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05
기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다루기 힘든 무기를 들고 강적과 맞서고 보니까 살짝 긴장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악차명이 강하기는 하지만 선풍비로 간격을 좁힌 후 분광권으로 시선을 혼란스럽게 한 후 잔백지나 파천강기를 쏘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런 승리는 어떠한 긴장감도, 쾌감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얻을 것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기수는 스스로에게 핸디캡을 준 것이다.
그 핸디캡의 이름은 유성추. 지난번에 시전자인 자신을 공격했던 몹시 까다로운 무기였다.
‘적이 2명이라고 생각하자.’
스스로를 적으로 삼는다는 게 웃기지만 그렇게 마음먹으니까 일단 부담감은 모두 사라졌다. 그가 악차명에게 말했다.
“내가 이기면 호중만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흥! 좋다. 대신 내가 이기면 네놈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혀라.”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기수는 두 개의 유성추를 오른손은 직구 그립으로, 왼손으로는 포크볼 그립으로 잡았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쇳덩어리가 야구공의 궤적을 그릴 리는 없지만 뭔가를 던지는 동작이니까 손가락 끝에 스냅 주려면 서로 통하는 게 있을 것 같았다.
악차명이 쌍검을 얼굴 앞에 X자로 교차하며 달려들자 기수는 즉시 추를 던졌다.
그러나 상대는 간단히 그것을 쳐냈다. 생각보다 내공이 더 탄탄했다.
“씨발!”
기수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황급히 왼손의 추를 던지며 줄을 당겨 처음의 추를 회수했는데, 두 번째 공격 역시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줄에 묶인 중량물 2개가 출렁거리는 동안 악차명의 칼날이 접근하자 기수는 방어할 수단이 없었다. 선풍비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엔 사매들이 있었다.
추매와 동매가 기수의 등에 손을 얹어 받아주자 악차명은 더 이상 덤비지 않았다.
기수보다 사매들을 더 껄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방금의 접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흐흐흐…. 뭐 하는 거냐? 궁주라는 자가 여인들 속으로 숨는 거냐?”
기수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양손 유성추의 줄 길이를 짧게 맞춰 잡았다.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봤을 뿐이다.”
악차명은 물러서서 기수나 나올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기수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양손의 추를 프로펠러처럼 회전시켰다.
악차명은 냉소를 지으며 거기에 맞섰다.
그러나 상황은 아까와 달랐다.
기수가 원거리에서 던지기를 포기하고 줄을 짧게 잡은 상태에서 회전시키자 두 개의 추는 팔이 연장되고 중량이 추가된 정도의 느낌으로 운용 가능했다.
악차명의 두 자루 검은 파워에서 조금씩 밀렸다.
기수는 비로소 자신감을 가지고 한 쪽 손의 줄만 조금씩 늘려 잡았다.
길고 짧은 공격이 번갈아 가해지자 악차명의 열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기수는 비로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왼손으로 회전시킨 추가 자신의 등 뒤로 회전하도록 하면서 줄을 늦추자 허리를 휘감은 뒤 악차명의 대맥혈을 제대로 강타했다.
“크윽!…..”
불의의 일격에 당한 악차명은 신음을 토하며 쓰러졌다.
유성추에 그런 류의 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맹렬한 공세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기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Yes! Yes! Yes!”
히딩크 세리머니를 흉내 내며 껑충껑충 뛰면서 사매들 쪽을 쳐다봤다.
이 자랑스러운 광경을 그녀들도 모두 목격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성추를 뒤로 회전시켜 상대를 공격.
그것도 한 방에 정확하게 요혈을 명중시킨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골대의 핫코너를 노린 무회전 프리킥이 들어간 거라고나 할까.
“봤어? 봤지?”
그러나 사매들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기수의 격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멀뚱거릴 뿐이었다.
그녀들은 기수가 유성추를 잘 쓰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무공수위로 봤을 때 원래부터 잘 썼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괜히 혼자 들떠서 춤까지 출 기세였던 기수는 슬그머니 어퍼컷 세리머니를 거두고 자세를 바로잡은 후 반신이 마비되어 버둥거리는 악차명을 발로 툭 찼다.
“야! 졌지?”
“예. 졌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부하들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사, 살려주십시오.”
기수는 그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유성추 실전 연습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 얘기해 봐. 호중만은 어디에 숨겼어?”
“그, 그는 여기 없습니다.”
기수는 유성추를 빙글빙글 돌렸다.
“이제 와서 딴 소리 하면 곤란하지.”
“하, 하지만 정말입니다. 그는 여기 와서 딱 하루만 머물고 바로 떠났습니다.”
“어디로 간다고 했는데?”
“그건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기수는 그의 말을 믿었다. 하인 대신 짐을 져 나를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쓴 사람이 자기 행적을 말해주었을 리가 없었다.
“그에게 뭘 주었지?”
“글쎄요… 별달리 준 것은…”
“받을 것도 없는데 여기로 왔을 리가 없잖아?”
“아! 약간의 돈과 배 한 척을 내주었습니다.”
“배?”
“예. 저희 방파는 경항대운하를 오르내리며 장사도 하거든요.”
기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를 탔다면 육로로 추격할 수는 없었다.
당장 북쪽으로 갔는지 남쪽으로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좋아! 이제부터 너는 호중만을 찾을 때까지 나와 동행한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가진 배 중에서 제일 빠른 배와 제일 노련한 선원을 준비시켜. 우리를 태우고 호중만을 잡으러 갈 거니까.”
“하, 하지만….”
기수는 다시 유성추를 빙글빙글 돌렸다.
“이거 저거 귀찮지? 그냥 이 자리에서 콱! 죽어버리는 게 좋겠지?”
“아, 아닙니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기수는 악차명의 팔목에 감긴 돌출식 검을 무장해제시키고 혈도를 일부 풀어준 후 바짝 따라붙어서 감시하며 준비를 하도록 했다.
배는 즉시 준비되었다.
기수 일행 여섯 명에 장사꾼 분장을 한 석초가 추가되었고 철마방에선 방주 악차명과 배를 저을 선원 여섯 명이 타서 총 14명이 배에 올랐다.
“아우야.”
“예. 형님.”
“이제부터 이 악가놈은 네가 감시해라.”
“걱정 마십시오. 제가 바짝 붙어서 딴짓거리 하면 바로 죽여버리겠습니다.”
악차명은 기수보다 석초가 더 체격도 크고 인상도 험상궂은 것을 보고 저항을 포기했다. 그가 기수에게 물었다.
“궁주님. 어느 쪽으로 갈까요?”
기수는 동전을 던질까 생각하다가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하기로 했다.
“너희 부하들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뱃사람들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부두에 풀어서 너희 배가 어디로 갔는지 소문을 들어보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악차명의 명령을 받고 선원 6명이 내려 뿔뿔이 흩어지자 석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수에게 물었다.
“형님. 저렇게 풀어줘 버리면 일월신교 내의 다른 문파들에 알리고 원군을 청하지 않을까요?”
“그러라고 해. 어차피 상관없잖아? 저들을 자극하는 목적도 있으니까.”
기수는 자기가 혈매궁의 궁주이고 호중만을 잡아오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그 의뢰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얘기해주었다.
석초는 감탄했다.
“아! 그러면 저들은 유지광의 세력을 의심하겠군요. 형님 대단하십니다!”
“내가 좀 그렇지?”
“강호의 평화를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는 극도의 위험을 감수하시다니….정말 존경합니다! 형님.”
“어! 그건….”
기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호중만을 잡아 죽이고 일월신교 내의 사도를 찾을 수 있다면 미끼 역할을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천하의 안녕을 생각하고 있었지. 일월신교의 내분을 촉발하고 더 나아가 마교를 척결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이 한 몸의 위험쯤이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네.”
“아아!…. 형님.”
뒤에서 사매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수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대장군부와 함께 일하고 있으니까 궁주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게 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기다리는 동안 악차명을 슬슬 건드렸다.
“야. 나 배고픈데, 이 고장 별미 좀 소개해 봐.”
“저… 궁주님. 호중만을 찾은 이후에 저는 살려주실 겁니까?”
“왜? 죽을까봐 걱정 돼?”
“아무래도 저는 궁주님 얼굴을 아니까…”
말해놓고 악차명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를 살려두어선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를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는 죽을 상이 되었지만 기수는 씩 웃으며 안심시켰다.
“하하! 걱정하지 마라. 난 누가 내 얼굴을 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으니까.”
“저, 정말이십니까?”
“못 믿겠다면 너한테만 보여주지.”
기수는 좌우를 살핀 후 악차명과 얼굴을 마주 하고 말했다.
“지금부터 잘 봐라.”
그리고는 역용술을 펼쳐 보였다.
“허억!…..”
악차명은 신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기수의 얼굴이 자기 얼굴과 똑같이 변했기 때문이다. 수염이 없다는 점에서 좀 달랐지만 피부 색깔과 주름까지 똑같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곧바로 석초의 얼굴로 변했다.
그러더니 전혀 본 적 없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로 차례차례 변했다가 다시 기수 얼굴로 돌아왔다.
악차명은 입을 쩍 벌린 채 넋을 놓고 있었다.
기수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지금까지의 얼굴 중에 어느 게 진짜 내 얼굴이게?”
“그, 그것은….”
“진짜 내 얼굴은 한 번도 안 보여줬어.”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 그렇습니까? 아! 정말 굉장하십니다.”
“그리고 얼굴 좀 알려진다고 대순가? 날 잡겠다고 덤비는 자들이 있으면 전부 다 죽이면 그만이야.”
악차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기수와 다섯 여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돈 받은 일 이외엔 하지 않아. 내가 받은 의뢰는 호중만을 잡으라는 것일 뿐, 너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왜 공짜로 너를 죽여주겠어?”
“그, 그렇죠? 맞습니다. 죽이실 이유가 없지요. 헤헤헤….”
살아날 길을 발견한 악차명은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내 지시에만 충실히 따른다면 호중만을 찾은 후 혈도를 풀어 자유롭게 가도록 해주마. 내가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생선을 좋아하십니까? 돼지고기를 좋아하십니까? 거위를 좋아하십니까?”
“우선 돼지고기부터 먹어볼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기수 일행과 악차명은 배를 비워둔 채로 음식점을 찾아가 제대로 된 식사를 즐겼다.
계산은 전부 악차명이 했다.
그렇게 매 끼니 찾아다니며 먹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틀만에 호중만이 탄 배의 위치가 밝혀졌다.
“호중만에게 빌려 준 우리 배를 양주에서 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 일단 양주까지 전속력으로 간다!”
악차명은 자기가 먼저 나서서 설쳐댔다.
호중만만 찾으면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방주가 재촉하니까 선원들도 배를 빨리 저었다.
기수는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탁지연은 지금쯤 어떻게 지낼까?’
그의 휘발성 메모리는 지나간 여인에 대해 막강한 이레이즈 기능을 지원하는데, 탁지연은 좀 예외였다.
일단 그녀의 아름다운 힙-라인부터 떠올랐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 허리와 이어지는 부분의 비너스 딤플까지…
하지만 그녀의 장점은 몸보다 머리였다.
생글생글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어쩌면 그리도 다양하게 밀고 당기고 자극을 가하는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1대1로만 지내면서도 다른 여자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거의)
물론 지금처럼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다섯 명의 미녀와 함께 지내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탁지연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돌아가서 유소진을 처단하고 널 구해줄게.’
수로맹에 사도가 있으니까 꼭 다시 찾아가야 할 곳이었다.
사흘 만에 양주에 도착한 일행은 그곳에서 또 상황을 알아봤다.
선원이 부두에서 수소문을 마친 후 돌아왔다.
“우리 배를 소주에서 봤다고 합니다.”
“좋아! 소주로 가자.”
배는 즉시 출항했다.
그리고 소주의 태호에 도착해서 철마방의 배를 발견했다.
악차명이 그쪽 배의 선원들을 불러서 물었다.
“호중만은 어디로 갔느냐?”
“여기서 내렸습니다.”
“언제?”
“이틀 전입니다.”
“어디로 간다고 했는데?”
“그, 그건 저희들도 잘 모릅니다. 저 길을 따라 가던데요.”
“그런데 너희는 왜 여기 있어? 이틀 전에 내려줬으면 당장 돌아왔어야지.”
“그, 그것은…. 그러니까….”
방주 안 보는 곳에 짱박혀서 놀다가 귀환하려고 했는데 딱 걸린 것이다.
악차명은 부하들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더 급했다.
“궁주님. 들으신 대로 여기서 내려줬습니다. 헤헤헤…”
“좋아. 너희들은 돌아가.”
기수는 그의 한 쪽 혈도를 완전히 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악차명은 10번도 더 머리를 조아린 후 배 2척을 이끌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기수는 보내준다고 약속했지만 사매들은 눈초리가 매서웠기 때문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좋을 일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포구에 내린 기수는 석초와 사매들에게 말했다.
“이틀 전이면 멀리는 못 갔을 거야. 자! 찾아보자고.”
기수는 선원들이 가리켰던 길을 따라 경공을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