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5
풍도왕은 산 아래까지 내려가서 탈각왕과 마추왕을 맞이했다.
탈각왕은 자그마한 키에 턱이 뾰족하고 계속 눈빛을 반짝이는 노인으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였고, 마추왕은 수염이 꼬불꼬불한 회회교 계열 남자로 체격이 당당했다.
“두 분 다 잘 오셨소.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심각합니다.”
“대도왕이 죽었다는 게 사실이오?”
대뜸 묻는 마추왕의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한 게 느껴졌다.
풍도왕은 두 사람이 친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왜 대도왕이 죽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느냐고 자신에게 힐책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소이다. 혈매궁 주변엔 도무지 뚫을 수 없는 절진이 펼쳐져 있는데, 대도왕이 자신의 용력을 믿고 말릴 틈도 없이 뛰어들더니 결국 목이 잘리고 말았소.”
“그럼 그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보지 못했단 말입니까?”
“얘기하지 않았소. 절진이 펼쳐져 있다고.”
마추왕은 탈각왕을 쳐다봤다.
진법이라면 일가견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탈각왕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일단 올라가서 봅시다.”
세 사람은 기문진 펼쳐진 지점에 도착했고, 탈각왕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표정은 여러 번 변했다.
“어떻습니까? 파진할 수 있겠습니까?”
풍도왕과 마추왕이 번갈아 질문을 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간. 산 위의 전망대에서 기수도 탈각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서 탁지연이 말했다.
“이렇게 빠른 시일에 마왕이 둘이나 도착한 걸 보니, 저쪽에서도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것 같은데요?”
탈각왕과 마추왕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구마왕의 일원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강렬한 기도를 내뿜고 있었다.
기수는 자신 있었다.
“누가 와도 마찬가지야. 무극환혼진은 뚫리지 않아. 설령 작은 틈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우리는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대가리 들이미는 순서대로 박살내면 그만이야.”
추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사부님과 사숙은 대단해. 이런 절진을 남기시다니…”
기수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가 중원무림에 온 이후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게 바로 기문진이었다.
꽃보다 아름다은 미녀자매와 헤어진 것도 기문진 때문이고, 제갈세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된 이유도 기문진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손으로 기문진을 펼쳐서 일월신교라는 강적의 진격을 차단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제 나에게 부족한 게 뭐지?’
뭔가 하나쯤 남들보다 못한 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다는 것이 때론 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문진을 둘러본 세 마왕은 군막으로 돌아갔다.
풍도왕과 마추왕이 다시 물었다.
“파진할 수 있겠소?”
탈각왕은 대답 대신 풍도왕에게 질문을 했다.
“이제 오해가 풀렸소?”
“무슨…. 아! 우리는 원래부터 둘째 공자님을 의심하지 않았소.”
자기가 증언을 듣기 위해 함께 따라왔으면서 이젠 말을 바꾸는 것이었다.
유지광 측에서 혈매궁에 의뢰를 했다면 대도왕을 죽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의문이 들었다.
“그럼 저들은 도대체 누구의 의뢰를 받았다고 보시오?”
“뻔하지 않소. 무림맹이오.”
“무림맹!”
“지금 무림맹은 천마교,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이라는 적을 맞아 싸우고 있소. 아무리 저력이 있다고 해도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일 것이오. 거기에 우리 일월신교까지 가세하면 더욱 곤란해질 테니까 혈매궁에 청부를 해서 두 도련님 사이를 이간질하려 한 게 분명하오.”
탈각왕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풍도왕은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유지상에게서 온 서찰을 보면 혈매궁에 대한 걱정보다 동생을 견제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진법은 깰 수 있겠지요?”
“어려울 것 같소.”
풍도왕과 마추왕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일월신교 내엔 머리 쓰는 것으로 탈각왕보다 나은 인재가 없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잠시 즐긴 탈각왕이 말했다.
“만약 마추왕이 도와준다면 진을 무력화시킬 수는 있을 것 같소.”
“그게 무슨 말이오?”
“저 기문진의 세부 사항은 펼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 분석하고 파해하기 어렵지만, 진법의 맥점은 찾을 수 있었소. 그 지점마다 돌과 흙으로 무더기를 육중하게 쌓아놓았던데, 거기에 구멍을 파고 폭약을 넣어 터뜨리면 주변의 진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소.”
“아! 그런 방법이…”
마추왕이 말했다.
“그런 목적이라면 내가 얼마든지 폭약을 대겠소. 말씀만 하시오. 하하하!…”
풍도왕은 기뻤다.
“당장 시작합시다!”
그러자 탈각왕이 말했다.
“이곳의 지휘권을 내게 주시오. 그래야 작업을 수월히 할 수 있으니까.”
풍도왕은 머뭇거렸다. 그러나 기문진을 모르는 자기가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그는 흔쾌히 응하고 즉시 중간급 간부들을 불러 새로운 지휘자를 따르도록 했다.
탈각왕은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행동을 개시했다.
어둠 속에서 중요한 지점마다 구멍을 파고 마추왕의 폭약을 묻었다.
다음날 아침.
기수는 연달아 들려오는 폭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게 무슨 소리야?”
몸 위에 걸쳐진 사매들의 팔다리와 알몸을 옆으로 치우고 일어선 그는 대충 옷을 걸치고 전망대로 올라가 보았다.
흙먼지 기둥이 수십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뒤 따라온 탁지연이 물었다.
“궁주. 무슨 일이에요? 적이 화약을 터뜨린 건가요?”
기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투를 준비해! 부하들도 모두 집합시키고.”
“혹시 진이 깨진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기수는 자신이 진을 설계하고 공사도 직접 감독했기 때문에 지금 흙먼지 올라오는 지점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았다.
상대 진영에 무극환혼진의 약점을 찾아낸 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기문진이 뚫리면 위험하다!’
위기감을 느낀 기수는 즉시 무기를 챙겨들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사방에서 일월신교 교도들의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밤사이 준비를 하고 날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겼구나.’
기수는 마왕이 셋이나 모였는데 자기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반성을 했다.
얼마쯤 내려가자 흙먼지 사이로 파고드는 자들이 보였다.
기수는 검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일월신교 교도들을 베어 넘겼다.
그러자 그들의 움직임이 주춤했다.
“구마왕은 어디 있느냐!”
기수의 외침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침투하는 자도 없었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척후병 정도를 파견한 것 같았다.
기수는 다른 쪽이 뚫리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였고, 2시간 동안 산을 빙 둘러 돌아다닌 덕분에 겨우 방어선을 지킬 수 있었다.
함께 싸우느라 바빴던 탁지연이 물었다.
“궁주. 기문진은 어떻게 된 거죠?”
“안쪽은 무사해.”
바깥쪽이 다 뚫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프라이팬 한 가운데 계란을 까 넣었다고 봤을 때, 산채가 노른자라면 프라이팬 정도의 영역을 지켜주던 기문진이 지금은 흰자위 크기만 남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어서 보수를 해야죠.”
“그렇긴 한데….”
말이 쉽지, 산채를 빙 둘러 기문진을 새로 만들려면 아무 방해도 없는 조건이라고 해도 60명이 5일에서 10일 정도는 걸릴 큰 작업이었다.
적진에 무극환혼진의 맥점을 정확히 짚어 하룻밤 사이에 외곽을 허무는 실력자와 폭약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원활한 공사가 이루어질지 의문이었다.
춘매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당장 모두들 집합시킬까?”
“아냐. 그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안 되다니?”
“애써서 완성시켜봤자 지금처럼 하룻밤 사이에 다시 부서질 수 있어.”
“그럼 어쩌지?”
“저쪽 진영에서 이 일을 주도한 자를 잡아 죽여야지. 진의 보수는 그 다음이야.”
기수는 일단 부하들에게 활을 쏘아 현재 남아 있는 진 밖의 일월신교 교도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적은 순순히 물러섰다.
기문진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아냈으니 무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수와 사매들은 산채로 올라가 작전회의를 했다.
“오늘 밤에 나 혼자 진 밖으로 나갔다 올게.”
기수의 말에 탁지연이 놀라서 말했다.
“안 돼요! 위험해요. 우리도 함께 가게 해주세요.”
“하하! 날 못 믿어?”
“그게 아니라, 적진에 마왕이 셋이나 되는데 궁주 혼자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가 함께 가면 훨씬 안전할 거예요.”
다른 사매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기수는 손을 저었다.
“적진에 침투해서 한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는 일이라면 나 혼자 하는 게 훨씬 빠르고 안전해. 다들 내 경공술 알지?”
거기엔 탁지연도 할 말이 없었다.
수가 마음먹고 선풍비를 펼치면 사매들 중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속전속결할 거라면 여섯 명이 따라가는 게 기수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었다.
“누구를 죽일 작정이세요?”
“어제 도착한 두 마왕 중 한 명. 그들이 오기 전엔 무극환혼진은 끄덕 없었어.”
“그들 중 누가 기문진을 파해했을 거라고 보세요?”
“하나를 죽여 놓고 대응하는 걸 보면 알겠지. 한 번에 해결되면 좋고. 안 되면 한 번 더 시도하면 돼.”
사매들은 기수의 말에 수긍했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동시에 핵심을 찌르는 방법이었다.
기수는 전망대에 올라가 적 진영의 배치와 마왕들의 소재를 면밀히 관찰했다.
밤에 다녀오기 위해 미리 길을 숙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엔 한 차례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가다듬었다.
마침내 사방이 깜깜해지자 기수는 검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다녀올게.”
“조심하셔야 해요.”
“걱정 마. 금방 다녀올 테니까 기념할 준비들이나 하고 있어.”
“아잉….!”
사매들의 다리 꼬는 모습을 보고 씩 웃어준 기수는 일단 산채 아래로 내려가서 진 안에 머물며 적진의 동정을 살폈다.
의외로 많은 이동이 감지되었다.
기수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즉시 알아차렸다.
‘이놈들. 내친 김에 오늘밤에도 터뜨릴 생각이구나!’
자기가 즉각 대응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동안의 타성에 젖어 두 마왕이 가세한 후의 대응에 소홀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기수는 두 마왕 중 한 명을 반드시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적이 기문진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은 기수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적진 속 깊이 숨어 있었다면 찾아내고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적을 찾는 게 그보다는 수월했다.
조심스럽게 이동하던 기수는 마침내 두 마왕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수는 진 내부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릴 거리까지 접근했다.
“마추왕. 폭약은 충분하오?”
“물론이오. 배에 재료가 잔뜩 실려 있으니 가져온 것을 다 쓴 다음에도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소.”
“그렇다면 몇 군데 땅에 묻어둡시다.”
“그걸 왜 땅에 묻는단 말이오?”
“진을 부순 후 저들의 저항이 강력하다면 일단 한 번 후퇴하는 척 하면서 폭약 묻어둔 곳으로 유인하여 터뜨리면 일이 수월하지 않겠소?”
마추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하하! 역시 탈각왕의 지혜와 계교는 명불허전이오. 장소만 정해주시오. 그러면 내가 땅을 뒤엎어 호수를 만들 만큼의 폭약을 묻어두겠소.”
기수는 두 사람이 각각 탈각왕, 마추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가만 놔두었다가는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 상대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둘 중 하나만 죽여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보건데 무극환혼진의 맥점을 짚어낸 자는 탈각왕이고 그걸 무력화시킬 폭약을 운용한 자는 마추왕이었다.
둘 중 하나만 제거해도 진을 지킬 수 있었다.
문제는 자기 혼자서 마왕 둘을 상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기습을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원래는 정상적인 대결로 싸움의 재미도 맛보고 자신의 능력 향상도 확인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여유 있는 게 아니었다.
사매와 부하들의 안전을 볼모로 그럼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승부보다 한 놈을 확실히 죽이는 방법을 택해야만 돼.’
그런 다음에는 여유를 가지고 싸워도 될 것이었다.
기수는 검을 쥐지 않은 왼손 다섯 손가락에 진기를 집중시켰다.
진 안에 숨어 있다가 선풍비로 튀어 나가면서 파천강기를 기습적으로 갈기면 한 명은 확실히 보낼 자신이 있었다.
적이 진 가까이에 와 주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기수의 손가락마다 진기가 충만하여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 즈음, 탈각왕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마추왕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시오?”
“기문진의 진기 구성이 바뀌고 있소!”
“그게 무슨 뜻이오?”
기수는 탈각왕이 자신의 진기집중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즉시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