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 실력이라면 동창으로 쳐들어가서 진유룡을 죽일 수 있겠지?”
기수는 사부와 싸우던 당시의 진유룡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쯤 내상이 다 나아서 그때 수준으로 복귀되었다고 해도 자신과 다섯 자매의 협공이라면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진유룡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동창 전체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를 죽이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무사히 빠져나온다는 보장은 없어.”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그 이후의 일은 운에 맡겨야지. 어쩌겠어.”
“흐음…. 사실은 말야. 우리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올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나한테 있는데 말야.”
모두들 기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음양대법이라는 건데, 시전하는 남녀가 모두 내공이 증진되는 연공법이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그, 그러니까….”
기수는 5명의 반짝이는 10개 눈동자를 마주보고 차마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왼손 엄지와 검지로 고리를 만들고 오른손 검지를 그 안에 집어넣은 후 말했다.
“이렇게 한 상태에서 내가 가르쳐준 방식으로 운기하면 돼.”
“꺄악! 망칙해라.”
“양칠이 넌 어떻게 연공도 그딴 식으로…”
그러나 풍매를 제외하고는 다들 기대감 가득한 표정이었다.
“내가 제일 먼저 해볼래.”
1번 타자로 나선 사람은 서열 1순위인 설매였다.
춘매는 아쉬웠지만 자기는 침상 서열 4위인지라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기수가 모두에게 말했다.
“이건 방해가 있으면 안 되니까 밖에서 몰래 훔쳐보거나 하면 안 돼.”
“아, 알았어.”
기수는 그날 밤 설매와 연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