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32
기수는 남장여인의 얼굴을 빤히 살펴봤다.
미모 평가를 의뢰 받았으니까 대놓고 감상할 기회였다.
“불빛 가까이로 와 봐. 자세히 보게.”
“뭘 또 자세히까지…”
그러면서도 등불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데겠다.”
기수는 한 마디 툭 뱉었지만 그녀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생긴 것도 예쁘지만, 밝은 곳에서 보니 살결이 아기처럼 곱고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가 마치 그린 것 같은 오똑한 선을 그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너 코 했냐?”
“하다니? 뭘?”
“아, 아냐…. 그럴 리가 없지.”
“너 자꾸 시간 끌 거야?”
기수는 한숨을 내쉰 후 대답했다.
“내가 이제까지 수많은 미녀들을 봐 왔는데…. 너 정도면 최상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 아! 물론 얼굴만 보고 하는 얘기지만.”
“정말?”
“단언할 수 있어.”
그녀가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최상급이라고? 호호호!…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 그런데 얼굴 말고 다른 데도 중요한가?”
“당연하지. 가슴, 허리, 엉덩이, 다리… 미녀의 조건은 의외로 많다고.”
물론 기수가 따지는 조건은 그보다 더 많았다.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장여인이 자기 허리에 손을 얹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돈 후 말했다.
“그것도 네가 봐줄래?”
기수는 너무나 대담한 질문에 뭐라 대답할 줄을 몰라 볼이 빨개졌다.
그러자 여인이 까르르 웃었다.
“호호호! 농담이야, 농담. 네가 봐 봤자 뭘 알겠니.”
기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가 이런 노골적인 질문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로 자신을 환관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얘가 지금…..내가 어떤 남자인지 전혀 모르는군….그냥 확! 덮쳐버릴까?’
마침 아무도 없는 오붓한 공간 아닌가.
그러나 기수는 어깨 위에 나타난 악마를 한 주먹에 날려 버렸다.
상대가 아무리 예뻐도 강제로 할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말도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았다.
힘이 좀 생기니까 알 것 같았다.
여자한테 함부로 하는 남자는 남존여비 문화권에서 자라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마초도 아니고, 단지 다른 남자한테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그걸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풀어 보상받는 못난이일 뿐이었다.
남장여인이 물었다.
“야! 너 왜 계속 얼굴이 빨개? 어디 아파?”
“아, 아냐.”
덮친다는 단어를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혈행이 빨라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계속 야! 라고 부르니까 이상하다. 너 이름이 뭐냐?”
“난 양….”
그녀 미모에 넋이 빠져서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난 양구야. 아홉 구자.”
양칠은 동창의 척살 1순위일 테니까 좀 더 끝발이 먼 수를 부를까 하는 후회가 순간적으로 일었다. 양 십일이나 양 십오 정도로….
그러나 남장여인은 그 두 끝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좋아. 앞으로 양내관이라고 부를게.”
“그럴 줄 알았어!”
“뭐라고?”
“아, 아냐… 넌 이름이 뭐냐?”
“얘 좀 봐. 감히 내 이름을 묻고 있네?”
“왜? 어때서. 내 이름 말해줬으면 너도 얘기해줘야지.”
“호호! 그래… 까짓 거. 넌 내관 중에선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무공도 고강하니까 내가 특별히 선심 썼다. 내 이름은 림이야.”
“성은?”
“그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 림아. 이제부터 넌 저쪽에서, 난 이쪽에서 각자 볼일 보는 거다. 알았지?”
그녀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면 할 일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견디기 어려웠다.
림은 기수의 앞을 막아섰다.
“그냥 보낼 수 없어. 아까 내가 한 질문에 대답해 봐.”
“무슨 질문?”
“내 장법이 고명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와해된 이유.”
“아! 그거. 그건 간단해.”
“역시 내공이 부족한 거야?”
“아니. 넌 실전경험이 없어. 마치 책으로만 무공을 익힌 사람처럼.”
림이 약간 흠칫하더니 물었다.
“그걸 딱 한 번 겨뤄보고 알 수 있어?”
“당연하지. 네 사부한테 얘기해서 동료들 도움 좀 받아.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내공이 충만하고 수만 가지 절묘한 초식을 알고 있다 해도 실전에선 한 방에…”
기수는 엄지로 목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림은 충격을 받은 듯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내 상대자가 되어 줘.”
“싫어.”
기수는 짧게, 스타카토로 대답했다.
그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장생의 비법들을 충분히 검토한 후 필기도 해야 하고, 또 사매들에게 선물할 무공도 찾아봐야 했다.
그리고 한시 바삐 소항산 산채로 돌아가 일월신교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데서 동창 요원 스파링 파트너나 해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림은 두 번 부탁하지 않았다.
곧바로 기수를 향해 출수했다.
“이, 이봐! 미쳤어?”
“내가 상대를 해달라면 해줘야 할 거 아냐? 어떻게 감히 거절을 해?”
매번 살초를 펼쳐 내니 기수도 화가 났다.
“내가 싫다면 싫은 거지. 어떻게 감히 대들어?”
기수의 손이 바쁘게 그녀의 공격을 쳐냈는데, 아까와 뭔가 좀 달랐다.
림의 얼굴을 보니 엄청나게 집중한 모습이었다.
‘금세 좀 나아졌네.’
한 마디 조언에 이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녀의 자질이 상당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초식이 안정되니까 그녀의 강한 내공이 감지되었다.
‘도대체 무슨 영약을 얼마나 먹인 거야? 하긴 이 정도 얼굴의 미녀를 찾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
스페셜 요원으로 키우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30여 초식을 겨룬 후 림이 한 발 물러서서 물었다.
“나 어땠어?”
“꽤 나아진 것 같군.”
림이 환하게 웃었다.
“좋았어! 역시 대련 상대가가 필요한 거였어. 다시 하자!”
그녀는 신이 나서 다시 달려들었다.
기수는 생각을 바꾸어 잠시 맞상대를 해주었다.
그녀의 초식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엔 무당의 장법 비슷했는데 막상 변화가 시작되자 전혀 달랐다.
무학에 깊은 소양을 지닌 기수로서는 몹시 흥미로운 무공이었다.
그렇게 한참 치고받고 하다 보니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림은 기수보다 더 힘이 드는지 호흡까지 거칠어졌다.
“그만! 잠깐만 쉬었다가 하자!”
그녀가 멋대로 손을 멈추자 기수는 하마터면 손으로 그녀를 만질 뻔 하다가 황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야! 갑자기 그만두면 어떻게 해? 넌 뭐든지 그렇게 네 마음대로냐?”
“그래. 불만 있어?”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는 예쁘니까 용서해주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하기는 꽤나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림은 홱 돌아서더니 책꽂이로 갔다.
“좀 찾아봐야겠어.”
그러더니 기수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책에 몰두했다.
기수는 약간 아쉬웠지만 건너편 서가로 가서 자기도 책을 뽑아들었다.
한참 몰두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뭐야. 너 신선이 되려고?”
고개를 들어 보니 그녀가 서가 위에 엎드려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미소 짓는 모습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녀는 훌쩍 뛰어내려 기수 맞은편에 서더니 말했다.
“방금 본 거 연습 좀 해봐야겠어.”
“또?”
“실전 훈련 해보고 싶은 게 지금 한두 개가 아냐.”
그러더니 곧바로 기수의 완맥을 잡아 왔다.
“어딜!”
기수는 역으로 그녀의 완맥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그녀 손이 비틀리며 곡지혈로 파고들었다.
“오! 그런 식으로?”
기수는 그녀가 펼치는 금나수에 흥미를 느꼈다.
어쩌면 수만 권의 무공비급들을 다 뒤질 필요 없이 그녀가 익힌 무공 이름만 물어봐도 꽤 괜찮은 것들을 건질 것 같았다.
기수는 여유 있게 그녀의 금나수를 벗어나며 반격을 노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초식이 돌변하더니 껴안듯이 겨드랑이 쪽으로 파고들며 팔을 회전시켜 기수를 집어던졌다.
금나수라기보다는 무슨 유도 혹은 씨름의 동작 같았다.
기수는 가볍게 몸을 날려 서가 한쪽 칸을 발로 차고 사뿐히 내려섰다.
“방금 그 초식 이름 뭐냐?”
“흥! 내가 가르쳐줄 줄 알고? 너도 안 가르쳐주는데 내가 왜?”
“요런…!”
기수는 안 가르쳐 주겠다면 눈으로 배우겠다는 심정으로 방금 그녀가 자신에게 펼친 수법을 똑같이 따라했다.
“어!… 너 어, 어떻게!”
림은 당황했다. 자신의 수법이 기수에 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딱 한 번, 그것도 대결 중에 본 수법을 고스란히 펼쳐내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수의 손이 겨드랑이로 파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있었던 것이다.
“야! 너 왜….”
기수는 말을 하다 말고 침을 꿀꺽 삼켰다.
집어던지기 직전에서 멈추니까 림을 껴안은 자세가 되고 말았다.
코와 코 사이 간격은 길어야 10cm. 그녀의 호흡과 향기가 코를 간지럽게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살과 살이 두 장의 옷을 사이에 두고 밀착된 것이었다.
‘볼륨이 장난이 아닌데?’
가슴뿐만 아니라 배와 허벅지에 닿는 느낌도 끝내줬다.
피부는 보드라우면서 속은 근육으로 탱탱한 바디라는 견적이 곧바로 나왔다.
‘으아….미치겠다!’
림이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뭘 계속 끌어안고 있어? 안 놔?”
“어! 미, 미안….”
기수는 그녀가 여전히 자신을 내시로 본다는 사실에 다행이란 생각과 섭섭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는 팔을 풀고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녀의 인상이 험악해진 걸 보니까 말 걸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긴 기분이 나쁘긴 했겠지.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뭐.’
바로 그 때! 림이 벼락같이 기합을 지르더니 기수에게 돌진하며 다리를 걸었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허걱! 이건 안다리!’
그녀와의 실력 차이가 월등한 게 아니라서 기습에 당하고 보니까 대책이 없었다.
살초를 써서 상대를 해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냥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다. 낙법을 썼지만 등짝이 무지 아팠다.
“호호호!… 이겼다! 내가 이겼어!”
림은 기수를 깔고 앉은 채 큰소리로 웃어댔다.
나름대로 기수를 한 번 이기고 싶어서 잔머리를 굴렸는데 제대로 먹힌 것이다.
림이 기수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말했다.
“어때? 졌지? 패배를 인정해.”
그녀의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코를 간지럽혀서 말 대신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패배 말고 다른 걸 인정하고 싶었다.
‘나 사실 남자다. 그리고 너 지금 앉은 위치가…. 으으….. 미치겠네.’
기수가 죽을 듯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내 패배를 인정하지 않자 화가 난 림은 기수의 팔을 잡아 비틀며 체중을 싫었다.
“이래도 버틸 거야?”
“으아악! 내 팔… 내 팔!”
기수는 암바 비슷한 기술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TV에서 본 대로 열나게 태핑을 했다.
하지만 림은 그게 항복을 의미하는 행동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정말 항복 안 할 거야?”
오히려 더 세게 비틀며 조여 댔다.
“으기긱….! 우에에엑…….!”
기수가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관절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에 뭔가 황홀한 감촉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림이 전신의 힘을 실어 비틀수록 기수의 팔은 행복했다.
그녀의 몸에 꾸욱! 눌려서 비벼졌기 때문인데, 그 눌린 부위가 좀 야릇했다.
그냥 팔이 뚝!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항복하기 싫을 정도였다.
“무슨 팔이 이렇게 억세?”
림은 기수의 팔을 놓고 잽싸게 뒤러 돌아가 목을 졸랐다.
“구에이에….이에엑…..!”
기수가 또 다시 괴상한 소리를 냈다.
경동맥이 눌려서 죽기 직전이었지만, 등에 밀착된 그녀의 말랑 따끈한 가슴 압박 때문에 절대로 항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 등이 행복해.’
버티던 기수는 결국 머리에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축 늘어지고 말았다.
림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그걸 다 버텨내는 거지?”
큰 대자로 벌러덩 자빠져 헤롱거리는 기수의 얼굴엔 미소까지 번져 있었다.
씩씩거리던 림은 기수가 정신 차리는 기미를 보이자 달려들어서 걸터앉은 후 양손으로 목을 조르며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왜 항복 안 해? 죽어! 죽어!”
너덜거리며 뒤통수를 계속 부딪치던 기수는 몽롱한 중에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몇 번 더 당하면 뇌진탕이다!’
기수는 무의식중에 허리를 틀어 림을 쓰러트리고 그녀의 목을 졸랐다.
“이 자식이 미쳤나! 손 안 놔?”
“꾸에에에….”
림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고, 기수도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렇게 서로 목을 조르는 상태로 두 사람은 뒤엉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