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49
수색한 결과 확실한 상황파악이 가능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 많던 병력이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간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군막과 깃발은 전부 버리고 몸만 퇴각했으니 산 위에선 알 방법이 없었다.
기수는 몇 가지 면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선 일월신교 교주의 결단력이 놀라웠다.
적근왕에게 보고를 받았을 테니 자신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었을 터. 하지만 두 아들의 원수가 코앞에 있고, 자기 손에는 640마리의 새로 만든 강시가 있는 상황에 냉정하게 결단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었다.
사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그것이 옳은 결정이기는 했다.
무극환혼진은 뚫리지 않고, 복귀한 혈매궁주가 벌이는 게릴라전에는 번번이 당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만 누적될 것이었다.
그러나 퇴각을 할 경우 교의 사기나 조직 장악력이 현저히 약화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으로 보아 일월신교 교주는 몹시 계산적이고 냉정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아! 좋은 기회였는데….’
기수 입장에선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적이 자기 앞마당에 몰려왔을 때 모조리 처치했어야 하는데 한빙왕과 호중만을 죽여 잔혈묵연과 강시라는 두 개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교주와 남은 강시 500마리, 그리고 기문진을 만드는 탈각왕은 여전히 건재했고, 적근왕은 싸움에서 이겼지만 죽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이 이빨을 감추고 자신들의 소굴로 돌아가 숨었다는 사실이 기수 입장에선 몹시 꺼림칙한 일이었다.
이제 그들을 제거하려면 소항산이 아닌 그들의 근거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래! 사도도 없는데 내가 뭐 하러 가?’
유지광도 죽였고, 호중만을 잡아 복수도 했으니까 이제 그들과 얽힐 이유는 없었다. 다만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게 좀 찝찝할 뿐이었다.
대충 정리를 하고 나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 스트레스만 남았다.
‘일월신교 퇴치 기념으로 함 하자고 할 텐데 어쩌지?’
사매들이 오래 참았기 때문에 이번 기념식은 엄청 거창할 것이었다.
자기도 사매들과의 파티를 손꼽아 기다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처가 덧나면 어쩌란 말인가?
이빨자국이니까 해바라기 모양으로 예쁘게 흉터가 남아 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런 낮은 확률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기는 싫었다.
‘참아야 돼! 이제 다 나았으니까 며칠만 더 버티면 된다고!’
방법을 궁리하던 기수는 즉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
백무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를 만나 일월신교 퇴치가 지상과제인 것처럼 얘기하면 뭔가 다음 행동을 제안할 것이었다. 그러면 그 일 때문에 바쁜 척하면서 완치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아! 난 천재야.’
소항산을 내려간 기수는 관도에 들어서자마자 자욱한 흙먼지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말을 탄 군관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안에 놀랍게도 석초가 있었다.
“형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기수가 대답했다.
“일월신교 놈들이 도망쳐서 찾으러 나왔네.”
“도망쳤다고요? 아! 우리가 한 발 늦었군요.”
“늦다니?”
“백시랑님과 함께 정예병을 이끌고 놈들의 배후를 치러 오는 중입니다. 특별히 기문진법에 능한 대장군부의 책사들을 총동원해서요.”
“아! 그랬군.”
단지 자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관군의 위협까지 겹쳤기 때문에 일월신교는 그렇게 황급하게 도망을 쳤던 것이다.
‘어쩐지…. 적어도 함정 정도는 파놓았을 줄 알았는데….’
탈각왕이 진법 배열을 바꾸긴 했지만 그것은 일부분에 불과해서 다른 쪽으로 돌아서 내려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기문진을 전부 바꾸고 강시를 매복시킬 여유도 없을 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기수는 잠시 기다렸다가 백무영을 만날 수 있었다.
“아우! 여긴 어떻게 내려와 있나?”
“형님. 놈들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게 무슨말인가?”
기수가 설명해주자 백무영도 몹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석초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놈들을 추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소용없을 거야. 지금쯤 방파별로 전부 분산되었을 테니까.”
“그래도 군대를 동원했는데 아무 성과 없이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석초는 백무영 쪽을 봤다.
그러나 백무영은 맥이 풀려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기수가 그에게 말했다.
“형님에게 보여드릴 것들이 있습니다. 기문진 파해를 위한 책사들과 형님은 여기 남도록 하고 기병들로만 추격대를 편성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 하는 게 좋겠군.”
백무영은 석초에게 병력을 지휘하여 일월신교를 추격하도록 한 후 기수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기수는 그를 따라온 책사들에게 진법을 보여주고 통과하기 위한 숫자 조합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연신 감탄하며 진을 둘러보다가 자기들끼리 머리를 모으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파해하려 했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겠지만 기수가 가르쳐 준 통과방법 덕분에 시작하자마자 진도가 절반 이상 나간 셈이었다.
백무영은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기수에게 말했다.
“일월신교에 이런 정교한 기문진을 만드는 자가 있다니 놀랍군.”
“구마왕 중 탈각왕입니다.”
“아! 내가 하루만 더 일찍 왔더라면….”
“그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딱 맞춰서 퇴각한 것을 보면 관군의 움직임을 보고해주는 첩자들을 사방에 심어놓은 게 분명합니다. 일찍 오고 늦게 오고의 문제가 아니었단 말씀이지요.”
백무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듣고 보니 맞는 얘기였다. 군대의 움직임이란 것은 무림 문파와 달리 워낙 준비할 것도 많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비밀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수고가 많았네.”
“이번에도 저 기문진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성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파해법이 완성되는 대로 제게도 가르쳐주십시오.”
“물론이지. 도해까지 넣어 최대한 자세히 분석하도록 지시하겠네.”
“고맙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나중에 일월신교와 다시 만난다 해도 겁날 게 하나도 없었다.
백무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그런데 여긴 언제 돌아왔나?”
“며칠 됐습니다.”
기수는 자기가 돌아온 이후에 한 일들, 한빙왕과 유지상을 죽이고 강시들을 부순 얘기들을 해주었다.
백무영은 얘기를 듣는 도중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기는 그냥 단순히 기문진만 뚫을 생각으로 왔는데, 그 안에 독연과 강시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교주의 장남과 또 다른 구마왕을 죽였단 말인가? 그거 정말…”
뭐라 말을 이어야할지 모를 정도였다.
기수 혼자서 일월신교 전체를 상대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형님. 그런데 강시를 상대하기가 예상보다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기수는 자기가 경험한 것, 보고 들은 것들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나도 보고 싶네.”
“저와 함께 가시죠.”
기수는 강시들 쌓아둔 공터까지 그를 안내했다.
백무영은 한군데 몰려 꿈틀거리는 마물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머리가 부서지고 꽁꽁 묶여 있지만 여전히 끔찍하고 위헙적이었다.
“내가 직접 확인해 봐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하지만 녹색 체액이 무기나 옷에 묻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리하겠네.”
백무영은 장검을 뽑아 들고 한 강시의 묶인 밧줄을 끊었다. 강시는 꿈틀거리며 일어섰고, 백무영이 검으로 툭툭 건드리자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백무영의 검이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강시의 몸을 서너 차례 찔렀다.
날렵하고 힘 있는 움직임으로 요혈을 정확하게 공격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중엔 마구잡이로 베어내려 했지만 어디 한 곳 단번에 잘리지 않았다.
대여섯 차례 가격으로 겨우 놈을 쓰러트리긴 했지만, 놈은 몸이 잘린 이후에도 여전히 꿈틀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백무영이 질린 표정으로 기수에게 물었다.
“끔찍하군! 이런 놈이 500마리나 더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교주가 종을 가지고 조종합니다.”
“심각하군! 이건 보통 문제가 아냐.”
백무영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안절부절못하자 기수는 그를 산채로 안내했다.
객청에서 차를 대접했지만 백무영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계속 서성거리면서 큰일났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기수는 그의 그런 행동을 이해했다.
자기는 이제 일월신교와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두 아들의 원한을 갚겠다고 달려든다면 그때 대응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백무영은 달랐다.
그는 대장군부의 핵심 간부이자 대장군의 아들. 그리고 동시에 황제의 부마이기도 했다. 일월신교와 강시를 기수처럼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이다.
“호중만이란 자가 죽었으니 더 이상의 강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만들어진 500구만 처리하면 됩니다.”
백무영은 다시 물었다.
“정말 더 이상은 없는 게 확실한가?”
“호중만이 강시를 만들던 작업장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만… 호중만이 없는 이상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백무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로는 안심할 수가 없네. 확인이 필요해.”
“그럼 제가 가서 확인해볼까요?”
“그래주겠나?”
기수는 안 그래도 백무영을 찾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완치까지 사매들의 자축 파티를 미루기 위한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부탁을 하니 한 편으로는 백무영에게 선심 써서 좋고, 다른 한 편으로는 치료기간을 벌 수 있어서 좋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가서 모든 걸 다 없애버리겠습니다.”
“고맙네. 하지만 모든 걸 없애지는 말고 기구와 장비, 사용하던 약품들을 고스란히 보존해줬으면 좋겠네. 석초를 딸려 보내줄 테니까.”
“그건 뭐에 쓰시게요?”
“강시의 제조법을 알면 약점도 찾아내기 쉬울 것 아니겠는가.”
“호중만은 약점이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머리를 부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저지법이 없었습니다. 형님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셨습니까?”
백무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찾아봐야지. 자네가 잡은 강시들을 내가 전부 가져가도 되겠나? 놈들을 재료로 삼아서 제거법을 찾아보고 싶은데….”
“물론입니다. 전부 다 가져가십시오.”
“고맙네.”
“별말씀을요.”
소항산에서 그 쓰레기들을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탈각왕의 기문진 파해법 알아내는 일, 강시들의 약점을 찾아내는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안배한 후 직접 강남으로 가서 일월신교 압박을 다각도로 시도할 생각이네. 더 이상의 강시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은 자네가 꼭 좀 책임지고 맡아주게.”
“걱정 마십시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사매들과의 파티를 피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백무영은 자기를 황궁비고에 들여보내주기까지 했으니 기브 앤 테이크 원칙에 따라 최대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호중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기분이 개운할 것 같았다.
그날 밤. 기수는 사매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일 새벽에 길을 떠난다. 모두 준비해.”
“어디로요?”
“회하(淮河) 하류의 홍택호(洪澤湖). 그곳에 호중만의 강시 제작소가 있어.”
설매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하, 하지만… 오늘은 일월신교 물리친 기념식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매들도 다 같은 표정이었다.
“어이! 이봐들.”
기수는 양손으로 동시에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직 다 안 나았다고! 제발 쫌!”
“아, 알았어. 화내지 마.”
“화난 건 아냐. 다만, 내 상처도 상처지만 백시랑이 몹시 힘들어해서 그를 꼭 도와주고 싶어.”
사매들은 그 얘기에 더 쉽게 동조했다.
동창에 오래 속해있었기 때문에 강시가 천하의 안전에 지대한 위협이라는 사실이 피부에 즉각 다가오는 것이다.
춘매가 말했다.
“좋아. 새벽에 떠나도록 준비할게.”
기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왕사동을 불러 대장군부의 일에 적극 협조할 것, 그리고 자신들이 떠난 뒤 기문진을 어떻게 보완하고 변경시킬 것인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왕사동과 부하들은 모두 열성적으로 움직였다.
그동안은 녹림72채에도 속하지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산적무리에 불과했지만, 동창의 침입을 막아내고, 일월신교를 격퇴시키면서 혈매궁의 일원이 된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도법도 제대로 배우고 있으니 웬만한 문파 부럽지 않은 소속감을 저마다 가질 수 있었다.
기수는 백무영을 붙잡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다음날 새벽 일찍 사매들을 재촉하여 산을 내려왔다. 석초가 갑옷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그들을 따라왔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추매가 투덜거렸다.
“궁주. 왜 이렇게 서둘러?”
“서두르기는…. 호중만의 흔적을 빨리 없애고 백시랑의 강남 원정에 동참해야지.”
“아! 그럴 생각이었어?”
“당연하지. 기회 있을 때 일월신교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 적은 동창 하나로 족해.”
물론 기수가 일부러 바쁘게 몰아가는 것은 일월신교 말살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존슨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사매들의 뇌리에서 기념파티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
막상 안 하다 보니까 그것도 나름대로 견딜 만 해서 이 기회에 신선술을 제대로 익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사매들과 함께 지내는 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 깨끗이 포기했다.
기수와 여섯 사매, 그리고 석초 등의 8명은 경공과 도보를 병행하여 이틀만에 회하를 만났고 동쪽으로 몇 시간 더 걸어 홍택호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