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11
사하는 장원 담 밖까지 나간 후 기수에게 말했다.
“미안해.”
뜻밖의 얘기였다.
“뭐가?”
“그 계집애가 멋대로 꾸며낸 말인 줄은 몰랐어.”
“아! 그거…. 그건 네가 반응이 좀 심했지.”
그러니까 사죄의 의미로.
“그렇지만 네가 나를 놔두고 그녀와 그런 건…. 용서할 수 없어.”
“그날. 사실은 널 만나러 왔었는데, 그녀가 담 밑에 숨어 있더라고.”
“날 만나러 왔었다고?”
“그래. 어쨌거나 미안하게 됐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호운혜 얘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손해일 것 같았다.
사하가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난 네가 좋아.”
“나도.”
기수는 곧바로, 진심을 담아 대답한 후 바짝 다가서서 그녀를 안으려 했다.
그러나 사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만약 네가 날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오늘밤은 참아 줘.”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다른 날이라면 100일이라도 참을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여자가 필요했다.
“왜 그래? 화가 덜 풀린 거야?”
“만약 네가 오늘 나를 안는다면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거야.”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좋아한다면서 왜 오늘은 안 된다는 건가.
‘그냥 용서해주기는 싫고. 나를 좀 길들여보겠다는 건가?’
기수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사하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응하지도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입맞춤.”
“너. 나하고 헤어지고 싶은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입맞춤만 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키스를 했다.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 박동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여긴 불안해.”
자신을 밀어내고 하는 사하의 말에 기수는 씩 웃었다.
뭔가 난해한 얘기로 자존심을 세우려고 시도했지만, 그건 머리의 일이고 몸은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사나이 양기수는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거든. 정상적인 성인 여성이라면 절대로 금단증상을 이겨낼 수 없어. 후후후…’
기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든 후 물었다.
“객잔으로 갈까? 숲으로 갈까?”
사하는 호흡을 누르며 다소곳이 대답했다.
“네 마음대로….”
기수는 단숨에 함양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밤새도록 사하를 한 잠도 재우지 않았다.
소리 내어 입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결심한 바를 지키기 위해 사하의 몸 속을 구석구석 집요하게 탐험하며 그녀의 성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사하는 그동안 기수와 여러 차례 동침했지만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마구 괴성을 질러대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런 상태이다 보니 몸, 특히 속살의 반응도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기수 입장에선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하에게 최고의 밤을 선사함과 동시에 자신도 극도의 만족감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문이 아닌 창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도저히 점소이와 객잔 사람들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원 근처에서 기수는 약간의 불안감을 품은 채 물었다.
“우리. 괜찮은 거지?”
사하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고말고. 나중에 보자!”
발랄한 걸음걸이로 앞서 가는 그녀를 보며, 혹시라도 헤어지자고 할까봐 긴장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참 쉬운 거구나.’
남녀 간의 문제라는 게 풀리려면 정말 간단히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해의 섹스가 평상시보다 훨씬 즐겁다는 점도 체크포인트.
사하와 시간차를 두고 장원으로 들어가는 기수는 날밤을 꼬박 샜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개운했고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벼르던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육체의 피로 쯤 간단히 밀어낸 것이다.
그런데 장원 안의 분위기가 어제 나올 때와 달랐다.
사람들의 걸음이 다들 빨랐고 얼굴도 긴장되어 있었다.
비룡검문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수는 순우광을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지?”
“맹주님이 출정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좀 의외였다.
곽염이 이곤을 찾는 동안 시간 여유가 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수는 진백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오늘 출정입니까?”
“그렇다네. 자네가 잡아온 루주의 심문 내용과 정찰 결과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네. 그리고 어제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지.”
“그게 무엇입니까?“
“적의 주둔지가 초당진으로 파악되었네. 그곳은 여기보다 장안과 더 가깝지.”
기수는 깜짝 놀랐다.
“설마…. 함양을 우회해서 장안을 치려는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네.”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함양에 비하면 장안은 너댓 배나 더 크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다.
“동창도 함께 가는 겁니까?”
“물론이지. 관군은 이미 이동을 시작했네.”
“아! 그렇군요.”
기수는 자신의 숙소로 가서 완전무장을 했다.
단검 20자루가 꽂힌 조끼는 상당히 무거웠다.
그래도 거기에 추가로 장검과 유성추까지 전부 다 챙겼다.
지난번엔 루주를 진압하면서 단검을 쓰지않았지만, 이번엔 정면대결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만반의 준비를 갖춰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모두가 준비를 갖춘 현무단이 연무장에 집결했다.
단주 진백과 부단주 모용인은 인원파악을 하고 출정상태를 꼼꼼히 점검했다.
그리고 진백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우리는 현현각과 사마연합을 치러 갈 것이오! 희생당한 동료들을 위해, 그리고 척마멸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현무단 군웅들은 커다란 함성으로 대답했다.
진백의 옆에 선 기수는 대열 중에 서있는 사하와 미소를 교환했다.
아직도 그녀의 체취가 코끝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뺨이 따끔거리는 느낌이라 돌아보니 호운혜가 노려보고 있었다.
기수는 그녀를 향해 차갑고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호운혜는 처음에 분노하고, 놀라고, 체념하더니 마침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기수는 슬쩍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야! 임마. 정신 차려.’
어금니를 꽉 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난 좋은 사람이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지. 그건 인정해. 하지만 우유부단하지는 않아! 한 번 아니면 아닌 거라고.’
그렇게 정신무장을 하고 나니까 호운혜가 슬픈 표정을 짓건, 아니면 자살하겠다고 소동을 부리건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현무단은 배정받은 지역으로 즉시 이동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바로 선봉이기 때문이었다.
음종의 수법에 내성이 있는 고수, 양십일을 보유하고 있기에 선봉을 맡게 된 것이다.
멀리 흙먼지를 내며 움직이는 관군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느리지만 숫자가 많고 무장상태도 좋기 때문에 일단 관도를 차단한 후 포위망을 형성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현무단의 스피드는 관군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랐다.
초당진은 태팽령이라는 험준한 능선을 배후로 삼고 있어서 접근이 쉽지만은 않았다.
기수는 기감을 끌어올려 전방을 살폈다.
그런데 기수보다 훨씬 더 긴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진백이었다.
너무 예민해져 있는 것 같아서 기수가 말을 걸었다.
“문주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닐세. 다만….”
“다만 뭡니까?”
“이건 너무 위험한 작전이야.”
거기엔 기수도 동의했다.
천마교,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 거기에 제갈세가가 합쳐진 사마연합의 힘은 동창과 관군의 지원을 받게 된 무림맹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현각의 존재가 문제였다.
그들은 지난번에 무림맹 수뇌부를 초토화시키지 않았던가.
“좀 서두르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도 그것일세.”
용병술에 있어서 신속함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서두르는 것과의 경계가 애매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현무단 군웅들은 바짝 긴장하여 자세를 낮추었고 몇몇 사람은 무기를 뽑아들기까지 했다. 단지 피리소리만 들렸을 뿐인데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현현각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주는 거라 할 수 있었다.
소리에 이어 숲 위로 깃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백은 방여진형을 갖추도록 지시했다.
오래지 않아 함성과 함께 적이 쏟아져 나왔다.
진백은 검을 뽑아 들고 전투를 지휘했고, 기수는 장검을 휘두르며 전진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다수와 다수의 전투에 있어서 진형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
싸움이란 결국 숫자 많은 쪽이 이기는 것.
두 사람이 한 사람을 협공하면 이길 확률이 2배가 아니라 3배, 4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군대에서만 쓰는 게 아니었다.
축구에서 4-4-2니, 3-5-2니 진형을 짜는 것도 그런 이유고, 무림인들이 진법이란 전술을 특화해서 훈련하는 것도 같은 목적이었다.
기수가 시도하는 것은 축구로 치자면 상대 4백의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것과 같았다.
수비진형이 무너지면 미드필더와 공격진까지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수가 길고, 두껍고, 무거운 장검을 휘두를 때마다 적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사마연합 무리들이 기수가 펼쳐내는 비룡검법을 막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는다 해도, 공력이 심후한 데다 검이 육중하기까지 하니까 방어하는 무기가 부러지면서 몸까지 베어지곤 했다.
기수는 적을 쓰러트리면서 계속 현현각 제자를 찾았다,
그러나 현무단을 공격하는 자들 중엔 징잡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 현현각 놈들이 없지? 이기려는 의지가 없는 건가?’
잠시 시간이 지나자 적진에서 퇴각신호가 나왔고, 병력이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현무단 군웅들은 승세를 타고 그들을 쫓았다.
기수는 진백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문주님. 추적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인작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진백은 망설였다.
그 역시 너무 쉽게 퇴각하는 적의 저의를 의심했지만 승전의 기세를 타는 것도 몹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신중히 추격하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기수도 진백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설령 함정을 파놓았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그런 위험을 찾아내고 대처하는 게 선봉부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대처능력이 뛰어난 자신이 선두로 나가는 게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부대 운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가 선두에 서자 순우광과 조치성이 좌우로 따라붙었다.
그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세 사람은 간격을 유지하고 신중하게 전진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30분이 넘도록 파고들어도 함정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오던 진백이 정지 명령을 내렸다.
“모두 멈춰라! 대형을 정비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본진을 기다린다!”
기수는 진백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깊이까지 들어왔는데 아무런 저항도 없는 것은 적이 함정을 준비했다기보다는 본진과 분산시키는데 더 주력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진백은 적당한 장소를 고르고 주변에 경계인원을 배치했다.
기수는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후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언제라도 현현각 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서너 시간쯤 지나자 무림맹주 주일비와 군사 단령문이 지휘하는 본진과 사신단의 나머지 청룡, 백호, 주작단이 속속 집결했다.
주일비는 진백의 보고를 받은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집결지가 이곳이라고 보고받았는데 이상하군요. 어쨌거나 이제 모두 모였으니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백천문 문주이자 무림맹 군사인 단령문이 말했다.
“맹주님.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십니까?”
“적이 이곳을 택한 것은, 장안을 치러가는 척 해서 우리를 유인하기 위함일 지도 모릅니다.”
“흐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병력을 잠시 빼고 이 근처의 수색은 관군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관군에게요?”
“그들은 숫자가 많아서 광범위한 지역을 단시간에 수색할 수 있습니다. 큰 부담 없이 말입니다.”
모두들 그의 말에 동감했다.
시간 많이 걸리고 번거로운 일은 관군이 하고, 무림맹은 전력을 보전한 채로 적의 출현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역시 군사 쯤 되니까 제안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주 주일비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그는 동창과 관군을 불러들여 위기의 무림맹을 구해낸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공격적인 면에서도 가시적인 전과를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군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