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4
모두가 한 차례씩 돌아가고 다시 풍매의 차례가 되었을 때, 대도왕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기합과 함께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 주변에 뭔가 김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피부의 색이 달라졌다.
기수가 외쳤다.
“조심해!”
대도왕의 기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감지한 것이다.
풍매 역시 상대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거기다 기수의 충고까지 더해지자 그녀는 일단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했다.
“크하하!…. 네년들이 감히 나 대도왕의 적수가 될 줄 알았느냐?”
대도왕은 광소를 터뜨리며 칼을 휘둘렀다.
풍매는 그의 과격한 공세에 하마터면 어깨를 베일 뻔 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피하고 보니 상대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흥! 무모한 놈.”
풍매는 대도왕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순간, 쨍! 소리와 함께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풍매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상대의 급소를 찔렀는데 검에 닿는 느낌은 사람의 살이 아니라 무슨 강철 덩어리를 찍은 것 같았다.
‘금강불괴?’
소림사 사람이 아니니까 무공의 이름은 다르겠지만, 비슷한 계열의 외공을 익힌 게 분명했다. 대도왕의 피부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상황은 위급했다. 놀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대도왕은 풍매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갈 것을 알고 이미 몸을 회전시켜 큰칼로 그녀의 목을 베고 있었다.
풍매는 죽음을 예감했다.
그녀로서는 그 공격을 막을 무기가 없었고, 피할 각도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대도왕의 칼이 불꽃을 내고 튕기며 칼의 경로가 빗겨나 풍매의 목이 아닌 머리카락 장식을 베고 지나갔다.
기수가 유성추를 던진 것이다. 동시에 기수는 선풍비로 몸을 날리고 있었지만 대도왕의 다음 동작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대도왕은 갑작스런 방해에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개의치 않고 다음 동작을 이어 풍매의 어깨를 다시 베어 내려갔다.
노련한 마두답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풍매는 아슬아슬하게 목이 잘리는 상황을 면했지만 여전히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도왕의 비스듬히 베어 오는 칼날 각도는 현재 풍매의 자세에선 가장 피하기 어려운 각도였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종아리를 걷어차서 쓰러트려 버렸다.
풍매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대도왕의 칼을 피할 수 있었다.
자기 힘과 자세로는 불가능한 동작이 외부의 도움 덕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저를 해치지 마라!”
순간적인 기지로 풍매를 쓰러트리고 대신 대도왕을 공격하는 사람은 바로 탁지연이었다. 사매의 위험을 보고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움직인 것이다.
대도왕은 호통을 쳤다.
“오냐! 네 년부터 죽여주마. 어차피 하나도 살려두지 않을 거니까.”
대도왕은 칼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자신의 호신강기엔 지속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바짝 긴장한 탁지연은 상대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자신의 검으로 곧장 대도왕의 가슴을 찔렀다.
대도왕은 냉소를 지었다.
“흥!”
동료가 이미 실패한 방법을 또 다시 쓰는 그녀를 비웃는 것이었다.
푹!…..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탁지연의 검이 그의 늑골 사이로 파고든 것이다.
대도왕은 눈을 부릅떴다. 호신강기가 깨졌다는 사실에 놀라서 검에 찔린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탁지연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상대가 강철갑옷 같은 호신강기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가 아는 무공 중 무기의 끝에 한 자 정도 진기의 날을 더하는 파천강기를 썼는데 그게 통한 것이다.
탁지연은 즉시 검을 뽑아 대도왕의 심장을 노리고 다시 찔렀다.
“으윽!…..”
대도왕은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지만 정신적 충격 때문에 몸 동작이 둔했다.
결국 그는 서너 번 더 찔린 후 비틀거리며 물러서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가 손으로 가린 가슴에선 피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심장을 찔린 게 분명했다.
도와주러 왔던 기수도, 목숨을 구함 받은 풍매도, 다른 사매들도 모두 탁지연이 대도왕을 이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네, 네 년이 감히 노부를….”
대도왕은 원한 맺힌 시선으로 탁지연을 노려보다가 마침내 쿵! 소리를 내며 엎어졌고, 그 거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괴, 굉장해!”
기수는 탁지연이 파천강기를 썼음을 한 눈에 알아봤다.
어찌 보면 대도왕이 자신의 호신강기를 너무 믿고 허술하게 대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구마왕 중 하나를 쓰러트린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기수는 달려가서 그녀를 안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탁지연을 끌어안은 사람이 있었다.
“고마워!”
풍매였다. 그녀는 죽음 직전에 살아난 흥분과 환희로 탁지연을 얼싸안았다.
“고, 고맙기는… 너라도 나를 위해 이렇게 해줬을 텐데…”
탁지연은 머뭇거리다가 역시 손을 뻗어 풍매의 등을 안았다.
사매들과 몹시 친해졌지만 딱 한 사람, 풍매만은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자신을 안은 팔 힘을 통해 그녀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수는 팔을 벌린 김에 두 사매를 한꺼번에 안아주었다.
“다행이야.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더불어 탁지연이 사매들과 완전히 하나가 된 것 같아 흐뭇했다.
세 사람의 포옹이 끝나자 춘매가 탁지연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저 자의 호신강기는 어떻게 뚫은 거야?”
탁지연은 숨김없이 얘기해주었다.
“파천강기라는 일종의 검강 같은 건데…. 호신강기 뚫는데 이 정도로 효과가 뛰어날 줄은 몰랐어.”
“어떻게 벌써 검강을 만드는 게 가능해?”
“정확하게 검강은 아니고….”
탁지연은 기수 쪽을 봤다. 설명을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특별히 진기를 뭉쳐서 이 정도 길이의 날을 만드는 기법이야.”
기수는 양손으로 30cm 정도의 간격을 만들어 보였다.
설매가 말했다.
“궁주! 우리도 가르쳐 줘!”
그녀뿐만 아니라 사매들 모두 배우고 싶어 했다.
기수는 이번 기회에 탁지연의 역할을 더 강화해주고 싶었다.
“난 안 써서 방법을 잊어버렸어. 지연에게 배워.”
5명의 시선이 탁지연에게 쏠렸다.
탁지연은 씩~ 한 번 웃은 후 말했다.
“일월신교 놈들을 물리친 후에 자세히 가르쳐줄게.”
사매들 모두 기뻐하고 감사인사를 했다.
기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탁지연을 봤다.
처음 혈매궁에 들어왔을 때는 생사를 걱정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매화 육궁진의 일원으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술기운을 빌어 침상의 주도권을 쥐는가 싶더니 좋은 머리로 궁의 대소사 결정에 참여하고, 이제는 무공 선생의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다섯 사매들 모두에게 사랑받게 된 것은 정말 대단했다.
탁지연이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놈들에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게 좋겠지?”
그러자 풍매가 자기 몸무게만큼 무거워 보이는 대도를 들어서 대도왕의 목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일행은 그의 머리와 칼을 들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대도 끝에 잘린 머리를 찍어 전망대에 높이 세우자 혈매궁 부하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 승리의 기쁨을 표시했다.
반대로 일월신교 진영에선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대도왕이다!”
“대도왕이 당하셨다!”
일월신교 진영이 크게 술렁이고 혼란에 빠졌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풍도왕이 앞으로 나서서 금속 장갑 낀 손을 들어 기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대도왕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하!…. 보고도 몰라서 묻느냐? 그의 어깨 위에 불필요하게 달려 있던 짐을 덜어주었다.”
“뭐, 뭣이라고?”
“후후…. 머리란 건 쓰라고 있는 건데, 멍청하게 우리 기문진 안에 제 발로 기어 들어왔으니… 그런 머리를 계속 붙여놔서 뭐 하겠느냐?”
“으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풍도왕과 대도왕은 비록 각자 섬기기로 한 주인이 갈리는 바람에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그보다는 전우로 함께 한 시간이 훨씬 긴 친구 사이였다.
막상 대도왕의 목이 잘린 모습을 보니까 그는 분노를 이길 수 없었다.
“당장 내려와라! 승부를 가리자!”
기수는 피식 웃은 후 대답했다.
“싫다.”
“뭐, 뭐라고?”
“싸우고 싶으면 네가 진 안으로 들어와라.”
“네놈들이 그 안에 무슨 함정을 파놓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들어간단 말이냐?”
“그럼 나는 너희 부하들로 가득한 그곳에 왜 가겠느냐?”
풍도왕은 말문이 막혔다.
기수가 약간 어조를 부드럽게 해서 말했다.
“네가 용기를 내어 들어온다면 내가 일 대 일로 상대해주겠다. 다른 누구의 방해나 도움도 없이 실력으로 싸워보자.”
정말 그러고 싶었다.
대도왕과의 대결이 사매들의 실전경험을 쌓아주고 탁지연으로 하여금 사매들과 하나 되는 기회를 주었다면, 자기는 얻은 게 없었다.
풍도왕과 싸워서 꼭 재미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풍도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대도왕이 당한 게 실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요사스러운 기문진이 그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에 당한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기문진 안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사내라면 당장 내려와라!”
기수는 그가 같은 말을 되풀이하자 입 아프게 더 떠들 필요 없다 생각하고 욕 잘 하는 부하들에게 전망대를 넘기고 산채로 올라갔다.
산채에 도착하자 탁지연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궁주님. 우리 승전 기념해야죠?”
“기념?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호호!….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요?”
“좋아… 목욕부터 하자고.”
기수는 사매들에게 표창장 수여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간, 풍도왕은 병력을 퇴각시켰다.
대치한 상태로 욕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득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도왕의 부하들을 불러 자신의 지휘계통으로 들어올 것을 명했다.
그러나 편이 갈려 있었기 때문에 그 제안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우리 대왕님의 복수에 나서지 않으시는 겁니까?”
“두 분의 우정이 그 정도였습니까?”
“혹시 혈매궁주를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듣다 보니 같은 편을 때려죽이게 될 것 같아서 그들을 일단 모두 물러가도록 했다.
그리고 풍도왕은 보고서부터 썼다.
하나는 교주에게, 다른 하나는 유지상에게, 그리고 세 번째는 유지광에게 가는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유지광 진영이 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혈매궁이라는 외부의 강적을 만나게 되었으니 차기 교주가 누가 되느냐는 나중 문제였다. 지금은 일월신교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의 보고서가 전서구를 타고 날아간지 하루만에 답신이 왔다.
유지광이 가장 먼저 답장을 보내왔다.
탈각왕과 마추왕을 보낼 테니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그들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됐어!”
풍도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탈각왕은 일월신교 내에서도 지략가로 유명했다.
그라면 이 정체불명의 해괴망측한 진을 파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되었다.
그리고 마추왕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장법 달인인 동시에 산을 무너뜨릴 힘을 가졌다는 폭약 제조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들이 와준다면 혈매궁의 조잡한 수작은 단번에 깰 수 있을 것이었다.
하루 뒤엔 교주의 답신도 도착했다.
전권을 위임할 테니 힘을 하나로 모아 조속히 혈매궁 궁주를 잡아 대도왕의 복수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풍도왕 입장에선 그것도 반가운 서찰이었다.
탈각왕과 마추왕이 한꺼번에 오면 이번 혈매궁 멸문 작전의 지휘권은 그들 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컸는데 교주의 명령이 내려왔으니 자기가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 유지상의 답신도 도착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도왕이 죽었다면 유지광 측의 세력이 약화되었는지 확인하고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차기 교주로 모시려 하는 건가?”
일월신교를 떠받치는 아홉 개의 기둥 중 하나가 부러졌는데 동생의 세력이 약화된 것을 기뻐하는 투의 편지라니. 기가 막혔다.
풍도왕은 일단 이곳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지상의 문제는 나중에 만나 조언을 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난번에 불손하게 굴었던 대도왕의 부하들을 불러 교주의 명령을 보여주고 정신부터 새로 다잡았다.
“지금부터 누가 큰 도련님 편이고, 누가 둘째 도련님 편이냐 하는 생각은 모두 잊어버려라! 오로지 혈매궁 년놈들을 모조리 잡아 죽일 때까지 하나의 생각으로 뭉쳐서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알았느냐?”
“예! 알겠습니다.”
다들 군말없이 따르는 걸 보니 교주의 권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풍도왕은 전체 인원을 파악하고 명령체계를 새로 만든 후 두 마왕을 기다렸다.
탈각왕과 마추왕은 소수 정예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상보다 일찍 소항산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