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15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사마연합의 병력은 무림맹 군사 단령문의 예측대로 십면매복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포위망을 운용하며 차륜전을 펼쳤다.
그러나 전황은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전개되었다.
관군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병력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다는 게 문제였다.
사마연합 병력은 에워싸기에 실패한 이후 중앙의 종축이 속절없이 밀려버렸고, 관군은 언덕 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곽염은 선두에서 부하들을 더욱 독려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언덕이란 지형 때문에 진격 속도가 다소 늦춰졌지만, 승세를 타고 몰아붙이면 싸움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었다.
기수는 동창 고수들과 횡대로 벌려 선 상태로 외곽의 적을 맞아 싸웠다.
원래 그의 스타일은 맨 앞에 나서서 싸우는 것을 즐기지만 무림맹도, 비룡검문도 아닌 동창과 관군의 진영이다 보니 자기가 나서는 게 어울리지 않았다.
금빛 투구와 갑옷, 화려한 화극을 든 곽염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 오늘은 너의 날이다.’
그렇다고 싸움을 대충 하지는 않았다.
자기 검이 닿는 범위 안의 적에겐 용서가 없었다.
30분 정도의 분전으로 언덕을 중간쯤 올라가서 적 진영의 깃발에 수놓인 문양과 적히 글자들이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기수는 뭔가 접근하는 것을 느꼈다.
‘루주다! 그것도 두 명.’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적은 곳 시야에도 들어왔다.
두 명의 루주와 십여 명의 징잡이, 그리고 방패를 든 삼황맹 고수 십여 명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기수는 피식 웃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저쪽이란 말야.’
황금 갑옷 입고 분투하는 곽염을 놔두고 굳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은 상대 진영에 비룡검문의 양호법이 알려졌다는 뜻이었다.
단검 잔뜩 꽂힌 조끼에 검신이 넓고 자루도 긴 장검을 들었으니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조금 귀찮아졌군.’
방패수가 추가되었다는 것은 이전의 루주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런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기수는 말을 몰아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단검이 안 통해도 화류의 호신강기로 음공을 막아내는 한 루주들을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기수가 달려가자 징잡이들이 동시에 징을 치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는데, 기수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앞발을 들었다 뒷발을 들었다 하면서 날뛰었다.
“야! 왜 이래? 진정해!”
기수는 졸지에 로데오 대회에 나간 카우보이 꼴이 되었다.
음공이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에게도 고막이 있으니 음파에 놀라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기수가 등자에서 발을 빼고 점프로 안장에서 뛰어내리자 말은 징잡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 버렸다.
기수는 주차위반으로 견인되어 가는 자기 차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 말을 보다가 돌아서서 장검을 세웠다.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
그러나 미리 준비를 하고 자기를 잡으러 온 그들은 만만치 않았다.
징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소년, 소녀 두 명의 루주가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으으…..!”
기수는 기혈이 격탕하는 것을 느꼈다.
십여 개의 징소리와 두 루주의 음공이 결합되면서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강한 충격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검술이 약한 제자라도 검진을 만들면 전투력이 배가되듯이, 소리도 합주를 함으로써 위력이 강해진 느낌이었다.
기수는 심호흡으로 기혈 흐름을 안정시키면서 호신강기를 한 층 더 강화했다.
덕분에 멀미 날 때처럼 메슥거리던 기운은 사라졌다.
기수는 장검을 휘두르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너희들 수법은 내게 안 통한다!”
그러나 루주나 징잡이에게 도착하기 전에 방패수들이 기수를 막아섰다.
그들은 개개인이 아닌 전체가 하나의 연환된 팀으로써 움직였다.
‘이놈들 진짜 준비 많이 했는데?’
기수 입장으로서도 뚫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곽염이 화극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양호법! 내가 갑니다!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곽염은 계속 선두에서 관군을 이끄는 중이었다. 그런데 귀를 찢는 굉음이 울려서 돌아봤더니 현현각 고수들이 양십일을 협공하고 있었다.
적이 양십일 한 사람을 콕 찝어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선두에서 길을 여는 것보다 그를 구하는 게 더 급해졌다.
화극을 왼손으로 옮겨 쥔 곽염은 허리에 차고 있던 기이한 모양의 암기를 뽑아 들었다. 좁고 긴 꼬챙이 형상에 가지 형태의 작은 안정판이 달린 그것은 유성비(流星匕)라는 암기로, 이번에 음종과 싸우기 위해 황궁무고에서 특별히 가져오게 한 것이었다.
기수의 단검들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적을 제압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것을 던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양십일의 검법이 일변했기 때문이다.
기수는 남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혈매궁 궁주가 동창 천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또한, 이제까지는 쉽게 상대를 제압했지만 자칫 방심하다가는 당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그의 신법과 검법에 투영되었다.
선풍비 중 가장 빠른 보법으로 방패수들 사이를 파고들면서 비룡검법에 월영검법의 초식을 섞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굳건히 버티던 방패수들의 움직임이 혼란에 휩싸였다.
“으윽!…..”
방패와 그것을 쥔 팔이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방패수들의 비명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그 광경에 놀란 현현각 루주와 징잡이들은 더욱 소리를 크게 했다.
기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끔찍한 소음공해였기 때문이다.
다시 속이 메슥거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정신을 집중하여 방패수들을 제거했다.
처음 한두 명은 어려웠지만 진형이 무너진 이후엔 수월해져서 검을 한 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는 단검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기수의 그런 움직임을 발견한 두 루주는 깜짝 놀라 소리 지르기를 멈추고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흥! 난 할리데이비슨을 아파트 단지로 타고 들어오는 놈들이 제일 미워!”
국도라면 위법 머플러라도 그냥 눈감아줄 수 있지만, 아파트에 그걸 끌고 들어오는 건 뭔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마초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긴, 그런 건 사나이도 아니지. 씨티백 머플러에 구멍 뚫고 타는 양아치의 어른판일 뿐.
어쨌거나 기수는 이제까지 자기에게 소음공해 스트레스를 맛보게 한 두 놈을 그냥 보내 줄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특히, 루주 한 명의 음공은 견딜 만 해도, 두 명에 징잡이까지 가세하니까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적을 한 놈이라도 더 줄여야 했다.
단검 두 자루가 연달아 날아가 두 루주의 뒤통수와 등에 박혔다.
기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징잡이들에게도 단검을 던지거나 장검을 휘둘러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았다.
방패수 중엔 도망치는데 성공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곽염이 흥분한 말을 다독거리며 다가와 말했다.
“양호법님의 검술은 정말 대단하군요! 감탄했습니다.”
기수는 뒤를 돌아봤다.
가까이에서 음공에 내상을 입은 동창 고수들과 관군들이 다들 경외감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끔찍한 소리로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던 루주와 징잡이들 모두가 잠깐 사이에 시체로 변한 모습에 다들 놀라고, 또한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기수는 가볍게 손을 저어 보인 후 시신에 박힌 단검들을 뽑았다.
적의 수가 많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재활용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체의 옷에 단검을 닦아 조끼에 다시 꽂는데 곽염이 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전 괜찮았지만 말은 못 견디더군요. 하핫!”
그러자 곽염이 부하 무사에게 턱짓을 했다.
동창 고수는 무슨 의미인지 눈치 채고 즉시 말에서 내려 기수에게 고삐를 건넸다.
“제 말을 타십시오.”
일반 무림인이라면 몰라도., 관리라면 눈치가 빨라야 출세도 하는 법이다.
기수는 사양하지 않고 그 말에 올라탔다.
루주 두 명과 징잡이들을 처치해줬으니까 말을 탈 자격 정도는 있다고 생각되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곽염이 몹시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실력을 직접 본 이후 태도가 한 차례 더 변한 것이다.
기수는 곽염과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
두 루주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인지 적의 방어는 약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관군의 사기가 올라갔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관군은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여 고원처럼 평탄한 지형에 당도했다.
그리고 거기서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적이 횡대로 펼쳐 서서 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곽염은 화극을 높이 들어 전진을 멈추도록 했다.
적 진영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도를 느꼈기 때문이다.
기수도 표정이 굳었다.
적의 진영 한가운데엔 휘장이 쳐진 가마가 놓여있고 주변으로 10여명의 피리, 북, 생황 등을 든 남녀, 그리고 20여명의 징잡이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가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기수는 곽염을 봤고, 곽염 역시 기수를 봤다.
상대가 엄청난 고수라는 사실에 기수는 놀라고, 곽염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비룡검문의 양십일이냐?”
기수는 깜짝 놀랐다.
가마와의 거리는 상당히 먼데 사내의 목소리는 아주 평이한 어조로 바로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왔다. 마치 헤드폰으로 듣는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곽염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화류의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자기 귀 주변의 공기만 골라서 진동시킬 수 있다면 언제든지 음공으로 기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오! 특이한 호신강기를 익혔군. 그것 때문인가? 우리 제자들이 당한 것은…”
기수는 바로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려 좌우를 봤다. 물론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신강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음성이 가까이에서 들린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곽염이 가마를 향해 화극을 겨누며 말했다.
“가마 안에 있는 놈은 누구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너는 누구냐?”
이번엔 곽염을 비롯한 동창 고수들이 깜짝 놀라 좌우를 둘러봤다.
그들 역시 청년의 음성을 바로 귀 옆에서 들은 것이다.
곽염은 심호흡을 한 차례 한 후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황명을 받고 온 조정의 고관이다! 너는 즉시 나와서 칙지를 받아라!”
“하하하!…..”
웃음소리에 관군진영 전체가 흔들렸다.
병사들 모두 귀에 대고 웃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수는 단검 한 자루를 손에 쥐었다.
이제까지 드러난 실력만 봐도 루주들과는 격이 다른 고수였다.
‘저놈이 현현각의 각주인가?’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곧장 단검을 던져야 할 것 같았다.
가마 안의 인물이 곽염에게 말했다.
“본래 관과 무림은 빙탄불상용이라. 서로 경계를 지키며 섞이지 않는 법인데, 어찌하여 황명을 들먹이며 이 자리에 나타났느냐?”
곽염은 물러서지 않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이미 무림의 일이 아니다! 오랑캐와 산적, 수적 무리가 힘을 모아 감숙성을 점령했으니 반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네놈도 즉시 나와서 포박을 받지 않는다면 반란의 수괴로 참형에 처하는 것은 물론, 삼족을 멸하게 될 것이다!”
호통 치는 소리에 힘이 있었다.
관리다운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하하!…..”
다시 한 번 웃음소리가 언덕을 가득 메우며 퍼져나갔다. 마치 선거 때 쓰는 대형 앰프를 켜놓은 것처럼 산봉우리에 반사되어 메아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 놈. 소리를 완전히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구나.’
기수는 장검을 걸고 오른손으로도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 때, 가마의 휘장이 걷히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훤칠한 키에 흰 비단 장포를 걸친 청년으로 꽤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피부가 푸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창백했다.
그래서 새까만 머리, 새까만 눈동자, 붉은 입술이 더 또렷해 보였다.
수염은 나지 않았고 피부도 매끈매끈 탄력이 있어서 1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동안이었지만 목소리는 그보다는 연륜이 있었다.
기수는 생각했다.
‘현현각의 무공을 익히면 다들 어린 용모를 유지하게 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현현각 각주의 진짜 나이가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기수는 그와의 거리, 각도 등을 가늠한 후 내공을 끌어올렸다.
파천강기에 실어서 원투 연타로 단검을 날릴 생각이었다.
곽염이 사내에게 물었다.
“네가 현현각 각주냐?”
“그렇다. 내 이름은 사공명이다!”
곽염이 약간 누그러든 어조로 말했다.
“네게 특별히 기회를 줄 테니 조정에 귀순해라.”
막 단검을 던지려던 기수는 당황했다.
귀순하라는 얘기는 동창에서 음종의 재주를 써먹겠다는 뜻 아닌가.
하긴, 이 정도 능력을 지닌 고수를 스카웃 할 수만 있다면 이제까지 저지른 죄상쯤은 대충 넘겨줄 수 있을 것이었다. 동창엔 그럴 힘이 있었다.
그러나 기수 입장에선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비단 혈매궁뿐만 아니라 경쟁 관계에 있는 장군부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지금 잠시 손을 잡고 있는 무림맹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무림과 관의 힘의 균형관계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현각 각주 사공명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순이라고?”
곽염은 기대감 가득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렇다. 예로부터 도적 무리라 하더라도 황상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입어 조정에 중용된 사람이 적지 않다.”
“조정이라….”
사공명은 손으로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기수는 단검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동창과 음종이 손잡는 일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