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
늘 반복되는 일상.
나는 담배를 빼 물었다.
“야! 나가서 피워.”
엄마가 등짝을 후려친다.
“밖은 춥단 말야.”
“그럼 끊던가!”
시도는 해봤지만 그게 잘 안 된다.
4일 동안 안 피우고 견딘 게 최고 기록이다.
5일째에 한 모금 빠니까 머리가 핑 돌았다.
그 이후엔 끊을 생각을 않고 있다.
엄마가 물었다.
“기수야. 너 오늘은 몇 시에 나가냐?”
“늘 똑같지.”
“그럼 밥 꺼내 먹고 반찬통 뚜껑 덮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가라.”
“알았어.”
“다녀온다!”
“수고하세요!”
엄마는 서둘러 출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이곳으로 이사 왔고 5년째 살고 있다.
원래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지만 학원비를 댈 수 없게 된 이후로는 아예 손을 놔버려서 대학 진학을 애진작에 포기했는데, 엄마는 지금도 그 얘기를 하신다.
적금 부어서 등록금 마련하자고.
하지만 아직도 빚이 남아 있어서 쩔쩔매는 판에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얘기다.
내 점수로 갈 대학이라면 졸업해봤자 곧장 백수로 직행이다. 그럴 바엔 대학 뭐 하러 가나.
2류 대학이라고 등록금 절반도 아닌데.
현관문을 잠근 나는 PC를 켰다.
새 알바를 알아봐야 한다.
점장과 싸우고 알바 그만 둔 얘기는 엄마한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뭘 하건 마찬가진데 공연히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알바 자리는 늘 있다.
문제는 월급이 제때 나오는지, 주인 인간성이 어떤지 하는 건데, 직접 부딪쳐 봐야 답이 나온다.
다섯 군데 전화해보고 두 군데 약속을 잡았다.
‘한 딸 잡고 갈까?’
여자 친구도 애인도 없는 내게 AV 콜렉션은 소중한 동반자라고나 할까.
집에 나 혼자뿐인 아침 시간.
나갈 직장도 없고, 약속시간은 한참 남았고, 뭐 어떠냐. 함 하자.
모니터에서 아가씨들이 기모찌를 연발한다.
‘당연하지. 너희들이 언제 이런 거 만나봤겠냐.’
나는 솔직히 남들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게 없다. 공부도 그렇고, 집안이 부자도 아니고, 키도 보통이고, 그나마 좀 자신 있는 게 얼굴?
영화배우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봐줄만 하다.
거울이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존슨.
남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길지, 굵지, 단단하지…
아! 그런데 그러면 뭐하냐고. 여자가 없는데.
세상 여자들은 왜 이걸 몰라줄까?
왜 이런 명품을 아직까지 숫총각으로 놔두는 거냐고!!!
어쨌거나 늘 한결같은 얼굴로 반겨주는 다메와 기모찌들을 두루 사랑해준 나는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재수 없는 날.
아침에 부정 탈 짓을 해서 그런가?
두 군데 다 연락 주겠다는 사장 표정을 보니 글렀다.
‘오라고를 말던가.’
욕이 절로 나온다. 씨발!
지하철 왕복 요금이 얼만데.
돌아오는 길은 발에 힘이 탁 풀렸다.
게다가 옆자리에 동남아 근로자가 탔는데 말이 정말 많다.
둘이 10년 만에 만난 고향친구라도 되는지, 정말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동방예의지국에 왔으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생각 좀 하라고 씨발! 욕이 또 나왔다.
근데, 어라! 얘들이 영화 찍나?
갑자기 겁먹은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붙잡고 뭐라고 막 떠들어댄다.
그러면서 검정 비닐봉투에 든 걸 내 품에 막 안겼다.
“왜 이럽니까?”
“부탁… 주세요…”
“뭘 달라고?”
“Keep This… Next Station…”
한국말보다 영어 발음이 더 좋다.
“가지고, 다음 역에서 달라고?”
두 명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역… 다음 역…”
뭐 씨발 사슴 숨겨주는 사냥꾼도 아니고. 이 칸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나냐고.
내가 제일 착해보여서일까나?
두 명의 동남아 노동자는 내 외투를 여며서 비닐봉투를 감추더니 황급히 다음 칸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시선을 끄는 행동이다.
맞은편에 앉은 승객들이 전부 다 나를 본다.
아! 씨발. 오늘 진짜 일진 안 좋네.
잠시 후 지하철이 멈추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릴까 말까.
내릴 수밖에 없다. 난 원래 선량하니까.
아니. 선량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동남아 노동자들 물건을 꿀꺽할 놈은 아니다.
내린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플랫폼에 혼자 서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까의 그 두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씨발!”
그놈들한테마저 속은 건가? 오늘 진짜 꼬이네.
겨드랑이에서 부시럭거리는 비닐봉지를 확!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별로 선량하지도 않은 양심이 또 발목을 잡는 바람에 다음 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
그들이 말한 ‘넥스트 스테이션’이 이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도 없다. 욕 나온다.
“아! 몰라.”
나는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이젠 물건을 돌려주지 못해도 내 잘못이 아니다.
역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가다가 나는 습관처럼 복권방에 들러서 로또를 찍었다.
주인 아저씨가 씩 웃는다.
“오늘은 왜 3개만 찍어?”
“그냥 주세요.”
직장 없는 동안은 3개다. 담배 사야 된다.
주인아저씨가 실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프로토 한 번 해 봐.”
“싫어요.”
“그건 잘 맞아. 대박은 없어도 짭짤하다니까.”
“난 복권 잘 못 맞춰요.”
라고 말하면서 로또를 챙겨 지갑에 넣고 복권방을 나왔다. 매주 로또를 한 장씩 사는 건 엄마와 나의 공통 취미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1주일을 버티는 힘을 준다.
언젠가는 5등 이상도 당첨되겠지.
당첨되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 빚을 다 갚을 수 있으니까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나아질 것이다.
간절하게 원하긴 하지만, 뭐 세상일이 바란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니까…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우산 가져갔나?’
걱정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옷을 걸어 말리고 PC를 켰다. 그리고 부팅되는 동안 비닐봉투를 열어보았다.
“어…!”
깜짝 놀랐다.
시꺼먼 인형이 나왔는데, 사람 같기도 하고 고릴라 같기도 한 게 존나 못생겼다.
만져 보니 촉감도 이상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가죽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털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빠져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3점슛 성공!
괴물인형은 관심 밖이다.
나는 소설 연재 사이트를 클릭했다.
내게 최고의 위안을 주는 것은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들이다.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무엇이건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설 속의 주인공. 멋지지 않은가.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더욱 깊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