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91
과자가게 주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기수에게 물었다.
“소, 손님.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흥!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그녀는 어디 있지?”
“누구 말씀입니까?”
“내가 직접 찾으마.”
기수는 가게 주인을 바닥에 팽개치고 황급히 주방 쪽을 뒤져보았다.
차를 마실 때 혀끝에 전해지던 달콤한 향기.
기수는 내공증진과 함께 오감도 예민해졌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그 맛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거의 죽을 뻔 한 위기로 몰고 갔던 독.
내공으로 독기를 몰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피부병에 고생하게 만들었고, 사실은 아직까지 간과 신장에 흔적을 남겨놓고 있는 채정의 독이었다.
주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가게이다 보니 그쪽으로도 좁은 출입구가 나 있었다.
기수는 다시 가게 주인을 붙잡고 물었다.
“어서 말해 봐. 그녀는 어디로 도망쳤어?”
말하는 중에 혀가 얼얼해서 발음이 잘 안 되는 기분이었다.
모두 뱉어냈지만 혀에 약간의 독 기운이 남은 모양이었다.
“소, 손님. 진정하고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이 가게는 저 혼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기수는 즉시 염정구심술을 썼다.
채정이 도망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독에 대해 전혀 몰랐다.
‘아까 내가 주문을 하는 동안 뒷문으로 들어와 차 주전자에 독을 넣은 건가?’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었다.
자기가 월병 먹으러 들어올 거라는 예측을 했을 리는 없고, 간격을 유지한 채 따라오다가 기회를 보아 손을 쓴 게 분명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그건 쉬웠을 것 같았다.
비룡검문 양호법 얘기라면 지금쯤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기수는 가게 주인의 혈을 풀어주고 겁먹은 그를 달래고 사과한 후 월병 하나를 집어 들고 씹으며 말했다.
“차 주전자에 독이 들어 있으니 모두 버리시오.”
“독이 있다고요?”
“그렇소. 모두 버리시오. 그리고 팥에 약간의 계피를 넣어보시오 훨씬 맛있을 테니.”
레시피 조언을 한 후 기수는 즉시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채정은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분명히 근처에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안력을 돋우어 샅샅이 뒤져보아도 여인의 눈매는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조금 전에 주방 뒤지는 것을 보고 실패한 걸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내 상태를 적이 모르도록 했어야 하는데 너무 흥분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다.
‘아! 이 못된 년을 어디 가서 잡지?’
찾아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기수는 즉시 십절금왕문의 거처로 갔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자 은랑대 무사 4명이 동시에 길을 막았다.
“웬놈이냐!”
“멈추어라!”
기수는 장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막으면 죽는다.”
4명의 무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단지 말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가공할 공포가 밀려왔던 것이다.
“아, 아무나 들어가도록 놔둘 수는 없다.”
그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두렵지만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수는 검을 완전히 세웠다.
안 그래도 혀가 얼얼해서 영 꺼림칙한데 마침 화풀이 할 대상이 생겼으니 그냥 넘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와 무사들을 진정시켰다.
“모두 무기를 거두어라!”
그는 바로 금랑대 대장 황신이었다.
기수는 술까지 한 잔 나눈 사이인 그를 차마 공격할 수 없어 검을 내렸다.
그러자 황신이 포권 한 후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번에 새로 인원을 충원하다보니까 양호법을 처음 보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태도와 말투가 예전보다 더 공손해진 것은 기수가 최근에 펼친 활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만 했다.
황신이 다시 물었다.
“양호법께선 무슨 일로 저희를 찾아오셨습니까?”
“소문주를 만나고 싶소.”
황신은 머뭇거렸다. 기수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들여보내야 할지 막아야 할지 가늠이 안 되었던 것이다.
“얘기만 할 거요. 내 말을 믿어도 좋소.”
기수가 확언을 하자 비로소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소문주 백무련은 겁먹고 긴장한 표정으로 기수를 맞았다.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그녀는 어디에 있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소흥 관령문 출신의 채정 말이오.”
“그, 글쎄요.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기수는 소문주가 정말로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서옥이 따로 청부를 준 것이다.
기수는 자신에 대한 독살 시도에 대해 모두 얘기한 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한 번 입을 다물겠다고 한 이상 절대 약속을 깰 생각이 없소.”
“그, 그럼요…. 저희도 양호법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자꾸 이렇게 날 자극한다면 그때는 참을 수 없소.”
“아, 알겠습니다. 저희가 그 여살수에게 분명히 얘기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비밀만은 지켜주십시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참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오. 그건 이미 입을 다물기로 했는데 사내대장부가 두 말을 할 리가 있겠소?”
소문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참을 수 없다는 말씀은…”
“십절금왕문을 봉문시켜버리겠소!”
소문주와 황신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천하에 누가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가 양호법이라면 흘려들을 수 없었다.
이미 남궁세가가 비룡검문에 의해 봉문 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소문주는 잠시 노한 표정으로 기수를 노려보았지만, 기수의 눈빛이 더 강렬했다.
결국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겁먹은 어조로 말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이번 건은 의뢰에 대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일일 뿐입니다. 자객이 양호법을 노리는 일이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 말 믿겠소.”
기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소문주는 만류했다.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셔서야 되겠습니까? 한 잔 합시다.”
기수는 그냥 나오려 했지만 어찌나 간곡하게 잡는지 결국 그들과 합석했다.
소문주와 황신, 그리고 기수.
남자 셋이 앉아 술을 마시며 강호 얘기를 하다 보니 처음 찾아갔던 기세와는 달리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흘러갔다.
기수는 소문주의 화술과 친화력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공은 자기가 우위지만 뭔가 흥정이나 협상을 하라고 하면 그에게 못 당할 것 같았다.
결국 술자리가 끝날 즈음엔 언제 알력이 있었나 싶게 친구사이처럼 바뀌고 말았다.
소문주가 은근한 목소리로 기수에게 말했다.
“형님. 이걸 받으십시오.”
“내가 언제 또 형이 됐지?”
“또라니요?”
“아! 그 얘긴 됐고…. 이 주머니는 뭐야?”
“예. 약속의 징표입니다. 그냥 넣어두십시오.”
“믿음의 증거란 말이지? 좋아.”
기수는 그것을 받아들고 십절금왕문 숙소를 나와 비틀비틀 취한 걸음으로 걷다가 담 모퉁이를 돌자마자 주머니를 풀어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전부 금원보였다.
“아, 놔…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이노무 황금만능주의…”
정말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주머니가 깊어진 기수는 진백에게 절반을 더 빌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품위 유지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며칠 뒤.
모든 준비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4개 단이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문파 수와 인원수 모두 현무단이 가장 많았다.
막바지에 입단 러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가 주관하는 대대적인 축하연이 벌어졌고, 그 다음날엔 각 단 별로 모임이 열렸다. 본래 축하연은 사나흘에서 길면 1주일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재의 무림맹은 패잔병 분위기라 짧게 끝난 것이었다.
진백은 의젓한 모습으로 현무단 모임을 관장했다.
기수가 보기에도 위엄과 품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좌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다.
“이만한 조직을 움직이려면 유사시에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모용세가의 소가주 모용인이었다.
진백이 온화한 어조로 그의 말을 받았다.
“모용 공자께선 생각하는 바를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적은 막강합니다. 소림방장과 무당 장문인이 함께 나섰어도 현현각 각주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부단주도 뽑아두어야 할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비룡검문 제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기수도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진백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습니다. 만전지책을 준비해야겠지요. 그럼 어떠 방식으로 부단주를 뽑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그야 당연히 문파의 위세로 보나….”
그때 보타문의 사하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무공이 고강한 순서로 뽑아야지요.”
모용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사실, 모용세가가 단주가 되지 못한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터였다.
하지만 그동안 사마연합군과 싸우면서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우지 못했고. 비룡검문은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혁혁한 전과를 쌓았으니 단주 자리는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부단주는 당연히 자기를 지목해줄 거라 기대했는데 보타문에서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여기저기서 옳소! 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좌중이 술렁거렸다.
보타문은 숫자가 많지 않지만 현무단 내에서 인기는 최고였다.
사하의 한 마디에 호응하는 사람의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강자가 높은 서열에 올라야 한다는 사하의 의견은 그 자체로 옳기도 했다.
지금처럼 무서운 적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선 더 더욱 그랬다.
장내가 시끄러워지자 진백이 손을 내저어 진정시켰다.
“조용해 주십시오. 저는 모용세가의 소공자께서 부단주 자리를 맡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용인의 얼굴에 희색이 번졌다.
그러나 좌중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실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모용공자의 말마따나 상대는 소림방장도 꺾은 강적인데, 단지 명성만 믿고 부단주 자리를 내어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옳소!”
사하가 다시 말했다.
“저는 단주님을 믿어요.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모용공자님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자리에서 간단하게 비무를 펼쳐 부단주를 뽑는 게 어떨까요? 그 사람의 출신과 사문은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만으로요.”
모든 사람들이 그녀 의견에 동조했다.
모용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강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를 탓할 수만도 없었다.
‘좋아! 내가 실력을 입증해 보이면 되지.’
그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
모용인이 취의청 한 가운데로 나가 서자 좌중이 물 뿌린 듯 조용해졌다.
모용인은 좌우로 포권을 한 후 말했다.
“저는 모용인이라고 합니다. 한 수 가르침을 청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실력자가 상위 서열에 올라가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용인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하가 기수를 보고 생긋 미소 지었다.
나가서 본때를 보여주고 부단주가 되라는 의미였다.
기수도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용인에게 뜨거운 맛을 좀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선 동의했다.
그러나 당장 나서기보다는 단 내에 어떤 인물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모용인이 좌중을 둘러보고 큰소리로 말했다.
“제게 가르침을 주실 분 안 계십니까?”
다들 그의 시선을 피했다.
기수 입장에선 좀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모용세가가 9파1방4문5가에 속하긴 하지만 5가 중에서는 최 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용인은 두 명의 형이 연달아 죽는 바람에 소가주가 된 사람.
바로 그 현장에 기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모용인과 부단주 자리를 놓고 경쟁할 실력이나 배짱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현무단이 단지 인원수만 많을 뿐이라는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건가?’
기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취의청 안의 무림인들 레벨을 감지해보았다.
실망한 다음이라서 그런지 그다지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 모두들 군소방파니까 모용세가를 누르고 부단주가 되는 게 대외적으로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네.’
대충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모용인이 진백 쪽을 봤다.
도전자가 아무도 없으니 이제 선언을 해달라는 의미였다.
진백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기수가 나섰다.
“문주님.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양호법.”
진백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수는 목례를 한 후 곧바로 모용인 앞으로 나가 마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