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01
끌려나온 남자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30대 중반의 볼품없는 얼굴과 왜소한 몸집.
온통 상처와 고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옷은 누더기가 되어서 소서시의 모습과 확연히 대조되었다.
패천방 방주 호중만은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은 후 말했다.
“우리 사람을 보내주시오.”
춘매가 소서시의 등을 밀었다.
소서시는 뒤를 돌아보고 기수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러모로 고마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기수는 입맛을 다셨다.
‘아! 내 품안에까지 들어 왔었는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오는 여자 막지 않는다는 신념에도 어긋났다.
하지만 사매가 다섯이나 눈에 불을 켜고 지켰으니까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대장군부 측 남자도 비틀거리며 걸어와서 양측은 각자 원하는 바를 얻게 되었다.
호중만은 소서시를 웃는 낯으로 반겼다.
“어서 오너라. 고생이 많았지?”
“아니에요. 방주님.”
“일이 늦어져서 너에게 미안하구나.”
“이렇게 왔으니까 됐어요. 감사드립니다.”
기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안심했다.
그녀를 보호해주겠다던 약속이 완수된 것이다.
만에 하나 소서시를 죽이라고 명령한 게 패천방이면 어쩌나 하는 의심도 사라졌다.
기수가 호중만에게 물었다.
“혹시 우룡당과 사혼방이 길 중간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녀를 납치. 혹은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호중만은 코웃음을 쳤다.
“흥! 우룡당과 사혼방이라고? 지금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것이오?”
그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기수가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려고 하자 석초가 말했다.
“여기는 적지입니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만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을 마쳤는데 오지랖 넓게 남의 문파 일에 참견할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중에 그녀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오.”
그리고 돌아서자 패천방 방도들이 살벌한 눈빛으로 문까지 가는 길을 좁혔다.
가는 길에 겁을 좀 주자는 의도인 듯 했다.
물론 기수나 석초, 사매들은 그 정도에 겁먹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호중만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들 가시게 길을 열어드려라.”
그제서야 방도들은 뒤로 물러서서 8명이 지나가도록 해주었다.
장원 밖으로 나오자 포로로 잡혀있던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길을 재촉했다.
“빨리 떠납시다! 빨리요.”
석초가 웃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하하!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겁먹을 필요 없다고.”
장원과 어느 정도 멀어지자 석초는 그를 일행에게 소개했다.
“이 친구는 소웅이라고 합니다.”
소웅은 석초가 존댓말하는 것을 보고 기수와 사매들에게 알아서 굽실거렸다.
“이렇게 저를 구하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석초가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방주가 언제부터인가 창고에다 비밀스럽게 뭔가를 자꾸 사 모으지 뭡니까. 그래서 그게 뭔가 알아내려고 창고에 들어갔다가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조심 좀 하지!”
“제가 또 워낙 호기심이 많지 않습니까. 굶고는 살아도 궁금한 걸 참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보니. 헤헤헤… 죄송합니다.”
“그래. 방주가 사 모은 게 뭔데?”
“여러 가지 물품 중에서 딱 한 가지만 확인했습니다. 바로 수은이었습니다.”
“수은? 그걸 왜 모으지?”
“그러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어쨌거나 돌아가서 자세히 보고 할 준비나 해.”
“알겠습니다.”
일행은 서주를 벗어나 관도에 들어섰다.
석초가 기수에게 말했다.
“비록 희생이 있기는 했지만 임무가 완수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기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패천방 안으로 들어갈 땐 약간 긴장까지 했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패천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기수는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봐. 석초. 저 연기가 뭐지?”
“불이 난 것 같은데요? 어? 저쪽은 패천방의 장원이 있는 쪽인데…”
“가보자!”
“형님! 가긴 어딜 간다고 그러십니까? 우리 일은 끝났습니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 확인만 할 거야.”
그리고는 석초가 따라오거나 말거나 경공을 펼쳤다.
다섯 사매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기수를 따랐다.
석초도 결국 기수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소웅이 그를 잡았다.
“석통판님. 저는 거기로 다시 돌아가기 싫습니다.”
“그럼 저 객잔에서 몸 좀 씻고, 새 옷 사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석초는 은화 하나를 던져주고 기수를 따라갔다.
불이 난 곳은 분명히 패천방의 장원이었다.
불만 난 게 아니라 고함과 비명, 무기 부딪히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왔다.
기수는 가볍게 점프하여 담을 디딘 후 불붙지 않은 지붕 위로 올라갔다.
사매들도 그를 따라왔다.
“끔찍하군!”
아래엔 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백 명이 얽혀 싸우는 중이었는데 패천방의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불리하게 몰려서 전멸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공격하는 자들은 저마다 복장과 무기가 달랐다.
그러나 기수는 그들이 쓰는 무공에서 뭔가 낯익은 점을 찾아냈다.
“저놈들. 우리를 습격했던 우룡당과 사혼방 놈들이야!”
춘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같은 편끼리 싸우는 거지?”
“저들이 같은 편이기는 한 거야?”
“응. 천마교는 정통 마교라고 할 수 있지만 일월신교는 분리되어 나오면서 세력이 약했거든. 그래서 강남으로 가면서 마도, 사도, 흑도를 가리지 않고 전부 자기네 세력으로 받아들였어.”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구잡이 잡탕으로 섞여 있으니까 결속도 단단하지 않겠네.”
“그런 셈이지.”
기수는 예전에 천마교의 일파인 도룡문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느낀 점은 마교도들이 무림맹에 비해 훨씬 결속이 강하고 가족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패천방이나 우룡당, 사혼방에게선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일월신교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마교라도 같은 마교가 아닌 것이다.
“저놈들. 이런 짓까지 벌인 걸 보면 절대로 소서시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인 것 같은데…. 왜들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그녀가 걱정되었다. 여기까지 데리고 화서 패천방 방주 손에 넘겨주기까지 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기수가 춘매에게 물었다.
“소서시가 어디에 있을 것 같아?”
“왜? 그녀를 구해주기라도 하려고?”
“위험에 처했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넌 기사도도 모르냐? 아! 모르겠구나. 어쨌거나 그녀는 무공도 모르잖아.”
춘매가 안쪽을 가리켰다.
“여자들 거처는 주로 저쪽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기수는 즉시 안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사매들과 뒤늦게 도착한 석초가 그를 따랐다.
기수는 자기 앞을 가로막는 자들은 패천방이건, 우룡당이건, 사혼방이건 가리지 않고 전부 잔백지로 점혈해버렸다.
그는 소서시의 안부가 걱정될 뿐,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수가 거의 무인지경을 달리듯 길을 열자 뒤따르던 석초는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기수가 쓰는 수법은 그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들이 안채 깊숙이 들어갔을 때, 한 사람이 지붕을 넘어 도망치는 게 보였다.
“패천방 방주다!”
춘매가 외치자 호중만이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의 옷은 피투성이였고 손에는 뭔가 핏덩어리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담을 넘어 도망쳐버렸다.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 방파가 망하는 판에 달아나?”
방주가 그런 마인드라면 패천방은 멸문당해도 할 말 없을 것 같았다.
기수는 패천방이 망하거나 말거나 소서시의 안전만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안채 여기저기를 뒤지던 기수는 한 건물 안에서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소서시!”
그녀인 줄 금방 알아차린 것은 그녀 옷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간 기수는 깜짝 놀랐다.
엎어진 그녀 주변에 피가 흥건했는데, 그녀의 사인은 목의 경동맥이 잘린 것이었다.
그건 자주 보았던 상처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끔찍한 것은 그녀의 등이었다.
옷이 찢어져 등 전체가 드러난 상태였는데, 피부가 예리한 날로 벗겨져 있었다.
“도,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춘매가 말했다.
“이, 이건 문신을 벗겨 간 거야.”
“그렇다면 아까 그….!”
기수는 호중만이 손에 들고 있던 핏덩어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놈이!”
아무리 습격을 당했고, 상황이 다급해도 그렇지, 소서시가 경공을 못 펼치면 업고 도망칠 생각을 했어야지 어떻게 문신만 벗겨 갈 생각을 한단 말인가.
기수는 극도의 분노에 휩싸였다.
“호중만! 넌 내 손으로 죽인다!”
기수는 소서시의 등을 보고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시신까지 훼손당한 그녀가 가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기수는 즉시 몸을 날려 호중만이 도망친 방향으로 따라갔다.
“궁주! 어딜 가는 거야?”
“그놈을 잡을 거야.”
기수는 선풍비를 시전하여 서주 시내를 날아다니며 호중만의 흔적을 찾았다.
순식간에 성벽을 넘어 도시를 가로질렀지만 아쉽게도 호중만의 종적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친 거라 생각해서 서주성 밖의 산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찾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 정도 사방으로 돌아다니던 기수는 결국 장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장원의 전투는 사매들과 석초가 종식시켜 놓고 있었다.
기수는 사매들에게 물었다.
“그녀 등에 도대체 무엇이 그려져 있었던 거야?”
“산수화와 싯구절이었어.”
그러자 추매가 말했다.
“좀 이상하긴 했어.”
“어떻게?”
“싯구절이 너무 많았지. 위치도 복잡하게 분산되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암호였던 것 같기도 해.”
“그럼 호중만이 소서시를 굳이 관군과 포로교환까지 하면서 데려오려 했던 게 그녀를 아껴서가 아니라 그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단 말이 되네.”
“우룡당과 사혼방은 그걸 호중만이 보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던 거고.”
“베껴 그릴 시간 없이 습격당하니까 급한 마음에 그런 짓을 한 거구나.”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석초가 물었다.
“형님. 그들은 같은 일월신교 소속인데 왜 서로를 견제했을까요?”
“아마 패천방이 독자적으로 뭔가 하려고 했던 거겠지.”
기수는 사로잡은 자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몇 명을 패천방, 오룡당, 사혼방에서 각각 뽑아 앉혔다.
그리고 한 놈씩 눈을 마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에겐 고문보다 훨씬 빠르고 신뢰성도 높은 방법이 있었다.
“너희 방주는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던 거냐?”
패천방 방도들도 자세히는 몰랐다.
다만, 호중만이 ‘곧 우리 패천방이 천하제일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최근 들어 자주 반복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기수는 오룡당과 사혼방 놈들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왜 패천방을 공격했지?”
그들도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지만, 그나마 한두 명이 대략적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작년에 호중만이 일월신교의 늙은 장로 한 명을 귀빈으로 모신 적이 있는데,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비전을 호중만에게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특이했다.
그 마교 장로는 성질이 사악하고 하는 짓이 괴팍해서 여자의 몸에 문신 새기기를 즐겼다는데, 그렇게 문신을 새긴 여인 중 한 명을 북경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호중만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녀를 파견할 때까지만 해도 그 문신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마교 장로가 남긴 게 뭔데?”
석초와 사매들은 염정구심술을 모르기 때문에 기수의 말만 들릴 뿐이었다.
기수는 알아낸 사실들을 그들에게 얘기해주었다.
“뭔가 사악한 술법인가본데 이놈들도 자세히는 모르고 있어.”
최조를 당한 우룡당과 사혼방 무사들은 자기들 머릿속을 읽은 기수가 더 사악하다고 생각했다.
석초도 놀라는 눈치였다.
기수는 그제서야 자기가 너무 흥분해서 불필요하게 능력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큰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패천방 졸개를 잡아 일으키고 말했다.
“너희 방주가 물건 모아 두었다는 창고로 가자.”
“아, 알겠습니다.“
창고엔 자물쇠가 이중으로 걸려 있었고 규모도 사당히 컸다.
들어서자마자 독한 약냄새가 가득해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환기부터 좀 해야 되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수은이나 유황뿐만 아니라 온갖 기이한 종류의 광물들과 약초들이었다.
기수는 처음 중원에 왔을 때 상춘관에서 약초공부를 꽤 한 편이지만 태반이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