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11
두 사람은 곧바로 소문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탁지연은 예전 양삼의 모습으로 역용하고, 기수는 본래 모습을 되찾은 후 무당산 주변에 자리 잡은 삼황맹과 녹림72채 무리들을 찾아다니며 때려주었다.
기척을 감지하여 찾아낸 후 그들 앞에 짠! 나타나서,
“나는 기수다! 너희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 연합은 내 손으로 부숴주마!”
라고 선언한 다음 둘이서 신나게 두들겨 패주는 일을 반복했다.
낮에 그렇게 놀고, 밤엔 객잔을 잡고 들어앉아 밀린 회포를 푸는 나날이 반복되다가 마침내 기수의 기감을 자극하는 고수가 출현했다.
“나타났군.”
“예? 어디에요?”
“저 쪽 방향에서 느껴져. 그녀의 기도가 분명해.”
탁지연은 기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봤지만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예상보다 빨리 왔네요. 난주에서 여기까지면….”
“그만큼 원한이 깊다는 얘기겠지.”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탁지연에게 지난 며칠간은 꿈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 결전을 맞이하게 되니 다시 걱정이 앞섰다.
“적당한 장소를 잡고 그녀를 부르면 돼. 다 잘 될 거니까 안심해.”
기수는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인적 없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간단히 무극환혼진을 만들었다.
“넌 이 바위 뒤에서 구경해.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지게 되면 공연히 나서지 말고 바위 뒤로 돌아 앉아서 유소진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 네가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녀는 너를 발견하지 못 할 거야.”
“기소협, 그런 말씀 싫어요.”
기수도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보험이란 것도 필요한 법이다.
적에게 일타 쌍피의 기회를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네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해야 내가 마음이 놓여서 제대로 싸울 수 있어.”
“하지만 내가 힘을 보태면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 계획대로 해 줘.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시체 두 구가 이런 곳에 뒹구는 것보다는….”
기수는 말을 멈추었다. 무심코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가 보니 그녀에게 너무 심한 부탁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탁지연은 기수의 목에 매달려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의 대결을 벌이는데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조금만 더 고수였다면….’
그러나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달래서 바위 뒤에 있게 한 기수는 공터 한 가운데서 심호흡을 하고 북궁심법으로 몸 상태를 차분하게 점검했다.
“좋아! 시작해볼까.”
기수는 내공을 집중하여 호전적인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고수라면, 그리고 남의 진기 빨아먹는데 이골 난 유소진이라면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을 강력한 기도였다.
기수는 눈을 감고 상대의 반응을 확인해보았다.
‘온다!’
그녀의 기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사도와 마주섰을 때의 반응까지 함께 일어났다.
잠시 후.
은밀한 파공음과 함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소진은 기수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누구야? 정말 너로구나.”
“후후… 오랜만이군.”
유소진은 냉소를 지었다.
“흥! 명이 아주 질긴 놈이구나.”
“적어도 네 손에 죽을 사람은 아니지.”
“동시에 멍청하기도 하고.”
“내가 멍청하다고?”
“어렵게 살아난 목숨, 다시 내게 바치려고 하니 말이다.”
기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멍청한 건 너지. 내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 위해서 천 리 먼 길을 마다않고 부지런히 찾아왔으니까.”
함정이란 말에 유소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좌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기수 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호호호!… 정말 웃기는구나. 한 가지만 물어보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불러낸 것이냐?”
기수는 씩 웃었다.
“글쎄. 뭐, 자신감 아닐까?”
유소진은 어이없다는 투로 웃었다.
“이제 보니 너. 제대로 미쳤구나. 호호호!…”
“뭐라고 해도 좋아. 난 내 걸 빼앗긴 채로는 못 살아.”
기수는 검을 들어 유소진을 겨누었다.
유소진 역시 채찍을 풀어 허공에서 한 바퀴 휘둘러 짝! 하는 파공음을 냈다.
상대를 노려보면서, 기수는 긴장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 대결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녀의 말처럼 정말 멍청한 짓을 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탁지연에게도, 사매들에게도, 모든 것을 남겨주신 사부님에게도 미안한 일이 될 것이었다.
‘집중하자!’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것이었다.
유소진은 신중했지만 다시 만난 오빠의 원수를 한시라도 빨리 제압하고 싶었다.
그녀의 채찍이 먼저 허공을 갈랐다.
기수의 장검도 즉시 거기에 대응해 파공음을 내기 시작했다.
채찍과 검의 격돌.
유소진의 채찍은 강력하게 기수의 급소를 노려왔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이라 기수는 살짝 당황했다.
30여 초식을 교환한 후 그녀가 말했다.
“정말 신기하구나. 어디서 그런 내공을 다시 얻었지?”
유소진은 통상적인 공격으로 일단 기수의 능력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기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에 싸울 때는 자신의 우위를 자신했었는데, 지금은 흡정공 없이 실력 대 실력으로 붙어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너무 성급했나?’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
기수는 이를 악물고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자 유소진의 눈빛이 변했다.
그녀는 탐욕스런 표정을 짓더니 입술로 혀를 핥았다.
기수의 내공에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채찍 끝이 변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끝이 갈라지더니 그 하나하나가 머리카락처럼 가늘어졌다.
‘시작됐구나!’
기수는 검으로 채찍을 쳐내면서 속으로 북궁천에게 배운 흡정공을 한 번 더 돌이켜 기억했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다.
머리카락처럼 가늘어진 채찍은 처음에 기수의 검에 감기더니 차츰 손으로, 손목으로, 팔꿈치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휘감겨왔다.
따끔한 느낌들이 이어지자 기수는 바짝 긴장하며 구결을 외웠다.
유소진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제 네가 벗어날 방법은 없다. 호호호!…. 멍청한 놈!”
“과연 그럴까?”
기수는 팔 전체에 채찍이 휘감긴 것을 확인한 후 검을 놓고 양손으로 채찍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흡정공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순간, 유소진의 표정이 굳었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그녀가 당황할 만도 했다.
진기가 기수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하! 어떠냐? 이제 누가 함정에 빠진 거지?”
유소진이 놀라고 당황하는 만큼 기수는 기가 살았다.
빨대로 콜라를 빨듯 쪽! 쪽! 빨려 들어오는 유소진의 진기.
그 양과 순도 면에서 음양대법을 훨씬 능가했다.
시간만으로 비교하면 50배, 많으면 100배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유소진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과연 다시 덤빌 만 하구나. 흡정공을 익혔다니…”
기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저 년이 왜 웃지? 무슨 비장의 기술이라도 있는 걸까?’
순간, 빨려 들어오던 진기 흐름이 점점 느려진다 싶더니 서서히 멈추었다.
유소진의 미소가 짙어졌다.
“하지만 네가 어느 유파의 기술을 익혔건 나를 능가할 수는 없다. 혼세흡정공이 최고이기 때문이지. 호호호!….”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진기 흐름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기수는 당황했다.
그러자 빨려 들어가는 흐름이 더욱 빨라졌다.
‘안 돼! 이건 심리전이다.’
기수는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녀의 말처럼 무슨 특정 유파의 흡정공이 더 강하고 약하고 할 이유가 없었다. 진기 흐름의 통로가 연결된 이후에는 각자의 의지력 균형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뿐이었다.
일반적인 무공 대결과 다른 점은, 승점 경쟁을 벌이는 두 팀의 맞대결이 승점 6점짜리라고 불리듯이 한 쪽이 잃은 만큼 반대편이 강해지는 식이라 흐름이 몹시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 유소진이 대책 없이 빨린 것은 그녀가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그 흐름이 멈춘 것은 유소진이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아무 것도 없으면서 뭔가 있는 것처럼 미소로 뻥카를 쳤는데 기수가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치 자기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로 혼란을 주어 흐름을 완전히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기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대로 당하면 안 돼!’
그러나 예전에 처음 당할 때보다 속도만 약간 늦춰졌을 뿐, 돌아선 흐름을 다시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다.
혼세흡정공의 승리라고 하기보다는 유소진의 노련한 운용능력의 승리라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기수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그때, 바위 뒤에서 탁지연이 달려 나와 유소진을 검으로 찔렀다.
“죽어라! 못된 년!”
기수가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유소진은 깜짝 놀랐지만 즉시 냉정을 되찾았다.
“흥!”
그녀가 소매를 휘두르자 안타깝게도 탁지연의 기습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탁지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기수를 구해야한다는 일념에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안 돼! 지연아. 너라도 어서 피해!”
기수가 큰소리로 외쳤지만 탁지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기수는 그녀의 뜻을 헛되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식을 집중하고 흡정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유소진은 노련했다. 훼방꾼으로 인해 속도가 늦춰지긴 했지만 흐름의 방향만큼은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흐름을 놓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조급해 하는 탁지연이 먼저 당할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바로 그때.
기수는 한 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유소진이 나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야!’
탁지연이 만들어준 상황이었다.
기수는 동창의 천호 진유룡이 자신에게 사용했던 붉은색 암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소진의 혼세흡정공에 실어 보냈다.
“끄아아악….!”
소름끼치는 비명.
유소진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기수는 탁지연에게 외쳤다.
“됐어! 그만 하고 물러서!”
탁지연은 황급히 손을 멈추었다. 기수의 목적이 빼앗긴 진기를 되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유소진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기수는 유소진의 진기를 강력하게 빨아들였다.
그 안엔 붉은 암경도 섞여 있었지만 기수에겐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예전에 고통을 참아가며 분석하고,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경기까지 연습을 했기 때문에 단전이 따끔거리고 심장이 뻐근했지만 참을 만 했다.
기수가 진기를 빨아들이자 유소진도 약간 정신을 차렸다.
끔찍한 고통을 주던 암경을 상당 부분 기수가 도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유소진은 진기 욕심을 버렸다.
지금은 살고 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녀는 채찍을 버리고 곧장 돌아서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흥! 세상 일이 다 네 마음대로 다 될 것 같지?”
선풍비로 유소진을 바짝 따라붙은 기수는 그녀의 뒤꿈치를 발로 걷어찼다.
유소진은 바닥에 엎어졌고, 기수는 그녀의 등에 올라타고 앉아 명문혈에 자기 장심을 갖다 댔다.
흡정공을 제대로 익혔기 때문에 그녀의 채찍이 아니더라도 연결이 가능했다.
“아악!… 사, 살려주세요!”
유소진이 애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암경에 타격을 받은 이후 자신의 혼세흡정공이 이길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기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여자라고 해도 죽일 수밖에 없어. 고통은 느끼지 않게 해주마.”
“제, 제발….”
유소진은 어떻게든 진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시간문제였다.
기수는 마침내 그녀의 단전을 텅 비워버렸다.
그리고 껍데기만 남아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뒤통수, 척추와 두개골이 이어지는 위치의 풍지혈을 검지에 파천강기 일으켜 단번에 찔러주었다.
푹! 소리와 함께 유소진은 즉사했다.
기수는 일어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장소성을 토하기 시작했다.
“우워어어어!……..”
사도를 죽인 뒤엔 강한 희열에 사로잡히는 게 보통이지만, 특히 이번엔 단전 가득 온갖 진기들이 가득 들어차서 소리가 더 우렁차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