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90
사람들이 현무단으로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기수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모용세가는 힘의 형평을 위해 신임 무림맹주가 지정해준 것이고, 보타문은 자기를 보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군소방파들로 채워야 했다.
고수진에서 함께 싸웠던 문파들은 절반 정도가 이번에 합류했다.
종남파와 사해문을 따라간 문파가 절반이라는 얘기가 되니까 새로 입맹한 비룡검문 입장에선 상당한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로는 부족했다.
훨씬 더 많은 문파가 입단을 해줘야 했다.
실전에 투입되어서 비룡검문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소속이 이미 정해져 버린 다음이라면 소용없는 일인 것이다.
경쟁자는 청룡단의 종남파와 사해문, 백호단의 아미파와 장백천문과 사천당가, 주작단의 화양문과 십절금왕문과 공손세가였다.
자기가 군소방파의 문주라고 해도, 문파의 운명이 걸린 이 시기에 신입 문파인 비룡검문과 요동에 치우쳐 있어서 5대 세가 중 가장 약체로 분류되던 모용세가 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뭔가 움직임이 필요해.’
기수는 문주 진백에게 물었다.
“문주님. 지금 군소방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일단 기초적인 것부터 필요하겠지.”
“기초적인 거라면….”
“무기와 전포, 넉넉한 군량과 치료약 같은 것 말일세.”
“그걸 선물하십시오.”
“무슨 뜻인가?”
“함양 시내로 가보니까 장안 못지않게 저자의 규모가 크더군요. 대량으로 전포와 가죽신, 치료약 같은 것들을 사다 쌓아놓고 입단한 문파에게 선물로 주는 겁니다.”
“흐음… 그렇게 하면 다른 단에서 싫어하지 않을까?”
“일단 입단한 문파에 단주가 선물을 주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진백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려면 자금이…”
“이걸 쓰십시오.”
기수가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무거운 주머니를 탁자 위에 놓았다.
진백을 벌어진 입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전부 금인가?”
“그렇습니다.”
진백은 단호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건 받을 수 없네.”
“돈이란 건 쥐고만 있어서는 쓸모가 없는 겁니다. 이걸 풀면 옷장사, 가죽장사, 대장장이가 돈을 벌고, 그게 돌고 돌아서 함양 사람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습니까? 더불어 우리 현무단은 인원이 늘어서 좋고, 현무단에 입단한 사람들은 좋은 갑주와 치료약으로 살아날 확률이 늘어서 좋고. 제 허리에 묶여 있는 것보다 백 번 낫습니다.”
“하지만 어찌 자네 돈을….”
기수가 정색하고 물었다.
“제가 언제든 비룡검문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아시죠?”
“그, 그건 늘 염두에 두고 있네.”
“하지만 떠나는 그 순간까지는 비룡검문의 호법입니다. 그러니 제 돈은 즉 우리 비룡검문의 돈입니다. 안 받으신다면 저 섭섭해 할 겁니다. 아주 많이요.”
“허어! 이것 참….”
진백은 돈에 초연한 사람에 대해 얘기는 들어봤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금액이 너무나 컸다.
함참을 망설이던 진백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돈은 빌리는 것으로 하고 나중에 갚도록 하지.”
기수의 말대로 물량 공세를 퍼부으면 현재의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정도 무림의 방파라고 해도 먹고, 자고, 무장하고,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대부분이 패잔병인 상황 아닌가.
속보이는 행동일지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주고, 그들이 그 소문을 듣고 가입해준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었다.
숫자가 늘어나면 현무단의 힘도 커지는 거고, 그러면 비룡검문의 명성을 드높일 기회도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기수는 내친김에 깃발과 전포에 넣을 현무의 디자인까지 직접 그렸다.
옛날 한국사책에서 본 고구려 현무도를 흉내 냈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진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글자를 쓰는 건가?”
“글자가 아니라 현무 그림인데요.”
“아! 그림이었군…”
“어쨌거나 뭐 이런 식으로 생긴 문양을 모든 옷에 표시한다면….”
“무슨 말인지 알겠네. 곧 착수하도록 하지. 그리고 이건 넣어두게.”
진백은 금원보 하나를 빼서 기수에게 주었다.
기수에게도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수도 빈털터리가 되면 곤란할 수도 있기에 그냥 받아두었다.
밖으로 나온 기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 많은 금덩이를 다 남에게 줘버렸는데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게 이상했다.
‘내가 좀 달라진 건가?’
뭔가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때는 보물을 쫓아다닌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손 안의 황금이 그저 무겁기만 할 뿐이었다.
물욕을 초월한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체크카드와 달리 돈이 많아질수록 무게도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면 경제관념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도 좀 달라진 것 같았다.
비룡검문에게 이미 해 줄 만큼 다 해줬고, 무림맹 편에 서서 싸울 이유가 딱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정파가 좋고 사마외도는 미워서가 아니라. 비룡검문과 친해졌기 때문에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가르친 호법으로서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다.
기수는 연무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제자들 검초를 점검해주기 위해서였다.
현무단 단주로 정해진 이후 그들에겐 따로 넓은 공간이 주어졌고, 그중에 큰 연무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까이 가니까 기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와! 다들 열심이네.’
위기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게을리 해도 좋은 대학 못 가거나, 좋은 직장 못 얻는 데서 끝나지만 무공은 열심히 안 하면 죽는 것이다. 평상시 연무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기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연무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순우광, 조치성 등과 눈인사를 하고 제자들의 검초를 둘러봤다.
‘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다니…’
밖에서 기합 소리 들을 때와는 또 달랐다.
마치 실전처럼 매 초식마다 힘이 넘쳤다.
기수는 가슴이 울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제자들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아! 정말 보람이 느껴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연무관 뒤쪽 통로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바로 현무단에 새로 입단하기로 한 보타문의 여제자들이었다.
그녀들이 모두 지나가자 제자들의 기합소리는 단번에 볼륨이 줄어들었고, 빠릿빠릿하던 동작도 기운이 빠졌다.
기수는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이 개새끼들…. 특훈이닷!’
기수는 저녁 식사 시간까지 비룡검문 제자들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만있어 봐. 보타문 제자들이 꽤 예쁘단 말이지….’
개업할 때마다 가게 앞에서 풍선인형과 함께 춤추던 홍보도우미 언니들이 생각났다.
기수는 저녁을 먹자마자 사하를 찾아갔다.
“너희 제자들 옷 좀 사주고 싶은데…”
“왜? 누가 옷 사달랬나?”
사하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기수에 대해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이다.
‘싫으면 관둬라!’ 하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약간의 죄책감도 느껴졌고, 또 사하의 토라진 얼굴이 몹시 귀여워서 그냥 빌기로 했다.
“다들 전투에 지쳤고, 옷도 찢어지거나 피가 묻은 게 많잖아. 아무리 정사대전이 중요하다고 해도 여인으로서 그런 모습 보이는 건 좋지 않잖아. 그냥 받아 줘.”
사하의 목소리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무슨 옷을 사주겠다는 거야?”
“우선 평상복을 비단으로 3벌씩 지어줄게. 그리고 전투 때 입을 전포와 갑주, 속옷이나 내복은 각각 10벌씩, 가죽신 2켤레, 피풍 1벌, 우장 1벌, 전립 하나씩. 어때?”
사하의 표정까지 누그러들었다.
“그, 그런 걸 왜 사준다는 거야?”
사실, 보타문 제자들의 상황은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었다.
기수가 말한 정도의 지원이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수가 사하의 귀 가까이로 입을 가져간 후 말했다.
“그야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지.”
“흥! 거짓말.”
“아냐. 솔직히 말할게. 내 마음속엔 오로지 너밖에 없어.”
마음속으로 ‘지금은’이란 단어 추가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럼 사해문의 그 개…. 그 호소저는?”
“너와 사랑을 확인하기 전이잖아. 그 이후로는 눈길도 안 주고 있다고.”
사하는 턱을 치켜 올리고 말했다.
“좋아! 옷은 고맙게 받을게.”
“내 사과는?”
“그건 앞으로 하는 거 봐서.”
기수는 씩 웃었다. 그 정도 반응이라면 오케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았다.
기수와 사하는 보타문 제자들과 함께 함양 시내로 들어가 가장 큰 포목점을 찾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비단으로 모두에게 옷을 지어 입혔다.
뿐만 아니라 각종 화장품과 장신구도 잔뜩 샀다.
사하가 물었다.
“넌 남자면서 화장품과 옷감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
“사부님 때문에.”
“아! 사부님이 여자였어?”
“남자라고 할 수는 없는 분이었지.”
사하는 더 이상 깊이 묻지 않았다.
화장품과 장신구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나긴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수는 대장간에 들려 비룡검법에 맞는 길고 무거운 장검을 주문했다.
금원보를 헐어 마음껏 쇼핑을 하게 해주니까 보타문 제자들은 다들 기수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사하마저도 어느새 웃는 낯으로 기수를 대하고 있었다.
기수는 여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있어 황금이 염정구심술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옷은 오래지 않아 완성되었다. 가장 화려한 비단 치마부터 최우선적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보타문 여제자들이 새 옷을 입어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수는 사하를 따로 한 쪽으로 불러냈다.
“부탁이 한 가지 있는데…”
“뭐야?”
무슨 부탁이건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들어줄 기세였다.
“너희 제자들을 무림맹 주둔지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도록 해 줘.”
사하는 살짝 실망한 어조로 물었다.
“어디를, 무슨 목적으로 돌아다녀?”
“어디건 상관없어. 화장 예쁘게 하고, 새 옷 입고, 장신구도 전부 단 상태로 그냥 서너 명씩 짝을 지어서 돌아다니기만 하면 돼.”
“도대체 무슨 의도야?”
“아무 의도도 없어. 후훗!…”
사하는 눈치 빠른 여자라 기수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러나 새 옷이 잔뜩 생긴데다 뭇 남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돌아다니는 일이 과히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다 보니 그냥 승낙했다.
보타문 여제자들이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현무단의 입단 문파 수는 확연하게 늘어났다.
무림맹에 속한 문파엔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안 그래도 예쁜 미녀들이 꽃단장까지 하고 돌아다니는데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어디엔가 속해야 한다면 미녀들 옆이 좋지 않겠는가.
미녀들 소속이 어느 단인지 금세 소문이 퍼졌고, 결정을 미뤘던 문파는 대부분 현무각을 선택하게 되었다.
기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경품에 치어리더까지 있는데 안 올 리가 없지.’
현현각에 크게 당한 이후 함양까지 단번에 밀렸지만 동창이 제때 관군을 동원한 덕분에 무림맹은 회복할 시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입단한 문파가 아무리 많아도 조직력을 갖출 시간은 충분했다.
흥행에 성공한 기수는 기쁜 마음으로 검을 찾으러 갔다.
장검도 마음에 들게 완성되어 있었다.
보통 검보다 길고, 검신의 폭도 넓고, 자루도 좀 길어서 두 손으로 잡고 휘두르기에 좋았다. 딱 마음에 드는 검이라 약속했던 것보다 돈을 더 줬다.
대장장이는 길가까지 따라 나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기수는 새로 장만한 무기들이 마음에 들었다.
세우면 명치 위까지 올라오는 무거운 장검. 그것이라면 적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빗자루로 청소하듯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현현각의 꼬마들은 스무 자루의 단검을 날려 제압하면 되었다.
거기다가 좋아하는 무기 유성추까지 마음에 딱 맞는 무게였다.
아쉬운 점은 부담 중량이 늘어났다는 건데, 한시적이니까 참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돈을 다 썼다는 것이었다.
보타문 여제자들한테 좀 과하게 지출했기 때문인데 성과가 좋았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돈이 없을 땐 꼭 사야 할 것, 먹고 싶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번엔 맛있어 보이는 월병이 기수를 유혹했다. 주머니 바닥을 뒤져 동전 서너 개를 찾은 기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물었다.
“다진 고기로 만든 월병도 팝니까?”
주인은 기수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말했다.
“누가 월병에 고기를 넣어 먹는단 말입니까?”
아! 이런 촌스런 동네 같으니라고.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이 돈에 맞춰 주시오.”
주인은 탁자에 놓인 동전들을 긁어 가지며 말했다.
“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안에 들어가 찻주전자부터 들고 나왔다.
기수는 가게 안 가득한 월병 냄새에 군침을 삼키며 그가 따라 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것을 뱉어 버렸다.
가게 주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
“손님. 왜 그러십니까?”
기수는 단번에 그의 혈도를 제압한 후 멱살을 거머쥐었다.
“감히 나를 독살하려고?”
겁먹은 가게 주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