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89
눈치가 빠른 진백은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양십일에겐 한 가지 나쁜 버릇이 있는데, 여자관계가 좀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남궁세가에 잠입했을 때조차 그 집의 며느리를 건드리지 않았던가.
혈매궁도 중요 구성원은 절세미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보아하니 호운혜와 사하 두 여인도 그런 양호법의 마수(?)에 걸려든 게 분명했다.
진백 입장에선 뭐라고 얘기를 할 입장도 아니라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슬쩍 다른 얘기로 화제를 바꿔보려 했지만, 두 여인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대장간에 다녀 온 기수는 문주에게 복귀 보고를 하러 들어갔다.
“아! 양호법! 어서 오게!”
진백이 너무나 반가이 맞아서 기수는 좀 의아했다.
“일 모두 보고 돌아왔습니다.”
진백은 서둘러 밖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자넬 찾아온 손님이 있네. 자리를 비켜줄 테니 얘기들 하게.”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객청을 빠져나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객청 안으로 들어간 기수는 호운혜를 발견하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호운혜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왜 화가 났지?’
이유는 그녀의 오른쪽 60cm 지점에 있었다.
사하를 발견한 기수는 더 큰 미소를 지었다. 입 꼬리와 턱이 아팠다.
‘어, 어째서 둘이 함께 있는 거지?’
기수는 미소를 풀 수 없었다.
호운혜와 사하 모두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은 알 수 없지만 서로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알게 된 게 분명했다.
‘튈까?’
선풍비라면 그들 둘에게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사하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두 발 다 들여놓고 문 닫아.”
“환기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어서!”
“아, 알았어. 알았다고.”
기수는 두 여인의 눈빛과 턱짓에 따라 탁자 앞까지 걸어가 맞은편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찻잔에 차를 따르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호운혜가 탁자에 주먹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왜 나를 놔두고 이년한테 한눈을 판 거죠?”
“이년이라니…. 말투가 좀….”
그러나 기수가 모르는 사이 두 여인은 이미 주먹다짐까지 한 사이였다.
사하는 호운혜가 먼저라고 주장할까봐 선수를 쳤다.
“양호법. 너는 하남에서 난주까지 가는 동안 내게 계속 사랑을 속삭였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키만 큰 개년한테 한눈을 판 거지?”
“윽! 개년…”
이년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욕이었다.
호운혜는 참지 않았다. 사하가 자기보다 솜씨가 좋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신의 장점인 힘과 긴 팔길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먼저 찻잔을 던진 후 주먹을 날렸다.
“이년이 누구보고 개년이라는 거야? 네가 개년이다!”
그러나 사하는 이미 그 발언을 할 때부터 한바탕 싸울 각오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찻물이 튀는 데도 당황하지 않고 피하면서 말했다.
“소문에 듣자하니 넌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고 다 대주는 게 발정난 동네 암캐 같다고 하더구나. 그러니까 개년이 맞는 거잖아?”
호운혜는 완전히 눈이 뒤집혀버렸다.
“이 까무잡잡한 잡년이 감히 누구한테!”
그녀의 살초에 사하도 지지 않고 살초로 맞섰다.
처음 싸울 때는 구경꾼들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었지만, 이곳은 비룡검문의 객청. 문주마저 자리를 비워주었으니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이봐! 그만들 둬.”
기수가 말렸지만 둘은 말을 듣지 않았다.
상대를 죽이고 남자를 차지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얼굴들이었다.
가만 놔두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둘 사이로 뛰어든 기수는 분광권의 초식을 이용하여 두 사람을 동시에 좌우로 밀어냈다.
호운혜와 사하는 서너 걸음씩 물러난 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절묘한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곧 왜 싸웠는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호운혜가 먼저 불만을 표했다.
“양호법. 왜 저 잡년을 도와주는 거예요?”
사하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 저 개년을 도와준 거지?”
기수는 억울했다.
“난 어느 한 쪽을 도운 게 아냐.”
“거짓말하지 마!”
호운혜와 사하의 눈빛이 변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은 바로 기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수를 향해 주먹과 손톱과 발길질을 날렸고, 기수는 그것들을 모두 막아내느라 진땀을 뺐다.
‘어떻게 해야 이 두 사람을 달랠 수 있을까?’
무슨 소리를 해도 한 쪽은 불만을 가질 게 분명했다.
둘 중 한 명을 택하라고 한다면 마음은 사하 쪽으로 기울었다.
일단 대화로 먼저 친해진 사이이기도 했고, 섹스 측면으로 봐도 사하와 하는 게 좀 더 느낌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운혜도 알고 보면 인연이 깊은 사이라 내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머리 굴려봤자 답은 하나였다.
기수는 둘의 공세를 밀어낸 후 호통을 쳤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양호법이 큰소리 칠 처지예요?”
“왜? 내가 뭘 어쨌다고?”
“당신. 나하고 사귀면서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았잖아요!”
“그래서 어쩌라고?”
기수의 당당한 어조에 사하와 호운혜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잘했다는 거예요?”
“잘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난 너와 있을 때는 진심으로 너를 좋아했고, 너하고 있을 때 역시 진심으로 너를 좋아했어. 그걸로 된 거 아냐?”
말을 해놓고도 스스로 ‘진짜 나쁜 새끼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굴빛이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계속 당당한 표정을 유지했다.
괜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그녀들의 스트레스가 다 풀릴 때까지 하소연 들어주고, 양쪽을 오가며 절충하고, 싹싹 빌며 사과하고, 그래도 결론이 안 날 게 분명했다.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았다.
호운혜와 사하는 서로를 마주봤다.
설마하니 양십일이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호운혜가 태도를 돌변하여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탈출과정에 남녀가 동행하다 보니까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용서해드릴 테니 앞으로는 그녀를 만나지 마세요.”
너그러운 포용력으로 다시 자기 품에 안기도록 만들겠다는 작전이었다.
선수를 빼앗긴 사하는 위기감을 느꼈다.
양십일이 호운혜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와 질투심이 순식간에 전부 다 사라지고 절박감만 남았다.
“헤픈 년이 하는 말 듣지 말고, 우리가 함께 별 세던 밤을 기억해.”
감성적인 접근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결말이 가장 좋을까?’
물론 최선은 혈매궁 사매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6명이 그렇게 친해질 수 있는데, 고작 2명이 싸우니 한심했다.
지금이라도 호운혜와 사하가 나란히 엎드려서 치마를 걷어 올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다.
호운혜가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양호법! 지금 무슨 생각 하시는 거예요?”
“응?….아!… 나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어때서?”
“어쨌거나 저 잡년이에요? 아님 저예요? 빨리 대답을 하세요.”
사하 역시 결정을 강요했다.
“저 개 같은 년을 선택하진 않을 거지?”
기수는 편식과 편애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오! 신이시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결국 기수는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너희들 정말 실망이다.”
“예? 그게 무슨…”
“현현각이라는 강적이 나타나서 무림맹주님을 비롯한 구대문파의 수장을 다섯 명이나 죽이고, 무림맹은 현재 풍비박산 나기 일보 직전인데 너희들은 오로지 자기 남자 챙길 생각밖에 없네. 됐어. 난 그런 이기적인 여자는 싫어. 둘 다 이만 돌아가 줘.”
호운혜와 사하는 당황했다.
이것은 그녀들이 바란 결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운혜가 한 번 더 저자세를 취했다.
“양호법.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둘 다 어서 여기서 나가! 난 이타적인 사람을 좋아해.”
호운혜는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하는 그녀와 달리 별로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기수가 이타적인이라고 말할 때 약간의 악센트를 넣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사해문의 여식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자기를 선택한 게 분명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였다.
‘다음에 만나면 이타적인 행위를 듬뿍 해줘야지.’
사하는 그런 결심을 굳게 했다.
억지로 두 여인을 쫓아낸 기수는 자기 숙소로 돌아와 침상에 쓰러졌다.
절세고수와 한 100초쯤 겨룬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누워 천장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 둘은 왜 공유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좀 유도를 해볼까?’
그러나 서로를 개년, 잡년이라고 부른 순간 그 가능성은 사라져 버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냥 자기 선택대로 사하에 올인하기로 했다.
이틀 뒤.
대장간에 들린 기수는 유성추와 20자루의 단검, 그리고 단검 멜빵의 완성품을 확인해보았다. 예상보다 뛰어난 솜씨라 기분이 좋았다.
그 자리에서 멜빵을 차 봤는데 X자 형태로 양쪽 어깨에 거는 방식이지만 앞에 빽빽한 단검 꽂이가 세로로 배치되다 보니 착용감은 조끼 같았다.
전체적으로 요란한 사이즈에 목을 좌우로 움직이기도 불편했다. 그러나 양 팔을 움직이는 데는 거치적거리지 않아서 만족할 수 있었다.
‘현현각 놈들을 다 잡을 때까지 만이다.’
대장간 주인에게 후하게 셈을 치르고 복귀한 기수는 마당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새 무기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우선 단검을 뽑았다 다시 끼우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양손에 각각 하나씩 뽑아 들고 휘둘러도 보았는데, 너무 짧고 가벼워서 비룡검법을 펼치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장검은 하나 추가로 맞춰야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담에 통나무를 세운 후 던지는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손가락에 스냅을 주어 던지는 순간 파천강기를 싣자 단검은 통나무를 관통한 뒤 담벽에 자루까지 박혀버렸다.
“와아!….”
구경하던 비룡검문 제자들이 탄성을 토했다.
순우광이 다가와서 말했다.
“호법님. 방금 그거 뭐였습니까? 혹시 어검술인가요?”
“하핫!…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세게 던졌을 뿐이야.”
기수는 힘을 빼기를 잘 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살살 하지 않았다면 담까지 관통해서 그 뒤쪽에 있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파천강기가 단검이 더욱 빨라지도록 힘을 더한 거니까 현현각 루주들이 파천강기에 내성을 가졌다고 해도 빠져나갈 길은 없을 것이었다.
기수는 그 뒤에도 빨리 뽑아 던지는 연습을 반복했다.
던질 때의 힘은 훨씬 더 줄여서 통나무에 박힐 정도로만 맞췄다.
그런데 자꾸만 순우광의 말이 생각났다.
‘이기어검술? 나도 그런 거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기를 형체 가진 표창이나 장창처럼 만들어낼 수 있고, 거기에 단검을 실어서 날려 보낼 수도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휘어질 수만 있다면 추력편향 노즐 장착된 공대공 미사일처럼 상대가 피할 때 따라가서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기수는 직선으로 날아가는 단검을 가다가 옆으로 휘도록 해보았다.
그러나 그게 의외로 잘 되지 않았다.
파천강기 자체가 총처럼 쏘는 거라서 직선운동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이건 아냐. 강기를 연장시켜서 날아가는 동안 방향을 돌릴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단검을 던지고 긴 막대기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시도와 같은 거라서 속도가 빠르면 뒤에서 막대기를 댈 수조차 없었고, 거리에도 한계가 있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해봐도 직선운동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기수는 황궁에서 읽었던 여러 비급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속 시원한 대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수는 답답한 마음에 진백을 찾아가 물어보았다.
진백은 자기가 아는 대로 최대한 자세히 이기어검술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가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책에서 읽은 내용일 뿐이라 막연하고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염동력의 일종이겠지.’
기수는 그런 식으로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백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타문 이전에 모용세가가 현무단의 일원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그 후에도 군소방파들의 입단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었다.
기수는 자기가 공연히 그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직 구성엔 문제가 없습니까?”
“각자 자기 영역 안에선 최고를 자처하던 문파들이 남의 명령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하!….”
기수는 역시 다른 3개 단의 단주인 종남파, 아미파, 화양문 등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비룡검문의 네임 밸류가 문제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나온 기간 동안 비룡검문과 함께 싸워 본 문파들은 그 능력을 인정하지만 아직은 소문만 들은 문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기수는 자기가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