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07
기수는 우선 이곤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주님. 이장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는데요.”
“맹주님이 황족 아니신가.”
“그렇긴 하죠.”
거지가 되어도 놔둘 정도로 촌수가 엄청나게 멀긴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개방의 방주이자 무림맹주가 되었으니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조정과의 여러 가지 협력관계 일을 전담하도록 맹주님이 조정에 파견한 장로라고 들었네. 여긴 오늘 처음 온 것이니 본 적이 없을 수밖에.”
“그렇군요.”
선후관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진유룡의 배후에 있던 고수가 지금은 곽염과 이곤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기수는 밖으로 나가 곽염이 머무는 객사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을 많이 끌고 왔기 때문에 장소는 넓었지만 대부분 관군이라 신경 쓰일 만큼의 기도는 딱 두 개 뿐이었다. 곽염과 이곤이었다.
‘이 늦은 시각까지 딱 붙어 있는 건가? 설마 게이는 아니겠지.’
한 쪽이 환관이니까 이성애건 동성애건 불가능할 것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곤을 따로 불러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도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둘이 한 통속이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만약 자기만 알고 상대는 모른다면 천천히 기회를 노려도 되겠지만, 아까의 정황을 되짚어보면 이곤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어떻게든 빨리 처리해야 돼. 가능하면 오늘밤 안에…’
기수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 비룡검문의 무복을 벗고 소지품도 모두 내려놓은 뒤 특징 없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죽립을 눌러쓰고 장원을 벗어나 관군의 주둔지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본래의 얼굴로 되돌렸는데, 그것은 장차 사도와 싸울 작정이기 때문에 내공의 낭비를 없애자는 의도도 있고, 비룡검문 소속 양십일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얼굴을 바꾸는 중에 광대뼈 쪽이 욱씬거렸다. 사하한테 맞은 자리였다.
호운혜한테라면 몰라도, 사하에겐 할 말이 없었다.
때리면 맞고, 떠나겠다고 하면 보내주면 그뿐이었다.
관군 진영에 도착한 기수는 일단 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기며 이동하여 전체 진형을 파악했다. 그리고 가장 흔한 차림새의 병사 한 명을 제압하여 그의 전갑을 벗겨 입고, 머리엔 전립 쓰고, 허리엔 칼을 찼다.
그리고 모두들 졸고 있는 심야 시간의 군영을 자유롭게 이동하여 동창의 환관들이 머무는 군막 쪽으로 접근했다.
“웬 놈이냐!”
군막을 지키던 병사 두 명이 창을 겨누더니 오늘의 군호를 대라고 했다.
그들은 기수보다 계급이 높은 군관들이었다.
환관들의 거처라고 특별히 경비를 서는 것 같았다.
기수는 그들의 마음을 읽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었다.
“계륵!”
“여긴 무슨 일이냐?”
“공태감께서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사례감의 공태감님 말이냐?”
“맞습니다.”
“심부름의 내용이 무엇이냐?”
기수는 씩 웃은 후 대답했다.
“사례감의 중대한 업무를 정말로 듣고 싶습니까? 만약 내가 두 분에게 얘기했다고 태감님께 말씀드리면 비밀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군관은 뭔가 뇌물이나 비리와 관련된 심부름일 거라고 눈치 챘다.
이제까지 공량이 해 온 일들이 전부 지방관들 등쳐먹는 것뿐이었으니까 사례감의 중대한 업무라는 게 안 봐도 뻔했다.
“알았다. 들어가라.”
“고맙습니다.”
기수는 두 군관에게 군례를 한 후 무사통과하여 환관들의 군막 사이를 누볐다.
공량이 머무는 천막은 찾기도 쉬웠다.
가장 큰 데다 깃발까지 높이 세워놓고 있었다.
그가 천막으로 다가가자 이번엔 천막 입구를 지키던 환관들이 막아섰다.
“멈춰라!”
“웬 놈이 공공의 숙면을 방해하려 하느냐?”
“후후…. 다들 자는데 조용히 좀 하지?”
기수는 잔백지로 둘을 간단히 제압했다.
그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등불을 켰다.
공량이 화들짝 놀라 깨어나며 소리쳤다.
“너, 넌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왔느냐!”
기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미안하다. 난 납치범이다. 넌 인질이고…”
“뭐, 뭐라고?”
공량은 한 순간에 점혈 당해 힘없이 쓰러졌다.
기수는 그를 어깨에 들쳐 멘 후 군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의 마혈만 풀어줬다.
“자! 이제 시작해.”
공량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눈만 멀뚱거렸다.
기수가 그의 등짝을 퍽! 소리 나게 때려준 후 말했다.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란 말야.”
공량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침입자가 나를 납치해 가고 있다! 어서 이놈을 잡고 나를 구해라!”
기수는 껄껄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관군 진영은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공량은 이번 출정군의 우두머리 중 2인자였다.
그런 그가 납치당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기수는 속도를 많이 내지 않고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간격을 유지하며 달렸다.
그것도 군영을 즉시 빠져나가지 않고 빙글빙글 돌면서 관군 전체를 다 깨웠다.
관군 입장에선 공량의 안전이 중요했으므로 활을 쏘지도 못했다.
기병이 움직이자 비로소 기수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그동안 공량은 계속 소리를 질러서 목이 쉬어버렸다.
“자! 이제 그만 해도 되겠다.”
기수는 그의 마혈을 눌러 더 이상 떠들지 못하게 하고 말 달리기 어려운 관목 숲을 관통하여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관군은 횃불을 들고 몰려들었지만 기수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군관들은 무림맹으로 전령을 보내어 상황을 알렸다.
새벽 무렵.
곽염과 이곤이 놀란 표정으로 군영에 도착했다.
“도대체 누가 공태감을 납치해 갔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저희들도 모르겠습니다.”
“현현각이냐? 천마교냐?”
“저희들이 아는 것은 범인이 도부수의 전포를 입고 있었다는 점과, 미현령 쪽으로 올라갔다는 것뿐입니다.”
이곤이 놀란 어조로 말했다.
“미현령이라면 소화산 줄기와 이어져 있는데…. 혹시 녹림72채인가?”
곽염을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서 군영에 들어와 태감을 납치해 도망칠 정도라면 보통 실력이 아닌데, 녹림도 중에 그런 고수가 있을 리 없지.”
그는 즉시 공량이 사라진 쪽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공량은 무공을 약해 전쟁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욕심쟁이 환관에 불과하지만, 이번 출정을 옆에서 참관 및 기록하고 나중에 장인태감에게 보고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다.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한편, 높고 험한 산으로 올라간 기수는 공량을 땅바닥에 앉혀 놓고 하품을 하며 이곤이 오기를 기다렸다.
공량이 겁먹은 어조로 물었다.
“다, 당신은 누구시오?”
기수는 피식 웃었다.
“조정의 고관 나리께서 왜 이렇게 기가 죽으셨나?”
“고관은 당치도 않습니다. 전 단지 일개 환관에 불과합니다.”
“하하! 그렇게 말하면 몸값 협상할 때 좀 깎아줄 것 같은가? 네가 그동안 긁어모은 황금을 최대한 많이 지키고 싶은 모양이지?”
“아, 아닙니다! 전 황금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기수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불을 확! 붙이면서 중얼거렸다.
“난 말야. 거짓말 하는 놈을 제일 싫어해.”
“모, 모았습니다! 황금 모았고요. 조정에선 나름 중요한 일을 하는 환관입니다.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해보십시오. 전부 다 드리겠습니다. 그저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공량은 이제까지 동창의 고수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 왔지만 손에서 불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기를 죽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그저 최대한 협조하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길 외에는 없었다.
“얘기해 봐. 동창의 창주는 어떤 사람이지?”
“그의 이름은 만욱입니다. 저보다 2년 먼저 궁에 들어왔는데, 사람됨이 침착하고 말수가 적습니다. 그리고 무공이 천하제일이라 장인태감님 다음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무공을 누구한테 배웠지?”
“동창의 환관들에게 배웠지요.”
“동창의 환관들은 누구에게 배우는 거지?”
“그야….”
그 이전의 동창 환관들에게 배웠다고 말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았다.
“황궁엔 무공비급들을 모아두는 비밀 서고가 있습니다. 아마 거기서 책을 가져오고, 각지에서 황상께 진상되는 영약들 중 폐하의 체질에 맞지 않는 것들을 나누어 먹는 식으로 내공을 키웠을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북궁천이나 백문조는 그런 식으로 고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유룡이나 곽염 같은 나이에 그런 무공을 지니려면 뭔가가 더 필요했다.
“혹시 황궁에 만욱 외에 다른 고수가 있는가?”
“없습니다.”
“무공도 익히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지?”
“황상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파악하고 차단하는 게 동창뿐만 아니라 사례감의 의무입니다. 황궁 내부의 고수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파악하고 있습니다.”
“웃기네.”
기수는 황궁 내부의 고수 중 한 명을 알고 있었다.
공주 주예림이 적어도 곽염 수준의 고수였다.
‘여자라고 무시하는 건가?’
하긴, 황제의 비빈이나 딸을 감시대상에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기수는 공량에게서 더 이상 알아낼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너.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찾아가서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겠지?”
“무, 물론입니다.”
“살고 싶으냐?”
“제발 살려주십시오.”
“좋다. 여기서 풀려나면 내가 시킨 일을 꼭 해야 한다.”
“뭐든지 명령만 내리십시오.”
공량은 여기서 풀려난다는 말을 듣자 얼굴 가득 희망의 빛을 떠올렸다.
“우선, 지방 관리들의 부정과 비리를 최대한 밝혀내고 벌을 줘라.”
“그건 이미 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하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전부 쌀을 사서 감숙성의 난민들에게 나눠줘라.”
“저, 전부 말입니까?”
기수가 씩 웃으며 되물었다.
“너 몸 전체가 무사히 돌아갈래? 아니면 일부는 여기 남겨 놓고 갈래?”
공량은 사색이 되었다.
“저, 전부 다 쓰겠습니다. 동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곡식을 사서 나눠줄 테니 제발 제 몸은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기수는 안 그래도 보통 사람들에 비해 신체 일부가 부족한 그에게 또 다른 위해를 가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말로는 겁을 더 줄 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볼 거니까 확실히 해라. 네가 지금까지 모은 돈이 4,724량 35문 42전이니까 거기서 동전 하나도 빼먹으면 안 된다.”
공량은 입을 쩍 벌렸다.
자기가 장부에도 적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수입내역을 상대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이다. 약속을 어기면 당장 이승에서의 삶을 끝장낼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해줄 테니 그리 알아라.”
“아, 알겠습니다! 절대로 빼먹지 않고 전부 다 쓰겠습니다.”
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공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신장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
“만약 신장님께 제를 지내고 지전을 태우면 제가 죽은 뒤에 극락에 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원하신다면 사당도 하나 지어드리겠습니다.”
기수는 피식 웃은 후 대답했다.
“얌마. 극락 가고 싶으면 할 일이 따로 있어. 돈으로는 절대 극락에 못 가. 대기업 회장, 사장, 벤틀리나 페라리 타고 다니는 애들은 교회에 아무리 돈 많이 갖다 바쳐도 천국에 못 간단 말야. 부자 목사도 마찬가지고. 왠 줄 알아?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거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는 얘기지.”
공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목회자들이 마음이 가난하니 뭐니 하면서 아무리 교묘한 말로 속이려고 해도 부자는 다 지옥이란 뜻이야. 성경에 적힌 텍스트와 목사의 말재주 중 뭐가 더 신빙성 있겠어? 답은 이미 나온 거야. 회개해도 소용없어. 부자로 죽으면 지옥이야. 미리 다 털거나 지옥 가거나 둘 중 하나임.”
“그런데 벤틀… 페라…”
“롤스로이스도 있지. AMG에서 튜닝한 SL시리즈, 포르쉐나 애스톤마틴, 대주주 바뀐 이후의 람보르기니나 마제라티도….”
기수는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서 중간에 말을 끊고 헛기침을 했다.
공량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극락에 가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군요.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기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냐. 아주 쉬어. 네가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해 쓰려고 했던 돈 있잖아? 제사 지내고, 지전 태우고. 사당 짓겠다고 한 그 돈.”
“예.”
“그걸 가난한 사람들한테 써. 그럼 극락 갈 수 있어.”
“저, 정말입니까?”
“정말이고말고. 목사나 도사나 승려한테 주면 낙타가 되어 바늘구멍 통과해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한테 직접 주면 극락으로 직행할 수 있어.”
“아! 그런 간단한 방법을 세상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너도 나를 만나기 전엔 몰랐잖아. 원래 사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도사나 승려의 말빨이 먹히는 거거든.”
“그럼 저는 신장님을 만난 게 행운이네요!”
“당연하지.”
공량은 여기서 풀려나면 사후의 극락행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