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94
하매를 꽁꽁 묶어 감옥에 가두고 나온 사매들은 기수의 옆으로 와서 함께 적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들 역시 진유룡의 여유만만한 태도에 불안감을 느꼈다.
춘매가 진유룡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진천호의 분위기가 뭔가 예전과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다른 사매들도 막연하게나마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동매가 기수에게 말했다.
“궁주.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자.”
“무슨 소리야? 그동안 애써서 함정을 만들어 유인했고, 하매까지 잡았는데. 이제 저놈만 잡으면 다 끝나잖아.”
“그렇긴 한데…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아.”
기수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그러자 설매가 말했다.
“궁주 오빠. 그렇지가 않아. 원래 계획대로라면 하매를 빼앗긴 진천호가 지금쯤 흥분하고 당황해야 하잖아. 그런데 저 느긋한 표정은 뭐야?”
그때 진천호가 검지를 들어 올리더니 기수와 사매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목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사매들 모두 표정이 굳었다.
풍매가 겁먹은 어조로 말했다.
“궁주.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잠시 후퇴하자. 지금 우리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야”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매를 잡은 것은 복수의 절반 밖에 안 돼.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 것 같아? 이번에 해결해야 돼.”
“하지만….”
기수는 진유룡을 노려봤다. 사도를 마주했을 때의 떨림뿐만 아니라 강자와 맞섰을 때의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관통했다.
기수는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지금 당장 놈과 승부를 겨루어야겠다.”
“왜 그렇게 서둘러?”
“저놈이 여유 부리는 거 보니까 아마 병력을 불러서 산채를 포위할 작정인가 봐. 그렇게 되면 복수를 한다 해도 빠져나가는 게 귀찮아질 수 있어. 어차피 싸워야 할 거라면 지금 바로 싸우는 게 좋아.”
그동안은 산불에 대한 예방책을 세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진유룡이 하매를 빼앗기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 지키는 것을 보니 기문진만 믿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가 전망대에서 내려가 산 아래로 내려가자 사매들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따랐다.
기수는 기문진을 빠져나와 동창 무사들과 마주 섰다.
진유룡이 큰소리로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하!….. 쥐새끼들이 웬일로 기어 나왔지?”
기수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네놈을 죽여 사부님 영전에 올릴 것이다! 각오해라!”
“뭐라고? 하하하!…. 어이가 없구나.”
기수와 진유룡이 마주 서고 그들 뒤에는 다섯 사매와 동창 무사들이 둘러섰다.
산적들은 멀리서 손에 땀을 쥐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일단 수적으로 혈매궁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창 쪽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 반면 혈매궁의 여섯 명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가장 긴장한 사람은 기수였다.
‘예전에 그 막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을 때도 사도를 쉽게 이기지는 못했다. 지금의 내공으로 과연 이 자를 이길 수 있을까?“
그동안 사매들과 열심히 연공을 했지만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사부님의 원수도 갚고, 자신의 목적도 달성하려면 어쨌거나 진유룡과의 싸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시기의 선택이 문제였는데, 자신의 내공 증진속도보다 진유룡의 내상 회복 속도가 느릴 거라는 기대는 일단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싸우는 게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바른 선택일 것이었다.
진유룡이 말했다.
“숨거나 도망치지 않고 싸우러 나온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절약해준 게 고마워서 특별히 나 혼자 너희들을 상대해주마. 여섯 명이 한꺼번에 덤벼라!: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 마라! 이건 나의 싸움이다. 사부님을 대신해서 네놈을 쓰러트려주마.”
진유룡은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입만 산 놈이 하나 있구나. 그래. 마음대로 해라. 한 명씩 덤비건 여섯 명이 동시에 덤비건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까.”
그리고 그가 좌우로 손짓을 하자 동창 무사들이 뒤로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혼자 싸우겠다고 했으니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춘매가 기수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우리가 매화를 그리는 게 낫지 않겠어?”
매화를 그리겠다는 건 매화오궁진을 펼치겠다는 의미였다.
그거라면 상대가 진유룡이라고 해도 어느 버틸 정도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에 기수의 무공이 더해진다면 진유룡을 잡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수는 춘매의 제안을 거절했다.
“나 혼자 싸울 거야.”
어쩌면 똥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왠지 그렇게 해야만 사부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대견해 할 것 같았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슬쩍 하늘을 봤다.
‘이젠 패션 취향 좀 바뀌셨나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정신이 돌아왔으니까 적어도 화장은 그만두었을 것 같았다.
기수는 장검을 춘매에게 넘기고 뒤로 물러서 있으라고 했다.
진유룡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째서 무기를 포기하느냐?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죽여 달란 뜻이냐?”
“흥! 네놈을 상대하는 데는 맨손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하하하!…. 갈수록 재미있구나.”
기수는 처음부터 자신의 최고 능력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 분광권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파천강기를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무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파천강기는 내공 소모가 너무 심했다.
하수들 상대라면 몰라도 고수와 그렇게 싸워서 득 될 게 없었다.
잔백지도 비슷했다. 진기를 응축시켜서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방식은 다들 진기 낭비요인을 가지고 있었다.
기수는 가장 먼저 배워서 몸에 가장 익숙한 분광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진유룡은 목을 한 바퀴 돌리고 어깨도 한두 번 풀어준 후 눈을 번쩍 떴다.
“자! 놀아볼까?”
순간, 그를 둘러싼 공기에서 퍽! 하는 폭음이 들려 왔다.
급격한 내공 집중이 대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매들 말대로 일단 피할 걸 그랬나?’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기수는 선공을 취했다.
진유룡은 날아오는 기수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꽉 움켜쥐고 비틀어서 초장부터 상대의 손과 손목을 으스러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두 손이 닿는 순간 그의 예상은 어긋났다.
미처 움켜쥘 사이도 없이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이 그야말로 번개처럼 이어졌고, 오히려 이쪽의 요혈이 여러 차례 위험에 노출되었다.
진유룡은 깜짝 놀라 연달아 뒤로 물러섰고, 20여 초나 버틴 후에야 겨우 기수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하!…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네, 네놈은 원래 우리 동창도 아니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이런 무공을….”
그의 목소리엔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가 신경 쓴 쪽은 5명의 여인들뿐이었다.
기수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수한테 하마터면 제압딩할 뻔한 것이다.
기수는 전력을 다한 공세가 무위로 돌아가자 낙담했다.
‘젠장! 이 자식 왜 이렇게 강해졌지?’
직접 손이 닿아보면 상대의 무공 고하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기수는 예전에 진유룡이 사부와 싸울 때 그의 무공에 대해 아주 자세히 관찰을 한 바 있었다.
방금의 공방에서 진유룡은 움직임은 자기 기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역시 지금 대결하는 건 시기상조였나?’
그때 진유룡이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더니 기합을 토하며 내공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두 손바닥 사이에서 무슨 빛 같은 게 보였다.
“북궁천이 제자에게 이상한 걸 가르친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너희 여섯 명은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진유룡이 기수를 공격했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하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크윽…!”
팔과 팔이 닿을 때마다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기수는 겁이 덜컥 났다.
진유룡은 예전에 사부, 사숙과 싸우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뭔가 상당한 수준의 업그레이드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러다 나 여기서 죽는 거 아냐?’
계속 밀리기만 할 뿐 반격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옛날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밀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대의 닿을 때마다 두 팔은 끊어질 듯 아프고, 두 발은 계속 뒤로 밀리고, 마음속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득 찬 상황.
그때, 기수는 가슴 속 저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뭐야! 씨발!…. 내가 너 따위 남자도 아닌 놈한테 죽을 것 같아?’
분노인지, 객기인지, 오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기수를 붙잡았다.
‘생각을 해! 생각을….’
사부에게서 배운 무학이론들이 기수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휘리릭~ 스쳐 지나갔다.
‘상대는 나보다 강하다. 그걸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야.’
기수는 맞서기를 포기했다.
자신보다 내공이 고강한 진유룡의 강공에 자기도 힘으로 마주 대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무대포로 싸웠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대의 장점에 내 약점으로 대들면 안 되지.’
기수는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분광권 중 강이 아닌 유를 기조로 하는 초식들을 떠올렸고, 곧바로 초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싸움 양상이 일변했다.
금방이라도 진유룡의 공격에 기수가 박살날 것처럼 보였는데 기수는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의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흥! 제법 버티는구나!”
진유룡은 다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뜻밖의 변화가 생기자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상대는 자신의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회전시켜서 흘리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딱딱한 나무를 때리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공중에 둥둥 뜬 깃털을 때리는 기분이었다.
기수가 말했다.
“동창에서 배운 게 고작 이거밖에 안 되나?”
“이놈이 감히!….”
진유룡은 더욱 진기를 끌어 올려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상대의 초식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도 지금 유리한 쪽은 자신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하여 상대의 공격을 계속 원으로 회전시켜 막아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발까지 하면서 더 격렬한 싸움을 유도한 것은 자신이 지금 무아지경의 집중상태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들이 지금 고수와의 목숨 건 싸움을 통해서 몸으로 체득되고 있었다.
몸에 익숙한 분광권 덕분이긴 하지만 그 운용의 컨셉은 사부에게 배운 것이었다.
그 상태가 조금 더 진행되자 기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길 수도 있겠는걸?’
단지 죽음에서 벗어난 데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상대를 쓰러트릴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그에겐 아직까지 진유룡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은 비장의 무기 파천강기가 있었다.
원거리 공격은 진기 낭비가 되겠지만, 그가 배운 원래의 파천강기라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30cm 길이의 강기 칼날.
지금처럼 치열한 근접전 중에 갑자기 그 무기를 꺼낸다면 상대의 두 팔에 큰 부상을 입히는 것은 물론 한 방에 급소를 찌를 수도 있었다.
그때, 싸움의 양상이 갑자기 바뀌었다.
“하하하!….. 결국은 나의 승리다!”
진유룡이 기세 좋게 기수를 몰아붙였다.
이제까지 박빙으로 버티던 기수였지만 반격하려는 생각에 잠시, 아주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진유룡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기수는 딴생각 한 것을 후회했지만 상황은 겉잡을 수 없었다.
고수들끼리의 대결이다 보니 한 번 기울어진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불가능했다.
진유룡도 방심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면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껴둔 비장의 한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즉시 파천강기를 운용했고, 그의 두 팔과 손에 강철 같은 기운이 휘감겼다.
순간, 진유룡의 눈빛이 변했다.
접촉을 통해 기수 팔의 변화를 즉시 알아차린 것이다.
“이놈이 감히 사술을!”
순간 그의 장심에 불꽃같은 붉은 기운이 휘감기는 게 보였다.
기수는 상대 역시 뭔가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양쪽 모두 필살기를 감추고 있다가 동시에 쓰는 상황이라면, 내공이 부족한 데다 지금 수세에 취한 자기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어쩔 수 없군!’
기수는 양손의 파천강기를 즉시 전환하여 진유룡의 심장으로 쏘았다.
지금은 효율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최후의 일격이다 보니 내공을 아낌없이 전부 쏟아 부었다. 순간, 진유룡의 호신강기가 찢어지며 파천강기가 그의 심장을 관통하는 장면이 슬로우비디오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해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진유룡이 내뻗은 붉은 기운도 기수의 가슴에 적중되고 말았다.
“크아악….!”
기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마지막 공격에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진유룡이 발출한 최후의 일격을 고스란히 맞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