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86
기수와 사하 두 사람은 방해받지 않고 처음부터 제대로 할 장소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동쪽으로만 가면 신호를 주고받는 적이 출몰했다.
“우리를 잡으려고 병력을 다 동원한 건가?”
“그 꼬마 녀석이 꽤 중요한 인물이었나 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드넓은 평원을 전부 다 지키지는 못할 테니, 북쪽으로 조금 더 우회한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기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몰이꾼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처럼 도망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것들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기수는 새로 얻은 칼을 제대로 한 번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고집스럽게 남동쪽으로 방향을 정한 기수는 적이 신호를 주고받거나 말거나 모르는 척 하고 계속 걸었다.
몸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하가 약간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건을 하나 내밀었다.
옷자락 끝을 잘라 만든 귀마개였다.
“불의의 상황에 대비 해야지.”
그녀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기수는 그걸 받아 귀에 슬쩍 꽂았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1시간 정도 난주 쪽을 향해 걷자 주변으로 몰려드는 적의 수가 점점 많아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언덕 하나를 돌아가자 관도에 수십 명이 길을 막고 서있는 게 보였다.
사마연합군이었다.
기수는 그들 중 지난번 만났던 소년이 있는지부터 찾았다.
다행히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이번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녀와 4명의 징잡이가 한가운데 있는 게 보였다.
기수는 슬쩍 사하 쪽을 봤다.
‘혹시 내가 자존심 때문에 그녀를 위험에 빠트리는 건 아닐까?’
사하는 귀마개를 깊이 밀어 넣으며 말했다.
“너. 얼굴.”
“아! 맞다.”
기수는 양십일로 돌아간 후 그녀처럼 귀마개를 제대로 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적에게 다가갔다.
어쨌거나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양측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기수는 15미터쯤 되는 곳에서 일단 걸음을 멈추었다.
음공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위력이 커지니까, 물리 상식이 맞는다면 음압이 거리 제곱에 반비례할 테니까 5미터 거리일 때와 15미터 거리일 때는 3분의 1이 아니라 9분의 1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깜짝 놀랐다.
‘나 혹시 미친 건가? 거리제곱에 반비례라니… 나답지 않게 과학적인 생각을….’
그런 계산까지 하는 걸 보니 음종에 대해 부담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기수는 일부러 큰소리로 물었다.
“너희들은 누군데 길을 막고 있는 것이냐? 산적이냐?”
말하는 중에 기감을 끌어 올려 상대의 무공수위를 면밀히 확인해봤다.
소녀를 빼면 징잡이나 다른 무사들이나 다들 고만고만했다.
‘저 계집애만 죽이면 되는 건가?’
여자인데다 어리기까지 해서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죽이기로 마음먹은 상대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죽여야 한다는 게 그동안 강호행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소녀가 좌우를 둘러보며 물었다.
“저 자가 맞느냐?”
그러자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저 자가 분명히 비룡검문의 양십일입니다.”
“맞습니다. 전에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지난번 신성진 전투 때의 목격자들이 여러 명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소녀가 다시 물었다.
“함께 있는 계집은 누구냐?”
그러자 사마연합군 무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타문 제자 같기는 한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기수는 험상궂은 사마연합 사내들이 소녀에게 지극히 공손한 태도, 심지어는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소녀의 목소리도 어딘가 이상했다. 탁하고 갈라진 허스키 보이스와 맑고 또랑또랑한 음성이 섞여서 동시에 발성되는 것처럼 들렸다.
‘음공을 익히면 저렇게 되는 건가?’
귀마개를 빼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겠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딱 한 번의 접근. 그걸로 결판내는 거다.’
15m 정도의 거리라면 선풍비로는 한 번의 도약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일도양단.
기수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후 즉시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상대의 행동이 더 빨랐다.
“끄아아아아!……”
소녀의 눈이 반짝인다 싶은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귀를 찢는 괴성.
기수는 신음을 토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선풍비를 제대로 펼칠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은 것은 소녀의 괴성이 폐와 심장을 옥죄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소년과 달리 귀엔 어떠한 이상도 없었다.
대신 누가 꽉 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폐가 압박감을 느꼈고, 그로 인해 심장까지 뻐근하게 아파왔다.
“젠장!”
기수는 칼을 있는 힘껏 소녀에게 던졌다.
그러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코웃음 한 번 치며 간단히 그것을 피해버렸다.
기수는 그녀의 괴성에 아주 가까이 있는 동료들이 전혀 영향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사하는?’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낯빛이 창백해진 채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자기보다 내공이 훨씬 약하니 심각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기수는 소녀를 향해 양손을 뻗어 파천강기 10개를 날려 보낸 후 즉시 뒤로 돌아 사하를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일단 시작한 싸움,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사하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
공중으로 도약한 후 뒤를 돌아보니 음종의 소녀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 소년과 마찬가지로 별 타격은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안 통하는구나.”
접근전만이 유일한 해법.
다만 지금은 사하의 생명을 지키는 게 더 급했다.
적이 고함을 지르며 쫓아왔고, 나름 포위망이라고 좌우에서도 튀어 나왔지만 싸움이 아닌 도주를 결심한 이상 기수의 선풍비를 따라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수는 달리는 중에도 주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행히 자신에 필적하는 내공의 소유자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얘기는 어디선가 무림맹이 곤경에 처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
그러나 지금 기수의 입장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품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하의 상태에 더 신경이 쓰였다.
30분 정도 북쪽으로 달려 충분히 간격을 벌린 기수는 험준한 고원지대를 발견하고 뛰어들어 안전해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
조심스럽게 사하를 내려놓고 맥을 짚어보니 그녀의 기경팔맥은 확실히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가부좌를 틀어.”
기수는 그녀의 뒤에 앉아 명문혈로 진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비로소 사하의 호흡이 안정되고 혈색도 돌아왔다.
조식을 마친 그녀가 긴 숨을 내쉰 후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냐. 네게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그 계집애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귀는 아무렇지도 않았잖아?”
기수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음종은 단지 소리가 아닌 공기를 마음대로 다루는 것 같아. 우리 몸 중에서 외부로 노출된 장기는 귀뿐만이 아니라 폐도 있잖아. 늘 숨을 들이쉬고 내쉬지. 그러니까 그 공기에 압력을 가하면…”
기수는 말을 하는 도중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귀는 귀마개로 막을 수 있지만 폐는 어떻게 보호한단 말인가?
싸우는 도중에 코마개 하고, 입도 다물고, 숨을 들이쉬지도 내쉬지도 않아야 안전하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겠는가.
‘젠장! 진공상태에서 싸우자고 할 수도 없고…’
더구나 오늘 본 바에 의하면 상대는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자유롭게 지정하는 능력도 지닌 듯 했다.
사하가 다시 물었다.
“그런 애들이 혹시 또 있는 걸까?”
“글쎄. 두 명 만이기를 바라야지.”
그러나 단 두 명뿐이라면, 무림맹 제압하기에 바쁠 사마연합이 비룡검문 양십일을 잡기 위해 꼬마를 배정할 리가 없었다.
수는 훨씬 더 많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림맹의 상황도 지금쯤 몹시 심각할 것이었다.
음종 고수들의 괴상한 능력에 대항할 방법은 암기나 접근전, 그것도 적이 소리를 만들어내기 전에 미리 손을 쓰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사마연합군이 앞에 방어진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림맹 고수들 중 누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맹주인 소림방장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만약 본진에 피해가 컸다면?’
그렇다면 천마교가 그 기회를 놓쳤을 리 없을 것 같았다.
‘이거…. 정파가 그냥 밀리는 거 아냐?’
최악의 경우, 어쩌면 2차 집결지에 가기도 전에 전멸 당했을 수도 있었다.
자기만 해도, 음공에 당해 휘청거릴 때 사하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기보다 하수가 다가와서 칼로 내리 찍어도 막지 못하고 그냥 당했을 것이었다.
음종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동맹군으로 끌어들인 주체가 천마교인지, 삼황맹인지, 아니면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의 배후에 있는 제갈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말 어마어마한 전력을 개입시켰다는 것이었다.
음종 고수와 1:1로 마주쳤다면 차라리 쉽게 제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수 대 다수가 싸우는 전쟁에서 소리로 상대편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기술의 파괴력은 참으로 무서웠다.
‘혹시 비룡검문은?….’
본진보다 서쪽에 있었으니까 연락을 받고 집결지로 갔다고 해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중간에 음공 익힌 꼬마라도 만났다면 터무니없는 일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휴대폰으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기수가 사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돌파는 힘들 것 같아. 우회하자.”
“잘 생각했어.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직도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남아 있는 그녀였다.
“일단 무림맹 사람들과 합류한 다음에 정보를 좀 더 얻어야겠어.”
“맞아. 사매들이 걱정 돼. 너도 비룡검문 제자들 걱정되지?”
기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들 모두 괜찮을 거야.”
“그래야지.”
“몸은 좀 어때? 건량 좀 먹고 나서 바로 출발할까 하는데…”
“그, 그래….. 그런데 나…. 추워.”
사하는 몸을 움츠리며 몸을 비비 꼬았다.
기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문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함 하고 싶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사실, 비룡검문이나 보타문의 안위는 이미 결정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빨리 가건, 늦게 가건 그들의 상황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기수는 사하 옆에 나란히 앉아 그녀 어깨를 당겨 안아주었다.
‘나도 처음 경험했을 땐 오로지 섹스 생각밖에 없었지. 후후후….’
정말 이성이 마비되었던 시기라고나 할까.
사하 역시 그런 상태라고 보면 자기가 도와줘야만 했다.
“아무래도 내상이 완전히 낫지 않을 것 같네. 일단 오늘밤은 여기서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날이 밝는대로 떠나자. 그래도 괜찮겠지?”
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두 눈은 이미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호흡은 거칠었다.
기수는 단단한 바닥에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그녀를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오게 하여 전신을 밀착시켰다.
춥기는커녕, 그녀의 온몸은 열기로 뜨끈뜨끈했다.
기수는 천천히, 부드럽게 그녀를 애무하면서 입맞춤을 나누었다.
한참동안 이어진 키스 후 사하가 물었다.
“오늘은 왜 내 배를 안 찔러?”
“글쎄. 누군가의 이타적 행동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못됐어!”
사하는 눈을 흘기더니 아래로 내려갔다.
“으음….”
사하는 학구적으로, 또한 정열적으로 기술을 익혔다.
기수의 적절한 지도 아래 그녀의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정한 이치.
그렇게 시작한 사랑은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강약의 차이와 휴식시간은 있었지만 끊어지지는 않았다.
포옹한 채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인 두 사람은 2시간 쯤 자고 일어나 건량을 챙겨 먹고 해의 위치로 방향을 대략 짐작한 후 동쪽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중간에 물을 찾아 잠시 쉬다가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어제 배운 거 복습하고. 저녁때도 잠시 쉬는 시간에 낮에 배운 거 복습하는 식으로 진도를 나갔다.
그러다 보니 감숙성을 벗어나 섬서성 부현땅에 도착할 무렵엔 사하의 테크닉도 경지에 올라서게 되었다.
기수는 감숙성을 탈출한 기념으로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분출을 했다.
사하는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먹어도 돼.’라는 기수의 조언을 따랐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동안 배운 기술들을 시전하니까 기수가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것은 어느 정도 비위가 상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정상 등정의 환희를 여러 차례 맛 본 사하는 기수만 좋다면 그보다 더 한 일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입술에 힘을 주고, 볼이 홀쭉하도록 흡입하고, 혀를 많이 움직였다.
부현에서 장안까지 가는 길은 보통 사람 걸음으로 서둘렀을 때 6일 정도 거리.
기수와 사하도 꼬박 6일이 걸렸다.
그동안 객잔에서 잔 5박은 사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낮엔 양십일이지만 밤에 이불 속에선 미공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자신을 기절할 정도로 황홀하게 해주는 남자.
사하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장안까지 100일, 1000일이 걸렸으면 좋겠다는 게 그녀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장안에 도착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