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14
기수는 일단 사람들 눈을 피해 밖으로 나가도록 한 후 다섯 사매들에게 말했다.
“야. 지연은 집도 절도 없는 딱한 신세야.”
“그건 그녀 사정이지. 그리고 딱하기는 뭐가 딱해? 척 보니까 성질 더럽게 생겼고, 싸가지도 없는데.”
그러자 탁지연이 쏘아붙였다.
“욕은 네가 먼저 했잖아!”
기수는 그녀가 겁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기라도 비슷한 파워를 가진 남자 패거리 5명과 마주 서 있다면 겁이 날 것 같았다.
“어쨌거나 혈매궁 궁주로서 분명히 선언했어. 내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혈매궁을 떠나.”
“궁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나 진심이야.”
기수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다섯 사매들 모두 기가 죽었다.
탁지연이 기수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기소협.”
그러자 풍매가 그녀를 노려보며 물었다.
“왜 우리 궁주를 기소협이라고 부르지?”
그러자 탁지연이 상황을 살피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너희들은 우리 기소협의 본명도 모르는구나?”
자신의 승리라고 자랑스러워하는 말투였다.
다섯 사매의 표정이 변했다.
“본명이라니? 궁주. 양칠이 본명 아니었어?”
기수는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사, 사실… 난 이름이 여러 개야.”
“본명이 뭔데?”
“그게 좀 복잡해. 원래는 양씨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기씨가 되었거든.”
그러자 사매들뿐만 아니라 탁지연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양씨였다고요?”
풍매가 그녀에게 한 마디 했다.
“흥! 너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네.”
여섯 명이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보자 기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대답했다.
“양기수. 그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야. 하지만 지금은 기씨지.”
사매들과 탁지연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수는 주민등록증에 찍힌 이름이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한 글자가 사라져버린 사실을 설명해줄 방법이 없었다.
탁지연이 말했다.
“어릴 적에 기씨 집안에 양자로 들어갔던 거군요? 그렇죠?”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렇게 알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여하튼 난 양칠로 불리는 게 가장 좋으니까 그렇게 불러줘.”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대충 그렇게 알라는 건 또 뭐에요?”
“진짜 본명은 얘기해줬잖아. 하지만 여기선 기씨니까 나도 좀 복잡해. 뭐라고 부르건 실체는 달라지지 않으니까 상관없잖아.”
탁지연은 자기가 사매들에 비해 나은 게 없다는 사실에 약간 의기소침해졌다.
풍매가 기회라 생각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너. 기소협의 회음혈에…”
그러자 탁지연이 잽싸게 말을 끊었다.
“나도 알아. 점 있는 거.”
“헉!”
기수는 황당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저들이 안단 말인가.
‘나한테 거기 점이 있었나?’
회음혈이라면 손거울을 대고 일부러 살펴보지나 않는 한은 찾을 수 없는 위치였다.
사매들과 탁지연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양측이 기수와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기수는 살짝 부끄럽기도 해서 논란 종식을 선언했다.
“탁지연을 우리 혈매궁의 일곱 번째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으니까 이것들을 그녀에게 줄 거야. 사숙도 자신의 작품이 사라지는 것은 바라지 않으실 거야.”
그러면서 기수는 하매에게 남겨졌던 검술과 매화육궁진이 적힌 책자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탁지연에게 주었다.
탁지연은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받았다.
그리고 사매들이 뭔가 엄숙한 표정으로 변하는 걸 발견했다.
검술과 진법에 뭔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풍매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흥! 그걸 펼칠 능력이 되기나 할까?”
탁지연은 대답하지 않고 책자를 잘 간수했다.
자기가 혈매궁이란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것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다섯 사매들과 잘 지내는 건 어디까지나 자기 하기 나름이었다.
궁주라고 해도 그런 걸 명령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기수는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던 책자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양측의 날 선 분위기가 진정되자 몹시 기뻤다.
“자! 이제 강시를 없애러 가자!”
안이 어수선할 때는 밖에서 적을 찾아 단합을 도모하는 게 기본 아니겠는가.
기수는 멀찍이 있는 석초를 불러 말이건 배건 구해오라고 시켰다.
말을 타고 가는 내내 탁지연과 사매들 사이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기수는 관심 없는 척 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저녁이 되어 객잔을 잡게 되자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탁지연을 혼자 재우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사매들 분위기를 보니 자기가 탁지연과 한 방을 쓰면 두 사람이 다 위험할 것 같았다.
결국 기수는 석초와 한 방을 쓰고 나머지 3개의 방은 탁지연과 사매들이 나누어 쓰기로 결정되었다.
탁지연과 한 방에서 자게 된 사람은 춘매였다.
그녀는 초장부터 탁지연을 휘어잡으려고 했다.
“내가 혈매궁에서 궁주 다음 가는 서열이다. 나이도 가장 많고.”
“그렇군요.”
“앞으로는 나를 사저라고 불러라!”
“예. 사저.”
탁지연은 망설임 없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상대가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자기도 예의를 지키겠다는 표시였다.
춘매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아주 경우가 없는 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탁지연은 시키지 않아도 춘매의 침구를 정리해주었다.
각자 자기 자리에 눕고 불이 꺼진 방.
춘매는 탁지연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탁지연은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풍매와 동갑이구나. 설매보다는 위고.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입문 순서가 나중이니까 그들 둘도 사저라고 불러야 한다. 알았지?”
“예. 당연히 그래야죠.”
춘매는 다른 질문을 했다.
“궁주와 정혼을 했다고?”
“사실은…. 기죽기 싫어서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랬군. 그럼 부모님은?”
탁지연은 잠시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제가 보는 앞에서 원수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어요.”
“저런!….”
“하지만 궁주가 도와준 덕분에 복수를 했어요.”
“그거 다행이구나.”
탁지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고 춘매는 그녀 처지를 동정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길을 가는 내내 춘매는 탁지연과 같은 방을 썼다.
기수는 탁지연이 하루 종일 춘매를 사저라 부르며 따라붙는 걸 보고 생각했다.
‘확실히 머리가 좋아. 사매 중 최고 서열이 누군지 알아보고 곧장 줄을 서버리네.’
그러나 나머지 4명은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특히 풍매와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하루는 말을 쉬게 하려고 잠시 멈춘 사이 탁지연이 하매의 검술을 연습했다.
그러자 풍매가 검을 뽑고 다가가서 말했다.
“내가 연무를 좀 도와줄까?”
“필요 없어.”
“왜 그래? 얼굴에 검상이라도 입을까봐 겁 나?”
“저리 가래도!”
풍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탁지연이 초식을 연습할 때마다 비웃었다.
“거기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멍청아.”
탁지연도 결국 폭발했다.
“넌 얼마나 잘하나 보자.”
“너보다야 백 배 낫지. 잘 봐.”
풍매는 능숙하게 검초를 펼쳐냈다.
백문조가 남긴 무공은 여섯 종류 모두 제각기 다른 변화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 중 팔할 정도는 공통된 기본동작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탁지연은 책자의 구결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풍매는 시범만 보이는 게 아니라 검으로 탁지연의 얼굴을 찌르려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쳤다.
발끈한 탁지연은 검으로 그녀의 검을 쳐냈고, 곧바로 격검이 펼쳐졌다.
석초와 계획을 논의하던 기수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뭐 하는 짓들이야! 당장 멈춰!”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걱정 마! 궁주. 연공하는 것뿐이니까.”
풍매는 그렇게 말했지만 검에 실린 살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탁지연은 당장이라도 풍매의 검에 찔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서 하매의 검법보다는 자신에게 익숙한 월영검범으로 싸웠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풍매의 검술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그 검초들을 모두 받아넘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기수 쪽을 힐끗 보니까 그가 미소 짓고 있었다.
‘아! 음양대법.’
그 덕분에 증진된 내공이 실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탁지연은 신이 나서 풍매를 밀어붙였다.
방어만 하던 그녀가 공세로 전환하자 당사자인 풍매는 물론 다른 사매들도 모두 놀랐다. 탁지연이 그 정도 실력을 지녔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풍매는 입술을 깨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탁지연의 공세도 주춤했다.
“자! 이제 검술연마는 그만…”
기수가 끼어들어서 둘의 연공을 빙자한 싸움을 말렸다.
그 사건 이후 사매들의 탁지연 보는 눈은 약간 달라졌다.
적어도 어느 정도의 존중은 받을만 하다고 판단한 듯 했다.
기수는 길을 가는 내내 밤마다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녹여냈다.
사매들은 탁지연 데려온 게 미워서, 그리고 탁지연은 춘매와 함께 있느라 6명 중 누구도 잠자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수에게 기회를 주었다.
마침내 무석산에 도착했을 때는 기수의 상단전과 중단전에 있던 진기들이 모두 녹아서 하나의 진원지기로 가득 찼다.
기수는 포만감을 느끼는 동시에 약간 아쉽기도 했다. 자기 안에 들어 있던 조민, 조현 자매와 혈천제의 기운이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공 증진의 기쁨이 더 컸다.
“박피왕? 후후… 9마왕 한꺼번에 다 덤비라고 해.”
그는 석초와 사매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하나 된 진기를 운기해보았다.
‘예전에 최소 10, 최대 20갑자였으니까 지금은 거기에 북궁심법까지 더해서 적어도 15에서 30갑자는 되겠지? 게다가 80% 제한이 사라졌으니. 후후후….’
그러나 막상 운기를 하고 보니까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30갑자는 무리일 것 같았다.
‘왜 이러지?’
아무래도 유소진한테 진기를 빨릴 때 손실이 있었고, 그녀가 일부 녹여먹었고, 다시 빼앗아 오면서 또 일정 비율 손실이 생긴 것 같았다.
‘아! 억울해…’
앞으로는 절대로 빼앗기지 말자는 각오를 다졌다.
어쨌거나 지난번 박피왕과 겨룰 때에 비해 내공이 2배 이상 깊어진 건 분명했다.
‘꽉 채운 20갑자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군. ’
정확하게 재는 측정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가부좌를 풀고 일어선 기수는 당당히 앞장서서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지난번의 큰 바위가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았다.
석초가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 어째서 그 바위가 보이지 않는 걸까요?”
“놈들이 기문진을 바꿔서 배열한 모양이야.”
“아! 겁을 먹은 거군요. 하지만 작업장을 옮기진 않았겠죠?”
“강시를 몇 구나 제작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을 다 옮기려면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사람들 눈도 피하기 어려울 거야. 그리고 떠났다면 기문진을 뭐 하러 공들여 바꿔놓았겠어?”
“그렇군요. 그럼 시간을 좀 주십시오.”
“어쩌려고?”
“제가 도지휘사사로 찾아가서 병력을 좀 빌려 오겠습니다. 기문진 파해가 어려우면 병사들을 동원하여 땅을 갈아 엎어버리죠 뭐.”
“하하! 그거 참 간단한 방법이군.”
무림인과 군인은 생각의 규모 자체가 달랐다.
기수가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
“병력을 얼마나 데려올 수 있지? 그리고 기간은?”
“글쎄요. 이 산을 엎어버리려면 오천에서 일만은 필요할 것 같은데… 그 정도를 동원하고, 훈련일정을 짜고, 군량과 군막을 조달하려면 아마 보름에서 한 달은….”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달이면 강시가 완성되고도 남겠다. 그렇게 오래 걸려선 안 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기문진 파해법을 알아내지 않는 한….”
기수는 잠시 산 정상 쪽을 올려다본 후 말했다.
“군대가 왔다고 생각하고 땅을 갈아엎으면 되지 뭐.”
그리고는 춘매에게 물었다.
“우리 음식 싸온 게 얼마나 되지?”
“물, 술, 고기, 만두 모두 넉넉해. 그건 왜 물어?”
“배고 고파질 것 같거든. 자! 다들 뒤로 물러서.”
기수는 내공을 끌어올린 후 양손 손가락에 진기를 집중했다.
완성된 내공으로 파천강기를 제대로 펼쳐보기로 한 것이다.
“자! 간다!”
기수는 숲을 향해 파천강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욱~!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바위가 박살나고 나무가 둥치 째로 부러져 산산 조각났다. 뿐만 아니라 흙도 쟁기질 한 것처럼 파여서 잠깐 사이에 주변 지형이 달라져 버렸다.
석초와 탁지연, 그리고 다섯 사매들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춘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구, 궁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예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동굴 벽에 손가락 자국 낸 것과 산림을 개간하는 지금과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