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93
기수가 동창 장반에게 말했다.
“가서 전해라. 기문진이 있는 한 절대 우리를 잡을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싸움에서 졌으니까 뭔가 하나는 남겨놓고 가야하지 않을까?”
기수의 시선이 은창으로 쏠리자 장반은 무기를 세웠다.
“어림없는 소리! 장수가 어찌 무기를 잃고 간단 말이냐!”
공무원들답게 무림인이라기보다는 무관이라는 인식이 강해 보였다.
그러자 설매가 몸을 날렸다.
“창이 싫으면 팔이라도 놓고 가렴!”
그녀의 검이 날카롭게 파고들자 장반은 성한 팔 하나로 창을 휘둘러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어깨 찔린 쪽에 허점이 드러나 결국 팔을 잘리고 말았다.
“크아악……!”
고통에 비명을 지른 그는 지혈하느라 창까지 놓쳤다.
부하들이 급히 달려 나와 장반을 부축했다.
거기에 다섯 사매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산길을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매들은 적당히 겁을 주어 쫓아낸 후 웃으며 귀환했다.
땅바닥엔 장반의 잘린 팔과 은창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
설매는 팔을 숲으로 차버리고 창을 주워서 산문에 높이 매달아두게 했다.
혈매궁 입장에선 자랑스런 전리품이었다.
기수는 산적들을 동원하여 나무 구조물들을 최대한 돌과 흙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의 일을 통해 산불엔 취약할 수도 있다는 약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채를 빙 둘러 나무를 띠처럼 벌목해서 불길이 번지는 것을 차단했다.
잘라낸 나무는 땔감으로 쓰기로 했고, 여유 인원을 산 아래로 보내 식량도 잔뜩 사다가 저장해두었다.
동창이 아니라 군대가 쳐들어와도 견딜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이다.
어두운 지하석실.
진유룡의 몸 근육들이 불끈거리다가 제자리를 잡았다.
그는 긴 호흡으로 운공을 마친 후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전신의 뼈와 근육들이 뒤틀렸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갔고, 예전보다 몸이 가벼워져서 날아갈 것 같았다.
탈태환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을 향해 정중히 절을 했다.
“주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의 굵고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연공을 게을리 한 탓이다. 고작 백호 두 명에게 당하다니.”
“죄, 죄송합니다.”
진유룡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이 황궁 무고의 비급들을 섭렵했다고 해도 어차피 변명밖엔 되지 않았다.
실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주군이 오직 고마울 따름이었다.
“몸 상태는 어떠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내상이 다 나은 것은 물론이고 예전보다 내공이 훨씬 더 증진된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후후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네 맡은 직분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맡겨주십시오. 동창 내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황실과 고관대작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주군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잘 하기 바란다. 만약 한 번 더 나를 실망시킨다면….”
진유룡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그땐 제 목을 바치겠습니다!”
“후후후…. 그 각오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석실을 나온 진유룡은 근무지로 복귀했다.
동창은 금의위와 함께 사례감 소속이지만 황궁 동쪽에 건물이 따로 있었고, 실질적으로 사례감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
다루는 임무가 워낙 비밀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사례감의 장인태감이 동창의 창주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그로부터 대략적인 보고만 받는 식이었다.
사례감 장인태감은 황제의 옆에 늘 붙어 다니면서 모셔야 하기 때문에 동창 같은 번거롭고 복잡한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진유룡은 창주 만욱에게 복귀신고를 했다.
“이젠 몸이 다 나았습니다.”
만욱은 50대 초반의 자그마한 체격을 지녔고 역삼각형 두상에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는 진유룡을 유심히 살펴본 후 말했다.
“정말 다 나은 것 같군.”
“창주님이 아낌없이 보내주신 영약 덕분입니다.”
진유룡은 기도를 억제했다.
창주에게 자신의 새로워진 능력을 드러내서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공이 증진된 지금, 자신이 더 강한지 창주가 더 강한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확인해도 될 문제였다.
만욱은 진유룡은 조금 더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역시 젊음이란 좋은 것이군…”
그리고 그는 보고서 철을 진유룡 앞으로 내밀었다.
“이걸 한 번 보게.”
내용을 훑어본 진유룡은 깜짝 놀랐다.
“이, 이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네. 자네가 폐관하는 동안 많은 일이 생겼지. 어제는 이장반이 팔 하나를 잃고 돌아왔더군.”
“이장반이라면 창술이 뛰어난…”
“그렇다네. 함께 간 수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계집 패거리 중 한 명과 싸워서 패했다더군.”
“한 명이라고요?”
“그렇네. 한 명. 일대일로 싸워서 이장반이 패한 걸세.”
“아!…. 그럴 수가…”
진유룡이 보고서철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이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말끔히 처리하겠습니다.”
만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되겠지. 우리 동창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네가 유일하니까… 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 가능하겠는가? 내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가능합니다! 맡겨주십시오.”
진유룡 입장에선 이 일을 반드시 자기 손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동창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욱이 말했다.
“보고에 따르면 그들이 특이한 진법을 사용한다고 하더군. 황궁비고에서 무공이건 진법이건 유출되는 걸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장인태감님도 신경을 쓰시니까 철저히 처리하게.”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만욱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필요한 건 뭐든지 가져다 쓰게.”
“감사합니다!”
진유룡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휘하의 장반과 영반, 사방들을 총집합시켰다.
“하매는 지금 어디 있나?”
“아직 일을 배정받지 않고 대기 중입니다.”
“즉시 불러라.”
나머지 인원은 출전준비를 했다.
한참 만에 진유룡 앞으로 불려온 하매는 몸이 좋지 않다며 빠지려고 했다.
사매 5명이 뭉쳐 있다는 사실만 해도 겁이 나는데, 그들이 먼저 동창을 공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까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뭔가 있지 않다면 감히 동창을 먼저 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기 싫었지만 진유룡은 놔줄 생각이 없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진을 뚫는단 말이냐? 절대 빠질 수 없다!”
“하, 하지만 진의 형태를 바꾸면 제가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저는 무극환혼진의 근본 원리부터 공부한 게 아니라 단순히 한 변형의 출입방법만 외웠을 뿐이라 진이 바뀌면 출입도 못한다는 뜻입니다.”
“흥! 그렇다 해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너니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천호님…”
“더 이상 딴소리 하지 마라! 무조건 함께 간다!”
하매는 진유룡의 무서운 기세에 주눅이 들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듯 억지로 소항산에 도착한 하매는 멀리 망을 보던 산적들이 위쪽으로 뭔가 연락하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진법에 대해 안다는 죄 하나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앞장서서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진유룡은 서너 명의 무사에게 그녀를 따르게 했다.
스무 발자국 쯤 갈 때마다 깃발을 꼽고 그 깃발과 이전 깃발 사이를 밧줄로 묶어서 연결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슨 진법이 펼쳐져 있건 현혹되지 않고 길을 찾아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게 진유룡의 계산이었다.
하매는 산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건…. 예전과 똑같잖아…’
그녀가 기억하는 무극환혼진의 배치가 그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부나 사숙이 살아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면 사저나 사매 중 누군가가 사부님의 비전을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떤 쪽이건 하매 입장에선 꺼림칙하고 불길한 일이었다.
그래도 진유룡과 동창의 고수들이 많이 왔다는 사실에 억지로 용기를 내서 계속 산길을 올라갔다.
일단 산채까지만 깃발을 꽂으면 그 다음엔 진유룡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진유룡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 그녀는 살기를 느꼈다.
“조심해! 위험….”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숲에서 붉은 인영들이 튀어나오더니 그녀를 따르던 무사들을 순식간에 제압해버렸다.
하매는 깜짝 놀랐다.
그들이 바로 자기 사매들이라는 사실이 첫 번째 놀라움이었고, 그녀들이 일찌기 본 적 없는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는 사실이 더 큰 놀라움이었다.
그녀는 진유룡이 자기를 구하러 와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따라오던 무사들이 살해당한 것과 동시에 진법에도 변화가 생겼고 사매들이 깃발과 밧줄을 제거해버리는 바람에 길은 다시 막히고 말았다.
“아아….!”
하매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5명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차라리 산채 쪽으로라도 도망칠 생각에 돌아서 보니 기수가 길을 막고 있었다.
“야, 양칠….! 나, 나좀 도와줘…”
그러나 그녀를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사매들뿐만이 아니었다.
“너 때문에 사부님이 돌아가셨다.”
“무, 무슨 소리야….난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저들에게 잡혀서 억지로 길 안내를 했을 뿐이라고…. 다들 나를 용서해 줘!”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구나. 그런 식의 변명이 통할 것 같으냐?”
하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결국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흥! 내가 너희들에게 잡힐 줄 알고? 어림없어!”
그리고는 곧바로 기수를 공격했다.
갑자기 무공이 급성장한 것으로 보이는 사매들보다는 기수 쪽이 뚫기에 수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기수는 그녀의 검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하매는 허리에 뜨끔한 통증을 느끼고 공중에서 굳어 땅바닥으로 고스란히 떨어지고 말았다.
“양칠. 너… 어, 어떻게….”
손을 쓴 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알던 양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서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떠나온 후 6명의 무공이 급진전한 것, 그리고 진법을 자유롭게 펼친 것들을 근거로, 그녀는 사부와 사숙이 6명에게 뭔가를 남겼다고 추측했다.
자기만 거기서 떨어져 나와 아무 것도 얻지 못했으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사매들은 당장 하매를 죽이자고 했다.
춘매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내가 죽이게 해 줘! 오랫동안 고통 받다 죽게 만들 자신 있어.”
그러나 기수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일단 밧줄로 묶어서 산채 감옥에 가둬 둔다. 나중에 진유룡을 잡은 다음에 한꺼번에 처리할 거니까.”
“하지만 그 전에 눈이라도 파내게 해 줘.”
춘매의 끔찍한 말에 하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말만이 아니라 실제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녀의 처리는 나중에 너희들에게 일임할 거니까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그 말에 다섯 사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매는 더욱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괴로운 상상을 하란 말인가.
지금 여기서 당장 죽여주는 게 가장 고마울 것 같았다.
그녀가 옛정을 생각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려 했는데 춘매가 갑자기 아혈을 점해버렸다. 혹시라도 하매가 혀를 깨물기라도 할까봐 방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하매를 번쩍 들어서 산채로 끌고 올라갔다.
기수는 망루로 올라가 아래쪽을 내려다 봤다.
사매들이 그토록 원하던 하매를 드디어 잡았으니 이제 사부님의 원수 진유룡만 잡으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산채를 근거로 기문진을 펼친 것은 잘 한 선택 같았다.
손쉽게 두 사람을 모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맞은편의 진유룡을 보는 순간 기수는 뭔가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
‘강해졌다! 어떻게 된 일이지?’
자기는 사부님의 내공과 성실한 음양대법 덕분에 옛 수준의 무공을 되찾았지만, 상대는 극심한 내상에서 아직 완치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기수의 예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를 감지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예전보다 더 강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새삼스럽게 동창의 힘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 저 정도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
진유룡도 기수를 쳐다봐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다.
진유룡은 하매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기수를 보며 여유 있는 미소까지 흘렸다.
“흐흐흐…. 여기가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일단 6명의 소재가 파악된 이상 도망칠 길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문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창주가 원하는 건 뭐든지 가져다 쓰라고 했으니 군대를 동원하면 그만이었다.
기문진이 10명, 20명, 어쩌면 100명까지 가둘 수 있다고 해도 1,000명, 10,000명을 동원하여 산을 파내면 다 소용없는 수작이 될 것이었다.
무림문파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동창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