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90
길을 가는 내내, 기수는 사매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동창의 조직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치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경에 도착한 첫 날.
기수는 황궁을 한 바퀴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려버렸다.
넓이는 22만 평이고, 건물 800채에 방은 9,999개가 있다는데, 그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동창을 공격하려면 먼저 황궁을 지키는 수만 명의 금의군과 싸워야 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었다.
그들 중엔 아버지 빽이나, 삼촌 빽으로 금의군 장교가 된 놈들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무관이 될 생각으로 무공을 연마한 사람도 많을 것이었다.
10명, 100명은 제압할 수 있다고 해도 적의 수가 1000명, 2000명으로 늘어나면 아무리 무공이 고강해봤자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체력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면 돌파는 도저히 안 되겠다.”
기수가 말하자 춘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정면 돌파라니? 생각이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진유룡과 하매 두 사람이니까 일단 주변에 흩어져서 정보를 수집해야 돼. 그들의 은신처만 알아내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을 거야.”
“근처에서 얼쩡거리면 너희들 얼굴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변장을 잘 해야지.”
기수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우리가 찾으러 다닐 게 아니라 저들이 찾아오게 하는 건 어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싫었다.
“어떻게?”
“동창과 관련된 문파나 동창이 벌이는 사업장을 찾아가서 부수는 거야. 그러면 우리를 잡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지 않겠어?”
“하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을까?”
춘매뿐만 아니라 모두들 불안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의 은신처를 찾아내서 죽이는 것은 일종의 암살 미션이라 6명으로도 가능하지만, 기수의 제안대로 하면 동창과 전면전을 벌여야 했다.
기수가 말했다.
“진유룡과 하매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낸다고 해서 일이 쉬울 거라는 보장은 없어. 그리고 동창과 싸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미 위험은 각오한 거잖아?”
사매들은 여전히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너희들은 예전과 달라. 그리고 내가 있잖아. 정면 대결을 한다면 우리가 열세지만, 치고 빠지기라면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어. 절대로 잡히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
그러자 동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저쪽에서 진천호나 하매를 보낸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러면 우리는 위험한 싸움만 하고 목적은 달성 못하는 거 아냐?”
“후후…. 그거라면 걱정 마. 두 사람 중 적어도 하매는 오게 될 테니까.”
“무슨 근거로?”
“그야, 내가 천재이기 때문이지. 무하하하!”
사매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봤다.
북경 만경전장.
장사를 끝내고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되어서 여섯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이 싹싹하게 그들을 맞았다.
남자 한 명에 여자가 다섯인데 옷차림이 그럴싸해서 돈 냄새가 났던 것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남자가 대답했다.
“아! 돈을 좀 가져가려고.”
“예. 전표를 보여주십시오.”
“전표? 그런 거 없는데.”
점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물건을 잡힐 생각이십니까?”
청년,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검을 뽑았다.
“아니. 그냥 가져갈 생각이야.”
점원은 그제서야 6명이 강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전장 안쪽에 있는 무사들에게 손짓을 한 후 자신도 기수의 검을 빼앗기 위해 손을 뻗었다.
점원 일을 하고는 있지만 동창 소속이라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이곳 만경전장은 바로 동창의 위장 사업장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수는 검을 쓸 필요도 없이 잔백지로 간단히 점원을 점혈했다.
오랜만의 실전이었지만, 그동안 사매들과 대련을 해왔기 때문인지 점원의 움직임은 너무 느려서 싱겁게 느껴졌다.
5명의 사매들도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몰려드는 무사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무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는데, 비명은 전부 동창 무사들이 지르는 것이었다.
기수는 훌쩍 뛰어 카운터처럼 생긴 탁자를 넘어갔다.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단순히 돈 계산이나 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눈빛에 살기를 띠며 달려들었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시끄러워.”
기수는 역시 잔백지로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했다.
“와우! 번호표 안 뽑고 이쪽으로 와보는 건 처음이네. 카운터 너머로 들어온 것도 처음이고… 하핫!”
기수는 여기저기 그득 쌓인 금원보, 은원보, 전표들을 보고 자루를 찾아서 닥치는 대로 쓸어 넣었다.
그 사이 객장이 소란스러워지자 안에서 사람들이 더 나왔다.
이번엔 고수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사매들의 상대가 못 됐다.
기수는 자루를 채우면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앞에선 다섯 마리의 귀여운 고양이들이지만, 지금 싸우는 그들은 다섯 마리의 흉포한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
피가 튀고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려도 눈 하나 깜빡 않고 다음 상대의 급소와 사혈을 공격하고 있었다.
‘살벌하네. 만약 적으로 만났다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호통을 치며 나타났다.
“멈춰라! 이게 무슨 짓들이냐!”
나타난 자는 눈이 툭 튀어나오고 살이 찐 40대 남자로 이곳 만경전장의 장주였다.
그는 자기 부하들을 학살하는 5명의 사매들보다 돈을 챙기는 기수 쪽으로 먼저 몸을 날렸다.
기수는 그에게도 역시 잔백지를 날렸다.
그러나 장주는 놀랍게도 판관필로 그것들을 쳐냈다.
“오! 제법인데…”
기수는 솔직하게 그의 실력을 칭찬했다.
장주는 깜짝 놀란 눈으로 기수를 보며 물었다.
“너, 너는 누구냐?”
엉겁결에 막긴 했지만 지풍을 그런 식으로 날리는 고수는 처음 본 것이다.
기수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설매가 말했다.
“그분은 우리 혈매궁의 궁주님이시다.”
장주와 기수가 동시에 설매 쪽을 봤다.
“혀, 혈매궁?”
“내가 궁주?….”
장주는 처음 듣는 문파 이름에 의아함을 느낀 것이고, 기수는 언제부터 자기가 궁주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 궁주 하기 싫은데…”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매화 매자가 들어가서 딱 여성 취향의 문파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구성원도 여자가 많았다.
장주는 혼란스러웠다.
무공은 무시무시한데, 적을 앞에 두고 궁주 하기 싫다며 한눈을 팔고 있으니 바보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기수가 다른 데 보는 사이에 기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의 판관필이 기수의 사혈로 찔러 들어가는 순간, 장검이 그걸 쳐냈다.
장주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자기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막았기 때문이다.
“왜 궁주가 싫어?”
춘매의 물음에 기수가 대답했다.
“난 남자잖아. 궁주를 하려면 혈마궁 정도는 되어야지. 혈매는 좀….”
“그럼 우리 궁주는 누가 해?”
“너나 동매나…”
장주는 기수가 동료들과 대화하는 동안 몇 번 더 공격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막혔고, 마지막엔 오히려 그의 검에 밀려 판관필을 놓치고 내상까지 입고 말았다.
“으으…..”
그는 비로소 기수가 자신과 격이 다른 고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기수는 5성 정도의 공력으로 잔백지를 날려 그를 제압했고, 객장의 싸움도 정리가 되었다. 더 이상 덤비는 자가 없었다.
장주가 기수에게 말했다.
“이, 이보시오. 당신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보통 전장이 아니오.”
그러나 기수 일행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제일 센 사람이 궁주해야지.”
“그럼 이름을 바꾸던가.”
“이제 와서 그걸 왜 바꿔?”
“어쨌거나 너희들 중 아무나 해. 난 싫어.”
“나도 싫어!”
“사저. 그럼 내가 할까요?”
“야! 막내가 무슨 궁주야?”
6명이 떠드는 소리가 객장 안에 가득했다.
장주는 몇 번 더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와! 이리 와 봐. 여기 무기가 잔뜩 있어.”
“어디, 어디…”
“보검이다! 이거 내가 가져야지.”
“그거 내가 찍었는데….”
“내가 먼저 잡았잖아.”
그들이 여기저기 뒤지기에 바쁜 모습을 보고 장주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너희 년놈들이 우리를 우습게보고 멋대로 군다만, 지금쯤 도망친 수하들이 동료를 불러오고 있을 것이다. 원군이 도착한 다음에 두고 보자.’
기수와 사매들은 저마다 돈이 가득 든 자루를 하나씩 챙기고 시장의 대장간에선 절대 살 수 없는 무기도 취향대로 골라잡았다.
기수는 동굴에서 얻은 검이 마음에 들어서 바꾸지 않았다.
보통 검들보다 무겁긴 하지만 그걸로 내공이 없을 때부터 검법 연습을 했기 때문에 손에 그 무게가 익숙해져 있었다.
다섯 사매들은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몰려들었다.
그 안엔 온갖 보석과 패물들이 가득했다.
손 10개가 닥치는 대로 헤집어서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그동안 기수는 장주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언제쯤 오냐?”
“무, 무슨 말이냐?”
“너희 애들. 동창에 원군 부르러 갔잖아?”
장주는 눈을 부릅떴다.
“너, 너희들… 우리가 동창이란 것을 알고 있었느냐? 그, 그리고…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응. 우린 지금부터 나가서 서쪽으로 계속 갈 거야. 추격대 오면 그렇게 얘기 해. 말만 그렇게 해놓고 다른 쪽으로 가지는 않을 거니까 날 믿어. 알았지?”
기수는 점혈당한 장주의 뺨을 툭! 툭! 쳐준 후 사매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가자.”
누가 더 많이 챙겼나로 수다를 떨던 사매들이 잡담을 싹 그치고 기수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몸을 날렸다.
그들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민첩하게 상황을 파악한 후 네 갈래로 나뉘어 각각 동서남북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동시에 금의위에도 명령이 떨어져 일시에 병력이 동원되었다.
기수와 사매들은 성벽을 넘어 서문 밖에서 추격대의 도착을 기다렸다.
좌우를 둘러본 기수가 물었다.
“어때? 긴장되지 않아?”
그러자 풍매가 대답했다.
“아니. 아까 전장에서 내 무공이 얼마나 증진되었는지 똑똑히 확인했어. 그 장주만 해도 직급으로는 영반쯤 되는 것 같던데 움직임이 다 보였어. 이젠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다른 사매들도 비슷한 기분인 듯 했다.
“역시 양칠이 하자는 대로 하길 잘 했어.”
“궁주는 역시 양칠이라니까.”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난 빼 줘. 그리고 이번에 오는 놈들은 좀 더 셀 테니까 다들 정신 차려.”
잠시 후 신호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수십 명의 무사들이 몰려왔다.
혈매궁의 다섯 여인은 그들을 맞아 싸우기 시작했다.
기수는 5명의 뒤에 서서 열세에 몰리거나 위험에 처하는 사매가 나오면 즉시 나서서 도울 작정으로 오른손엔 검을, 왼손 다섯 손가락엔 파천강기를 끌어올린 상태로 대기했는데, 5명 중 누구도 밀리지 않았다.
‘동창이 수는 많지만 역시 고수는 그다지 많지 않구나. 아니면 사매들의 수준이 월등히 높아졌거나….’
볼수록 후자가 맞는 것 같았다.
시체의 수가 자꾸 늘어가자 기수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내가 너무 흉악한 패거리의 일원이 된 건 아닐까?’
일반 무림인도 아니고 국가 공무원들을 이렇게 죽여 놓았으니 혈매궁 궁주는 거액의 현상금에 무림공적이 될 게 분명했다.
공무원의 적은 정도 무림의 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도 혹은 사도 집단의 우두머리라…’
기수는 씩 웃었다. 그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정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아는 사람, 친한 사람 편을 하기로 마음먹은 기수였다. 그래서 무림맹에도, 마교에도, 수로맹에도 한 다리씩 걸쳤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는 않은 상태. 혈매궁이 동창의 적이라서 마도로 분류된다면 자기들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난 너희들이 뭐라고 하건 내 멋대로 살 거다. 후후….’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결국 궁주는 자기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무림공적이 되는 자리를 사매에게 떠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동창이란 거대 조직 속에 숨어 있는 사도를 잡기 위해서 어떻게든 사매들과 협동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책임도 분명히 져야 했다.
기수가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싸움은 막바지에 달했다.
살아남은 대여섯 명이 죽음의 예감에 몸을 떨 때 기수가 외쳤다.
“이제 그만! 도망치자!”
사매들은 군말 없이 기수의 명령에 따랐다.
살아남은 무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 저마다 신호 호각을 입에 물고 있는 힘껏 불어서 동료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