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08
기수는 자기를 진짜 신장이라고 믿는 공량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돈에 미친 환관 하나를 사후의 일을 걱정하도록, 바꿔 말하면 종교에 빠지도록 만들고 보니까 뭔가 재미도 있었다.
따분한 시간이 지나고 해가 높이 떠오를 즈음.
기수는 시끄러운 군대의 진군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섞인 두 고수의 기도를 감지할 수 있었다.
‘왔구나!’
긴장감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기수는 공량에게 말했다.
“약속한 바를 꼭 이행하기 바란다.”
“물론입니다!”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은 후 그를 내버려두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공터에 자리 잡고 선 뒤 강력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잠시 뒤 파공음과 함께 곽염과 이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공술로 보아 예상보다 고수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곽염이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넌 누구냐?”
기수가 과시한 기도 때문인지 두 사람 모두 긴장한 모습이었다.
“나?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글쎄… 한 마리 외로운 표범이라고나 할까?”
곽염과 이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곤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무슨 개소리냐!”
“후훗…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너희들이 어찌 알겠느냐.”
곽염이 내공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공태감은 어디 있느냐! 당장 말해라!”
기수는 엄지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날 쓰러트리지 않으면 여기를 지나갈 수 없다.”
곽염과 이곤이 자세를 낮추며 좌우로 벌려 섰다.
협공하겠다는 의미였다.
기수도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파천강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공량과 함께 기다리면서 이번 싸움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나름대로 작전을 세워두었다.
우선, 곽염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림맹이 음종과 사마연합에 전멸당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동창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창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와 상관없이 그 공적은 인정해야 했다.
만약 곽염을 죽여 버리면 음종에 대한 반격은 커녕, 함양마저 함락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동창은 기본적으로 적이지만, 사도가 아닌데 굳이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우선 사도를 처치하고, 무림맹이 사마연합을 물리쳐서 비룡검문과 보타문의 안전이 확보된 이후에 신경을 써도 늦지 않은 것이다.
기수는 먼저 이곤을 향해 선공을 취했다.
선풍비로 급격히 간격을 좁히면서 위협적인 장법을 연달아 펼쳤다.
예상대로 이곤은 뒤로 물러섰다.
초반 탐색전에 무리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동료인 곽염이 기수의 배후를 차단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곽염의 접근을 느낀 기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천강기 다섯 방을 날렸다.
파파파파팍!…..
“으윽!…”
곽염은 신음을 토하며 황급히 몸을 굴렸다.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간격이 충분한 상태에서 강기로 기습을 당할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기수는 잽싸게 돌아서서 무릎을 움켜쥐고 구르는 곽염의 다친 다리에 다시 한 번 파천강기를 날렸다.
다리에 구멍이 뚫리면 안 되기 때문에 강도 조절이 어려웠는데, 처음 다섯 방에 3성의 힘을 주었는데도 견뎠기 때문에 두 번째는 4성의 힘으로 정강이를 노렸다.
처음부터 요혈이 아닌 무릎과 정강이 전체를 노린 공격이라 곽염은 이번에도 전부다 피하지 못하고 두 방을 추가로 맞았다.
“으으윽!……”
뼈가 부러질 것 같은 통증 때문에 결국 그는 신음을 토했다.
목적을 달성한 기수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이곤 쪽으로 돌아서서 그의 장을 자신의 장으로 맞받았다.
쿵! 하는 폭음과 함께 기수는 대여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기혈이 격탕하여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제법이군…”
기수는 이곤을 향해 씩! 웃어 보인 후 곧바로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돌발 행동에 이곤과 곽염 모두 깜짝 놀랐다.
곽염은 황급히 일어섰지만 한 쪽 다리의 통증 때문에 다른 한 발로 깨끔발을 뛰면서 겨우 중심을 잡아야 했다.
이곤이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기혈이 막히거나 부러진 건 아냐. 저 놈을 쫓아가서 잡아! 어서!”
이곤은 곧바로 몸을 날려 기수의 뒤를 쫓았다.
그는 이틀 연속으로 자신을 흥분하게 만드는 적수를 만난 상태였다.
어제는 비룡검문의 양호법.
오늘은 신분을 알 수 없는 납치범.
설레임의 원인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는 사실만큼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곽염을 공격한 수법은 어딘가 낯설지가 않았다.
그와 곽염은 각각 개방과 동창에 소속되어 상당한 고위직에 올라가 있지만, 실제로 모시는 주군은 따로 있었다.
특히 자신은 곽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간격을 두고 강기를 발출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은 일반적인 무림인이 쓸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저 놈. 주군이 잡으라고 하셨던 그 놈이 분명해.’
이곤은 이를 악물고 기수와의 간격을 좁혀갔다.
워낙 상승의 경공이 펼쳐지다 보니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산봉우리 두 개를 넘어버렸다.
기수는 인적이 완전히 끊긴 심산유곡임을 확인하고 경공을 멈추었다.
이곤도 간격을 유지한 채 착지했다.
기수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드디어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군.”
이곤은 상대가 자신만 따로 유인하기 위해 공량을 납치하고 곽염의 다리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진천호와 일월신교의 유지광을 죽인 혈매궁의 궁주. 그게 너지?”
이곤의 질문에 기수는 쉽게 대답했다.
“그렇다. 후후…. 여기까지 와서 숨길 필요는 없겠지.”
“으으…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그렇다면 수로맹의 유소진을 죽인 건 너냐? 아니면 네 동료냐?”
“동료?”
“날 속일 생각 하지 마라! 비룡검문의 양호법. 그 자가 너와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수는 씩 웃은 뒤 대답했다.
“유소진은 우리 동료들이 힘을 합쳐서 제압했지.”
“네놈 패거리는 모두 몇 명이나 있는 거냐?”
“그 전에 공평하게 나도 질문 하나 하자. 너희들의 수괴는 누구냐?”
“흐흐흐….”
이곤은 냉소를 지은 후 말을 이었다.
“주군은 존귀하신 분이다. 네놈 따위는 감히 입에 올릴 자격도 없다.”
“주군이라….”
기수는 사도들끼리도 상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곤이 다그쳐 물었다.
“자! 얘기해봐라. 너희 패거리는 모두 몇 명이냐?”
“나를 포함해서 모두 10명이다. 내가 그 중 제일 하수지.”
“으음….”
이곤은 두려움과 부담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기수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너희 주군이라는 자는 도대체 무슨 수법으로 진유룡이나 곽염 같은 고수를 단시간에 만들어내는 것이냐?”
“그분은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니셨다. 곽염 정도의 고수는 하룻밤 새에 100명이라도 길러내실 수 있지. 흐흐흐….”
기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정보였다.
이곤이 내공을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너를 사로잡아 주군께 끌고 갈 생각이니까,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직접 만나 뵙고 여쭤보려무나.”
순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거의 이형환위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빠른 신법!
그러나 기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장 분광권을 펼쳐냈고, 순식간에 겨룬 20여초에서 우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곤은 괴성을 지르며 공세를 강화했지만 승패는 목소리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변화무쌍한 분광권 초식에 빗겨 맞은 그는 멀찍이 튕겨나간 후 겨우 균형을 잡고 섰다.
“크으!…..”
이곤은 기수를 노려봤다.
상대는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아까 곽염과 함께 있을 때 장을 마주친 것은 자기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약한 척 한 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수가 미소 지으며 검지를 까닥였다.
“포기하기엔 이르지? 덤벼라!”
지난번에 싸운 사도들. 진유룡, 유지광 등에 비하면 이곤은 특별히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이곤이 약해서라기보다 자신의 현재 컨디션이 좋다는 게 더 큰 이유 같았다.
채정에게 당했던 중독도 그럭저럭 모두 치료가 됐고, 합비를 만나 열심히 연공에 집중한 덕분에 오행류뿐만 아니라 전체 내공이 향상되었다.
평상시엔 그 차이를 몰랐는데, 오늘 고수와 맞서보니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곤이 입술을 이죽거리며 말했다.
“역시 실력이 대단하구나. 예전의 나였다면 상당히 위험했겠어.”
“예전의 너라고?”
“주군께서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특별한 신공을 가르쳐주셨지. 흐흐흐…”
동시에 이곤의 기도가 폭발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기수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12사도 중 6명이나 죽었는데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이곤의 기도는 독특했다.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며, 피부가 따끔거렸다.
기수도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리고 온몸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짜릿한 흥분을 만끽했다.
‘오냐! 그래… 네가 무슨 신공을 익혔건 다 부숴주마!’
강적과 맞서면서 아드레날린 분비로 인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관자놀이가 혈류를 따라 욱씬! 욱씬! 거렸다.
기수는 자신의 안에서 눈 뜬 야성에 전율했다.
현대인으로 살아갈 때는 철저히 묻혀버렸던 감각.
그러나 언제든 살인을 할 수도 있고, 당할 수도 있는 이곳 중원무림에선 생생하게 열려 있는 감각이었다.
한동안 그 야성을 일깨울 정도의 적수를 만나지 못했던 터라 이곤의 도발이 몹시 신선하게 느껴졌다.
심지어는 혀끝에 피 맛까지, 레어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을 때 같은 맛까지 전해졌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한 마리 맹수 상태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렸고, 네 개의 손이 다시 얽혔다.
파파파팟!……
천둥 같은 파열음과 함께 순식간에 30여 초가 교환되었다.
“으음….!”
“으으…..”
갈라져 선 두 사람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이곤은 자신이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반대로 기수의 표정은 심각했다.
시린 통증이 이곤과 맞닿았던 두 손에서부터 시작하여 팔꿈치를 지나 어깨를 향해 번지고 있었다.
‘단정홍과 비슷한 수법이구나!’
단정홍처럼 바늘로 찌르는 통증은 아니고, 양팔을 얼얼하게 마비시키며 확산되는 음한지기. 느낌은 상이하지만 위협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수는 승부를 빨리 끝내야 함을 깨달았다.
권법의 운용에서는 밀리지 않으니까 오른손엔 파천강기, 왼손엔 단정홍을 각각 끌어올려 마무리를 지으리라 마음먹었다.
“으윽!….”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기경팔맥을 통해 순환되던 내공이 어깨에서부터 막혀 손으로 가지 않았다.
당황하는 기수를 보고 이곤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나의 한음빙정공 맛이 어떠냐?”
“어째서 이런….”
“나의 빙정은 혈도를 마비시키고, 혈맥을 폐쇄하는 효능이 있다. 그리고 빠르게 멀리까지 퍼져 나가지. 흐흐흐….”
기수는 황급히 두 팔의 기혈 흐름을 차단했다.
그러자 팔로 파고든 한음빙정에 자신의 진기가 접촉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만졌다가 화상을 입을 때처럼 섬뜩했다.
이곤이 기수를 비웃었다.
“이제 와서 막아보겠다고? 흐흐흐… 이미 늦었다.”
그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기수에게 접근하며 말았다.
“두 팔을 다 못 쓰는 기분이 어떠냐? 쓸데없이 저항하지 말고 고분고분 혈을 짚이는 편이 너에게도 덜 고통스러울 거야.”
기수는 그가 다가오는 만큼 뒷걸음질을 쳤다.
졸지에 양팔이 마비되고 나니까 그동안 익힌 무공이 다 소용없었다.
두 팔은 짐 덩어리처럼 어깨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젠장! 사도 놈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희한한 수법을 쓰는 거지? 전기뱀장어 인간에 이어서 제빙기 인간이라니…’
순간, 얼음을 불로 녹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곤은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계속 다가왔다.
두 팔을 쓰지 못하는 기수를 마음껏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
기수가 뒷걸음질을 치자 그는 냉소를 지었다.
“도망치려고? 흥! 그 팔로 경공을 시전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기수는 도망치려는 게 아니었다.
오행류 중 화류를 일으킬 시간, 그리고 빙정을 녹일 시간만 벌면 되었다.
그러나 이곤은 그런 여유를 주려하지 않았다.
“두 다리에도 빙정을 심어볼까? 그러면 벌레처럼 바닥을 기겠지? 흐흐흐…”
그는 자세를 낮추고 기수에게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