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98
백무영은 음식이 입에 맞는지, 잠자리는 편한지 등을 물었다.
사매들은 상당히 경직되어서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무슨 자대 배치된 신병처럼 뻣뻣해 보였다.
기수는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선 무조건 복종하는 조직생활을 오래 한 그녀들이기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 나오는 게 분명했다.
상대가 보통 사람인가. 황제의 사위이자 대장군의 아들.
그러나 기수에겐 그저 너댓 살 많은 형 정도의 느낌이었다.
학교 선배도 아니라서 형이라고 불러도 괜찮고 은근슬쩍 말 놔도 괜찮은 정도의 애매한 경계선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일단은 사매들과 맞춰주는 의미에서 반말은 자제하기로 했다.
“내가 당신을 부를 때 호칭은 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기수의 질문에 백무영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그냥 백형이라고 하십시오.”
정식으로 대장군부에 소속된 게 아니라 자신과 개인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함을 부르기 애매했던 것이다.
“백형. 요즘 강호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기수는 사매들의 취업을 돕는다는 것 외에 기대하는 것도 한 가지 있었다.
대장군부라면 강호의 정보들을 총괄적으로 수집하고 있을 테니까 자기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중요한 상황에 끼기도 했지만 세상은 넓고 자기가 온 세상을 동시에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얻을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었다.
백무영이 기수에게 물었다.
“저는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 게 좋겠습니까?”
“제 성은 양씨입니다. 아우라고 불러주십시오.”
말해놓고 아차! 싶었지만 백무영은 잽싸게 말투까지 바꿔버렸다.
“양아우. 강호의 어떤 정세를 듣고 싶나?”
친근한 미소를 보니까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난주의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말도 말게. 완전히 전쟁터가 된 모양이야.”
“어떻게 말입니까?”
“시작은 화양문과 마교 도룡문의 싸움이었지만 마교 삼천제 중 한 명인 혈천제가 끼어들면서 마교 쪽으로 전세가 확 기울었지. 그러자 무림대회를 마친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원군을 보냈고, 마교 쪽에서도 멸천제의 병력이 가세하게 되었지.”
기수는 혈천제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무림맹과 마교의 정면충돌이라면 아무래도 무림맹 쪽이 유리하겠지요?”
9파 1방 4문 5가가 전부 다 총출동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백무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네. 천마교가 조금 밀리는 듯 보이니까 일월신교에서 응원군을 보냈고 최근엔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까지 가세한 모양이야.”
기수는 백리세가에서 퇴각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삼황맹이 본래 마교와 한 편이었습니까?”
“그들이 중원으로 들어올 때는 무림맹과 마교 모두를 적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이네. 중원의 문파는 모조리 다 쓸어버리겠다는 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의 정세를 보자면 확실히 마교와 한 편이 된 것 같더군.”
“그렇군요.”
확실히 삼황맹은 홍안산에서 무림맹과 마교를 전부 죽이려고 했었다. 그러던 자들이 이렇게 변신한 것은 제갈세가가 배후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가 백무영에게 물었다.
“장차 누가 이길 거라고 보십니까?”
“당연히 무림맹이지. 하지만 얼마나 손실을 입느냐에 따라 향후 무림의 판도는 한 번 더 요동칠 수 있다고 보네.”
“혹시 휴전을 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예전에 홍안산에서는 마교와 무림맹이 손을 잡고 삼황맹과 싸운 바 있었다.
물론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위대한 중재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백무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동안 수많은 희생이 치러지면서 서로간에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져서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네.”
“안타까운 일이군요.”
“이제 보니 양아우는 강호의 안녕과 평화를 걱정하는 협객이었군.”
“하핫! 제가 좀….”
사매들이 눈치를 주지 않았다면 좀 더 자뻑을 즐겼을 텐데 아쉽게도 춘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백공자님. 저희들을 부르신 건 뭔가 일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사실은….일이 한 가지 있네.”
궁주한테 말을 놓은 김에 사매들한테도 동일하게 대했다.
사매들도 그게 편한 듯 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큰일은 아니고. 죄수를 호송해서 인계해주고 오면 되는 일이네.”
“그런 일이라면 관군을 시키셔도….”
춘매뿐만 아니라 모두들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인계받을 사람이 관청이 아니라 강호의 방파라서 공개적으로 처리하기엔 껄끄러운 면이 있어. 그리고 그녀를 인계해주는 대신 한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하는 일이라 여러 가지 변수에 대비해야 하거든.”
그러면서 백무영은 기수를 봤다.
어떤 일이건 혈매궁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하겠다고 해야 맡길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기수는 혈매궁이 선택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자가 다섯이나 있으니까 여죄수 호송에 적격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포로교환이라면 딱히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첫 임무로는 괜찮은 일 같았다.
사매들 쪽을 보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동안 호의호식했는데 밥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고맙네. 내일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게.”
“알겠습니다.”
거처로 돌아온 기수는 떠나기 전날 기념으로 한 번 해볼까 하고 사매들의 의견을 물어보았지만 설매마저도 거절했다.
천풍재에 머무는 동안은 한 번도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니 떠다는 게 오히려 기다려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백무영은 죄수를 데리고 와서 인계했다.
기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키가 약간 작고 아담한 체형의 젊은 여인이었는데,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은 얼굴을 뒤덮었고 옷에선 악취가 풍겼다.
꽤 오랜 시간 위생상태 안 좋은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 같았다.
백무영이 한 남자를 기수에게 소개했다.
“이번에 함께 갈 사람들이네.”
“석초라고 합니다!”
딱 보니 군인 스타일이었다.
나이는 20대 중반. 체격이 상당히 좋았고 무공도 고강해 보였다.
“반갑습니다. 잘 해봅시다.”
“예. 뭐든 명령만 내리십시오.”
백무영은 기수의 손을 잡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한 후 먼저 장원을 떠났다.
석초가 기수에게 말했다.
“저희들도 출발하지요.”
그러나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저 여자 목욕시키고 새옷부터 입힙시다.”
석초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죄수입니다.”
“저렇게 냄새가 나면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죄수한테도 인권이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누리게 해줘야지요.”
기수는 여자들이 자주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감옥에서 저 꼴이 되도록 갇혀 있는 게 몹시 괴로웠을 것 같았다.
석초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좋을 대로 하시지요. 어차피 양형이 책임자니까요.”
기수는 씩 웃었다. 은근슬쩍 맞먹으려는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보스인지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선 춘매에게 얘기했다.
“저 여자. 너희들 감시 하에 목욕하고 옷도 갈아입게 해줘.”
“알았어. 궁주.”
그녀가 안으로 데리고 가려 하자 여죄수가 기수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꽤 젊은 목소리였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 뒤 기수는 석초에게 말했다.
“야. 너. 대장군부에서 오래 일했냐?”
기수의 말투에 석초는 곧장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햇수로 10년째 되었소.”
짠밥수가 장난 아니니까 굴러 들어온 돌 주제에 까불지 말라는 투였다.
기수는 피식 웃었다.
“너. 백형이 나한테 책임자 맡긴 게 고깝지?”
그러자 석초가 버럭 화를 냈다.
“백형이라니? 시랑님에게 그게 무슨 말인가?”
“야! 백형이 나더러 백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니까 내가 백형이라고 부르는 거지, 백형이 나한테 백형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백형이라고 부르겠냐?”
일부러 백형을 많이 넣어서 발음할 때마다 강조했다.
그러자 석초의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했다.
그러나 이번 임무에선 기수가 상관이다 보니 억지로 눌러 참는 모습이었다.
기수가 그에게 물었다.
“너. 지금 나 한 대 때리고 싶지?”
석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표정에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기수가 다시 말했다.
“이번 일을 하는데 너하고 나하고 시작부터 삐걱거리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
“무엇이오? 그 제안이…”
“너하고 나하고 계급장 떼고 힘을 겨뤄서 이긴 쪽한테 무조건 마음에서 우러나와 복종하는 거야. 어때? 그럼 공평하겠지?”
“내가 이겨도 말이오?”
“그래. 어쨌거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밖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백형이 알 리 없는 거잖아. 네가 이기면 네가 대장 해. 내가 무조건 복종할게.”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오?”
“그렇다니까.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 아니, 맹세!”
석초는 기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위로 눌러도 되는데 굳이 그런 조건으로 승부를 보겠다니 약간은 바보처럼, 그리고 약간은 대장부처럼 느껴졌다.
“좋소! 해봅시다.”
그리고 석초는 미소를 지었다.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리고 단지 힘만 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그는 내외공을 겸비한 고수로 백무영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석초가 자신 있게 말했다.
“맨손도 좋고, 창, 도, 검 모두 좋소.”
“아니지. 너와 내가 서로 겨루다 다치면 이번 임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
“겨루지 않으면 어떻게 무공 고하를 확인한단 말이오?”
“격파로 하자. 뭐가 좋을까? 아! 저기 놓인 바위 어때?”
석초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
마당 한 쪽에 크기가 같은 바위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정원석이라기보다는 돌의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좋소! 저걸 부숴거 누가 더 힘이 센지 겨뤄봅시다.”
석초는 손짓으로 가마꾼들을 불렀다.
“너희들. 이리 와서 증인이 되어라.”
그들은 구경거리에 신이 나서 달려왔다.
다들 발놀림이 경쾌한 것으로 봐서 역시 무공을 익힌 무관들이었다.
가마꾼뿐만 아니라 천풍재에 배치된 다른 무관들도 몰려들었다.
백무영이 없는 동안은 행동에 다소간 자유가 있었다.
석초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혈매궁의 양궁주와 내가 이 바위를 부숴서 누가 더 힘이 센지 겨뤄보기로 내기를 했다. 진 쪽에서 이긴 사람을 평생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으니까 너희들이 심판도 보고 증인도 되어라!”
“좋지! 꼭 이기라고!”
같은 소속이다 보니 구경꾼들 전부 석초 편이었다.
기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 하나 목욕시키는데 왜 전부들 따라간 거야?’
사매들이 한 명도 없어서 약간 섭섭했다.
어쨌거나 평생 형님으로 모신다는 얘기는 석초가 자청해서 한 말이니까 졌을 때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서 빨리 대결을 하고 싶었다.
석초가 기수에게 말했다.
“먼저 하시오. 손님에게 양보하겠소.”
기수는 그럴 수 없었다.
“손님이 먼저 할 수야 없지. 그리고 원래 주인공은 나중에 하는 거야.”
상대가 하는 거 보고 딱 이길 만큼만 힘을 쓸 생각이었다.
석초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백무영이 귀빈 대접 하는 걸 보면 보통 고수는 아닐 테니까 일단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좋소! 내가 먼저 하겠소.”
그는 내공을 끌어올린 후 우렁찬 기합과 함께 돌의자를 정권으로 내리찍었다.
빡!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바위는 무슨 폭발이라도 난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큰 덩어리가 벽돌 크기 정도에 불과했다.
“와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관들 모두 석초가 나이에 비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수도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이 새끼. 존나 쎄잖아?’
무림인이 아닌 관리라고 해서 우습게 봤는데, 공무원 중에도 고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석초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차례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기수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실력을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초를 평생토록 형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기수는 돌의자에 손가락 다섯 개를 댔다.
석초를 비롯한 무관들 모두가 궁금한 표정으로 기수의 행동을 주시했다.
순간, 파파팍! 하는 굉음과 함께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 드러난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바위가 전부 자갈로 변한 것이다. 쌓인 무더기가 나란히 있어서 확연히 비교가 되었다.
기수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석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지 돌조각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주먹을 들었다가 내려친 자신과 달리, 기수는 손가락을 댄 상태에서 떼지도 않고 그냥 한 번 눌렀을 뿐인데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고수의 수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혀, 형님.”
“그래. 아우야. 하하하!….”
기수는 통쾌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