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02
석초가 말했다.
“형님. 제가 근처의 도지휘사사에 가서 사람들을 불러 오겠습니다. 이 장원 전체를 압류하고 포로들도 심문하려면 인원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이 끝났으니까 불이 나건 말건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자고 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의외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뭔가 공을 세울 찬스가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맡은 바 임무를 사고 없이 빨리 끝내면 된다는 공무원마인드일 때와는 눈빛부터 달랐다.
기수는 일단 그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소서시가 당한 게 가여워서 주먹이 부르르 떨렸지만 호중만을 쫓아가서 잡는데 실패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석초는 객잔에서 기다리는 소웅을 불러 그에게 서찰을 써보냈다.
다음 날 아침.
도지휘사사에서 나온 군관은 상당히 거만한 인상의 사내였다.
기수 일행을 깔보듯 훑어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사매들을 향한 음탕한 시선이 기수를 열 받게 했다.
‘한 대 때릴까?’
하지만 스쳐도 중상일 테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그가 석초에게 물었다.
“협조공문을 보낸 게 너냐?”
“그렇다.”
“뭐? 그렇다?”
석초가 패찰을 꺼내어 보였다.
그러자 군관은 화들짝 놀라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석초에게 군례를 올리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군기 바짝 든 모습이었다.
기수는 씩 웃었다.
석초가 나이는 어리지만 상당히 높은 직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수가 그에게 물었다.
“나. 얘 좀 때려도 되나?”
“물론입니다. 형님.”
기수는 바짝 쫄아 있는 군관 앞으로 가서 주먹으로 그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야. 너. 아까 내 사매들을 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 들더라.”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절대 쳐다보지 않겠습니다!”
기수의 계급은 모르지만 석초가 형님이라고 하니까 무조건 쫀 모습이었다.
기수는 실제로 때리지는 않고 그 정도 선에서 손을 내렸다.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석초는 군관에게 포로의 심문과 창고의 물품 압수, 분석 등의 임무를 지시했는데 대단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라 맡겨 둬도 될 것 같았다.
기수는 자기 나름대로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창고로 갔다.
사매들도 따라와서 그를 도와주었다.
기수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가서 쉬어. 나 혼자 해도 돼.”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아냐. 우리도 그녀의 복수를 해주고 싶어.”
특정 목표를 위해 조직에 이용당하는 여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들이다 보니 소서시의 비참한 최후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거기다가 북경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함께 지냈다는 인연도 더해졌다.
기수는 그녀들이 원하는 일이라 창고 수색을 함께 했다.
풍매가 기수를 불렀다.
“궁주. 여기 와서 이걸 좀 봐.”
가보니 그녀는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잖아?”
“그래. 하지만 뭔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잖아.”
“여기 있던 걸 옮겼다는 뜻이네.”
기수는 남아 있는 물건이 아니라 쌓여 있다가 없어졌음직한 물건의 적재 위치를 대략 추측해 보았다. 절반 이상이 이미 옮겨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좋아! 풍매 잘 했어. 여기 있는 물건은 관군이 분석하게 놔두고 우리는 없어진 물건을 찾아보자.”
기수는 패천방 식구들이 갇힌 곳으로 갔다.
연락을 받은 군관이 잽싸게 달려왔다.
“예. 부도어사 나리.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기수는 관직의 계급체계는 잘 모르지만 부도어사면 굉장히 높은 자리로 알고 있었다.
‘이놈이 왜 날 부도어사라고 부르지?’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석초가 첨도어사 패찰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를 형님이라고 부르니까 당연히 첨도어사보다 높은 부도어사일 거라고 추측하는 게 분명했다.
기수는 속으로 큭큭… 웃었다.
‘석초도 첨도어사는 아닌데…’
그거보다는 한참 낮은 계급인데 백무영이 자기 권한으로 가짜 패찰을 만들어준 것이다. 객지 나가서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장군부의 배려였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한 시대이다 보니 뻔뻔한 연기력만 갖춰지면 정식 발급된 패찰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기수는 굳이 자기가 부도어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죄인들 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심문하고 싶은 자가 있네.”
점잖게, 약간은 거드름까지 피우면서 말했다.
“예. 말씀만 하십시오. 이제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패천방의 총관과 집사를 구금한 상태입니다. 그들을 대령할까요?”
“아니. 하인. 그것도 제일 하위 직급의 허드렛일 하는 하인을 불러줘.”
군관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기수가 인상을 쓰자 화들짝 놀라 하인 두세 명을 데리고 나왔다.
기수는 그들 각각과 눈을 맞춰본 후 물었다.
“너희들 중 창고의 물건 옮기는 일을 했던 게 누구지?”
곧 반응이 나왔다. 기수는 한 명을 가리켰다.
“이 자를 내가 데려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다시 안 돌려주셔도 됩니다. 제가 서류로 잘 처리해놓겠습니다.”
기수는 군관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넌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란 것도 모르냐? 아무리 하인이라고 해도 인권이 있어 임마.’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참기로 했다.
뭐, 현대라고 해도 검찰이 기소 내용을 미리 언론에 흘린다거나 하는 짓거리는 여전히 하고 있으니까 시대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면 정치검사 암살이나 하면서 놀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것은 돌아간 뒤의 일이니까 우선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인은 몹시 두려워서 몸을 떨고 있었다.
기수가 그에게 물었다.
“너. 옥에 갇혀 있는 거 싫지?”
“하, 하지만 죄를 지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데?”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패천방 방도도 아니었고, 그 집에서 일한 것만으로 죄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안심해. 길안내만 해주면 풀어줄 테니까.”
“저, 정말이십니까?”
군관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 그를 도로 수감시켜야 할 필요는 없었다.
“창고에 있는 물건을 어디로 옮겼는지, 그 장소까지만 우리를 안내해 줘.”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하인은 잽싸게 앞장섰다.
성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그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자기 걸음이 워낙 빠르니까 기수와 다섯 여인이 따라오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숨도 가빠지지 않고 바짝 따라붙는 것을 서너 번 보고는 더 이상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기입니다.”
하인이 도착한 곳은 공동묘지였다.
크고 작은 무덤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라고? 아무 것도 없잖아.”
“예. 하지만 방주님이 여기다 내려놓고 내려가라고 하셔서 저희들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바로 저 바위 옆에요.”
“그랬군.”
기수는 은화 서너 개를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수고했어. 이거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숨어 살아.”
“가, 감사합니다!”
하인은 여러 번 절을 하고 산을 넘어 달려갔다.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기수가 말했다.
“자! 이제 이들 중 어느 무덤이 놈의 비밀 은신처인지 찾는 일만 남았군.”
말해놓고 보니까 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무덤마다 돌아다니면서 초인종 누르고 물어보는 일이라고 해도 한나절은 걸릴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숨겨진 문이나 특별한 장치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했다.
“구역을 나눠서 찾아보기로 하자.”
그러자 풍매가 말했다.
“우선 내가 저기서부터 시작해볼게. 혼자서 무거운 물건을 여러 번 옮겼다면 분명 흔적이 남았을 테니까.”
풍매는 하인이 가리켰던 바위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기수는 동창의 요원 양성 커리큘럼을 한 번 더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여 일행은 30분 만에 커다란 봉분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거기까지 가고 나니까 기수의 눈에도 뭔가 수상한 것이 보였다.
다른 석물들은 다들 고색창연한데 묘비만 새 것이었다.
“저걸 들어 올려볼까?”
기수는 묘비를 잡고 힘을 썼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조금 더 힘을 주면 부서져버리겠는데.”
“당기지만 말고 옆으로 흔들어 봐.”
“이렇게?”
옆으로 힘을 주니까 간단히 미끄러졌다.
미닫이문을 열려고 계속 앞뒤로 힘을 준 것 같은 뻘쭘함이었다.
비석이 미끄러진 밑엔 사람 한 명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거기서 올라오는 냄새는 상당히 불쾌했다.
시체 썩는 냄새와 창고에서 맡았던 약냄새가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여기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모두 조심해.”
사매들은 전부 무기를 뽑아들었다.
기수도 장검을 뽑아 들고 먼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경사로를 지나자 똑바로 서서도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높이의 땅굴이 나타났다.
“조명이 필요한데.”
그러자 뒤에서 동매가 관솔에 불을 붙여 앞으로 건넸다.
시키지 않아도 땅속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알아서 준비한 것이다.
기수는 불길로 전방을 비춰보았다.
땅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을 댄 것 말고는 인공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상당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거기에 십여 구의 시신이 가지런히 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윽! 씨발…. 이게 뭐야.”
호중만은 없고 시체들만 나왔으니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기수는 흙벽에 파천강기로 구멍을 내고 거기에 관솔불을 꽂은 후 말했다.
“구역을 나눠서 호중만과 관계된 단서가 있는지 찾아보자.”
기수는 한쪽 탁자에 놓인 종이들부터 살펴보았다.
종이마다 약재 이름이 잔뜩 적혀 있었는데 조합이 한 가지씩 달랐다.
기수는 일단 그것들을 전부 모아서 품 안에 챙겨 넣었다.
그때 추매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 저…. 시체가 움직였어.”
기수는 피식 웃었다.
“야. 죽은 사람이 움직인다는 게 말이… 헉!”
진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10여구 전부가 꾸물꾸물 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수와 사매들은 동시에 외쳤다.
“좀비다!”
“강시다!”
기수는 놈들에게 물릴까봐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사매들은 용감했다. 아무래도 좀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듯 했다.
그녀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강시들이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수가 영화에서 보던 그 어기적거리는 움직임의 좀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매들의 검이 놈들의 팔다리를 자르기도 하고 몸통이나 머리를 찌르기도 했는데 놈들은 그 상태로도 계속 덤벼들었다.
무공의 고수라고 할 움직임은 아니지만 찌르고 잘라도 계속 덤벼드는 건 확실히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로 겁나는 상황이었다.
기수가 외쳤다.
“다들 뒤로 물러서!”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나서면서 손가락 파천강기 발칸포를 발사했다.
부우욱~! 하는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시체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기수는 급히 호흡을 멈추었다.
좁은 공간에서 너무 심한 공격을 가해서 공기에 온통 좀비들의 체액이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양팔을 벌려 사매들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선 후 보니 바닥엔 끔찍한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조각난 몸들이 벌레처럼 꼬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독한 약 냄새가 동굴 안에 가득했다.
시체 냄새보다 약 냄새가 더 강하고, 바닥에 흐른 액체도 녹색을 띈 누런 빛인 것으로 보아 몸 속에 피가 아닌 약물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 아무래도 안 좋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온 여섯 사람은 숨을 몰아쉬었다.
기수는 치를 떨었다.
“그런 끔찍한 걸 만들고 있었다니….”
동매가 자기 소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좀 봐! 옷에 구멍이 났어.”
기수는 사매들에게 서로의 몸을 확인해주도록 했다.
옷이 아니라 피부에 묻어 있기라도 하면 얼른 닦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호중만은 비쩍 마르고 눈 밑의 다크써클도 심했다.
아무래도 독한 약품이 그의 몸을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각자 짝을 이루다 보니 기수는 춘매의 몸을 확인하게 되었다.
춘매가 기수의 손을 때렸다.
“어딜 만져! 그냥 눈으로 봐도 되잖아?”
“야. 우리 묘지에 와 있으니까 인생무상 느껴지지 않냐?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인데 젊을 때 열심히….”
“저리 가. 또 만진다! 또!”
“좀비, 아니 강시 찾은 기념으로 한 번 어때?”
“뭐? 기념할 게 따로 있지!”
기수는 투정을 부렸다.
“너희들 대장군부에 들어간 이후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니냐? 우리 그동안 한 번도 못 한 거 알기나 해?”
“그, 그랬나? 하지만 지금은 때도, 장소도 좀 아니잖아?”
기수도 그건 알고 있었다.
강시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들을 맞닥뜨린 마당에 그걸 하자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했다.
하지만 좀비는 좀비고 짝짓기는 짝짓기 아닌가.
오랜만에 춘매의 탱탱한 몸을 보고, 따끈따끈 몰캉몰캉한 걸 만지기까지 하니까 아래쪽으로 피가 빡! 몰려서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