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03
지현과 현승을 기분 좋게 일타쌍피 처리한 기수는 장락루로 갔다.
‘광혼랑. 진짜 오랜만이군.’
그녀와 소혼랑, 혈천제 등과 함께 지내던 일들이 생각나서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특히 혈천제 생각을 하니까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그러나 미소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그녀에게 지독하게 당했던 마옥혈린수가 생각난 것이다.
기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공을 운기해보았다.
마옥혈린수가 완전히 제거되었는지 새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 정말 악랄한 수법이었지.’
그러고 보니까 혈천제의 아름다운 얼굴과 몸만 회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와 재회하게 되면 마옥혈린수를 쓰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죽여야 한다고 결심까지 하지 않았던가.
교미를 위해 결국 암거미의 먹이가 되는 숫거미.
혈천제 앞의 자신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마옥혈린수에 걸려 사육당하다시피하면 예전처럼 3:1의 황홀한 쾌감을 다시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대장부로서, 인간으로서 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마주친다면 그녀는 분명 그 수법을 다시 쓰겠지?’
시간이 좀 지났다고 해서 혈천제가 고분고분한 성격으로 변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순순히 당할 수는 없으니까 이쪽에서도 손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끝나는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현재의 상황으로 봤을 때 아마 죽는 쪽은 혈천제 쪽이 될 것이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들기는 싫었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장락루에 도착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한 기수는 포목점에 들러 비단옷을 사 입고 얼굴을 양십일에서 변형시켰다.
거울에 비춰 보니 주색잡기로 인생을 낭비하는 30대 한량으로 보였다.
그는 거들먹거리는 걸음으로 장락루에 들어갔다.
돈 냄새를 맡은 좌우 누각의 기녀들이 그에게 손짓을 하고 눈웃음을 보냈다.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마담으로 보이는 여인이 나와서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나! 공자님.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단골처럼 친근한 미소와 말투였다.
기수는 짐짓 짜증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오늘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맹주한테 욕을 먹었거든.”
“맹주라면….”
“그건 알 것 없고… 나 오늘밤 세상 일 다 잊을 정도로 취하고 싶으니까 이 집에서 제일 예쁜 기녀와, 가장 맛있는 안주와, 최고로 향기로운 술을 다 내 놔.”
“물론이죠! 제게 맡겨주세요.”
마담은 요염하게 웃으면서 기수의 팔에 매달려 가슴을 꾸욱 눌렀다.
기수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를 풀어서 입구를 슬쩍 벌려 보였다.
“괜히 하는 말이 아냐. 난 진짜 최고를 원한다고. 특히 여자는.”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우리 장락루의 기녀들은 함양, 아니 중원 최고의 미색과 재주를 겸비하고 있으니까요.”
“난 여자 보는 눈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물론이죠.”
“좋아! 이 기루의 기녀들을 전부 다 보여줘.”
돈 주머니 속을 본 마담은 기수를 화려한 특실로 안내하고 차와 과일 등을 내온 뒤 자기네 기루 소속 기녀들을 우르르 몰고 들어왔다.
“자! 공자님. 골라보세요.”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지금 나하고 장난 하냐?”
마담이 당황하여 물었다.
“왜 그러세요?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으세요? 얘는 비파 솜씨가 뛰어나답니다. 얘는 나이가 어리고, 얘는 노래를 잘 하고, 얘는 침대에서….”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시끄러워! 내가 원하는 여자는….”
기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양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무거운 것을 드는 제스처로 가슴 앞에 댔다.
사실, 기녀들이 눈앞에 일렬로 서있는 상황은 기수로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흥분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많은 미녀들과 만나면서 눈이 높아져 있다는 게 우선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화려한 옷과 두꺼운 화장 뒤에서 웃고 있는 기녀들이 왠지 모르게 불쌍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온 이유가 주색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마담이 기녀들을 내보내려 하자 기수가 주머니를 열어 은자를 나눠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자! 다들 하나씩 받아가라.”
“감사합니다.”
기녀들은 자신들을 퇴짜 놓은 기수에게 불만을 품었다가 금세 표정이 바뀌었다.
기녀들이 모두 나가자 기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여긴 없는 모양이네. 가봐야겠어.”
그러자 마담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 성질도 급하셔라. 아까 우리 장락루에 중원 최고의 미녀들이 다 모였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설마 공자님 취향에 맞는 애가 없으려고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술을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자 드디어 기수가 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광혼랑이 예쁘게 화장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녀를 끌어내려면 뭔가 무림맹과 관련된 정보를 가진 척 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 맹주님에게 혼났다는 식으로 미끼를 던진 것인데, 그녀가 덥석 문 것이다.
기수는 벌떡 일어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말한 게 바로 이거였다고! 왜 있으면서 이제야…”
기수가 양손 검지로 가슴을 가리키며 계속 ‘이거야!’를 강조하자 광혼랑은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틀어 기수를 외면했다.
그러면서도 가슴은 앞으로 내밀어 골짜기와 볼륨을 더욱 자세히 보여주었다.
기수는 그녀가 가증 떠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한 마디 했다.
“그런데 나이를 좀 많이 먹은 거 아닌가? 너 몇 살이냐?”
광혼랑은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올해 스물이에요.”
“야! 좀 정도껏 깎아… 내가 보기엔 서른이 넘은 게 분명한데.”
광혼랑은 발끈했지만 곧 그런 기색을 감추고 말했다.
“아니에요. 스물은 좀 넘었지만, 서른은 아직 멀었어요.”
“아쉽네. 난 나이가 좀 든 여자가 좋은데.”
“공자님이 좋아하실 만큼은 들었어요. 호호호!….”
“이제야 좀 솔직해지는군. 자! 우리 이제부터 밤새도록 놀아볼까?”
“좋아요!”
마담이 은자를 받고 나가자 시녀들이 음식과 술을 날라 오기 시작했다.
광혼랑은 기수 옆에 앉아서 술을 따랐다.
원래 그쪽 업계 출신이라 그런지 말 한 마디 터치 한 번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수는 예전에 그녀와 지내던 일들이 생각나서 아랫도리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야. 너. 노래나 춤이나 그런 거 좀 해봐라.”
“아잉… 전 그런 거보다 잘 하는 게 따로 있어요.”
“그것이 뭔데?”
광혼랑은 옷섶을 좌우로 벌려 가슴을 더욱 많이 노출하며 콧소리를 냈다.
“공자님이 한 번 알아 맞춰 보세요.”
기수는 그녀의 맨살에 코가 닿을 정도로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이 뭘까? 궁금하네… 도대체 뭘까?…”
자극적인 향기가 기수를 들뜨게 만들었다.
“글쎄요? 그게 뭘까요?”
광혼랑은 요염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기수의 허벅지 안쪽을 더듬었다.
기수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고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심호흡으로 욕정을 누른 후 말했다.
“이봐. 밤은 길잖아. 좀 천천히 하자고, 천천히… 술부터 좀 먹고.”
“아잉… 밤이 기니까 빨리빨리 시작해야죠.”
“여기서?”
“여긴 별채라 우리 둘뿐이에요. 부르기 전엔 아무도 안 와요.”
“그래?”
기수는 갈등했다.
손으로 움켜쥐듯이 꽉! 꽉! 무는 그녀의 뜨거운 속살이 자꾸만 생각났다.
‘정신 차려! 임마. 천마교와 얽히면 안 된다는 거 알잖아!’
기수가 뻣뻣하게 버티자 광혼랑도 접근방법을 바꾸었다.
그녀는 가슴을 여미고 술잔에 새로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은 뭐 하는 분이세요? 말투가 여기 출신이 아니신 것 같은데…”
“응? 난 사실 무림맹에서 일하고 있어.”
“아! 그러시구나. 뭔가 대단한 일을 하시나 봐요?”
“하핫! 내가 좀 그렇지. 무림맹 전체의 생사를 쥐고 있다고나 할까…”
“무슨 군량 같은 걸 담당하시나요?”
돈 씀씀이로 봐서 그쪽에서 중간에 양곡을 빼돌리는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좀 더 중요한 일이지.”
“그게 뭔데요?”
“첩자색출.”
광혼란의 표정이 굳었다.
“예? 처, 첩자라니요?”
“이를테면 천마교 백팔마령 중 하나이자, 삼천제 중 혈천제의 제자인 광혼랑 같은 자를 말하는 거지.”
광혼랑의 얼굴 가득 살기가 번졌다.
기수와 간격을 벌린 그녀는 확 달라진 어조로 물었다.
“누구냐? 넌.”
“호오!… 의외로 담담하네.”
광혼랑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그러자 기녀들 4명이 나타나 출입문과 창문을 막아섰다.
웃음을 파는 기녀들이 아니라 무공의 고수들이었다.
기수는 피식 웃었다.
“고작 이 정도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넌 누구냐? 그리고 무림맹에선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난 맹주님의 특명을 받고 온 개방 제자다. 그리고 이 누각은 지금 완전히 포위되어 있다. 내 명령 한 마디면 너희들은 몰살당하는 거지.”
“흥! 거짓말 마라!”
광혼랑은 단호하게 외쳤지만 눈빛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기수가 느긋하게 상체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하지만 우린 너희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들은 그대로야. 우리끼리 싸워서 남 좋은 일 시킬 필요 없다는 뜻이지.”
“남이라니…”
“제갈세가를 말하는 거다.”
광혼랑이 눈썹을 찌푸렸다.
“제갈세가가 천마교와 무림맹을 싸움 붙이려 한다고?”
“그렇다.”
“호호호!… 어리석은 놈. 제갈세가는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이번 계획은 그들과 우리가 양동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제갈세가는 당연히 우리가 네놈들의 뒤통수치기를 바라고 있지.”
“과연 그럴까?”
기수가 씩 웃자 광혼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기수의 퇴로를 차단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머리에 꽂은 비녀 두 개를 뽑아 각각 양손 중지와 약지 사이로 튀어나오도록 잡은 뒤 주먹을 쥐었다.
기수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말했다.
“기어이 싸우겠다는 건가?”
“아니. 싸움이 아니라 널 사로잡겠다는 뜻이다.”
“그게 과연 될까?”
“되고말고.”
광혼랑이 몸을 날렸고, 기수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광혼랑은 첫 공격의 실패에 당황하지 않고 곧장 기수의 뒤를 따랐다.
연달아 이어지는 그녀의 공격은 매섭기 짝이 없었다.
“너. 실력이 제법이구나.”
그러나 혈매궁의 사매들과 비교해보자면 설매와 비슷하거나 미세하게나마 처지는 수준이라서 기수에겐 여유가 있었다.
“흥! 닥쳐라!”
상대의 경공이 자기보다 한 단계 위임을 알아차린 광혼랑은 비녀 하나를 던지고 그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기수는 그녀가 뭔가 독이나 미혼약 같은 지저분한 수법을 쓰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기습적인 잔백지를 날려 혈도를 눌러버렸다.
광혼랑은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진 채 눈만 멀뚱거렸다. 상대가 설마 이 정도까지 고명한 수법을 쓸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저항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점혈을 당했다.
기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쓰러진 자들을 내려다봤다.
그동안 집중 연마한 것은 오행류인데, 잔백지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파워가 강해진 것 같았다. 내공이 증진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우, 우리를 어쩔 셈이냐?”
물어보는 광혼랑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천마교의 계획이 다 틀어지고 자기들은 고문을 당하다 죽어갈 거라는 사실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기수는 광혼랑을 일으켜 의자에 앉혀주었다. 몸이 기울어지면서 한 쪽 가슴이 반 이상 드러났지만 기수는 옷을 잘 여며주었다.
본능은 그 따듯하고 부드러운 살결에 뺨을 대라고 충동질했지만 이성이 저항 불가능한 상대에게 그런 짓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기수는 광혼랑과 시선을 맞춘 후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금 우리는 너희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광혼랑은 기수의 저의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기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무림맹은 현재 음종에게 당해서 많이 약해진 상태다. 너희들 입장에선 그들과 손을 잡고 우리의 배후를 치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제갈세가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무슨 뜻이냐?”
“우리 무림맹을 제압한 이후엔 너희들과도 결국 적이라는 사실을 지금부터 생각한다는 거지. 원래 삼황맹은 마교와 무림맹을 전부 죽이려고 했었거든.”
“흥! 그따위 수작으로 이간질을 하려고?”
“하하!… 이간질이라고? 이봐. 백팔 마령 중 한 명이 이곳에 숨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우리 무림맹이 알아냈을 거라고 생각하나?”
“서, 설마…. 제갈세가에서 가르쳐줬단 말이냐?”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는군.”
“미, 믿을 수 없다!”
“믿거나 말거나 그건 너희들 자유지.”
기수는 광혼랑에게 겁을 줘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적의 결속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삼황맹은 홍안산에 함정을 파고 마교와 무림맹 모두를 가뒀던 과거가 있으니까 먹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