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12
한참 숙고하던 주일비가 말했다.
“군사님의 말씀대로 적이 우리를 유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장안과 몹시 가깝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물러선다면 적에게 활개 칠 여유를 주게 될 것입니다.”
단령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일비의 말이 이어졌다.
“관군을 보내어 수색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동창의 역장, 번장, 번자가 수백 명 보강되었다고 하던데, 자칫 그들이 적을 찾아내고 토벌하기까지 한다면, 우리 무림맹은 남의 손을 빌어 복수를 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 환영할 일이겠지만, 여러 문파들이 무림맹에 들어와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상당 부분 명예를 위해서였다.
음종에 된통 당했는데 그 복수는 동창과 관군이 대신 해준다면 그동안 강호에서 명문정파라고 행세해 온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중군과 사신단에 속한 무림 명숙들의 표정이 바뀌자 단령문도 한 발 물러섰다.
“맹주님이 명하시면 따르겠습니다.”
기수는 주일비와 단문령을 유심히 관찰했다.
처음엔 단문령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주일비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어느 쪽을 택하건 결정권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게 쉽지가 않구나. 일이 잘못 되면 무조건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하는 것.
그게 리더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일비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각 단마다 8개조의 정찰대를 편성하십시오. 맞교대로 운용하겠습니다.”
일단 맹주가 결정을 내리자 이후의 행동은 즉각적으로 시행되었다.
단문령도 지도를 펼치고 수색 범위와 병력 배정에 대한 조언을 시작했다.
현무단은 이번에도 선봉다운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가장 깊숙한 지역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기수는 거기에 불만이 없었다.
장검을 둘러메고 앞장서서 나아가며 주변을 살폈다.
달아난 사마연합 무리의 기도가 여러 방향에서 느껴졌지만 기수가 찾는 것은 현현각 제자들의 기척이었다.
30분 정도 숲으로 들어가던 기수는 마침내 현현각 루주로 짐작되는 기도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거다!’
기수는 좌우의 제자들에게 수신호로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한 후, 자신은 오른손에 장검, 왼손엔 단검을 들고 적이 감지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따르라!”
비룡검문 제자들은 호법의 그 말 듣는 것을 좋아했다.
방향을 잡고 달리자 상대의 기도가 흔들리는 게 감지되었다.
그리고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앞장 선 현무단뿐만 아니라 무림맹 병력 전체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기수는 이번 출정을 하면서 음공 쓰는 자들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죽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래서 피리소리 신호를 들은 사마연합군이 쏟아져 나와도 자신의 앞길만 열면서 직선으로 달렸다.
자기가 적을 많이 죽일수록 비룡검문 제자들의 피해가 적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음종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무림맹 전체에 이득이 될 것이었다.
기수가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가자 첫 교대조에 속한 조치성이 쐐기진형의 꼭지점 자리를 대신 맡았다.
조치성 입장에선 기수의 속도에 따라붙는 것보다는 진형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기수가 적을 반으로 가르고 들어간 것만으로도 사마연합의 전력이 위축되고 약화되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기수의 돌진은 흡사 코뿔소와 비슷했다.
전력 질주하는 그의 앞을 막기 위해 사마연합 무리들이 악을 쓰고 달려들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달리는 스피드를 늦추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막아라!”
“적은 한 놈에 불과하다!”
기수는 적의 지휘관들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
“흥! 명령만 내리지 말고 네놈들이 나서봐라.”
누가 덤비건 결과는 같았다.
그러자 기수가 목표로 삼은 기도가 오히려 다가오면서 점차 강화되는 게 느껴졌다.
병력 피해가 예상보다 심하게 누적되자 보다 못해 나서는 것이었다.
기수는 적과 가까워지는데 맞춰서 화류의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두 명의 징잡이였다.
그들은 기수가 시야에 들어오자 채를 들고 미친 듯이 징을 두드렸다.
기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징소리가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징잡이들 뒤로 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양손을 입 좌우로 세우더니 달려드는 기수를 향해 괴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아!…..”
코끼리의 울부짖음 비슷했는데, 순간 기수는 기혈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움직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젠 능숙해진 화류의 호신강기가 제대로 방패 역할을 해주었다.
기수는 왼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힘껏 던졌고,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단검은 소년의 입에 정확이 명중하여 검 날이 목 뒤로 삐져나왔다.
소년은 두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져 3미터 정도 뒤로 날아가 처박혔고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더 볼 것도 없는 즉사였다.
두 징잡이는 루주가 그렇게 쉽게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기 때문에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서로를 마주보았다.
기수는 장검 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놈들의 목을 차례로 베어버렸다.
그가 돌아서자 사마연합 병력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기수를 바라봤다.
현현각의 음공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 명을 눈 깜빡할 사이에 죽여 버리는 고수가 무림맹 진영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수는 장검을 붕붕 소리가 나게 회전시키면서 적진으로 다가갔다.
사마연합 병력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다가 아예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현현각 고수들도 죽는 판에, 자기들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도망치는 쪽엔 횡대로 펼쳐진 비룡검문이 있었고, 그 좌우로는 현무각의 다른 병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사마연합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저마다 살 길을 찾아가기 바빴다.
주일비는 접전에 대한 보고를 듣자마자 병력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사마연합 무리들이 무림맹의 사냥감으로 전락하자 다른 쪽에서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수는 그쪽에서도 음종 고수의 기도를 느꼈다.
‘한꺼번에 다 나오면 나는 좋지. 후후…’
기수는 왼손으로 다시 단검 한 자루를 뽑아 든 후 조치성에게 말했다.
“나를 따라와!”
“예. 호법님.”
기수는 방향을 틀어 새로운 적을 맞으러 갔다.
이번에도 적의 병력운용 방식은 동일했다.
사마연합 병력이 앞에 배치되고, 현현각의 루주와 징잡이들은 음공 지원 준비를 한 채로 후미에 따라붙었다.
그들의 목적은 사냥 당하고 있는 사마연합을 돕는 것.
그러나 비수처럼 파고드는 한 사람의 고수에 대한 방비책이 부족했다.
기수는 사마연합 병력을 가르고 현현각 루주를 향해 돌진했다.
이번에도 그를 막는 자는 없었다.
천마교가 가세했다면 얘기가 좀 달랐겠지만, 천마교 병력은 양동작전을 위해 함양 쪽에 배치되었던 상태.
그러나 막상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기수가 광혼랑에게 경고를 함으로써 그들의 발을 묶어둔 것이다.
고수의 수가 적은 사마연합은 기수가 현현각 련주 앞까지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번에도 징잡이들이 먼저 나섰고, 루주는 기수를 향해 음공 펼칠 준비를 했다.
기수는 화류의 호신강기를 일으킨 상태지만 굳이 상대가 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려 줄 이유가 없어서 곧장 단검을 던졌다.
이번엔 거리가 좀 더 멀었기 때문에 파천강기의 기운을 함께 실었다.
쐐액!…..
단검은 음속을 돌파한 스피드로 날아갔다.
그리고 막 입을 벌리는 련주의 미간을 관통했다.
퍽! 소리와 함께 소년은 머리 뒤쪽이 터진 상태로 날아갔다.
음공을 펼치기도 전에 끝나버린 것이다.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빠샤!~”
꽤 먼 거리였지만 목표한 지점에 정확히 명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강력한 관통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마치 라푸아 매그넘으로 장거리 저격에 성공한 스나이퍼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짜릿했다.
징잡이들은 이번에도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수는 검 자루를 두 손으로 잡고 선풍비로 간격을 좁힌 후 딱 두 번의 동작으로 놈들을 처치했다.
‘오늘 성적은 나쁘지 않군.’
루주를 둘이나 죽였으니 단검을 만들어둔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화류의 호신강기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공연히 진기를 낭비하지 않고 파천강기 한 방 정도의 소모만 한 채 빨리 끝냈다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뒤따라 온 조치성과 비룡검문 제자들이 쓰러진 현현각 루주를 보고 신호 연기를 쏘아 올렸다.
주일비는 그것을 보고 병력을 나누어 새로운 사냥을 시작하도록 했다.
동료를 구하러 나온 사마연합은 이번에도 극심한 피해만 입고 도망치기 바빴다.
날이 어두워지자 주일비는 병력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리고 전과를 집계하는 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보고가 끝나자 주일비는 기수를 불러내어 모두 앞에 서게 한 후 말했다.
“오늘 최고의 공적을 세운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비룡검문의 양호법입니다.”
“와아!…”
엄청난 함성과 환호성,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두들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현현각의 무서운 음공을 사전에 제거해 준 양십일이 아니었다면 오늘처럼 마음껏 싸우기는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그동안 비룡검문의 양십일이 고수라는 사실, 그로 인해 용봉련의 련주가 되었다는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긴 했지만 오늘처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맹주의 인정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얘기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수는 ‘내가 잘 나긴 잘났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얼굴엔 그런 티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좌우로 포권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오늘 얼마간 공을 세우긴 했지만 그것은 모두 여러분이 함께 싸워주신 덕분입니다. 굳이 공적의 고하를 따지자면 무림맹주님과 군사님, 사신단의 단주님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러분이 가장 큰 역할을 맡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일부는 감동 받은 것 같은 표정까지 드러냈다.
기수는 현대에 사는 동안 MOM, MVP 인터뷰를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군웅들이 듣기 좋아할 얘기를 한 것이다.
덕분에 양십일의 주가는 더욱 상승하게 되었다.
모임이 해산된 뒤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다시피 해서 기수에게 인사를 했다.
실력이 소문보다 뛰어난 데다 인품까지 훌륭한 고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까 너도 나도 친해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귀찮은 일일 수도 있지만 비룡검문을 위해 웃는 낯으로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을 기억하고, 얼굴과 그 이름을 매치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꽤 피곤한 작업이었다.
인사가 다 끝난 뒤 한 여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정말 굉장했어요! 련주님.”
맑고 깔끔한 어조. 환한 미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꽤 애쓰는 그녀는 감숙 설가의 설소저였다.
기수는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참고 정중히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돌아서버렸다.
전에는 못 생겼다고 퇴짜 놓더니 이제 좀 유명해지니까 아는 척 하는 그녀.
기수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넌 너무 헤프게 생겼어.’
그리고 설소저보다 100배는 나은 사하를 찾아 그녀에게 윙크를 날려주었다.
그때 조치성이 기수에게 말했다.
“호법님. 문주님이 찾으십니다. 맹주님의 군막으로 오시랍니다.”
“나를?”
“예. 맹주님과 군사님이 회의에 참석하기를 바라신답니다.”
기수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수뇌부는 맹주의 군막에서 회의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핫! 맹주님이 찾으신다면 어쩔 수 없군.”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기를 빼놓고는 작전을 짜기가 불가능할 것이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현현각의 루주를 잡은 게 벌써 몇 번 째인가.
맹주의 군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맹주와 군사, 사신단의 단주와 부단주들, 그리고 중군에 소속된 소림, 무당, 청성, 곤륜, 천산파의 새 장문인 혹은 임시 장문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한 쪽 구석엔 기수가 예상치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동창의 천호 곽염과 그 부하들로 예상되는 고수 4명이었다.
접전이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합류한 것이다.
기수는 곽염을 수행한 고수들의 기도를 살펴보았다.
‘영반급? 어쩌면 장반급이 될 수도 있겠군.’
동창 내에서도 간부급에 해당할 것으로 짐작되는 수준이었다.
장안이 위협 대상이 되자 조정에서도 인원을 증강 배치한 모양이었다.
꽤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관군에 일을 맡기면 안 된다는 주일비의 고집이 바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는 은원관계가 중요한데, 무림맹이 동창에 신세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기수는 조심스럽게 곽염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곤의 실종 때문임이 분명했다.
기수가 신경 쓰는 부분은 이곤이 자신에 대해 뭔가를 느낀 후 그 얘기를 곽염에게 했느냐 아닌가였다. 그런데 곽염과 시선이 마주치고 눈인사도 한 결과 그는 자신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션 어캄플리시트!’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