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65
사조의 장례식을 치른 진백과 기수는 엄선한 제자 100명과 함께 무림맹이 자리 잡고 있는 숭산으로 향했다.
기수는 모두가 맞춰 입은 동일 디자인의 청색 무복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 기록에 남아 있는 비룡검문의 무복을 그대로 만든 것이라는데, 팔다리 움직임에 거치적거리는 부분이 없고 관절 쪽에 약간 헐렁하게 여유가 있어서 실용적이었다.
새 옷 입고 명문정파 대열에 합류하러 가는 길은 발걸음도 가벼웠다.
제자들도 모두 들뜬 표정이었다.
그러나 숭산이 가까워질수록 좌우로 따라붙는 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진백과 기수는 그들이 십절금왕문 소속 무사들임을 알았다.
지난번에 철랑대를 만났을 때, 그들을 점혈만 하고 한 명도 죽이지 않은 것은 무림맹 입맹을 앞두고 불필요한 원한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래서인지 적도 무리해서 앞을 가로막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숭산까지만이었다.
소림사와 무림맹으로 각각 올라가는 길이 나뉘는 산 입구.
얼핏 봐도 2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십절금왕문의 철랑대와 은랑대, 그리고 선두엔 대여섯 명의 금랑대도 보였다.
그들은 옷 색깔뿐만 아니라 내뿜는 기도가 확연히 달랐다.
진백이 나서서 말했다.
“우리 비룡검문은 무림맹에 입맹하러 가는 길인데, 당신들은 무슨 이유로 길을 막는 것이오?”
그러자 금빛 소매의 40대 남자가 나서서 말했다.
“나는 십절금왕문 소속 금랑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황신이라고 합니다. 당신들은 산에 오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막을 것입니다.”
진백과 황신은 눈싸움을 했다.
서로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감지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진백이 다시 물었다.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우리 비룡문은 십절금왕문과 어떤 원한관계도 없소.”
그러자 황신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우리는 문주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다른 자들도 일제히 검을 뽑았다.
기수와 진백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금랑대와 싸우는 게 두려울 것은 없지만 무림맹에 입맹하러 온 사람들이 무림맹의 코앞에서 십절금왕문과 다툼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처한 상황.
진백은 일단 손짓을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진형을 펼치도록 했다.
적이 무기를 뽑았는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방어진이 갖춰지자 황신을 비롯한 금랑대 무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숫자는 자기네 쪽이 훨씬 많지만 비룡검문의 기세로 봤을 때 결코 싸움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 것이다.
황신은 침음성을 흘리며 문주의 명령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룡검문의 양호법을 죽이라는 게 첫 번째 임무였고, 두 번째로 내려온 명령은 비룡검문의 무림맹 입성을 방해하라는 것이었다. 양호법을 죽이는 것에 비하면 비룡검문을 막는 것은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황신이 진백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당신네 문파의 양호법만 내어준다면 길을 열어주겠소.”
“흥! 어림없는 소리!”
진백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기수가 진백에게 속삭였다.
“문주님. 저를 보내주십시오.”
“그건 안 되네.”
“저 혼자 저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 무림맹으로 올라가십시오.”
금랑대 무사들이 제법 강해 보이긴 했지만 정신 집중만 한다면 도망치다 돌아서서 대여섯 명씩 제압하는 방식으로 죽이지 않고 얼마든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경공으로는 누구도 자기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기수였다.
그러나 진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원칙의 문제일세. 동료를 남겨두고 우리만 갈 수는 없어.”
그런 의미라면 기수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결국 한 판 싸움을 해야 하는 건가.’
그 때, 일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 가사를 입은 소림승들이었다.
“아미타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산문 앞에 무사들이 집결하자 지객승들이 위에 보고를 한 것이다.
황신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저희들은 십절금왕문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 일은 소림사와 무관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림승들은 혈랑대의 옷을 알아보고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았다.
기수는 소림승들이 대치상태 해소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무림맹에 입맹하려는데 저들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기수가 이제까지 겪어 본 결과 진백은 그런 식으로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
체면 접고 도움을 청하느니 그냥 부닥쳐 싸울 스타일.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백서옥이 자기 입 막으려고 수작을 부리는데 비룡검문까지 끌려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다행히 본래 얼굴이 아니니까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았다.
소림승들 중 머리의 화인 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게 정말이시오?”
기수는 황신이 끼어들기 전에 급히 말했다.
“우리는 무림맹 입문이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길을 막고 올라가려면 통행료를 내라고 하더군요. 숭산에 산적이 있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소림승은 물론 황신과 금랑대의 낯빛이 확 달라졌다.
설마하니 천하의 십절금왕문이 소림사 산문 앞에서 강도질을 할 리야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대치 상태만 놓고 보자면 산적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황신이 기수를 향해 노갈을 터뜨렸다.
“넌 도대체 누구기에 감히 없는 말을 지어내어 우리 십절금왕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이냐!”
“흥!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길을 막았단 말이냐? 내 이름은 양십일. 천하제일 비룡검문의 자랑스러운 호법이다!”
금랑대와 은랑대, 그리고 철랑대 무사들의 모든 시선이 기수 얼굴에 꽂혔다.
똑똑히 기억해두려는 의도였다.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얼굴이기는 했다.
기수가 애당초 만들 때부터 좀 모자라 보이는 개그맨 얼굴을 흉내 냈기 때문이다.
황신이 눈에 살기를 띠며 말했다.
“네가 양십일이로구나.”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십절금왕문으로부터 돈 한 푼 꾼 적 없다. 그런데 날 내놓으라는 이유가 무엇이냐? 여기 모두가 있는 앞에서 그 이유나 들어보자!”
“그것은…”
황신은 좌우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소림승 외에 다른 문파 사람들도 상당수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소림사 쪽이 아닌 무림맹 쪽에서 역시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내려온 것이다.
황신은 그들 중 몇몇 아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기수가 좌우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비룡검문이 무림맹 입맹을 원하여 왔는데 십절금왕문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원래 무림맹까지 올라가려면 여기서 통행세를 내야 하는 겁니까? 이것이 무림맹의 규칙입니까? 아니면 십절금왕문이 자의적으로 하는 짓입니까?”
황신이 소리 질렀다.
“누, 누가 통행세를 내라고 했단 말이냐! 입 닥쳐라!”
“호오… 그럼 검을 뽑고 길을 막은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 영웅들 앞에서 당당하게 밝혀보시오. 무림맹주님이 시켰소? 아니면 십절금왕문 문주가 시졌소?”
모여든 소림사와 무림맹 사람들 모두 황신을 봤다.
황신은 난감했다. 그가 산문 앞에서 기다린 것은 비룡검문이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무림맹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전술적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구경꾼들 앞에서 선동질을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기수는 아예 서너 걸음 앞으로 나서서 더 큰소리로 얘기했다.
“우리 비룡검문이 남궁세가를 봉문시켰다는 소문은 여러분 모두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정당당한 비무였습니다. 우리는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의 기왓장 하나 부수지 않고, 개 한 마리 죽이지 않고 물러나왔습니다. 이제 그 힘과 의기로 무림맹에 도움이 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는데, 십절금왕문은 왜 검을 빼들고 우리를 못 가게 막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마교 혹은 삼황맹과 거래가 있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황신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놈! 닥쳐라!”
그는 검을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자신의 최상위 목적은 비룡검문 양호법의 제거.
십절금왕문에 모욕적인 언사를 한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그를 죽인다 해도 핑계를 댈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비룡검문이 무림맹에 가입하거나 말거나,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의 검이 예리한 파공음을 울리자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아. 내가 원한 게 바로 이거야.’
그가 혼자 앞으로 나온 것은 사실 상대의 공격을 유도한 행동이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시간은 자기네 편이 아니었다.
대치된 상태에서 양측의 의견이 대립되다 보면 결국엔 기존 무림맹 멤버이자 9파 1방 4문 5가의 일원인 십절금왕문 편을 드는 사람이 많을 것이었다.
그래서 산적이니 통행세니 하면서 계속 황신을 자극하고 다그친 것이다.
쨍! 소리와 함께 검과 검이 격돌했다.
기수는 그 첫 번째 접촉으로 황신의 능력을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십절금왕문은 좋은 고수를 보유하고 있군.’
새 검법을 전수받기 전의 진백 정도 수준이라고 판단되었다.
기수는 상대가 맹공을 퍼붓도록 놔두었다.
단단하게 방어에만 집중하면서 소림사와 무림맹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시선을 한 곳에 모았다.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터뜨리는 것은 황신의 놀라운 검술 때문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무공에 인생을 걸었고, 상당한 경지에까지 오른 사람들이기에 보는 눈도 남달랐다.
황신 입장에선 이렇게 구경꾼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내는 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었다.
기수가 계속 입을 놀리면 반박이나 해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그를 죽여야 했다. 수습은 나중 문제였다.
그러나 상대의 방어는 완강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구경꾼의 수가 충준히 늘어나자 반격이 시작되었다.
“으으….”
황신은 신음을 토했다.
상대와 자신의 내공엔 차이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자기 쪽이 약간 우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검법에서 뭔가가 달랐다.
노련함.
상대는 같은 초식을 써도 적재적소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용을 했다.
나이는 서른이 될까 말까 해 보이는데, 검을 다루는 실력은 100살 넘은 노고수처럼 자유자재, 능수능란했다.
초수가 거듭되면서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밀리던 싸움을 기수가 백중세로 만들더니 조금씩 우세를 점해 나갔기 때문이다.
구경꾼 입장에서야 역전승보다 재미있는 거 어디 있겠는가.
황신은 패배를 직감했다.
자신의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초식들을 극히 짧고 단순한 움직임으로 막아내는 것만 봐도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내공에선 우위인데 검초의 운용에서 밀려 지는 것은 최초의 경험이었다.
황신은 이를 악물었다.
금랑대 대장의 명예를 걸고 죽을 때까지 사력을 다해 싸우리라 결심한 것이다.
바로 그때.
파파팟!…..
“으윽!…..”
황신은 갑작스런 기습에 혈도를 짚이고 말았다.
오로지 상대의 검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간격이 바짝 좁혀진 순간, 그의 왼손에서 지풍이 날아온 것이다. 그는 검을 떨어트리고 쓰러질 뻔 했다.
그런데 기수가 와서 잡아주어 쓰러지는 꼴은 면하고 두 발로 서있을 수 있었다.
“와아아!…..”
구경꾼들은 함성을 터뜨렸다.
설마 했는데 강호 초출이나 마찬가지인 비룡검문 사람이 십절금왕문 금랑대의 대장을 이긴 것이다. 특히나 그는 문주도 아니었다.
제자가 그 정도라면 문주는 훨씬 더 고수임이 분명했다.
그로 인해 비룡검문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무림은 정과 사를 떠나서 강자가 존중받는 곳. 비록 명성으로는 비룡검문이 십절금왕문에 미치지 못하지만 실력은 오히려 더 위라는 사실이 증명되자 다들 존경과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기수는 바뀐 분위기를 파악한 후 진백에게 물었다.
“문주님. 이 자를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도 자기가 처리하지 않고 문주로 하여금 호의를 베풀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
진백은 손가락을 횡으로 까닥였다.
“풀어주게.”
“예.”
기수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황신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그의 검을 집어 건네주기까지 한 뒤 황신에게 물었다.
“이래도 길을 열지 않겠는가?”
황신은 할 말이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실력으로 완패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는 자신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않았고, 무기도 돌려줬으며, 심지어는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기까지 했다.
‘이 남자에겐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그는 검을 검 집에 꽂고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길을 열도록 했다.
그리고 기수에게 포권을 한 후 말했다.
“호의에 감사하오.”
기수도 마주 포권을 했다.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수는 진백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뒤를 따라 무림맹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십절금왕문 무사들은 황신이 패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비룡검문 사람들 좌우로 활짝 펼쳐 서서 길을 열어주었다.
그 위쪽에서 구경하던 다른 무림맹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단 좌우로 완전히 물러났다.
진백은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비룡검문 제자들은 그들 사이를 헤치고 가는 내내 의기양양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