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67
기수는 눈을 감고 오랜만에 하는 키스의 쾌감에 몰입했다.
그것은 정말로 달콤했다.
비유적인 달콤함이 아니라 맛 자체가 진짜로 달았다.
‘입술에 뭘 바른 거지? 꿀인가?’
그것보다는 향기가 살짝 강했고 자꾸만 더 먹고 싶어졌다.
그녀의 침도 맛이 특이했다.
달고 향이 깊은 사탕을 빨아먹는 느낌이었다.
채정이 입술을 슬쩍 떼고 말했다.
“양대협. 저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가슴은 쿵쾅거리고요.”
“원래 그런 거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우리… 좀 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갈까요?”
그러면서 볼이 상기되어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수는 정욕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자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기수는 위화감을 느꼈다.
미녀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면 흥분되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보통 남자들과 달리, 기수는 단지 호르몬의 분비로 흥분하는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 의지력으로 자신의 흥분 상태를 조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지금의 흥분은 뭔가 페이스가 좀 과하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정도로 달아오르는 게 맞나?’
채정이 확실히 미인이긴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첫 데이트에서 진도를 이 정도까지 나갈 계획은 아니었다.
‘이거 혹시….’
기수는 급히 내공을 운기해 보았다.
순간, 단전에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전해져 왔다.
기수는 급히 채정을 밀어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무, 무슨 짓이라니요?”
채정은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섰지만 그녀의 두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기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객이었구나! 어쩐지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더라니….’
기수는 재빨리 잔백지를 날려 그녀의 혈도를 점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가 지풍을 튕겨냈다.
“흥! 괴이한 수법을 쓰는구나.”
기수의 공격에 깜짝 놀란 채정은 뒤쪽으로 훌쩍 뛰어 간격을 벌렸다.
기수는 즉시 진기를 끌어 올려 그녀를 추격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단전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기수의 경공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자 채정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호호!… 내공을 끌어올릴수록 독은 더 빨리 퍼질 거야.”
“젠장!”
조금 전 화끈거리던 단전이 지금은 따끔거리는 것으로 보아 독의 확산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더구나 상대는 기습적인 지풍을 튕겨낼 정도의 고수.
어쩌면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공을 쓰면 독으로 죽고, 쓰지 않으면 그녀 손에 죽임을 당할 상황인데 독은 점점 더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다.
채정은 허리에 차고 있던 날카로운 비수를 뽑아 들었다.
“네놈 주제에 나와 입맞춤을 했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호호호!…”
“으으….누가 시켰느냐?”
기수는 독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진기로 혈맥을 차단하며 말을 걸었다.
“제대로 된 살수는 의뢰인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법이지. 호호호!…”
채정은 신중했다. 중독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하지 않았다.
“십절금왕문이냐?”
“호호호!… 돈이란 좋은 것이지.”
의뢰인이 누구인지 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양십일이란 캐릭터로 강호행을 시작한 이래로 원한을 맺은 것은 남궁세가와 십절금왕문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궁세가는 패배에 완전히 승복한 상태니까 채정은 백서옥이 고용한 게 분명했다.
미모와 연기력, 그리고 독만으로도 충분히 암살이 가능할 텐데 무공까지 갖춰진 것을 보면 채정을 고용하는 데는 거액의 의뢰비가 들었을 것 같았다.
기수에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질문을 했다.
“어, 어째서 넌 중독되지 않은 거지?”
“그걸 알고 싶으냐? 호호호!…. 난 여기 오기 전에 한 알뿐인 해약을 먼저 먹고 나서 연지를 발랐거든.”
채정이 자세히 얘기해주는 것은 그녀 역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간격이 벌어진 상태에서 지풍으로 혈도를 찍어오는 고수와 서둘러서 접전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독이 퍼지기를 기다린 후 최종적으로 마무리만 자기 손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시간은 그녀 편이었다.
“으으….”
기수는 휘청거리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호호호!…. 서 있기도 힘들지? 그 정도만 해도 많이 버틴 거야. 공연히 애써봤자 너만 괴로우니까 편안히 누워. 곧 끝날 거야.”
기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눈으로는 그녀의 치마 아래 살짝 드러난 신발을 주시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땅바닥을 짚었다.
그 모습을 보고 채정의 미소가 짙어졌다.
만약 그녀가 현대에 살았었다면 기수의 현재 포즈가 100m 달리기 스타트 폼이라는 걸 알아차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채정은 자신의 독 효능을 확신하고 있었다.
파팟!
기수의 신형이 순간 총알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채정은 깜짝 놀라 뒤로 피하면서 비수를 휘둘러 검막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 두 사람의 팔이 한 차례 얽혔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기수의 공격을 모두 무위로 돌릴 수 있었다.
기수의 기습이 엄청나게 빠르긴 했지만, 미리 벌려둔 안전거리가 충분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채정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너. 어떻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
“나만 죽기는 억울해서 말이지. 후후….”
“무슨 소리냐?”
순간, 채정의 안색이 변했다.
방금 전 기수와 닿았던 팔로부터 끔찍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암경?”
기수는 씩 웃은 후 말했다.
“자. 이제 누가 먼저 쓰러지나 내기할까?”
기수는 임시로 하단전에 독기를 모두 몰아넣었다.
그에겐 그러고도 두 개의 단전이 남아 있었다.
북궁심법의 묘용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더.
물론 그것들 역시 독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최후의 일격을 날릴 정도는 되었다.
그는 대화로 시간을 벌며 내공을 조심스럽게 모은 뒤 효율과 치사율 면에서 최상인 단정홍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루어진 돌격.
기수는 자신이 현재 운용할 수 있는 내공으로는 채정과 정상적인 대결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녀의 팔과 접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성공적으로 암경을 밀어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일격으로 인해 상단전과 중단전에까지 독기가 번졌지만 일방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채정의 안색이 급변하고 있었다.
기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후….아무래도 내 승리인 것 같군.”
채정은 기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기수를 찔러 죽이고 싶었지만 중독된 상태로도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강적과 또 다시 부딪히기가 두려웠다.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즉시 행동에 옮겼다.
“두고 보자! 넌 어떻게든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대치상태로 암경의 확산 위험에 노출되느니 일단 자리를 피해 목숨부터 구하고 보자는 것이었다.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기수는 아쉬움을 느꼈다.
‘너무 약했구나.’
비록 경공을 펼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멀쩡하게 도망치는 것은 단정홍이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하게 만들어졌다는 의미였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기수는 손가락으로 목을 찔러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위를 다 비운 것 같은데도 어질어질한 독기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이거 무슨 발암물질 같은 건가?’
양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될 텐데 벌써 혈관으로 다 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농약 같은 걸까? 제초제?’
그 정도는 아닐 것이었다. 미리 해약을 먹었다고 해도 어쨌거나 채정이 입에 머금고 있었으니까 화공약품 계열은 배제해도 좋을 것 같았다.
기수는 일단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방 출입을 엄밀하게 막아달라고 부탁한 후 가부좌를 틀고 내공으로 독기 몰아내기에 도전했다.
하단전의 중독 상태는 심각했다.
다행히 북궁심법 덕분에 운기가 가능했지만 모공을 통해 방출을 하기까지 서너 시간이나 걸렸다. 몹시 길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에 이어 점심때도 기수가 나타나지 않자 진백이 방으로 찾아왔다.
기수는 잠시 운기조식을 멈추고 그를 맞았다.
진백은 깜짝 놀랐다.
“자네. 얼굴이 왜 그런가?”
“예? 왜 그러십니까?”
“그 붉고 푸른 반점과 부스럼들은….”
진백은 탁자에 놓여 있던 구리거울을 갖다 주었다.
“윽!…”
기수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독기를 피부로 배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독으로 인해 피부가 엉망이었다.
피부과 병원 전단지의 Before, After 비교 사진 중 Before를 보는 느낌이었다.
“아! 이 죽일 년들!”
욕이 저절로 나왔다. 백서옥과 채정 모두 용서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부끄럽습니다.”
기수는 밤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해주었다.
진백은 몹시 놀라 기수의 상태를 물었다.
“독은 모두 몰아낸 건가?”
“그게… 좀 힘듭니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들어올 때는 달콤했는데, 나갈 때는 단전과 간, 신장을 거의 작살내는 느낌.
눈에 확연히 보이는 피부만큼이나 내장기관들도 악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제자들로 하여금 이 방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고 음식과 물을 날라다주겠네. 그리고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약들도 찾아보겠네.”
“아닙니다. 약은 됐습니다.”
진단도 처방전도 없이 공연히 약을 먹었다가 이 고약한 독과 상호작용이라도 일으키면 그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도움도 방해도 받지 않고 내공만으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진백이 말했다.
“그럼 매일 두 번 뜨거운 목욕물을 준비하도록 지시해두겠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피부병은 좀 덜할 것 같았다.
진백이 나간 뒤, 제자가 가져온 늦은 식사를 하면서 기수는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잡지 말자? 아냐. 가는 여자는 잡지 말아야 하지만, 오는 여자는 철저한 검문검색이 필요해.’
채정에게 당한 것도, 단순히 미색뿐이었다면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군소방파의 설움이니 뭐니 하면서 감성을 건드리는 바람에 깜빡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그는 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많아서 문제였다.
당장 주예림 공주의 추살령도 해결이 안 된 상태 아닌가.
결국 오는 여자를 최대한 선별하고 막는 게 답이었다.
적어도 십절금왕문과 적대적인 기간 동안만큼은 만사에 다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채정 정도의 살수를 고용하는 그들의 금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올해 나한테 삼재가 꼈나?’
최근 들어 여자의 입 때문에 연거푸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물려서 한동안 금욕의 기간을 보내기도 했고, 키스로 독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입을 포기할 수는 없고….
결국 이것 역시 선별의 문제였다.
‘존슨이건, 혀건, 아무 입에나 집어넣지 말아야지.’
다시 거울을 보니까 그 다짐이 더욱 확고해졌다.
기수는 그날부터 독을 몰아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게 꽤 도움이 되서 사흘 만에 더 이상 몸 안엔 독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땀구멍을 통한 배출이 피부엔 더 안 좋게 작용했다.
하루 두 번의 목욕만으로는 부스럼과 피부 변색을 막지 못했다.
기수는 거울을 보고 조심스럽게 역용을 풀고 본래의 얼굴로 돌아가 보았다.
“으윽!….”
골격과 근육은 원상태로 돌아왔지만 피부엔 문제가 있었다.
역용술로 색깔까지는 바꾸는 게 가능하지만 부스럼과 얼룩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다 나을 때까지는 꼼짝없이 양십일로만 지내야겠구나.’
기수는 양십일 얼굴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하자가 많은 얼굴에 얼룩덜룩한 반점과 부스럼까지 더해지니까 정말 거울을 깨버리고 싶었다.
긴 한숨을 내쉰 기수는 목욕을 한 후 차분한 운기조식으로 몸 상태를 재점검했다.
안타깝게도 내공이 전체적으로 다운되어 있었다.
딱히 진기를 낭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은 내장기관의 손상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간과 신장이 회복되기 전엔 내공도 제한된다는 거네.’
시기상으로 보면 피부병이 낫는 기간하고 비슷하게 걸릴 것 같았다.
화가 많이 났지만 그 스트레스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회복시간이 지연될 것 같아서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잘 먹고 푹 자자! 그러다 보면 금방 나을 거야!“
십절금왕문과의 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옷을 챙겨 입고 얼굴에 붕대를 감아 흉한 부분을 대충 감춘 뒤 죽립까지 눌러쓰고 십절금왕문의 거처로 찾아갔다.
“금랑대 대장을 만나러 왔소.”
그가 나타나자 십절금왕문 무사들은 경계심과 공포심을 동시에 드러냈다.
“무, 무슨 용무로 대장님을 만나겠다는 거요?”
“술이나 한 잔 나누러 왔다고 전하시오.”
문을 지키던 철랑대 무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 한 명을 안으로 보내어 기수의 용무를 전달했다.
그가 잠시 후 돌아와서 말했다.
“들어오시랍니다.”
기수는 단신에 비무장 상태로 무사들 가득한 십절금왕문 숙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