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05
호운혜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전부 풀어버리기라도 하듯 광란했다.
그래서 기수 역시 즐거웠다. 특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부르르~ 모터 보팅도 신나게 즐겼고, 나중엔 존슨도 그 사이에서 마음껏 오르내리게 해주었다.
호운혜는 기수가 자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전략으로 입을 사용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옳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밤사이 있었던 일들에 어떠한 불만도 없었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자 후회가 밀려왔다.
‘아! 그걸 못 참고…. 이걸 어쩌지…’
사하에게 미안했다.
한동안 무림맹에 더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양쪽을 다 건드렸으니 난감했다.
“일어났어요?”
호운혜가 배시시 웃으며 손을 아래로 가져갔다.
그녀의 섬세한 손길이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존슨은 주인의 고민도 모르고 다시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기수는 슬쩍 몸을 빼려고 했다.
“이제 날이 밝아오는데 그만 일어나지. 누가 볼 수도 있잖아.”
“이 깊은 숲속까지 누가 오겠어요.”
기수는 호운혜가 정수리를 보이며 아래로 내려가자 신음을 토했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 압박감과 흡입감이 골고루 느껴지는 훌륭한 솜씨였다.
‘내가 얘를 여기까지 훈련시켰구나.’
뭔가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하 생각을 잊게 되었다.
자기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매일 밤 매복을 한 호운혜의 집념도 일정 부분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기수는 날이 밝을 때까지 그 보상을 가열차게 해주었고, 극락까지 여러 차례 오르내리던 호운혜는 결국 탈진하여 쓰러졌다.
기수는 거의 실신상태로 숨을 헐떡거리는 그녀가 쉬도록 놔두고 옷을 입은 후 말했다.
“혼자 돌아갈 수 있겠지? 난 가봐야 할 곳이 있어.”
그러자 호운혜가 기수의 팔을 잡았다.
“안 돼요! 가지 말아요.”
“걱정 마. 무림맹을 떠나는 게 아니니까.”
“아! 역시 오늘 저녁 모임에는 오실 거군요. 그럼 그때 뵈어요.”
“오늘 저녁 모임?”
“동창의 새 천호가 맹주님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에요. 용봉련 사람들 모두 그를 보고 싶어 해요. 황궁 최고 고수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곽천호가 여기 온다고?”
“아! 양호법님도 그를 알고 계시는군요.”
기수의 표정이 변했다. 사도 진유룡의 후임자.
그가 온다면 가까이에서 보고 확인할 좋은 기회였다.
“그래. 이따가 저녁 때 보기로 하지.”
“저와 함께요.”
“응? 응….그, 그럴까?”
호운혜와 볼장 다 봤기 때문인지 사하 생각이 또 났다.
호운혜는 기수의 그런 속마음을 눈치 채고 손을 뻗어 존슨을 꽉 움켜쥐었다.
“왜 대답이 그래요?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깨물어버릴 거예요!”
문다는 말에 기수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호운혜는 장난삼아, 애교삼아 한 말에 기수가 과민반응을 보이자 의심이 생겼다.
“왜 그렇게 놀라요? 혹시 보타문의 계집도 여기다 입을 댄 건 아니겠죠?”
“무, 무슨 그런 소리를 해?”
그런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혹시 그년이 물었어요?”
“아냐. 그런 일 없었어.”
“얘기해 봐요! 만약 그랬다면 이 주먹으로 그 못된 년의 이빨을 모조리 부러뜨리고 말 테니까.”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냐? 실력도 떨어지면서.”
“지금 실력이 문제에요? 감히 어딜 물어? 어딜!”
기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호운혜가 사하에게 따지기라도 할까봐 진실을 얘기해줬다.
“범인은 이미 죽었어.”
“그, 그럼 우리 둘 말고 다른 여자와도….”
“미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과 태도는 뻔뻔했다.
호운혜는 그런 기수가 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양손에 떡을 쥐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왔으니까 이제 와서 독점권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옷 입는 호운혜를 도와주고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 뒤 헤어진 기수는 혹시라도 추적이 있나 신경 쓰면서 합가촌으로 돌아갔다.
집 지붕은 어느새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촌장과 목수들을 보고 반가이 인사하는데 합비가 기수를 잡아 끌었다.
“어떻게 됐어?”
“예? 잘 돌려보냈는데요.”
“돌려보내? 누구를?”
“아! 그러니까 그게… 양곡과 면포 수탈하는 관리들을 돌려보냈다는 말입니다. 하핫!”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 충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후후…. 이제부터 지켜보십시오.”
기수는 촌장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일의 진척이 빠르군요.”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렇군요…. 헌데, 제가 함양시내를 걷다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입니까?”
“지현과 현승이 군량과 군포 징발을 전부 취소했다던데요?”
촌장은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십시오. 전 소문만 들었을 뿐이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촌장은 누구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달려갔다.
그리고 한 시진 뒤 껑충껑충 뛰며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 모두 모이시오! 그동안 거둔 양곡과 면포를 모두 돌려주겠소!”
그 얘기를 듣고 마을 전체가 들썩거렸다.
합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수에게 물었다.
“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핫!… 제가 능력이 좀 있지 말입니다.”
“이해 할 수가 없구나. 지현을 죽였다고 해도 한 번 내린 징발령은 후임자가 계속 이어나가는 법인데…”
“후후…. 감탄은 그만 하시고 약속이나 이행하시죠.”
“끄응….”
합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구결을 전해주었다.
의외로 긴 내용이라 기수는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겨우 외울 수 있었다.
“다 외웠느냐?”
“예. 일단 기억은 다 했습니다.”
“그럼 얘기해봐라. 도대체 무슨 수단으로 지현을 구워삶은 거냐?”
“후후… 구워삶은 게 아니라 힘으로 눌렀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그 흥미진진한 얘기를 듣고 싶으면 이 구결을 운용할 때 조심해야 할 사항, 빨리 익히는데 도움 되는 사항을 좀 얘기해주십시오.”
“치사하다.”
“누군가에게 배웠습니다.”
“끄응….!”
합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기수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태포천은 딱딱할수록 쉽고 부드러울수록 어렵다.”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립니까?”
“해보면 알아. 자! 지현을 어떻게 했는지 얘기해 봐.”
“흐….. 지금 함양에는 동창의 관리가 와 있습니다.”
“그런데?”
기수는 자기가 한 일을 시점만 어제로 바꿔서 자세히 들려주었다.
합비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더러운 관리가 더 지독한 놈에게 걸렸구나. 크크크…..”
“그래서 현에 속한 모든 마을이 풀려난 겁니다.”
“잘했구나. 잘했어. 헌데…. 그 사술은 어떻게 쓰는 거냐?”
기수는 씩 웃었다.
“긴장하지 마십시오. 어르신. 저보다 내공이 깊은 사람한텐 통하지 않으니까요.”
“정말이냐?”
“내공이 저보다 약하더라도 의지력이나 집중력이 강한 사람한테 억지로 쓰다 보면 제가 내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제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정신수양이 깊은 것도 아닌 관리 나부랑이쯤이야 얼마든지 다룰 수 있죠.”
“그런 거였군… 염정구심술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언제고 필요하면 말씀만 하십시오.”
“흥! 내가 그거 쓸 일이 뭐가 있겠느냐.”
“안 쓰면 좋은 거죠. 그런데 오늘밤은 제가 무림맹에 다녀와야겠습니다.”
“나하고 연공하자며?”
“오늘 무림맹에 동창의 천호가 온답니다.”
“그놈과 싸우려고?”
“아뇨. 황궁의 고수가 어떤 수준인지 안목을 좀 넓히고 싶어서요.”
진유룡의 후계자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 봐야지. 그런데….아까 내가 가르쳐 준 구결 말이다.”
“예.”
“조심해야 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태포련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으면 손바닥이 터질 수도 있거든.”
“헉!….”
장심에 집중하다가 손이 퍽?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위험이 있다면 조언을 해주셔야죠!”
“지금 해주잖아. 결과를 얻으려고 너무 서두르지 마라. 이게 가장 중요한 조언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때 촌장의 아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두 분도 저희들과 함께 어울리시지요.”
“어울리다니요?”
“저희 집에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가시지요.”
“허어! 잔치까지…”
합비는 사양하지 않았다. 기수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기수는 합비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자신의 일족. 손자, 증손자, 고손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친척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 그는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기수는 합비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촌장을 불러 은자 서너 개를 내밀었다.
촌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뭡니까?”
“고기와 술을 더 사다가 잔치를 계속해 주십시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금액이 너무 큽니다.”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걸 보니까 일찍 끝내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그리고 동네사람이 몇인데 이게 많다고 하십니까? 부디 받아 주십시오.”
“허어! 이것 참….”
촌장도 합비가 술에 취해 껄껄거리는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하던 참이라 기수가 억지로 쥐어주는 은자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손자에게 합비를 맡긴 기수는 늦지 않도록 경공을 시전하여 무림맹 본진으로 갔다.
‘그동안 떨어져 있던 동창의 천호가 무림맹으로 온다는 것은 공동작전을 준비한다는 의미겠지? 그렇다면 현현각의 루주로부터 뭔가 그럴듯한 정보라도 캐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달려가던 기수는 멀리 장원의 실루엣이 보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속도를 떨어트렸다.
무림맹에 들어가면 사하를 만나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호운혜가 지난 밤 있었던 일을 얘기했을까? 설마….’
아무리 연적 사이라고 해도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문주 진백을 만나 인사하고 순우광, 조치성과 제자들도 둘러본 후, 기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용봉련 모임에 갔다.
“련주님! 어서 오세요!”
화사한 옷과 장신구로 잔뜩 멋을 호운혜가 가장 먼저 기수를 반겼다.
팔짱이라도 낄 듯이 반기는 그녀와 살작 거리를 둔 기수는 사하를 찾았다.
그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늘로 찌르듯 따끔거리는 눈빛. 살기가 충만했다.
‘헉! 호운혜가 다 얘기했구나.’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 자랑질을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사하가 저렇게까지 격분한 상태일 리가 없는 것이다.
‘아!….참을 걸…..’
매복만 아니었어도, 가슴만 아니었어도.
그러나 후회한다고 달라질 일이 뭐가 있겠는가.
‘사하야. 미안하다. 하지만 나란 놈이 원래 이런 걸 어쩌겠냐.’
그녀와 마음이 잘 맞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일부일처의 해필리 에버 애프터 엔딩을 할 팔자는 아니었다.
탁지연에게 그랬듯이, ‘난 네가 좋다. 하지만 떠난다면 잡지는 않겠다.’의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가 의연한 태도를 보이자 사하는 살짝 당황하는 듯 했다.
그래도 살기등등한 표정을 풀지 않았는데, 기수가 외면하고 쳐다보지를 않았다.
사하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기수 대신 자기 눈빛을 받아줄 사람. 호운혜 쪽으로 갔다.
호운혜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자기 오빠 쪽으로 붙었다.
자기가 열 받아 봤기 때문에 사하가 이성을 잃고 돌발행동 할 가능성이 꽤 높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기수는 사하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맹주 집무실 쪽으로 갔다.
동창의 새 천호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무림맹 군웅들이 이미 잔뜩 몰려나와 있어서 나중에 나온 기수는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기다린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대로를 따라 상당히 큰 규모의 행렬이 들어왔다.
현대로 치면 고적대가 먼저 입장하는 식이라서 그럴듯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그 뒤로 기병 십여 기가 화려한 가마 한 채를 앞뒤로 호위하여 들어왔다.
무림맹주 주일비는 군사와 사신단 단주들, 그리고 여러 무림명숙들과 함께 나와 그 가마를 맞았다.
곽염은 첫 대면에서 기를 죽이려고 기병까지 끌고 온 것이지만, 주일비의 표정이나 태도엔 흔들림이 없었다.
상대가 동창의 간부지만, 자신은 무림맹을 대표하느니만큼 절대 꿇리지도 않고 저자세를 취하지도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