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8
유지광의 눈에 살기가 짙어졌다.
기수는 그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이 전기뱀장어 새끼! 내가 사도들을 죽이며 돌아다닌 장본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구나. 큰일났는데…’
수로맹 유씨 자매의 기술도 알고 있고, 동창 진유룡의 기술도 알고 있는 걸 보니까 이놈은 사도들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놈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찾고자 했던 궁극의 강자는 아니었다.
싸워본 바에 의하면 분명 자기보다 반 수 이상은 아래였다.
문제는 전기충격.
유지광은 한 번 지져지면 후유증이 얼마나 이어지는지, 그 지속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수가 회복될 만 하면 또 지지고, 또 지지는 식으로 도무지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저놈에게 닿지만 않으면 되는데… 근육의 뒤틀림이 풀릴 시간만 벌면 되는데…’
딱 1분, 아니 30초라도 여유를 확보하면 처음 손이 닿기 전으로 돌아가서 놈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지금으로선 유일한 희망이었다.
유지광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는 민첩한 신법으로 기수의 측면으로 돌아 들어왔다.
다시 건드릴 계획인데, 단정홍이라는 그 붉은 암경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기수는 그것을 보고 결심했다.
‘그래! 이걸로 시간을 벌자!’
단정홍과 전기충격은 서로 비슷한 수준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상대의 기경팔맥으로 파고들어 엄청난 고통과 함께 진기흐름을 작살내는 단정홍, 상대의 근육을 뒤틀고 정신을 잃게 만드는 전기충격.
밀어서 잠금해제보다 더 쉬운, 닿기만 해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었다. 유지광은 단정홍의 그런 위험을 알기에 신중한 것이었다.
기수는 양손 장심에 각각 단정홍을 끌어올려서 유리창이라도 닦는 것처럼 원을 그렸다. 가까이로 손을 뻗기만 하면 기필코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과 함께….
유지광의 얼굴에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처음 대결을 시작할 때라면 몰라도 현재 기수의 근육들은 경련 후유증을 겪는 중이고, 반대로 유지광은 민첩한 동작으로 얼마든지 빈틈을 노릴 수 있었다.
두 손바닥만 피해서 기수의 몸 어디건 건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가 급격히 간격을 좁혔다 벌렸다 하면서 허초를 유도하자 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한 번 더 전기 찜질을 당하면 난 죽는다. 두 번 다시는 기회가 없어. 딱 한 번 뿐인 지금의 기회를 살려야 돼.’
근육이 말을 안 들어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기술이라면 단정홍과 파천강기가 있었다.
지금 유지광은 단정홍을 피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파천강기는 그에게 아직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상태.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어설프게 맞히면 당한다! 이 한 번의 일격에 내 모든 걸 걸어야 돼.’
기수는 오른손을 슬쩍 오므렸다.
그리고 그 손에 단정홍이 아닌 파천강기를, 그것도 손가락 하나에 집중했다.
‘네놈에겐 이 손가락이 어울려.’
그의 오므린 중지 끝이 빛을 내기 시작했지만 유지광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수는 일부러 돌이라도 밟은 것처럼 비틀거리는 스텝으로 상대의 접근을 유도했다. 시간을 더 끌면 진기도 더 많이 모이겠지만, 발각될 확률도 커지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유지광이 입술을 비틀며 달려드는 순간, 기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한 순간, 퍽! 하는 파열음과 함께 유지광의 몸이 공중에 떴다.
달려들던 도중에 파천강기에 직격을 당하고 만 것이다.
유지광은 눈을 부릅떴지만 기수가 기대한 대로 목에 구멍이 뚫리지는 않았다.
상대의 호신강기를 뚫을 만큼 내공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긴 뱀장어!”
기수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즉시 달려들어 왼손바닥의 단정홍을 상대의 배에 대고 밀어 넣었다.
“크아악!….”
목을 찔렸을 때보다 더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고, 멀리 뒤에서 세 마왕이 동시에 몸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수는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황급히 양손에 단정홍을 끌어 올려 쓰러지는 유지광의 허리와 다리에 각각 한 방씩 더 밀어 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몸에 구멍을 뻥뻥 뚫어주고 싶었지만, 현재의 몸 상태에선 진기를 효율적으로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의 비명을 더 들은 후 기수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쳐서 기문진 안으로 숨었다.
회복시간을 가지기 전엔 마왕들과 싸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매들이 황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궁주! 괜찮아?”
기수는 손을 저었다.
“난 괜찮아. 뒤로 좀 가자. 누군가 뛰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사매들은 기수를 부축하고 뒤로 멀찍이 물러섰다.
춘매가 궁금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
“유지광은 죽은 건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죽었어.”
기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전신을 휘감는 환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도를 죽였을 때만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기수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말 위험했다. 감전사할 뻔 했네.’
무공에서 이겨도 특수 기술 때문에 죽을 뻔 했다고 생각하니까 몸서리가 쳐졌다.
‘도대체 뭐야? 전기라니…’
파천강기는 이해가 되지만 전기는 좀 반칙 같았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해보니 전기도 분명 자연계의 에너지니까 진기를 변환시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파천강기나 단정홍이 더 반칙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앞으로 사도를 만나면 몸이 닿는 것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잠시 편한 자세로 앉아 호흡을 골랐다.
아직도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근육들이 있어서 운기조식은 무리고, 일단 차분한 심호흡으로 회복부터 해야 했다.
“그들은 지금 뭐 하고 있지?”
기수의 질문에 가장 키 큰 추매가 대답했다.
“풍도왕과 탈각왕이 유지광의 손발을 주무르고 명문혈에 진기를 집어넣고 있어.”
“그는 이미 죽었어. 소용없는 짓이야. 도산왕은?”
“칼을 뽑아들고 발을 구르며 길길이 날뛰는 중이야.”
“후후…. 그래봤자지.”
기수는 승리의 쾌감과 함께 약간의 아쉬움도 느꼈다.
만약 유지광을 사로잡았다면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까의 상황에선 세 마왕이 접근하기 전에 확실하게 죽이는 게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죽이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특히 그 상대가 사도라면 절대로 망설여선 안 된다고 결심한 바 있으니 그걸 지키는 게 맞는 것이다.
그때 추매가 황급히 말했다.
“도산왕이 진 안으로 뛰어들었어!”
사매들은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도산왕은 두 자루의 길이가 다른 칼로 나무와 바위를 닥치는 대로 베며 소리쳤다.
“혈매궁 궁주는 어디 있느냐! 당장 나와라!”
유지광의 죽음을 확인하고 분을 참지 못해 난입한 것이다.
사매들이 자신을 보자 기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그러자 탁지연이 말했다.
“저놈은 우리가 잡자!”
사매들 모두 그녀의 의견에 찬성했다.
기수는 그들을 말렸다.
“공연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어.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놈은 절대로 우리를 찾지 못할 거야.”
무극환혼진의 폭이 비록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 위력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탁지연은 고집을 부렸다.
“지금 우리 혈매궁과 일월신교는 철천지원수가 됐어. 9마왕 중 3명에 이어 교주의 아들까지 죽였으니까. 저들은 장차 동창보다 더 부담스러운 상대가 될 가능성이 커. 그런데 적의 수장 중 하나가 기문진 안으로 들어와 주었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적의 전력을 깎을 절호의 기회야.”
듣고 보니 그녀의 생각이 옳았다.
여섯 사매는 기수의 상태를 한 번 더 물은 뒤 곧장 도산왕을 향해 달려갔다.
기수도 호흡이나 가다듬으며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전략적으로는 옳은 판단이라고 해도 걱정되는 상황. 그녀들을 따라가 대결을 지켜봐줘야 했다.
“네년들 말고 궁주를 나오라 해라!”
도산왕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탁지연이 마주 소리를 질렀다.
“네놈 따위가 감히 우리 궁주님의 적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리고는 곧장 검으로 그를 공격했다.
도산왕은 혈매궁 여인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
자기 책임이라고 해야 할 유지광의 죽음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단칼에 베어버릴 작정으로 탁지연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대의 검술은 만만치 않았다.
맞부딪히지 않고 교묘하게 검의 각도를 비틀어 튕겨내고는 곧바로 반격을 가해왔다.
도산왕은 그녀의 솜씨에 크게 놀랐다.
경적필패라는 말을 생각한 그는 정신 바짝 차리고 탁지연의 검을 방어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여섯 여인이 각자 방위를 점하여 섰고, 순간 도산왕은 사방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강렬한 살기를 느꼈다.
“이, 이년들이….!”
뭔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검진에 갇힌 상태.
도산왕은 진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여섯 자루 검을 쳐내며 기회를 노렸다.
탁지연이 처음부터 검진을 펼친 것은 지난번 대도왕과 싸울 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기수가 지켜봐주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기수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속전속결을 택한 것이다.
다른 다섯 사매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기수의 상태가 좋지 않은 지금 무공 성취도를 시험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다들 최선의 살초들만 펼쳐냈다.
도산왕은 진땀을 흘렸다.
천하의 구마왕 중 한 명인 자신이 이런 갸냘픈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수모를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너희들 따위가 감히 나를….!”
그는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쌍칼을 휘둘렀다.
그 기세가 흉포하기 그지없어서 사매들은 진을 벌리며 잠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기수는 그 광경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넌 죽었다.’
그는 매화육궁진의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재의 도산왕 정도 실력이라면 침착하게 구성원 중 한 명을 노리고 갉아내는 기분으로 무너뜨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자기도 빠져나오려면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하는 검진인 것이다.
싸움은 금세 수십 초식을 넘어갔다.
그리고 기수의 예상대로 돌이킬 수 없는 수세에 몰린 도산왕은 여기저기 찔리고 베인 상처로 인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너,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가서 염라대왕한테 물어봐라!”
탁지연의 대답과 함께 그녀의 검이 곡지혈을 찔렀고, 도산왕의 칼 한 자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간신히 버티던 도산왕은 한 손만으로는 나찰같이 달려드는 여섯 자루 검을 막아낼 수 없었다.
“크으윽….!”
도산왕이 여섯 군데 요혈에 검상을 입고 비틀거리자 탁지연이 말했다.
“흥! 넌 대도왕보다 못하구나.”
도산왕은 이를 악물고 탁지연을 노려봤지만 대꾸할 말도, 힘도 없었다.
결국 거구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져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여섯 사매는 비로소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다들 자부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비록 6:1이긴 하지만 일월신교의 구마왕 중 한 명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결국 쓰러트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기수도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가서 한 명씩 꽉 끌어안아 주었다.
“대단해! 잘 했어! 훌륭해!”
연습할 때 살살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지연은 도산왕의 어깨에 걸린 칼을 뽑아 그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것을 기문진 경계로 가지고 가서 밖으로 던졌다.
유지광의 사망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탈각왕과 풍도왕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겁도 났다.
그래서 황급히 시신과 머리를 챙겨 병력을 후퇴시켰다.
기수는 위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님. 보고 계시지요?]
[그래. 훌륭하다. 벌써 여섯을 쓰러트렸으니 이제 반밖에 남지 않았구나.]
기수는 불만부터 얘기했다.
[도대체 뭡니까? 뱀장어도 아닌 인간이 전기충격이라니! 완전 반칙 아닙니까?]
[반칙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개발하기 나름이니까.]
[그럼 그런 기술 쓴다고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죠!]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사도들에 대해 가진 정보가 전혀 없다. 저쪽에서 너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그 상대 신은 도대체 신님하고 왜 원수가 진 겁니까?]
[그게 이번 질문이냐?]
[아, 아닙니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적은 무공을 공유하고 서로 가르쳐주기도 하는 것 같던데… 나한테도 뭔가 그럴듯한 기술 하나 전수해주십시오.]
[그런 건 없다.]
[워! 워! 잠시만요. 저쪽은 유씨 일족이 수로맹 채주한테까지도 무공을 막 나눠줄 정도인데, 난 전부 스스로 체득하고 있지 않습니까. 숫자로도 밀리는 판인데 최소한 스페셜 기술이라도 있어야죠.]
여섯 사매가 이번 싸움에 큰 도움이 된 데서 알 수 있듯, 고수를 동지로 만들어 아군의 수를 늘리는 것은 자신의 능력 업그레이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뭔가 특별한 기술, 전기충격이라도 배워서 사매들에게 가르쳐준다면 이쪽의 전력을 크게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신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미안하다.]
기수는 욕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