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73
기수는 장개심의 발언에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저 새끼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계획이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돈을 집어준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동시에 살심이 피어올랐다.
‘죽인다! 두 놈은 물론, 막는 놈들도 다 죽인다!’
무림맹 전체가 나선다 해도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독에 당하기 전에 비해 안 좋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자신이 다치거나 죽는다 하더라도 장개심과 조재학 두 놈만큼은 반드시 죽일 작정이었다.
그가 무시무시한 살기를 피워 올리자 옆에 서있던 순우광과 조치성이 깜짝 놀라 기수의 양 팔을 잡았다.
그들 역시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지만 기수만큼은 아니었다.
뭔가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
“윽!…”
“으윽!…”
두 사람은 신음을 토하며 잡았던 기수의 팔을 놓았다.
뭔가 따끔하게 찔리는 느낌이 들더니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 미안….”
기수는 그것이 자기 때문임을 알았다.
무의식 중에 파천강기가 형성되어서 예전 수로맹 군사 유청기가 강기의 창으로 온몸을 성게처럼 만들었듯이 양팔에 바늘 같은 돌기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순우광과 조치성이 흘리는 붉은 피를 보면서, 기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흥분하지 말자! 진정해! 진정…’
성질 같아서는 장개심과 조재학을 때려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건 자기 혼자일 때의 얘기였다.
만약 자기가 그런 행동을 하면 비룡검문이 피를 볼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돼.’
기수가 궁리하는 사이 문주 진백은 장개심에게 따져 물었다.
“장도장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우리에게 이러십니까?”
“뭘 말입니까?”
“백화방을 무너뜨린 건 우리 비룡검문입니다. 설마하니 우리 제자 100명은 구경만 하고 당신들 두 사람이 백화방 무사 200명을 다 죽였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지, 숫자만 채운 게 뭐 그리 대수랍니까?”
진백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자 조재학이 장개심을 거들었다.
“여철상의 목에 화산파의 매화표가 박힌 모습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비룡문 문주님도 보셨지요?”
“하지만 그것은….”
조재학이 다그쳤다.
“봤나, 못 봤나 그것만 말씀하십시오!”
진백은 장중을 둘러보았다.
전방에 배치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무림맹의 주력이 대부분 모인 이곳.
자신을 바라보는 눈들 중 호의적인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동안 함께 싸우던 전우인 남궁세가를 끌어내렸다는 게 큰 감점 요인인 것 같았다.
“매화표가 박히긴 박혔지만 그것은….”
“비룡문에서도 같은 암기를 쓰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진백을 말로 누른 조재학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장개심 쪽을 봤다.
‘나 잘했지?’ 하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장개심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초점 풀린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씩 웃었다.
그리고 좌중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제가 잠시 농담을 했습니다. 하하하!…. 말이 그렇지, 저희 두 사람이 무슨 재주로 백화방을 제압하겠습니까? 하하…. 무슨 기문진이 있었다는 것도 농담이고, 여철상을 제 손으로 죽였다는 것도 농담입니다. 이번 백화방 일은 온전히 비룡검문에서 한 일입니다. 그들의 실력은 정말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조재학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뿐만 아니라 화산파 장문인도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었고, 취의청에 모인 사람들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항마법사가 장개심에게 호통을 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아! 죄송합니다. 하하하!….”
장개심은 실없이 소리 내어 웃었다.
조재학은 그 동안 다시 한 번 그의 눈동자가 풀린 것을 보았다.
“장도장. 정신 차리시오!”
장개심은 두통을 느끼는 듯 잠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저와 조도장이 왜 이런 실없는 농담을 하나 궁금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개심은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풀어 거꾸로 들더니 내용물을 바닥에 전부 쏟았다. 금자와 은자가 쩔렁거리며 쏟아졌는데, 얼핏 보기에도 액수가 컸다.
항마법사가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웬 돈을 그리 많이 가지고 있소?”
“남궁세가에서 받은 것입니다. 자기네를 봉문시킨 비룡검문이 얄미워서 무림맹 입맹을 막고 싶으니까 이 돈을 받고 훼방을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오?”
취의청 안은 혼란에 빠졌다.
천하의 화산파가 돈을 받고 다른 문파의 입맹을 방해하다니.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화산파 장문인은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바닥에 증거가 쏟아진 터라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궁세가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돈을 받은 것은 자기인데, 어째서 장개심의 주머니에 금은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장개심의 양심선언은 기수의 작품이었다.
염정구심술 중 심리 제어의 수법을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것이 가장 스무스하게 반전을 유도할 수 있는 비책이었다.
장개심 정도 내공의 고수를 상대로 염정구심술을 쓰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남에서 감숙까지 오는 내내 함께 지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심리적 동조를 이룰 수 있었다.
장개심의 속마음을 읽은 결과 남궁세가가 화산과 형산에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준 돈으로 엮어버린 것이다.
장개심의 폭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비룡검문에게 미안한 일이라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무림맹이 이런 곳인가 하고 실망도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 한 사람의 잘못이니 맹 전체를 탓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래도 한 가지. 여철상을 죽인 건 제가 맞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는 왜 죽였냐 하면, 우리 화산파가 군량을 옮기는 중에 약간씩 빼돌리는 게 있었는데, 그 운반을 백화방에 의뢰해놓고 있었습니다.”
항마법사는 크게 놀랐다.
“그게 정말이오?”
“제가 왜 없는 말을 지어내겠습니까? 원래 많은 양의 곡식이 운반되다 보면 중간에 좀 흘리는 것도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어쨌거나, 그 일을 백화방에 맡겨놓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마연합과 손잡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우리 화산파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철상을 사로잡으면 안 되죠. 죽여서 입을 봉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하하!…. 조소협. 미안합니다.”
그러면서 장개심은 조치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치성과 진백, 순우광 등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라 난감했다. 화산파의 비리로 화제가 옮겨가니까 비룡검문의 입맹 자격여부는 나중 문제가 되고 말았다.
화산파 장문인 벽운검옹은 흰 수염과 머리카락이 전부 다 빳빳하게 일어설 정도로 화가 나서 노갈을 터뜨리며 달려나와 장개심의 혈을 눌러버렸다.
더 이상 지껄이지 못하도록 입을 막은 것이다.
그제서야 겨우 염정구심술에서 풀려난 장개심은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사부에게 해명하려 했지만 마혈이 막혀 방법이 없었다.
기수는 속으로 웃었다.
‘크크크…. 사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죄가 결코 작지 않을 거다. 내 손에 죽기보다 사부 손에 죽는 게 더 괴롭겠지?’
화산 장문인은 자기를 보는 군웅들의 시선에 볼이 붉어졌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그렇게 포권을 하고 제자를 번쩍 들더니 아예 취의청 밖으로 나가버렸다.
더 이상 무림맹 사람들 얼굴을 볼 염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뒤에 서있던 제자들도 사부를 따라 나갔다.
항마법사는 만류하려 했지만 무슨 말로도 벽운검옹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들었던 손을 놓았다.
취의청 가득한 웅성거림 속에 한 사람이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형산파도 이 일에 참여했습니다. 하하하!….”
조재학이 주머니를 풀더니 거꾸로 뒤집어서 바닥에 내용물을 전부 쏟았다.
장개심보다 더 많아 보이는 금은조각이 쏟아지자 형산파 장문인 소요자는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몸을 날려 제자를 점혈했다.
조재학이 장개심처럼 떠들어댄다면 문파가 개망신을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돈을 보여주기 전에 막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못했더라도 어쨌거나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재학은 사부의 공격을 피하면서 마구 떠들어댔다.
“아이고! 사람 살려! 사부님. 왜 절 죽이려고 하십니까? 사부님이 어린 제자들 겁탈한 얘기를 할까봐 죽여서 입을 봉하려는 겁니까? 살려주십시오. 제자 겁탈했다는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끼리는 다 알지만,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사부님이 제자 겁탈했다는 얘기를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이, 이놈이!….”
소요자는 검을 뽑아 미친 듯이 살초를 펼쳐 조재학을 찔렀다.
결국 조재학은 무림 명숙들이 보는 앞에서 사부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친 숨을 헐떡이던 소요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자를 찔러 죽인 것은 그의 얘기가 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거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다.
소요자는 말없이 좌우로 포권을 한 뒤 쏜살같이 취의청을 빠져나갔다.
그의 제자들 역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사부를 따랐다.
두 문파가 빠져나간 취의청은 정적에 휩싸였다.
다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형산파엔 여제자가 없지 않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워낙 적막한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 다 들을 수 있었다.
곧바로 봇물이 터지듯 다들 한 마다씩 했고, 취의청 안은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기수는 바닥에 쓰러진 조재학의 시체, 그가 흘린 피, 어지럽게 나뒹구는 금자와 은자 등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돈을 아주 제대로 썼군.’
금원보를 줬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았다.
조재학은 곧바로 죽었으니까 차라리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점혈되어 끌려간 장개심이 어떨 꼴을 당할지는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기수는 차분한 운기조식으로 몸 상태를 점검했다.
북궁심법의 세 단전 중 상단전에서 약간의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몇 바퀴 진기를 돌리자 사라지긴 했지만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이번 경우만 특별히 예외야. 앞으로는 염정구심술 중 제어술은 절대 안 쓴다.’
그래도 기술을 익혀 놓으니까 꼭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워낙 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비룡검문의 입맹은 닷새나 뒤로 미뤄졌다.
항마법사는 어떻게든 화산파와 형산파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문파들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전력의 상당부분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기까지 바닥을 기게 되었다.
기수는 거기에 대해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기는 숨겨진 비밀을 들추어냈을 뿐, 없었던 일을 조작해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닷새 뒤, 비룡검문의 입맹은 순조롭고 성태하게 치러졌다.
입맹 자격에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고, 무려 세 문파가 빠져나간 다음이라 반대하는 문파는 하나도 없었다.
축하연이 치러진 다음 날.
무림맹주인 항마법사와 무림맹 군사를 맡은 장백천문의 문주 단령문이 함께 진백을 찾아왔다.
차를 마시며 단령문이 물었다.
“불편한 건 없으십니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비룡검문은 남궁세가가 비운 숙소를 쓰고 있었다.
침상에 비해 사람이 적어서 몇 개 숙소는 잠가놓고 쓰지 않을 정도였다.
항마법사가 말했다.
“입맹하신 지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이런 말씀 드리기가 거북합니다만, 지금 전선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진백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사마외도를 척결하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장에 뛰어들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항마법사와 단령문이 마주보고 웃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는 다른 문파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들 오랜 전쟁에 시달려서 거의 습관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식이었다.
의욕 넘치는 새로운 피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령문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았다.
“지금 남궁세가와 화산파와 형산파가 빠져나간 자리는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입니다. 적이 아직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곧 병력의 부재를 알아차릴 것이고, 언제라도 기습해올 수가 있는 상황입니다. 비룡문이 이 셋 중 한 곳에 지원해주시면 제가 나머지 병력을 재배치 하겠습니다.”
기수는 단령문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예전에 장백천문의 소문주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의 소유자였는데, 그 아버지를 보니 그 기질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군사임에도 불구하고 명령하지 않고 선택권을 주는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기수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어서 물었다.
“이 동그라미 친 글자들은 무엇입니까?”
“아. 마(魔)는 천마교, 황(荒)은 삼황맹, 산(山)은 녹림72채, 수(水)는 장강수로맹이 주축병력으로 주둔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한 무리가 계속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배치상황이 갑자기 바뀌기도 합니다.”
“마자가 가장 많군요.”
“전력도 가장 강합니다.”
“그런데…. 제갈세가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들은 어느 무리에나 다 조금씩 섞여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정도 규모의 거대 연합 병력을 제대로 조직해내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지요.”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말투였다.
항마법사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갈세가가 우리 편이었다면 이 전쟁은 진작에 끝났을 겁니다.”
단령문이 동조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