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94
합비는 겨드랑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이고! 아파라. 그나마 뼈가 부러지진 않아 다행이야. 크크크….”
“어떻게 막아내신 겁니까?”
“방금 그 수법은 이름이 뭐냐?”
기수는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파천강기라고 합니다.”
“파천이라…. 태무신궁의 수법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은거한 이후 새로 창안해낸 건가?”
“태무신궁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비룡검문의 수법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흐음…. 이도 저도 아니면 네놈 사문은 어디냐?”
“북궁 성을 가진 한 고인을 모시고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흐음…. 북궁씨 중에 고수가 누가 있더라….”
합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머리를 흔들었다.
기수의 사부는 어떤 문파의 전인이 아니라 무학에 자질 뛰어난 환관이 황궁비고를 만남으로서 만들어진 고수이니까 그가 알 턱이 없었다.
“어쨌거나 아주 흉악한 수법이었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여기에 구멍이 뻥 뚫렸을 거야.”
“그랬을 겁니다.”
“좋아. 결정했다. 이제부터 넌 내 제자야.”
“싫습니다!”
합비의 얼굴 가득 분노가 번졌다.
기수도 지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이제 한 가지 수단밖에 남지 않았군.’
그러나 단정홍은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법이라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만약 단정홍까지 막아낸다면?’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것마저 막힌다면 오늘 이곳에서 삶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제안을 받아들일까?’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합비의 제자가 되기는 싫었다.
무슨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오기 때문이었다.
기수가 지지 않고 노려보자 합비는 기가 막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그는 노기를 풀고 물었다.
“이유나 좀 알자. 도대체 왜 싫다는 거냐?”
“글쎄요…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데 강요를 받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평양이 어딘데?… 아,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억지로 시켜서 싫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좋아! 난 아무 말 않을 테니까 네가 가르쳐달라고 청해라.”
“하핫! 말이 되는 얘기를 하십시오.”
“끄응…. 내 사정 좀 봐주라. 직접 나설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 놈한테나 가르쳤다가는 후환이 걱정 되고. 도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합비가 강경하던 태도를 바꾸고 저자세로 나오자 기수도 경직을 풀었다.
“방금 전 제 파천강기를 어떻게 막은 겁니까?”
“바로 내게 네게 가르칠 기술이지.”
“호신강기 같은 겁니까?”
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기공 혹은 오행류라고 한다. 출발은 호신강기지만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게다가 오행의 성질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 이후엔 어떤 상황에건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다. 아까 네놈이 도망칠 때 다리를 묶은 것처럼.”
기수는 손발에 뭔가 끈적거리며 달라붙던 느낌을 기억해냈다.
‘그게 호신강기의 변형이었다고?’
합비가 기수의 표정을 살피다가 말했다.
“네가 쓰는 파천강기라는 것도 유현기공 안에서 보자면 목(木)기운의 강기를 변형시켜 몸 밖으로 발출하는 것에 불과해. 그러니 나의 금(金)류를 뚫지 못한 거다.”
기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 오행이란 게…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에게 강하고 약한 게 있습니까?”
“아무렴. 오행의 상생상극 정도는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그 정도 지식은 있었다.
목이 토를 이기고, 토가 수를 이기고, 수가 화를 이기고, 화가 금을 이기고, 금이 목을 이기는, 가위바위보 비슷하게 물고 물리는 관계였다.
기수가 약간 들뜬 어조로 물었다.
“그럼 혹시 음종의 기술은 어떤 오행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은 금류야. 그러니까 네 파천강기는 힘을 못 써.”
“아! 그렇군요…. 어쩐지…”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음종 깰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말할 뻔 했다.
그러나 목까지 올라온 그 말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런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어르신의 후손들이 사는 마을 하나 지키는 것쯤은 문제가 안 되겠네요.”
“으으…..”
합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미끼를 건드리기만 하고 물지는 않는 물고기와 싸우는 낚시꾼의 심정이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수를 노려봤다.
‘분명 흥미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러다가 이 고집불통을 자기 제자로 만들 방법을 생각해냈다.
“자네. 음종을 꺾고 싶지?”
“어르신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한다고 해도. 역시 무림인으로서, 사내로서 음종을 꺾고 싶지?”
“그야…. 그런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오행류 중에서 음종을 꺾을 수 있는 화류를 가르쳐주지.”
“전 어르신의 제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누가 제자 삼겠다고 했나? 음종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화류 하나만 가르쳐줄 거야. 나머지 네 가지는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하기 전엔 절대로 배우지 못할 걸.”
기수도 흥미를 느꼈다.
“제자가 되지 않아도 가르쳐주신단 말씀입니까?”
“대신, 합가촌을 지켜준다고 약속해야 돼. 그 조건이야.”
“그야 물론이죠!”
합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닐 걸. 합가촌을 음종뿐만 아니라 무림맹과 관군으로부터도 지켜달라는 의미니까.”
힘없는 마을사람들 입장에선 사마연합군이 쳐들어와도 문제지만, 관군이 주둔한다고 해도 괴롭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건….제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무림맹이나 관군의 배치는 맹주나 이곳에 파견된 동창 책임자가 정할 문제였다.
합비는 홱, 고개를 돌렸다.
“쉬운 일이면 내가 조건으로 걸겠나?”
기수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좋습니다! 만약 무림맹이나 관군이 합가촌에 들어가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제가 모두 막아내겠습니다.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말입니다.”
“사내는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야.”
“그럴 각오로 드린 말씀입니다.”
합비는 기수의 눈을 한참 들여다본 후 물었다.
“무림맹주가 명령을 내린다면 어찌할 텐가?”
“말로 해보고… 안 통하면 무림맹주건, 동창 간부건 모두 제압하겠습니다.”
기수는 무림맹을 위해서 여기 있는 게 아니었다.
비룡검문 문주라면 몰라도, 무림맹주는 자기와 무관한 사람이었다.
합비는 기수가 진심이란 사실을 알고 껄껄 웃었다.
“이거 참 재미있는 놈이구나. 마음에 안 들면 무림맹주라도 제압하겠다고?”
“그렇습니다.”
“하하하!…. 내가 제자 하나는 진짜 잘 골랐다니까.”
“제자 안 한다니까요!”
“아 참! 그랬지. 좋아… 어쨌거나 약속한 거다?”
“예. 어르신이 음종 깨트릴 방법을 가르쳐주시면 저는 합가촌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것 외에는 어떠한 다른 조건도 없는 겁니다.”
기수가 재확인하자 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이해가 부합되는군. 그렇게 하지.”
합비는 속으로 웃었다.
‘이놈아. 네가 금류만 배우고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으냐? 사내, 특히 무림인이라면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절대로 누를 수 없는 법이다. 크크크….’
기수는 기수대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음종은 파천강기와 상극이다. 그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다른 류는 필요 없어.’
똥고집으로 버텨서 마침내 원하던 바를 얻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면서 자기가 버텼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를 속여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아니면 강요 때문에?’
합비의 제자 되기를 끝까지 거부한 이유가 스스로 궁금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진짜 이유를 찾아냈다.
북궁천과의 이별.
그런 아픔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수가 옛 사부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는데 합비가 물었다.
“이제 사제지간에 맞먹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으니 역용 좀 풀어보지?”
기수는 깜짝 놀랐다.
“제가 역용한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진기 흐름이 불규칙한 게 느껴져.”
“눈이 아니라 진기 흐름으로 알아차리셨다고요?”
“크크크….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지? 그럼 사부라고 불러.”
“음종 깰 방법이나 진도 나가시죠.”
“쳇! 재미없는 녀석.”
기수는 본래 얼굴을 보여주었다.
합비가 슬쩍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허어! 그 놈. 인물 참 잘 생겼네.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군.”
기수는 합비의 얼굴을 뜯어봤다. 100살쯤 젊어진다고 해도, 거기다가 포토샵까지 한다고 해도, 절대 자기와 비슷한 부분을 찾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기수는 즉시 양십일의 얼굴로 돌아갔다.
혹시 누가 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합비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태무신궁의 할망구는 어떻게 됐지? 죽었나?”
“그건 잘 모릅니다.”
“설마… 분광권을 쓰면서 태무신궁의 제자가 아니라고 할 건가?”
“태무신궁의 무공을 배우긴 했지만, 일종의 속가제자라고 할까. 방계 제자라고 할까.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에잉! 태무신궁은 너무 비밀이 많아. 마음에 안 들어.”
“비밀스럽긴 하죠.”
기수는 잊지 못할 두 소녀를 떠올렸다.
그녀들과 자기를 떨어트린 것은 동부 주변에 쳐진 기문진이었다.
합비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태무신공의 무공엔 결함이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가공할 위력을 지닌 대신 내력소모가 너무 심해. 적이 여럿이거나 오래 싸워야 하는 경우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지.”
“글쎄요…. 분광권을 쓰면서 그런 느낌은 못 받았는데요.”
“하하!… 분광권이 뭐라고. 그건 태무신궁 안에선 기본 권각술일 뿐이야. 진짜 위력적인 무공은 오로지 궁주에게만 전해지지.”
“아! 그렇군요.”
기수는 조민과 조현 자매를 생각했다.
‘지금은 둘 다 폐관수련을 마쳤을 거고. 어쩌면 차기 궁주도 결정이 되었겠지? 누가 선출되었을까?’
갑자기 못 견디게 그녀들이 보고 싶었다.
기수의 상념을 합비가 깼다.
“무슨 생각하나?”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오묘한가?”
“아, 아무 생각도 안 했다니까요! 그런데 어르신은 태무신궁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내가 젊을 때 환우구종과 어울리던 기간이 있었거든.”
“그럼 다른 분들과도 친하셨나요?”
“친하고 말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당시 마종, 사종, 화종, 독종, 요종이 검종, 음종, 도종, 비종과 대립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나와 두 친구가 검종 편을 들면서 겁난을 막았지. 아주 대단했어. 그때는…”
“화종과 독종이 마종 편이었습니까? 음종은 그 반대였고요?”
“지금과는 정과 사의 갈림이 달랐지. 대의니, 명분이니 해도 결국 사람은 감정을 따라 가기 마련이니까.”
“그때는 음종이 어르신과 같은 편이었습니까?”
“그래서 그들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지.”
기수가 상체를 합비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제가 그들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공격에 내성이 강한 호신강기를 가르쳐주겠네.”
“그러면 저의 파천강기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던 것처럼, 상대의 음공이 제게 통하지 않게 되는 건가요?”
“바로 그거지. 이해가 빠르군.”
“방어는 그걸로 됐다고 치고. 공격 방법은 뭐가 있습니까?”
“음종의 약점이 바로 거기에 있지. 자기네 공격이 막히면 그 다음엔 그저 평범한 무림인에 지나지 않아. 도검으로 찌르면 간단히 이길 수 있을 거야.”
“음공 이외의 무공은 별 거 없다는 말씀이군요.”
“음종의 기술들은 익히기가 정말 어렵거든. 노력과 정열을 분산시켜서는 성취가 불가능해. 대신 제대로 익힌 뒤의 위력은 무시무시하지.”
그것은 기수도 직접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무림맹 본진도 그로 인해 초토화되지 않았던가.
“좋습니다! 구결을 말씀해주십시오.”
음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음종의 전대 고수와 함께 지내면서 약점을 파악했다는 고인을 만났으니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었다.
합비는 약속한 대로 화류의 구결을 전수해주었다.
기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구결에 따라 진기를 움직여보았다.
의외로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부분이 없었다.
“예상보다 쉽군요.”
“쉽다고? 운기만 따라했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게 아냐. 크크크…”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요?”
기수가 내력을 끌어올리자 갑자기 주변 공기가 확! 하는 소리를 내며 팽창했다.
합비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제가 한 게 맞는 겁니까?”
합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하니 화류의 호신강기을 단번에 만들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