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92
다섯 사매는 몹시 못마땅한, 그리고 불쾌한 표정으로 산적들을 노려봤다.
설매가 기수에게 물었다.
“다 죽일까?”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돌 나르고 나무 자를 거야?”
사매들은 기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산적두목이 갑자기 기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뭐가?”
“나를 위해 이런 절세미녀들을 하나도 아니고 5명씩이나 데리고 와 주다니…. 네 소원이 무엇이냐? 말만 하면 다 들어주마.”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산적 두목은 한 술 더 떠서 부하들에게 마구 호통을 쳐댔다.
“야! 너희들 전부 눈 돌려! 이것들이 어디서 감히 형수님들의 자태에 침을 흘려!”
부하들은 평소 두목의 폭력에 시달렸는지 두말 않고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얼굴만 돌렸을 뿐 눈은 여전히 떠날 줄을 몰랐다.
춘매의 이마에 빠직! 힘줄이 잡혔다.
“형수? 그것도 들? 이게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그녀가 기수에게 물었다.
“궁주. 이놈 하나쯤은 없어도 되는 거지?”
“그, 글쎄….”
“내가 죽일게.”
기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춘매의 몸이 휙! 날아가더니 장검으로 산적 두목을 찔러 들어갔다.
“하하! 무슨 계집이 이렇게 살벌하냐?”
산적 두목은 웃으면서 큰칼로 그녀의 검을 막았다.
그러나 처음 두세 수만 방어가 가능했을 뿐, 춘매와의 무공 차이는 컸다.
결국 도법이 어지러워지더니 춘매의 검이 순식간의 그의 몸을 잘라버렸다.
“크아아아악……..!”
산적 두목은 괴성을 질렀다.
이제까지 춘매의 공격은 계속 얼굴 근처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녀가 실제로 노린 곳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같은 남자로서 그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산적 패거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60명이 동시에 다리를 오므렸다.
춘매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호호!….. 이젠 더 이상 헛소리 못 하겠지?”
산적 두목은 부릅 뜬 눈으로 자신의 상처와 춘매를 번갈아 보다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그러나 춘매는 웃으며 가벼운 경공술로 물러나기만 할 뿐 상대해주지 않았다.
산적 두목이 함께 죽자며 덤벼드는 바람에 허점이 전부 노출되었지만 춘매는 그의 급소를 찌르지도 않았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결국 출혈 과다로 죽을 때까지 계속 놀리기만 했다.
두목의 숨이 끊어지자 춘매가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산적 패거리에게 말했다.
“또 덤빌 놈 있냐?”
산적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눈길까지 다 거두었다.
괜히 시선이 마주쳤다가 두령처럼 끔찍한 일을 당할까봐 겁먹은 것이다.
춘매는 두목 다음 서열을 찾았다.
쭈뼛거리며 나선 자는 두목에 비해 체격도 작고 나이도 어려 보였다.
거기서부터는 기수가 상대했다.
“여기 모인 게 너희 패거리 전부냐?”
“예. 그,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그동안 인근 마을에 저지른 악행은 잘 알고 있다.”
그러자 부두목이 눈치를 보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다른 부하들도 전부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주십시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쉽게 용서해줄 수 있는 일이 아냐.”
산적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죽을 때 죽더라도 몸은 온전하게 붙어 있는 채로 죽고 싶은 게 그들의 심정이었다.
기수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시키는 일을 잘 하면 우리가 떠날 때 너희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겠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좋아. 일단…..모두 내 앞으로 와서 이것을 받아 마셔라.”
기수는 작은 잔 하나를 가져오게 해서 산적 전원이 호리병에 든 물을 한 모금씩 마시도록 했다.
“너희들이 마신 게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남만의 늪지에서만 나는 무색, 무취, 무미의 무서운 독이다. 보름에 한 번씩 내가 주는 해약을 먹지 않으면 살이 녹으면서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산적들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두목이 죽은 것은 사실 별로 슬프거나 아쉽지 않았다.
제법 무공이 뛰어나서 두령으로 모시고는 있지만 술만 마시면 부하들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독을 마시게 된 것은 문제가 심각했다.
어쩌다가 이런 악독한 남녀들이 나타났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기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중에 목수나 석공 출신 손들어 봐.”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전부 잡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삽, 도끼, 톱 전부 챙겨들고 날 따라 와.”
기수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우선 산채로 올라오는 길을 바꾸고, 나머지 부분은 이후에 하나씩 해나가기로 했다.
두목이 쓰던 건물엔 방이 10개도 넘게 있어서 혈매궁 인원 모두가 넉넉히 지낼 수 있었다. 밤이 되자 설매가 말했다.
“궁주. 우리 산채 차지한 기념으로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기수는 펄쩍 뛰었다.
“또 무슨 기념이야!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대단한 일이지. 안 그래? 언니들은 어떻게 생각해?”
사매들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4개의 버블헤드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기수는 정색하고 말했다.
“우리가 만경전장을 친 것은 적이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쉽게 끝났지만 이제부터는 달라. 저들도 정예부대를 보낼 거라고. 그러면 지금까지처럼 수월하게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 어쩌면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럼 궁주 애기는….”
“오늘부터 다시 수련이다. 두 명, 세 명으로 나눠서.”
사매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념을 하거나 수련을 하거나 그게 그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수 입장에선 조금 달랐다.
그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5명과 동시에 자리를 만들면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데다가 비교와 경쟁이 지나쳐서 거의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팀을 둘로 나누고 수련이란 명목을 붙이면 그나마 좀 덜할 것 같았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그날 밤은 재미와 수행을 병행할 수 있었다. 다른 4명보다 더 재미를 봐야겠다는 무리한 동작 없이 자신의 쾌감에만 충실한 정도가 딱 좋았다.
둘째 날부터는 산적들을 나누어서 산채 청소와 유지보수도 시키고 식사 담당도 지정하고 목욕통에 물 데우는 일도 시켰다.
그리고 기문진 설치에 꼭 필요한 인원은 제외하고는 식량을 사오도록 시켰다.
기수는 그들에게 전표와 은원보를 함께 주었다.
“먼저 전표를 내밀어서 받아들여지면 계산하고, 안 된다고 하면 그때 은화를 써.”
“예. 알겠습니다.”
동창이 추적할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오후.
파수병이 기수에게 와서 보고했다.
“궁주님! 수상한 자들이 보입니다.”
사매들이 궁주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니까 졸개들도 따라서 그렇게 불렀다.
기수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아래를 살폈다.
과연 사냥꾼 행색을 한 자 두 명이 기웃거리는 게 보였다.
“동작들 빠르네.”
기수는 기문진을 작동시키도록 지시했다.
평상시엔 산적들이 자유롭게 오르내리지만 안쪽에서 몇 가지 배열을 바꾸면 진이 발동되어서 무극환혼진에 대해 정통한 사람 아니면 올라오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도록 개조를 해놓은 상태였다.
이제 동창이 미끼를 물었으니 하매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기수는 산적들로 하여금 10명씩 돌아가며 망을 보도록 하고 나머지 인원으로는 안쪽에서 진을 보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이 오면 홀수날 팀과 짝수날 팀을 번갈아 만났다.
‘진유룡도 함께 와줬으면 좋겠는데…’
막상 그가 온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긴장이 되긴 했다.
그래서 무공 연마에 더 집중했다.
그렇게 닷새가 더 지나자 동창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수백 명이 떼지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기수와 사매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전망대로 올라가 하매를 찾았다.
“안 보이는데?”
“잘 찾아봐.”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아직 이곳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산채로 오르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실패하자 적도 뭔가 이상한 걸 알아차린 듯 했다.
오후부터는 더 이상 진입 시도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파수병이 황급히 달려와 급보를 알렸다.
“궁주님! 나와 보십시오. 저들이 불을 지르려고 합니다.”
기수는 깜짝 놀라 달려갔다.
‘공무원들이 웬 산불?’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불길이 위로 올라온다고 해도 산채는 바위 위에 있으니 안전하지만 기문진 중 나무로 만들어진 부분은 탈 것이고, 그러면 구멍이 생길 수 있었다.
기수는 검을 챙겨 들었다.
“불장난 하는 놈들 벌 좀 주고 와야 하겠군.”
그러자 사매들도 저마다 무기를 들고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몸을 풀게 생겼네.”
기수는 산적들에게 기문진을 열도록 지시한 후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아무 것도 없던 곳에서 사람 6명이 갑자기 나타나자 동창 무사가 깜짝 놀라 신호 호각을 불었다.
기수는 그가 충분히 소리를 다 내도록 기다린 후 잔백지로 제압했다.
소리를 듣고 몰려온 자들과 혈매궁 6인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수는 이번에도 사매들 뒤로 물러나서 파천강기를 끌어올린 상태로 5명 전체의 안전을 살폈다.
얼핏 보기에도 이번에 온 자들은 지난번 만경전장 때보다 무공이 고강했다.
그러나 사매들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쓰러지는 건 동창 쪽 뿐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산적들이 싸움을 내려다보면서 응원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엔 무서운 마녀들로 생각해서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지금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같은 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기수가 보기에도 사매들의 무공은 대단했다.
백문조가 창안한 무공은 그의 출신답게 동창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상대를 최대한 빨리, 가장 효과적으로 죽이는 데 집중한 초식들이었다. 공무원 입장에서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효율이 가장 중요할 것이었다.
대개의 마공들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지만 백문조의 무공은 그렇게 간단히 치부할 수 없는 격조가 있었다.
적의 급소에 가장 효과적인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어떻게 힘과 경력을 집중시키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사매들이 여인의 가냘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성공시키면 덩치 큰 사내들이 뒤로 날아갈 정도로 파워가 있었다.
“멈춰라!”
한 남자가 호통을 치며 싸움판으로 끼어들었다.
그는 은빛 장창을 들었는데 휘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기수는 그가 이들의 지휘관임을 알고 맞아 싸우려고 했다.
그러나 설매가 그 기회를 가로챘다.
“다들 방해하지 마! 이놈은 내 차지야!”
그녀는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침대 서열 때문에 자기 처지를 망각하는 경향이 좀 있었다.
은창의 사내는 설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팔뚝이 설매의 허벅지만큼이나 굵었다. 체중도 2배는 넘을 것 같았다.
라이트급과 헤비급의 대결.
그러나 싸움은 백중세로 펼쳐졌다.
은창 사내의 무공이 고강하다 보니 초식 교환이 너무나 빠르고 강렬하게 일어나서 다른 싸움은 차츰 중단되고 말았다. 양측이 갈라서서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는 형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막내. 잘 한다!”
“거기서 물러서면 안 돼지!”
사매들은 응원도 하고 참견도 하면서 설매의 성장을 대견해 했다.
구경꾼의 입장이 되니까 은창 사내가 얼마나 고수인지, 그런 고수를 상대로 설매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확연하게 보였던 것이다.
설매만큼 자신들도 성장했을 거라는 생각에 자부심도 느껴졌다.
기수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여 검을 왼손으로 바꿔 잡고 파천강기를 오른손 검지로 옮겨 둔 채 관전했다.
만약 설매가 위험에 처하면 비겁하단 소리를 듣더라도 은창 사내를 죽일 작정이었다.
외아들로 자라서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매들이 여동생 혹은 누나처럼 느껴져서 어디 가서 맞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파천강기를 쓸 일은 없었다.
설매가 기합을 내지르며 점점 기세를 올려가더니 마침내 검으로 사내의 어깨를 찌르는데 성공했다.
“크윽….!”
설매는 통쾌하게 웃었다.
“호호호….! 어떠냐? 내 솜씨가.”
사내는 한 손으로 창을 들어 억지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너, 너희들.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당연하지. 넌 직급이 뭐냐? 영반? 장반?”
“자, 장반이다.”
설매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와! 내가 장반을 이겼어! 호호호….!”
장반이라면 환관을 제외한 조직원 중에선 최고위직급이었다.
그보다 네 계단이나 아래였던 설매 입장에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기수 쪽을 보고 물었다.
“궁주님. 이놈 죽일까요?”
은창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자기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부하들 중에도 그녀를 상대할 실력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