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47
기수는 돌진해 오는 적근왕을 향해 마주 달려가면서 주먹을 날렸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옆으로 튕겨나갔다.
피해는 동일한 것으로 보였지만 적근왕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기수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가 자세를 바로 잡고 말했다.
“후후…. 넌 이제 끝났다.”
적근왕은 고함을 질렀다.
“무슨 헛소리냐!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죽여주마!”
그는 다시 돌진해 왔다.
기수는 주먹이 아니라 어깨로 상대 어깨와 정면충돌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밀렸다.
기수는 두 걸음, 적근왕은 세 걸음.
적근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이런 터무니없는…”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흥! 넌 이미 알고 있지 않았느냐? 이렇게 될 것을…”
적근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수는 자기 쪽에서 먼저 달려들어 연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적근왕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양손 가드를 올리고 단단히 방어만 했다.
기수는 냉소를 지으며 계속 그를 가격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처음에 유지광과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지레짐작에 나무 몽둥이를 만들면서 간격을 유지했던 것까지는 괜찮았다. 미리 대비하는 차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도 파천강기만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상대가 장기로 삼는 호신강기를 효율이 좋지 않은 방법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진기 소모도 많은 파천강기가 통하지 않자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었고, 순식간에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이미 파천강기에 맞고 잔뜩 겁을 먹은 상태.
유리한 기회가 왔음에도 강기에 집중한 내공을 풀지 않고 몸통치기로 데미지를 누적시키는 전술을 사용했다.
기수는 거기서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불필요한 진기 낭비 없이 직접적으로 주먹과 몸통으로 상대의 호신강기에 맞선 것이다.
‘호신강기가 자신 있다고? 그래. 얼마나 단단한가 보자!’
내공을 가득 담아 주먹을 날리고 또 날렸다.
가드 위도 상관없었다.
‘막는 팔은 네 몸 아니냐?’
한 대씩 타격이 가해될 때마다 적근왕의 안색이 변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집중상태로도 기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 적근왕이 갑자기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하하! 지금 장난 하냐?”
그는 곧바로 선풍비를 시전하여 적근왕을 추격했다.
비록 자기한테는 안 된다고 해도 강시보다 열 배쯤 단단한 자를 혈매궁의 적으로 살려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단 시작을 했으니까 그 단단한 껍질을 꼭 깨주고 싶었다.
하다가 마는 것은 성미에 안 맞았다.
우월한 경신술로 금방 따라붙자 적근왕은 돌아서서 맞섰다.
그러나 일방적인 주먹질. 기수의 자신감 넘치는 공격에 그는 위태위태하게 막아내며 도망칠 기회만 엿보았다.
기수는 적근왕의 방어초식들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유지광이 쓰던 무공이었다.
“네가 유지광의 사부냐?”
적근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수는 곧 그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적근왕이 사부였다면 호신강기보다 훨씬 치명적인 전기 충격을 제자한테만 가르쳐주고 자기는 쓸 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그리고 유지광은 적근왕 같은 호신강기를 쓸 줄 몰랐다.
기수는 질문을 바꾸었다.
“너희에게 이 수법들을 가르쳐준 자가 누구냐?”
두 사람에게 공동의 스승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적근왕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수가 질문을 하고 답을 기다리느라 약간 공세를 늦춘 사이 잽싸게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또냐?”
기수는 코웃음을 치며 그를 쫓았다.
그런데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횃불이 밝혀지면서 일월신교 교도들이 함성을 지르며 포위망을 만들고 있었다.
기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떤 방해가 있건 적근왕을 죽이고 싶었지만 자칫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했다.
적어도 100대쯤 더 때려야 부서질 것 같은 적근왕을 상대하는 사이 탈각왕은 기문진을 바꾸고 교주가 강시들과 함께 내려온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호중만 정도를 전송하는데 적근왕이 따라붙었던 것을 보면 또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지난번 교주에게서 느낀 기도로 짐작하건데 그는 결코 적근왕의 아래가 아니었다.
거기에 변형된 기문진과 강시까지 더해진다면 지금 도망치는 적근왕이 오히려 공세로 전환할 수도 있었다.
기수는 추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횃불들이 형태를 잡기 전에 산을 내려갔다.
아쉽긴 했지만 안전을 택한 것이다.
그는 버려두었던 호중만을 들쳐메고 횃불이 없는 쪽으로 우회하여 산을 올라갔다.
기수가 산채에 도착하자 사매들 모두 나와서 반겼다.
“산 아래가 시끄러워져서 걱정하던 중이었어요.”
“하하!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누굴 잡아왔는지 봐.”
사매들은 호중만을 알아봤다.
“이 나쁜 자식!”
소서시의 처참한 죽음이 생각난 것이다.
기수는 일단 객청으로 들어가 그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호중만은 창백한 안색으로 빌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질문에 솔직하게 모두 대답한다면 살려주겠다.”
“저, 정말이십니까?”
“아무렴.”
“모두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문하십시오.”
기수는 염정구심술을 발동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호중만의 입이 아니라 그의 뇌를 통해 들을 계획이었다.
“적근왕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
“예. 그, 그는 무창 출신으로 어렸을 때 청성파에 입문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파문당해서 떠돌다가 교주님을 만나 무공을 배웠고, 뛰어난 자질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주가 그의 사부였다고?”
“그렇습니다.”
“흐음….”
일월신교 교주가 유지광과 적근왕에게 같은 무공을 가르쳤다는 게 가장 간단한 대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주도, 적근왕도 사도는 아니었다.
뭔가 다른 연결고리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호중만은 더 이상 아는 게 없었다.
기수는 다른 질문을 했다.
“강시는 어디서 만들고 있지?”
호중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강시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수는 씩 웃었다.
“내가 아까 분명히 얘기했지? 솔직히 다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테니까 신중히 생각하고 대답해라. 강시는 어디서 만들지?”
호중만은 여전히 잡아뗐다.
“아! 미치겠네.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연말 연예대상 시상대에 오를 정도의 연기력이었다.
하지만 호중만에겐 안타깝게도 기수는 그의 생각을 읽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기수는 모른 척 하고 다음 질문을 했다.
“강시 제조법을 아는 사람이 너 말고 누가 또 있느냐?”
“정말 저는 강시와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것은 호중만의 입으로 나온 대답이었고 기수는 그의 머릿속을 읽어 그 비법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자기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기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강시에겐 어떤 약점이 있느냐?”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전 강시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기수가 들은 대답은 ‘그들은 천하무적이다. 어떤 약점도 없다.’ 였다.
“은종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냐? 그걸 가진 사람은 아무라도 강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거냐?”
은종 얘기가 나오자 호중만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전 정말로 강시에 대해 모릅니다.”
기수는 그 종소리가 제조과정 중에 계속 들려주어 각인시키는 것인데, 종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제조자의 음성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 교주가 종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제조자인 호중만이 교주 말을 들으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흐음…. 그러면 제조자가 죽어 없어지면 놈들은 아무 것도 아니란 뜻이구나.”
호중만은 자기가 속으로 생각한 것을 기수가 알아차리자 깜짝 놀랐다.
기수가 그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그래. 지금 교주에게 건네준 640마리는 별도의 명이 전달되기 전까지는 계속 교주의 명령에 따르겠지. 그건 상관없다. 너와 640마리만 없애면 세상에 더 이상의 강시는 없게 되는 거니까.”
호중만은 더 더욱 놀랐다.
기수가 자기 생각을 읽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네가 죽어야 할 이유도 알겠지?”
“사, 살려주십시오!”
“기회를 한 번 주었잖아. 하지만 네가 잡지 않았지.”
“아, 아닙니다. 제발….”
“내게 관심술이 있는 줄 알았다면 사실대로 말할 걸 그랬다고? 이미 늦었어.”
“저, 저를 살려주시면 이번에 만드는 강시들은 모두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기수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내겐 그따위 마물 필요 없어.”
“아,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강시제조법만 있으면 군량이 필요 없는 군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하나가 천하무적이고 숫자를 십 만, 백 만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습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화살과 창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격하는 백만 대군! 그들만 있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솔깃한 얘기이기는 했다.
그러나 기수에겐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군대는 필요 없었다.
“편히 쉬어야 할 죽은 자의 몸을 산 사람 죽이는 데 쓰겠다는 게 말이 되냐? 제 정신 박힌 놈이라면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저는 당신에게 천하를 선물하려는 것입니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리를 어기는 방식이라면 천하를 줘도 싫다.”
그 말에 사매들이 기수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런 유혹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호중만은 어떻게든 살 기회를 잡으려고 했다.
“하, 하지만…..저의 제안을 한 번만 더 생각해보십시오.”
기수는 더욱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듣기 싫다! 사내답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러자 춘매가 나섰다.
“궁주. 이 자는 우리가 처리하게 해 줘.”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해.”
소서시는 당시 5명의 사매들과 동행했었기 때문에 자기보다는 사매들이 더 큰 복수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사매들의 복수는 단순했다. 그리고 끔찍했다.
호중만은 객청 기둥을 안은 상태로 손과 발을 묶인 뒤 아혈을 제외한 혈도가 풀렸다. 아혈을 누른 것은 혀를 물어 자결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섯 사매는 호중만이 보는 앞에서 단도를 갈았다.
슥슥슥슥….
칼 가는 소리가 객청 안에 가득 울려 퍼지자 호중만의 낯빛은 사색이 되었다.
기수는 당시에 없었던 탁지연에게 소서시 일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탁지연은 분개했다.
“어, 어떻게 사람의 등가죽을….”
탁지연은 소서시를 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고통에 공감이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매서운 눈으로 호중만을 노려봤다.
사매들은 간단히 소서시의 위패를 만들어 제단을 만들고 그 앞에서 그녀의 원혼을 달래주는 복수를 시작했다.
기수는 너무 끔찍한 광경이라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섯 사매는 산 사람의 등껍질을 베어내는 끔찍한 행동을 눈 하나 깜빡 않고 태연하게 해냈다.
기수는 중원무림이 현대와는 다른 곳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매들은 좀 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슬쩍 탁지연을 보니 그녀 역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러나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모두 지켜보았다.
‘하긴 그녀도 피를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지.’
두려워하기보다는 피를 보는 흥분하는 타입이었다.
다섯 사매가 각자 떼어낸 것을 접시에 놓아 제사상에 올리고, 향을 피우고, 술잔에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것으로 복수 의식은 끝이 났다.
기수와 탁지연도 그 과정에 참여했다.
과정은 끔찍했지만 소서시의 위패를 보니까 그녀의 원한을 제대로 갚아준 것 같아서 기분은 통쾌했다.
의식이 끝난 뒤에도 호중만은 살아 있었다. 아혈을 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그의 얼굴엔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춘매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죽어서 소서시를 만나면 한 번 더 사과하는 게 좋을 거야.”
호중만은 말은 못하고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할 테니까 제발 빨리 죽여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다섯 사매는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제사가 끝났으니까 굳이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그리고는 부하들을 불러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가 일월신교 진영에서 잘 보이도록 높은 나무 기둥에 묶어 올리도록 했다.
결국 호중만은 고통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