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29
사도의 수나 가진 능력으로 비교해봤을 때 상대편 신의 1/12 수준인 것 같았다
‘아! 씨발… 줄 존나 잘못 섰네.’
자기 같은 천재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쨌을까 싶었다.
기수는 다시 물었다.
[가르쳐줄 수 없는 겁니까? 아니면 가르쳐주지 않는 겁니까?]
[난 전투기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신님이 아는 기술이라면 가르쳐줬을 거란 말입니까?]
[당연하지.]
기수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내가 12사도를 전부 쓰러트린 후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준다고 약속해주십시오.]
[무엇인가? 그 부탁이…]
[지금 상태로 봐서는 목표달성 이전에 죽을 가능성이 더 크니까 그건 완수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주실 거죠?]
[글쎄…. 인간과의 약속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무엇인지 알아야….]
기수는 버럭 화를 냈다.
[난 시간과 공간이 다른 곳에 와서 목숨 걸고 싸우는데, 그 정도쯤 좋아! 뭐든지 다 들어줄게. 하면 안 됩니까?]
그러자 신이 불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데려왔으면 당연히 돌려보내 줘야죠! 단순변심 아니면 반품비도 무룐데.]
신의 목소리에 더욱 감정이 실렸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너를 어느 시대, 어느 공간이던지 갖다놓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기수는 겁이 났다.
하지만 베팅의 순간에 쫄면 판돈을 가져올 기회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 뭐…. 나보다 뛰어난 고수 찾아와서 일을 맡겨보시던가요.]
[뭐, 뭐라고?]
[12명 중 6명 제거라…. 햐~! 킬마크 여섯 개면 공군에서도 에이스 대접해줄 텐데. 난 신세가 이게 뭐람… 하드웨어, 운용체제 다 지원 안 되고. 아아… 내 팔자야.]
신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기수는 속으로 떨렸지만 대범한 척, 싫으면 관두라는 표정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 혹시… 나의 능력을 가르쳐달라고 할 생각이냐?]
[무슨 능력이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능력.]
[하핫! 신님이 아는 거라면 가르쳐준다고 하셨으니까 뭐….]
역시 신 정도 되니까 눈치도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능력을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현대로 돌아가느냐, 누구를 데려가느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자유롭게 이곳과 현대를 오고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좋다. 방법을 가르쳐주겠다.]
[저, 정말입니까?]
기수는 뛸 듯이 기뻤다.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왜요?]
기수의 웃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네가 12사도를 모두 죽이면 그 보답으로 내가 가진 시공초월 능력을 가르쳐주겠다. 그건 이 자리에서 약속하마.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네가 그걸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잉? 어째서요?]
[글쎄… 네가 자라온 곳의 환경으로 비유하자면… 어려서부터 드리블과 킥을 배운다고 전부 다 메시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편법 재산증식을 하고 싶어도 생명보험사 주식을 상장시켜주는 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흐음… 물리학과 졸업생이라면 원리를 다 배우지만 집집마다 원자로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걸 실행할 능력은 전해주지 않겠다는 얘긴가요?]
[그 능력은 전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얻어야지.]
[그게….. 혹시 내공 비슷한 능력입니까?]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 어차피 우주의 에너지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참고로 말해주자면 나는 기초적인 공간 재배열을 하기까지 700년의 수행이 필요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추가된 노력의 세월은 더 길고.]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10만톤급 항공모함 설계도를 줄 테니까 알아서 잘 만들어 봐. 라고 선심을 쓰지만 이쪽엔 조선소는커녕 스패너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신치고는 너무 얍삽한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냐? 네가 원하는 걸 가르쳐주겠다고 하는데… 수천 년에 걸친 수행의 과정을 거저먹자는 건 도둑놈 심보잖아.]
듣고 보니 자기가 너무 떼를 쓰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약속 잊지 마십시오!]
일단 설계도라도 받아둬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자, 잠깐만요!]
기수는 다급하게 신을 불렀다.
이번엔 약속만 얻어냈을 뿐 질문은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참을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결국은 포기해야 했다.
‘아! 진짜…. 무슨 신이 이러냐.’
왜 교회에서 전지전능한 신, 하나뿐인 신을 강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엔 ‘니 아들 죽여 봐.’하는 신보다도 못한 신들이 널려 있는 게 분명했다.
기수는 약간의 운기조식으로 몸을 회복한 후 밖으로 나가 사매들의 상태를 살피고 적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놈들은 전부 철수했어. 궁주.”
“철수?”
“응. 산을 완전히 비웠어.”
“일월신교가 그렇게 쉽게 꽁무니를 빼나?”
탁지연이 말했다.
“교주의 아들이 죽었으니 가서 보고를 해야겠지. 시신도 운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풍도왕과 탈각왕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우리한테 안 된다는 걸 알았을 거야.”
듣고 보니 철수가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다.
“좋아. 한숨 돌렸네.”
기수는 즉시 부하들에게 삽과 곡괭이를 들려서 자기를 따라오게 했다.
탈각왕이 남긴 기문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파진은 어렵지만, 단순히 부수고 박살내는 것은 문제없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기수는 파천강기로 중요 부분을 박살내고, 나머지는 부하들이 철거하면 되었다.
일월신교는 흙과 돌로 튼튼한 기문진을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업을 마치고 날이 어두워져 올라가 보니 사매들이 저마다 축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핫! 오늘은 확실히 기념할 만 한 일이지.”
“기념보다도 궁주님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봐야 되요. 자, 따라오세요.”
사매들은 기수를 욕실로 데려가 홀랑 벗기고 따듯한 물에 담갔다 꺼낸 후 상처는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고 확인 및 점검했다.
“어! 거, 거긴 다친 적 없는데….”
“그래도 자세히 봐야 되요. 가만있어요!”
“보는 건 눈으로 보는 거지… 으음…으…!”
그렇게 밤새도록 신체검사 겸 축하파티를 마친 기수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탁지연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으며 물었다.
“뭘 그리세요? 일찍부터…”
“어! 그림 망쳐. 왜 아침부터 거긴 주물럭거려?”
“그냥 인사에요. 잘 잤냐는…. 손 말고 다른 인사를 바라는 것 같은데요?”
“잠깐 손 놓고 여기 앉아 봐.”
기수는 아쉬워하는 그녀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설명해주었다.
“나 없는 동안 이 기준에 맞춰서 돌무더기를 쌓아줘. 간격과 각도를 여기 적은 대로만 하면 돼.”
“무극환혼진인가요?”
“그래. 좀 더 확장해야겠어. 그리고 이번엔 돌탑마다 궁수들이 올라가서 화살 쏠 수 있는 발판도 만들어야겠어. 지난번처럼 구멍 파고 폭약 묻는 놈들 막으려면.”
탁지연은 기문진보다 다른 데 관심이 있었다.
“없는 동안이라니요? 기소협 어디 가시게요?”
“응. 다녀올 데가 있어.”
그러자 다른 사매들도 깨어나서 우르르 몰려왔다.
“궁주. 어딜 가?”
“급히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겼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니까 나 없는 동안 적 막을 준비를 좀 해 줘. 일월신교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우리도 같이 가!”
“아니. 나 혼자 다녀올 거야. 너희는 그동안 여기를 지켜야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번 대결을 통해서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어. 다녀와서 자세히 얘기해줄게. 그리고 너희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새로운 무공을 익히러 가는 거야?”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어. 너희들도 검진 연습 매일 하고, 탁매에게 파천강기 열심히 배우고, 여기 내가 그린 대로 석탑을 만들어 줘. 알았지?”
기수가 워낙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니까 사매들도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탁지연이 말했다.
“좋아요! 보내드릴 테니까 떠나기 전에 우리 연공부터 시켜주세요.”
“어, 어제 밤새도록….”
“그건 기념식이었고.”
여섯 명이 기수를 번쩍 들어서 침상으로 옮겼다.
기수가 소항산을 내려온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난 뒤였다.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였지만 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만 좋았던 게 아니라 자신도 전기충격 후유증을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온 그는 급히 서주로 갔다.
혼자니까 가뿐하게 경공술로 달려 하루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가 찾아간 곳은 옛 패천방의 장원이었다.
마침 거기엔 석초가 있었다.
“형님!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마침 오셨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
“혈매궁 궁주가 일월신교의 둘째 소교주와 마왕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하하! 사실이 아냐. 와전된 헛소문이야.”
“아! 여, 역시 그랬군요.”
기수가 정정해주었다.
“일월신교 교주의 차남 유지광과 구마왕 중 대도왕, 마추왕, 도산왕 세 사람을 죽였을 뿐이야. 닥치는 대로 죽이진 않았어.”
“예?”
석초는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유지광은 일월신교의 차기 교주로 촉망받던 고수인데 도대체 어떻게…”
“글쎄. 강자가 이기고 살아남는 게 강호의 이치 아니던가? 뭐, 그런 면에서 보자면 유지광보다 조금 더 강했을 뿐, 대단한 일은 아냐. 하핫!”
석초는 혈매궁 궁주가 알면 알수록 더 신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리를 비우시면 소항산이 위험하지 않은가요?”
“놈들이 마음먹고 인원을 동원했는데도 실패했으니까 다음엔 좀 더 보강된 전력으로 덤빌 거야.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어, 어쩌면 교주가 직접 나설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죽었으니….”
“누가 오건 상관없어. 우리도 준비를 하는 중이니까.”
“혹시 인원이나 장비, 물자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저희들이 전부 다 대드리겠습니다.”
기수가 슬쩍 석초의 표정을 살핀 후 물었다.
“일월신교를 견제하는 게 대장군부 입장에서도 좋은 일인가?”
“이를 말씀입니까? 조정에선 대대로 마교 척결을 중시해 왔습니다. 일월신교는 강남 일대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워낙 행적이 비밀에 싸여 있어서 좀처럼 뿌리를 뽑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9마왕 중 넷을 처단하고 교주의 아들까지 죽인 것은 실로 엄청난 공적입니다. 형님.”
“그렇군. 그럼 얘기하기가 수월하겠어.”
“얘기라니요?”
“백시랑은 지금 어디 있지? 연락해서 만나게 해 줘.”
“시랑님을요? 그것 때문에 산에서 내려오신 겁니까?”
“맞아. 꼭 할 얘기가 있어.”
“그거라면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석초는 곧장 첩지를 써서 전서구를 날렸고, 기수는 그날 저녁에 바로 백무영과 만날 수 있었다. 기수가 찾아간 게 아니라 백무영이 직접 서주까지 와주었다.
그 역시 기수의 행적에 대해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아우. 정말 대단하네! 엄청난 일을 해냈어.”
처음에 능력을 확인해보자고 단순한 인질 교환 임무를 맡겼을 뿐인데 강시에 대한 증거를 찾아냈고, 지금은 일월신교의 절반을 무너뜨리고 있으니 백무영 입장, 그리고 대장군부 입장에선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최상의 영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힘 좀 썼을 뿐인데요. 하핫!”
“아닐세. 일월신교는 이번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니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야. 어쩌면 이대로 무너질 수도 있고.”
“제 생각엔 끝까지 복수하겠다고 달려들 것 같습니다. 그것이 멸망의 길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모르고.”
백무영은 흠칫 몸을 떨었다.
기수에게서 가공할 패왕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남자와 같은 편이 된 게 정말 다행이다! 만약 우리 대장군부가 아닌 다른 쪽과 손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뻔 했나.’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친근한 표정과 어조로 기수에게 말했다.
“아우. 일월신교와 맞서 싸우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건 얘기하게. 인원이건, 장비건, 물자건 무엇이든 내가 다 대 주겠네.”
석초와 똑같은 얘기였지만 말하는 사람이 다르니 말의 무게도 달랐다.
그러나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우리 혈매궁이 조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지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원, 장비, 물자를 지원해주지 말고, 그걸 다 살 수 있는 돈으로 달라는 의미였다.
백무영이 씩 웃는 것을 보니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기수는 역시 일은 눈치 빠른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